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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약속 브래들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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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by 션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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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재앙으로 혼란한 이 시대, 달이 초래한 사건은 현자의 마법사 일동이 해결해드립니다. 마법관 대문에 큼지막한 현수막을 걸어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각 국에서 이변 보고나 토벌 의뢰가 찾아오고. 직접 마법관을 방문하는 의뢰인이 늘어난 덕분에 스노우와 화이트는 조금 고민하다 결계를 느슨하게 조정했다. 마법관에 볼 일이 있는 자라면 들어와도 헤매지 않도록 조정해봤단다. 모처럼 찾아왔는데, 어딘지 몰라서 빙빙 헤매면 가없지 않누!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헤카테는 평소처럼 찾아왔다가 마법관 입구에서 짜증나는 배려를 느끼고 다시 빗자루를 잡았다. 쌍둥이의 쓰잘데기 없는 배려가 덜 묻은 부분을 찾아서, 마법관 위를 빙 돈 헤카테는 후면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상대적으로 인적도 왕래도 적은 곳이다 보니 고맙게도 배려가 덜했으니까. 쌍둥이의 마력이 더덕더덕 성에처럼 껴있는데 잘도 이런 데서 지내네요. 일부러 재채기라도 해서 숨 좀 돌리고 사는 게 어때요? 아니면 코맹맹이가 되어 아무것도 못 맡은 몸이 된 건가요. 잘 지냈나요? 만나러 왔답니다. 안녕하세요? 그런 인사대신 쓸 빈정거림을 헤카테가 궁리하고 있으니 인영이 보였다.

너야말로 한가한가보지. 무려, 빈손으로 찾아오고. 마찬가지로 짐이 없는 헤카테를 보고 어서와라 이제오냐는 말 대신 적당한 반응을 건넬 브래들리일 줄 알았더니. 오웬이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헤카테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예전이라고 해도 고작 작년 일이지만. 예전 마법관은 이름만 달랑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초라했고. 이례적인 재앙 습격 이후부터 마법관이라는 이름대로 현자의 마법사 전원이 공동 생활하는 생활관이 되었다. 

그러니 오웬이 여기 있는 것도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것도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오웬이 기다렸다는 듯이 딱 착지 지점에 나타났다는 점과 여길 보고 있다는 게 걸려 헤카테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무슨 볼 일 있냐고 먼저 물어봐야하나? 그냥 둘까? 오웬과 헤카테는 큰 접점이 없었다. 둘 다 북쪽에서 오래 산 마법사인 만큼 소문으로 들은 건 많고, 아주 가끔 가다 만나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서로 오래 살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끝날 사이. 아득하게 긴 시간이 간신히 이름만 묶어든 그런 관계였다. 타이밍 좋게 딱 마주친 게 아니라면 신경 쓰지도 않고 지나갔으리라. 

그리고 헤카테의 짐작대로 오웬이 먼저 살갑게 말을 걸었다.

"헤카테 마침 잘 왔어."

"무슨 일 있으신가요?"

헤카테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너 누구였지? ⋯⋯아 그래 기억났다. 그 마녀야. 브래들리랑 있던 마녀. 평소 오웬이라면 그렇게 말하고 흥미를 잃었을 텐데. 손님을 반기는 주인 같은 태도를 취하다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지만 한 번 들어는 볼까요? 오웬은 죽지 않는 몸이니 어떤 사건이 생겨도 문제없기도 하고. 오웬의 살가운 태도가 재미있어 헤카테는 변덕으로 장단을 맞췄다.

"너한테 전할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기뻐."

어린아이처럼 순진하지만 어조는 기분 나쁘게 동일한 저 말투. 

심술부리긴. 급속도로 오웬한테 흥미가 떨어진 헤카테는 브래들리 방보다 먼저 주방에 찾아가, 네로를 포획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느닷없이 심술을 받았으니 술이나 네로의 요리로 기분을 돌려야 균형이 맞는데. 정말 가볍게 찾아온 거라 헤카테는 빈손이었다. 

마땅한 술이 없으면 네로의 요리가 맞지. 까다롭고 친절한 요리사께선 부탁하면 곧잘 들어주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어이없어해도 요구를 들어줄 게 분명했다. 역시 네로부터 잡으러 갈까. 맛있는 냄새에 브래들리도 끌려올지도 모르니.

딴 생각하는 헤카테를 보고 오웬은 일부러 서운한 티를 냈다. 너무해, 나는 정말 널 생각해서 바로 달려온 건데 다른 생각이나 하고 있고⋯⋯. 뭐 좋아 나는 상냥하니까. 너한테만 특별히 말해줄게. 서운해 푹 낮아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음성은 크레바스 같았다. 

끝을 알지 못하는 빙하의 균열처럼,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끝없이 추락하겠지. 

"헤카테."

오웬이 무슨 말을 해도 네로의 요리로 깨끗하게 귀를 씻고 잊어버릴 자신이 그때까지만 해도 있었다. 

브래들리는 언젠가 큰 실수를 할 거야.

어떤 실수를 하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알려줄까?

헤카테의 생각대로 오웬은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카인에게 별 도움도 안 되는 엉터리만 알려주고 있으니까. 마법사로서 막 걸어 다니다 못해 기어 다니고 있는 기사님에게, 쓸데없는 걸 쌓게 만든 주제 대단한 걸 가르쳐줬다는 마냥 의기양양하게 구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부리는 심술이고 시비였다.

오웬은 비꼬기를 좋아하고 심술부리는 걸 정말 좋아하는 귀찮은 마법사니까. 평소 헤카테라면 이렇게 시비를 걸어온 이유를 찾고. 카인인가? 그 아이는 위대한 마녀, 헤카테님을 잘만 따라오고 있답니다? 네가 뭔데 이러는 건지 영 모르겠다는 대답을 툭 던지고 자리를 떠나거나. 아예 반응하지 않고 빗자루를 돌려 갈 길을 갔어야 했는데.

브래들가 큰 실수를 해? 그 말이 목에 걸려 반응이 한 차례 늦었다. 그 사람이 무슨 실수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애당초, 나한테 왜 그런 이야기를⋯⋯. 무슨 말을 해도 어느 부분에서 턱 걸려, 제대로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상황은 당황스러웠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오웬은 헤카테의 당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뭐야, 시시해. 재미없어. 새 장난감을 찾는 어린아이처럼 자리를 떠났다.

오웬이 없는 자리에서 헤카테는 찾아온 혼란을 곱씹었다. 마법사마다 자신 있는 특기 마법이 다르고, 이길 수 있는 수단이 다른 것처럼. 오웬의 진가는 긴 혓바닥에서 나왔다. 촘촘하게 쌓아 올린 나무 조각 중에서 어떤 조각을 빼야 한순간에 무너지는지. 어떤 퍼즐 조각을 빼내야 미완성이 돋보이는지. 핵심과 뼈대만을 노리고 엉망으로 만드는 게 특기인 마법사가 오웬이니까.

그런 마법사가 헤카테에게 부리는 심술로 브래들리를 가져왔다는 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그 사실을 경계하기도 전에 그 사람이 무슨 실수를 한다는 거죠? 실수 내용을 알아내려고 했다는 게 믿겨지질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다면 수백 년 전부터겠지. 아니면⋯⋯ 설마 그때 그건가? 헤카테가 브래들리의 조짐이 무엇인지부터 궁리한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과거는 불문으로 부치기로 했고. 네로의 요리는 맛있고 브래들리까지 껴서 한 잔 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헤카테가 네로를 찾아가는 건 별 일이 아니지만. 죽음의 도적단 수령 브래들리 베인이, 도적단이던 요리사 네로 터너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건 별 일 맞지 않나? 아이일 시절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오른팔이었으니까. 그런 정이 개입하기엔 그들은 북쪽 마법사였다. 

브래들리가 다른 곳도 아닌, 이 마법관에서 지내는 것도 이상했다. 죄수가 됐다고 해도 그렇지. 스노우와 화이트, 오즈와 피가로까지 있는 장소에서 지낸다니. 재채기로 다른 곳으로 날아가도 우선 마법관으로 돌아오고, 마법관에 오면 브래들리와 만날 수 있다니. 북쪽 마법사답지 않았다.

북쪽 나라 마법사는 무섭고 장난 아니게 강해. 그리고 서로 사이가 안 좋고 자기중심적. 세계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거 같은 녀석들이야. 어느 현자의 말처럼 북쪽 마법사는 고고하고 긍지 높고 자유로운 이들이었다. 세계와 스스로를 천칭에 걸면 어느 쪽이 무거운가? 질문 받으면 누구나 자기가 무겁다고 대답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토지였으니까.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내키는 대로. 스스로 정한 긍지를 지키면서 사는 것이 북쪽 마법사의 방식이자, 모든 것인데. 

그렇게 보면 브래들리는 이상했다. 현자의 마법사 브래들리 베인은,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었다. 이대로 지내다가 결국 큰 실수를 초래한다는 뜻인가? 거칠고 성격 더러운 북쪽 정령들이, 가장 중요할 때 브래들리 편을 들지 않고 무시한다거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된다거나.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까? ⋯⋯하! 그렇다고 해도 나하곤 상관없지만. 아니 그러고 보니 전에도⋯⋯. 

죽음에는 익숙해졌다면서 담백하게 굴던 브래들리를 떠올린 헤카테는 주저 없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이런 엉터리 같은 세상에서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사는 것도 소홀해진다고 했으면서. 그런 말을 한 당사자가 싱거운 반응을 한 건 명백한 이상이고 북쪽 마법사 브래들리답지 않았다.

그리고 헤카테도.

흥, 날 무시한 대가로 당신 방에 있는 술을 모두 먹어버리겠어요. 숨기고 있는 마나석도 전부 다 내 것이 될 거니까, 각오하는 게 좋아요! 아니 숨길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 건 아니죠? 마나석의 기운을 느끼고 브래들리가 설명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어야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그때 무슨 말을 했지? 뭘 했더라?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작은 혼란에 빠졌다.

자유와 긍지를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자기 자신만이 세상의 전부인 북쪽 마법사가 이러다니 답지 않아.

답지 않아 속이 울렁거리는 만큼 마음이 요동쳤다. 불안해 뛰는 심장 고동이 달갑지 않은데, 기분이 마냥 나쁘지는 또 않다니.

헤카테는 한 번도 자기 일로 고민한 적 없었다. 정확하게는 마법을 못 쓸 만큼 혼란에 빠져 고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작 돌이 되는 게 북쪽 나라고 헤카테는 북쪽 나라의 대마녀니까. 그런데도. 

지금 그의 얼굴을 보면 당장이라도 마법을 퍼부어버릴 것만 같아서. 혼란에 빠진 상태로 하늘을 가로 질렀다. 혹독한 추위와 광석 가루가 흩날리는 상흔에 도착하면 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리라는, 본능을 따른 행동이었다.

 

그 녀석, 얼굴도 안 보여주고 가는 건가.

익숙한 마력이 느껴져 기껏 기다렸더니만. 운이 있다가도 없는 녀석이야.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지는 헤카테의 기운을 느낀 브래들리는 아쉬움 반, 진짜 운도 없네 어쩌냐 친근함 반으로 창문을 슥 보고 잔을 기울였다. 임무 수고 많으셨어요. 이게 약속했던 사례의 일부랍니다. 서쪽 파이프쟁이가 이번엔 꽤 괜찮은 걸 가져왔는데. 맛도 못 보고 가다니, 참 운이 없어.

맛있는 술은 혼자 마셔도 여럿이서 나눠 마셔도 좋으니. 헤카테가 들어오면 그 뻔뻔한 태도를 즐기면서 한두 잔 정도는 나누어주겠지만. 왔다 멀어진 상대를 붙잡고 이거 좋으니 마셔라, 권유할 생각은 없기에 브래들리는 미련 없이 창가에서 시선을 떴다. 오면 오는 거고 가면 가는 거고. 자기가 간다는데 굳이 잡을 필요 없고 안 불렀다고 안 올 이유도 없고. 적당한 거리와 그에 맞는 어울림. 긴밀하면서도 정 없는 애매모호한 사이가 북쪽 마법사다운 사이였다.

그러니 손님이 오지 않아 텅 빈 잔에, 적적함이 남을 일도 없겠지.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놔뒀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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