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미츠] 타임 패러독스 (1)
소장와카
Warning : 소장 나루호도 X 와카 미츠루기 (갓 검사 된 미츠루기)
조용하다.
꼭, 세상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단순히 조용하기만 한 이 공간은 분명하게도 모순이었다. 침잠되어 있는 이 순간의 고요를 깨어부수고 싶지 않아 의식이 남아 있음에도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의식을 조금 더 집중시키면, 명확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익숙하군. 시계. 시계다. 건전지로 동작하는 게 분명한 벽걸이 시계는 오늘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역할을 해낸다. 톡, 톡, 톡. 초침이 정확하게 한 바퀴 돌아 원을 그리는 순간까지 호흡을 고른다. 호흡. 숨. 어떻게 숨을 쉬고 있었지. 당연하기만 한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기 시작하면 그것보다 어색하게 느껴지는 행동이 없다. 코 끝으로 밀려 들어가는 산소가 온 폐부를 부풀리고, 천천히 빠져나감과 동시에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온 방안이 어두웠으나, 그림자의 끝에는 빛의 꼬리가 달려 있었다. 흔적을 따라 몸을 반쯤 굴려 돌린다. 사락. 귓바퀴를 타고 바스라지는 천의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가 번진 물자국이 마르는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스름 새벽인가. 잘 쳐놓은 커튼의 틈새를 파고드는 빛은 푸른빛이었다. 아닌가. 어쩌면,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아 온몸으로 빛을 받아내고 있는 남자가 푸른색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미츠루기 레이지는 생각한다. 이런.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파도처럼 모든 침묵을 타고 밀려와 덮친다. 그 흐름에 휩쓸릴 것 같아 입을 다물었지만, 조금은 떠밀려 내려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꼭 그런 기분이 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남성이었다.
눈을 감는다.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상황 속에서, 눈가를 향해 날아드는 따스한 온기가 지나칠 정도로 다정하다. 미츠루기는 지난 어린 날 서적에서 읽어 보았던 내용을 떠올려 본다. 자신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프시케는 에로스의 얼굴에 등잔불을 가져다 대었으나, 미츠루기로서 진실을 갈구하기 위해 서툰 손으로 불을 켜다 자칫 촛농을 떨어트려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는 이 푸른 에로스를 날려 보내는 순간 견딜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눈을 감고 있는 거야.
푸르기만 한 웃음이 심장에 스민다.
미츠루기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눈을 감아 버린다.
七.
" 미츠루기? "
손끝이 떨리는 건지, 아니면 몸이 반동으로 딸려 나가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무슨 힘이 이렇게 괴랄한지. 돌연, 검사 집무실의 문을 비집고 들어간 손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다치든 말든 망설이지 않고 닫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타고 번지기 시작한다. 판단 미스다. 보기 좋게 타이밍을 놓치기까지 했다. 한 사람의 팔이 겨우 출입할 만한 공간은 주인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점점 벌어지다가 결국 남자의 허벅다리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내어주고 나서야 포기해버린 미츠루기가 손에 주고 있던 힘을 풀어버리면, 어이쿠. 너스레를 떨며 활짝 문을 열고 들어와버리는 남성은 어디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짝이었다.
아니, 아닌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가 되었든, 지금 이 순간 그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미츠루기는 자신이 급박하게 검사 집무실의 문을 닫아야만 했던 경위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미츠루기. 미츠루기 레이지. 맞지? 질문이라고 하기에는 확신에 차 있었으나, 확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목소리가 복도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순간 미츠루기는 목소리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결코 가느다랗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제법 단단해 보이는 체형. 몸의 윤곽을 효과적으로 덮어,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세련된 정장. 저 너머로 시원하게 넘어가 있는 머리카락과 답지 않게 반짝거리는 저 눈빛.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슴팍 언저리에 꽂혀 있는……. 변호사임을 증명하는 뱃지. 법정에서는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저렇게 고풍스럽게 입어 놓고서는, 신참 변호사인가. 시선을 한 번 두르는 것만으로 상대를 파악해 내는 것은 미츠루기 자신에게 있어서 큰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가끔은 단점이 되기도 했다. 그래. 꼭, 이렇게.
" 드디어 찾았네. 이맘때쯤에는 어디에서 지내는지 몰라서 말이야, 꽤 애를……. "
" 흥. 유감스럽게도, 자네에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없네.
선생님께서는 항상 이맘때쯤에 담당하셨던 사건을 정리하느라 바쁘시니까.
만나줄 이유도, 여유도 없다는 뜻일세. 괜한 발걸음 하지 말고, 이쯤에서 돌아가게. "
" …… 하?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속에서 끌어내었던 가설을 확정을 짓고 답변해 주는 목소리가 무색해질 정도로 얼이 나갔음을 보여주는 목소리라, 오히려 이야기를 꺼내었던 미츠루기 자신이 순간 이상한 이야기를 한 것인지 재게 만들어 버린다.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미츠루기의 팔을 덥석 잡았다. 반항을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츠루기의 표정은 잠시 아연하게 변한다. 단단히 잡아둔 그 팔을 제 쪽으로 끌어당길 때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손을 잡고 나서부터는 상처를 하나도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더없이 소중한 것처럼 굴더니 종내에는 엄지손가락으로 손등을 누르고 부드럽게 쓸어내려버리는 움직임에 그만 소름이 돋아버린 미츠루기가 손을 뿌려쳐버리고,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던 게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결국, 저 무도한 무뢰배를 집무실 속에 들여버렸다는 점에서 실패한 시작이었겠으나. 하아, 너. 이 즈음에도 힘은 꽤 썼구나. 온 힘을 다해 밀어내는 쪽을 가볍게 당겨버리는 것만으로 품 속에 가두거나, 열을 올려 닫으려 들었던 문을 도리어 활짝 열어젖혀버린 쪽이 할 만한 이야기는 아무리 봐도 아니었다. 비꼬는 것인가 속으로 재어보며 미간을 굽히면, 집요하기만 한 시선에 결국 갈 데 없는 시선을 모로 틀어 버린다. 조금은 분하다.
" 제정신이 아니군. 이야기하지 않았나? 선생님께서는 지금 바쁘신 분이다.
자네같이 무례한 일개 변호인이 원한다고 바로 만나 뵐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자네에게 정말로 '용건'과 '자격'이 있다면,
제대로 된 절차를 밟고 돌아오는 편이 그 무례한 신상에는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을 걸세. "
" 으음. "
" 그러니까, 이만……. "
" 그렇네. 확실히, 이 땐 정말 똘망똘망 했구나. "
" …… 뭐? "
" 음, 아닌가. 역시 종알종알에 조금 더 가까운가. "
눈앞에서 당장 삽시간에 구겨지는 표정에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가볍게 턱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하는 이야기는 가히 가관이었다. 아니.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 보면, 눈앞에 있는 사내는 미츠루기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로부터 시작된 시선이 입술에 닿는 순간에까지 훑으면서 내려가는 경로가 지나칠 정도로 끈적거린다. 물질적인 무언가가 닿는 것도 아닌데, 정신을 놓으면 금방이라도 헉하고 얼빠진 소리를 토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미츠루기는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한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 버린다. 그런 거리감의 차이를 용납할 생각은 없는지, 한 걸음 물러나면 그것보다 조금 더 다가오는 걸음걸이가 따라붙으며 도망가려는 자와 다가가려는 자의 추격이 시작된다. 등이 벽에 닿아버린 미츠루기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일방적이고 매우 불리한 수들이다. 조금은 둔탁한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잠시 뒤를 바라본 찰나의 순간에, 두어 걸음을 빠르게 옮겨 따라붙어 버리면 제대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벽과 자신의 사이에 미츠루기를 가둬버리자 미츠루기는 속절없이 눈앞의 사내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잡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낯짝이, 온종일 도망 다니던 고양이를 처음 잡아 품 속에 밀어 넣어버린 사내아이 같은 모양이라 오히려 조금 더 맥이 빠져버린다. 이 사내는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상황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치미는 순간 조금 더 날이 서버리고 만다.
" …… 우습잖은 품평이군. 용건이 없다면 돌아가게.
이 이상의 무례를 저지르거나, 추태를 부릴 경우 경비를 부르겠네. "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만큼 미세하게 느껴지는 작은 변화 같은 건 확실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몸뚱이를 끌어안고 있던 손끝이 미약하게나마 움츠러드는 것 같은 감각. 으음. 그건 조금 곤란한데. 정말로 진심을 담아 '곤란'해 보이는 목소리가 들리면 미츠루기는 조금 더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해 손을 움직인다. 언제나 무례하고 무도한 녀석들이 존재하는 이 사회 속에서, 조금의 안전장치라도 마련해두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사무실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검사라면 어떤 벽면 어디를 누르면 신호가 발송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름 없는 변호인이 그렇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만큼 이, 미츠루기의 유일한 조커 카드였을 것이다.
그래. 아마, 벌써 두 번씩이나 뱃지를 발급받은 이 사내조차 어린 검사의 자신만만한 언질이 없었으면 그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던 방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진 못했을 것이다.
위화감은 행동을 위한 신호탄이 되고, 미츠루기는 단 한순간도 결단의 순간 망설이는 적이 없을 만큼 냉랭하기 짝이 없는 신참 검사였다. 무엇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선생님과 이 무뢰배가 만나는 것도 꽤 곤란한 일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선 시점부터 미츠루기에게는 호출 버튼을 눌러야 할 의무가 생긴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던 손이 목표를 마치기 위해 허리 아래에 밀려 들어가는 순간 강하게 붙들려 잡혀 올라가는 손목은 결코 계획에 없던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집어삼킨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큼지막한 온기와, 자신과 문을 사이에 두고 언쟁을 벌일 적 어렴풋하게나마 체감할 수 있었던 힘이 한 데 몰리면 자신도 모르던 통각이 밀려 올라가 눈꼬리를 타고 습기가 스미기 시작한다.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취하기 위해 행동함에도 꽤 상대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던 건지, 금방 손이 떨어져 나가며 살이 덧붙어 버린다. 미, 미안. 아프게 할 생각은 없었어. 동시에 눈에 띄게 줄어드는 힘이 손목을 잡은 건지 만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에, 미츠루기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손을 뿌려치며 반대편 벽면을 향해 도망쳐버린다. 이 위치에는 호출 버튼이 없다. 눈을 길게 뜨고 있다가, 못 이기겠다는 것처럼 두 손을 들어 능청을 떨어대는 사내가 이 방의 구조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미츠루기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내의 심기를 긁을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려 버린다.
실제로도 지금 당장은 약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판단한 것인지, 미츠루기가 자신을 쫓아낼 만한 요소가 없는 방향에 서있는 동안 사내는 초조하거나 성급하게 굴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되레 미츠루기의 심기를 긁는 일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었지만, 미츠루기의 시선 속 사내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여 정의 내릴 수 없으므로 훨씬 어렵기만 했다. 팔짱을 눌러 끼고, 약간 기울어진 자세로 팔 끝을 손가락으로 툭툭툭 건드린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 것인지, 한결 더 발그스름해지는 표정이 훨씬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은 더 나직하고 억척스러운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는다.
"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바쁘신 분이다.
나를 통해 어떤 이득을 취하고자 한다면, 완벽히 허투루 시간을 소모하는 행위라고 단언하도록 하지. "
" 흐음……. "
" …… 하지만, 그쪽이 이 정도의 열과 성의를 다하는 만큼 긴급한 사안이라면 전달을 고려해 줄 수는 있겠군.
자네에게도 사정이 있을 테니, 내용을 확인한 후 판단하여 적합하다면 보고하도록 하겠다. "
" 그건 참 감개무량한데 말이야. "
그래도 상황을 감안해 준다는 건 참작을 위한 언행일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득점을 한 걸까. 나. 장난기가 넘쳐 보이는 표정은 간데없고, 짐짓 진중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정말로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순식간에 반전되는 분위기에 압도당한 미츠루기가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음을 두고, 거리를 좁혀 이번에는 아프지 않게 손을 감싸 잡는 행동이 지독히 익숙해 보여 미츠루기가 옅게 인상을 구긴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얽히고, 천천히 마주 닿는다. 호흡이 닿을 만큼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고개를 조금 들어 올리면 금세 얼굴 전면에 번지기 시작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마주하기에는 충분하다.
" 글쎄……. 그래도 그건 곤란해. 내가 용건이 있는 건, 네 쪽이거든. 미츠루기. "
숨을 참는 건지, 순간 적으로 작은 딸꾹질 소리와 비슷한 음성이 허공을 채우는 동안 사내는 허투루 웃음을 짓지 않기 위해 속으로 전력을 다 한다. 귓바퀴에 조각나 쿡쿡 눌러 박히는 낮고 조용한 목소리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아무리 그의 어린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목소리를 싫어하진 않겠지. 증거는 명확하게 보인다. 당혹스러움을 참지 못하거나, 부끄러우면 목부터 시작해서 뺨을 타고 귓불까지 번지는 불그스름한 낯짝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온 세상을 통틀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만큼은 항상 지나칠 정도의 자부심이 되곤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더불어서, 이 불쌍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 지금쯤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옛적의 버릇은 다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직도 자신의 '논리 회로'에 맞지 않는 행각이 일어난다면 언제나 '이유'를 찾곤 하던 녀석이었다. 사내가 두 번째 뱃지를 취득해낼 무렵에는 그의 이름에 한해 모든 이유를 생각하길 포기한 듯했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 녀석은 그렇지 않겠지. 한 손을 내려 허리 언저리에 감으면 밀어내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안긴 건지 허리를 들어 올린 건지 모를 어정쩡한 포즈를 지어내는 것도 귀엽다. 아직까지 어리숙한 것들 투성이라, 어디에서부터 가르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그래서, 지금 당장은 조금의 힌트를 흘려 주기로 한다. 돌아가버린 고개를 따라가지 않고, 머리 위에 이마를 툭 기대어 버리며 천천히 이야기를 흘린다. 어때. 내가 아직도 누구인지 모를 것 같아? 본질적인 질문이 떨어지면, 그 시간부터 천천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짧게 앓는 소리를 흘리는 것까지 귀엽다. 머릿속에 몇 십 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정리해 나열해 보았지만, 큰 수확이 없는 것인지 눈을 감는 미츠루기에게 다시 한번 웃으며 조금은 타박한다. 제대로 마주하고 비교해 봐야지. 특징과 증거를 잡아내어서 파악하는 게 검사의 일이잖아. 그렇지? 헛점이 찔렸는지 억척스레 마주 해오는 두 눈을 바라본다. 이제야 제대로 나를 봐주는구나. 괴롭히고 싶진 않았는데, 일일이 이렇게 귀여운 반응을 보여줘버리면 나쁘기만 한 버릇을 내어 보일 수밖에 없다.
기억의 흐름을 타고 올라가는 의식이 점점 저 훤칠하기만 한 얼굴을 더듬는다. 시원시원하고, 잘 빠진 모양의 눈코입. 이상할 정도로 비죽거리는, 눈썹과 머리카락. 이렇게까지 특이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아닌가. 이런 얼굴을 언젠가 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럴 리가 없는데. 미츠루기가 기억하는 이 얼굴은, 확실하게 아주 어릴 적 학급 재판에서 엉엉 울던 작은 꼬마 아이의 얼굴과 매우 닮아 있었다. 그에게 많은 시간이 허락된다면,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눈을 빛내고 있는 사내가 되어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미츠루기가 알고 있던 그 꼬마 아이는 자신과 동갑인 사내아이였다. 물론 멀끔하고 훤칠하게 생기긴 했지만, 미츠루기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인 일만큼은 믿지 않는다. 미간을 굽히며,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린다.
" …… 나루호도 류이치의, 가족인가? 형제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
" 하하. 역시, 그곳까지밖엔 생각이 닿지 못하는 건가. 뭐어.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
" …… 당연한 일이다. 녀석은 나와 나이가 같은 동급생이지.
자네처럼, 나이 차이가 확실하게 나는 얼굴일 리가 없다. "
" …… 방금 그 말은 조금 아픈데. "
전혀 상처받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툴툴거리면 일갈해버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는 사실을 미츠루기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금세 어깨를 향해 파묻어버린 사내의 얼굴이 가려져버린다. 목가에서 간질거리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기분 나쁘다. 허리를 틀어 빠져나가려 하지만,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일갈하려 했던 목소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축축한 호흡에 묻혀 입속 깊은 곳으로 밀려 들어가 버린다. 저 아래에서, 다시 한번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츠루기는, 돌연 이 사람이 지금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해 버린다.
" 이것저것 네게 설명해 주고 싶은데 말이야. 안타깝게도, 내겐 남은 시간이 없어. 미츠루기. "
" …… 무슨 시간을 이야기하는 거지? "
" 모든 시간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있는 미래가 뒤틀려 버릴지도 모르거든. "
" 하. 상대적으로 현실감 없는 소리를 받아줄 만한 자는 이 근방에조차 단 한 명도 없다.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려면 병원에 가서……. "
" 그거 알아? 미츠루기. 지금을 바꾸지 않으면, 너는 정확하게 4년 뒤에 죽어. "
" …… 뭐? "
" 그리고, 나는 그걸 막고 싶어. …… 너한테 나쁜 짓은 아닐 거야.
너도 궁금하지 않아? 바뀌어버린 미래에 살아남은 네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또, 누구와 함께 있는지. "
" ……. "
농담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걸 안다. 아니. 실제로도 미츠루기는 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천천히 들려 올라온 고개가 이마를 마주 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는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미츠루기의 목 끝까지 밀려 올라온 수십수백 가지의 반론이 저 뱃속으로 툭 처박혀 버린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눈동자는 굉장히 격렬하고 잠잠했으나, 미츠루기는 얼핏 저 눈이 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자신에게는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어떠한 증명도 되진 못했겠지만, 조금은, 믿고 싶은 기분마저 들어버리는 자신이 우스워 헛숨을 토해내고 눈을 질끈 눌러 감는다. 머리가 어지럽다. 이 사내가 바라는 게 정말 '자신의 죽음을 막는 일'이라면, 목적을 달성하는 대로 돌아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할 일이다. 모든 생각을 정리하고서 눈을 뜨면, 자신의 결론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사내는 조금 웃음을 되찾아 둔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도와줄 거지. "
" …… 자네가 한 이야기는 물증도 심증도 없는, 단순 겁박에 지나지 않는다. "
" 그럼에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잖아. "
" …… "
" 너는 항상 영리했으니까. "
" …… 무엇을 할 생각인 거지? 성급하게 확답을 내릴 생각은 없어. 계획을 듣고 나서 결정하겠다. "
" 하하. 그래. 넌 그렇게 항상 신중하기도 했지. "
그런 면을 사랑하고 있지만. 이 끝에 걸려 맴돌지 못하는 단어를 집어삼키며,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바짝 당긴다. 입술과 입술이 마주 닿을 거리가 되면, 진솔하지 못한 입이 으레 채우지 못한 '솔직함'이 몸 위로 울긋불긋 드러나 버린다. 가엾게도, 온몸으로 뭔지 모를 것을 밀어내지도 못하고 마냥 버티고 서 있는 모양이라 가득 힘이 들어가 있다. 상황 파악도 못 한 채 한자리에 굳어있는 고양이와 매우 닮아 있다. 자칫 입을 벌려 이야기라도 하면 호흡이 닿을 것 같아, 입을 꾹 눌러 닫고 있던 미츠루기의 입술 위로 짧게 입을 마주 댄 상태로 사내는 천천히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 …… 너를 안을 거야. 미츠루기. "
" ……. "
" 이 나이가 되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 뭐어. 진심이야.
호색한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좋아.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네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
" …… 무슨, 말도 안 되는……. "
" 반박할 생각은 없어. 이 자리에서 선고를 내린다면 내 완벽한 패배겠지. 하지만, 농담을 하고 싶은 건 아니야.
…… 모든 경우의 수를 가정해 봤을 때, 가능한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니까. "
" ……. "
" 걱정하진 않아도 좋아. …… 네가 진심으로 싫어한다면, 나도 그만둘 테니까. "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겠지만. 속내에서 끓어오르는 말을 굳이 꺼내어둘 이유는 없었고, 이만하면 구석에 몰려 벼랑 위에 매달려있던 녀석에게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사내는 한 발자국 정도 물러나며 온몸을 감아 당기고 있던 손을 거두어 낸다. 헉. 허억. 그제서야 잊고 있었던 숨을 들이킨다. 뜨거운 감각이 눈이며 코 끝이며 핑글 돌아버려, 조금도 정신이 없는 미츠루기가 짧게 콜록거린다. 눈앞에서 일순 낮아지는 시선의 각도를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내는 조용히 웃는다. 호흡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놀랐기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귀 끝까지 쿵쿵 튀어 오르는 박동에 이 앞의 그 녀석이 뭐라고 하든 알아들을 수 있을 성싶진 않았다. 세상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손매를 잡아 당겨 끝에 입을 가져다 대는 저 감촉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게 미츠루기의 패착이었다.
" …… 뭐, 지금부터 싫다고 한다면 정말 꿈도 없겠지만. "
" …… 나루호도 류이치와는 무슨 관계이지? 자넨. "
" 하하.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
" …… 자네가 나를 '구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
" 역시 그런 것부터인가. …… 만약, 네가 이 제안을 승낙한다면 모든 진상을 알게 될 거야. "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줄 테니까. 온 세상의 소리가 잠긴다. 그러나, 잠겨버린 모든 소리의 속에서 그의 목소리만이 하늘로 솟아올라 버린다. 비현실적일 만큼이나 집중되어 다가오는 목소리가 조금은 괴롭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잠겨 척척해지는 기분이 든다. 꼭,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온 심상을 절여버려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버린 꼴이다. 자신의 행동을 온통 제압해버릴 힘이 있음에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부로 굴지 않는 저 사내를 믿어야 하는가? 낮은 목소리와, 달콤한 언어. 시원한 외향과, 잘 빠진 육신에 시선을 두고 고민을 해야만 하는가. 한동안 망설이는 얼굴로 눈을 굴리던 미츠루기의 입에서는 결국은 패배 선언이 튀어 나간다. ……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집무실에서는 무리다. 언제 선생님께서 돌아올지도 모르고, 내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인정을 받기 위해, 한 주간의 일을 모조리 몰아 처리해버린 검사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굉장히 어쭙잖은 변명이라는 것 정도는 모를 수가 없었지만 사내는 모른 척 웃어주기로 한다.
몸을 일으키고, 잘 정리되어 있는 종이가 놓여 있는 책상의 위로 걸어 돌아가며 수려한 손끝으로 만년필을 쥐어 잡는다. 사각, 사각, 사각. 정갈한 글씨가 빈 종이의 위에서 춤추는 만년필의 끝자락에 의해 씌여 내려간다. 시선을 떼어놓을 수가 없는 행동의 향연의 끝에, 사내는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미츠루기를 바라본다. 아하하.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연락처 남겨둘 테니까, 생각 있으면 연락 줘. 답변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것인지, 조금의 미련조차 남기지 않고 몸을 돌리며 옷매무새를 만진 뒤 잘 닫혀있던 문고리를 잡아 밀어 당긴다. 범람하는 바깥의 빛이 함께 섞이는 것 같았으나, 사내는 사라지지 않고 미츠루기를 만나기 위해 밟아왔을 지표를 역으로 밟아 나가기 시작한다.
뚜벅, 뚜벅, 뚜벅. 다가올 때보다 훨씬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구둣굽의 소리가, 점점 미츠루기로부터 멀어가다 못해 문이 닫히는 순간에조차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미츠루기는 마치 석상처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꼭, 저 눈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조리 꿰뚫려버린 기분이 들었다.
저 작자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디에까지 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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