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학생이 과거에 빠진 이유

5. 별이 떨어지는 날

일어나자마자 온 몸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습니다. 처음 눕는 침대라고 관절이 비명을 지르나... 이놈의 몸뚱아리는 왜 이렇게 예민하지. 한참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야 몸이 좀 풀렸습니다.

 방 안의 물건들은 어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가방에 있는 물건은 모두 무사하려나. 지퍼를 열어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꺼냈습니다. 자질구레하게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있고 필기 노트 몇 권과 분권한 교과서도 가방에 얌전히 들어있었습니다. 카메라를 켰습니다. 충전을 안 해둬서 간당간당해야 할 배터리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셔터를 눌러 방 안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사진은 잘 찍혔습니다. 전자기기는 무사히 쓸 수 있어요. 태블릿을 켰습니다. 수업 필기가 제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를 켰습니다. 이것도 배터리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켜 보았습니다. 웹페이지가 무사히 로딩되었습니다. 검색창에 유성우를 중심으로 한 여러 키워드를 입력했습니다. 찾았다. 4월에는 거문고자리 유성우가, 5월에는 물병자리 유성우가 있습니다. 거문고자리 유성우는 1922년에 포착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내가 도서관에 간 날은 4월 22일 입니다. 여기는 날짜가 어떻게 되려나. 물어봐야겠어요.

 SNS는 갱신도, 글쓰기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에요. 인터넷은 앞으로도 쓸 수 있겠지요. 가방을 꼼꼼하게 정리해 지퍼를 닫았습니다. 휴대폰은 옷 속에 잘 넣어두었습니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

 “심부름 왔습니다!”

 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잘 차려입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보따리 두 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선물입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열어보세요!”

 “고맙습니다.”

 무엇일까요? 보따리를 건네받았는데도 아이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예화야. 이제 가야지.”

 선우가 지나가며 외쳤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입을 샐쭉 내밀었습니다.

 “오빠 오빠. 봤어? 언니 눈, 색이 달라! 엄청 예뻐!”

 색? 잠깐. 나 렌즈 안 꼈어! 아이의 말에 놀라 황급히 방문을 닫으려 했습니다. 아이가 닫히려는 문을 잡기 전까지는요. 힘으로 닫으면 아이가 다칠 겁니다. 이를 어쩐다. 멈칫한 사이 선우가 아이를 빼냈습니다.

 “닫히려는 문을 잡으면 위험해.”

 “그렇지만!”

 선우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습니다. 황급히 검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아이가 생각에 빠졌습니다. 

 “언니도 혹시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놀려요?”

아이의 얼굴이 침울해졌습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짧은 사이에 많이 고민했습니다.

 “네. 옛날에는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뭐가 미안해요. 사실을 말했는데. 나야말로 미안해요. 예쁘다고 해줬는데...”

 “아니에요. 내가 잘못했어요. 사람들은 다른 것을 싫어하잖아요.”

 아이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왜 이런 말이 나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이상하게 생각해요. 저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요. 언니도 그래서 숨기려 했죠?”

 무슨 일을 겪고 있길래 이런 말을. 대답할 말을 떠올리느라 머리를 엄청나게 굴렸습니다.

 “사실... 네. 이런 건 어디를 가도 보기 어렵잖아요?”

 왼쪽 눈을 왼손 검지로 가리켰습니다.

 “그래도 제 친구들은 이해해줬어요. 나중에는 미안하다고 사과도 받았답니다.”

 “정말요?”

 “네. 사람들은 처음 보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친구들과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저를 받아들여 줬어요.”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습니다.

 “그럼 제 앞에서는 왜 그렇게 놀랐어요?”

 “친구들과는 오래 함께 지냈지만...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아이가 눈을 깜빡였습니다. 잠자코 있던 선우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 언니는 별똥별을 보러 온 여행자야.”

 아이가 곰곰 생각하다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럼 이 주일 넘게 기다려야 할 거예요. 이 정도면 이곳 사람들도 언니 친구들처럼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요? 언니 말고도 마을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아줬으니까요.”

 “별이 떨어지는 시기를 알아?”

 “네! 벚꽃이 다 핀 뒤에 열아흐레 정도 기다리면 별이 떨어져요. 거기서 또 사흘을 기다리면 엄청나게 많이 떨어져요!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열흘이 지났어요. 그러니 첫 별이 떨어질 때까지 아흐레 정도 남았어요.”

 이런 사실을 어린 아이가 알고 있다고요? 범상치 않네요. 옆에 있던 선우도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처음 알았어.”

 “오빠는 물어본 적 없잖아.”

 아이가 샐쭉 입을 내밀었습니다.

 “똑똑한 꼬마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예화에요! 주예화.”

 아이가 씩 웃었습니다. 대학의 모기업, 예화 그룹은 그룹 명칭을 사람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이름의 유래가 된 사람은 머리가 정말 비상하다고 들었습니다. 설마 이 아이가?

 멀리서 누군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빠 왔어... 학교 가기 싫어요.”

 “안 가면 선생님들이 혼내실 거야.”

 “그렇지만...”

 예화가 시무룩하게 말했습니다. 조금 고민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학교 마치면 나를 찾아올래요? 곤란하게 한 값으로 작은 선물을 준비해둘게요.”

 “선물요?”

 아이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중에 봐요.”

 아이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축 처진 어깨가 참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저 아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나요?”

“이곳에 세워진 학교에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다닙니다. 예화는 다른 아이들만큼 넉넉한 입장이 아니라 은연중에 벌어지는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와 누님이 도와주고 있지만 한계가 있더군요.”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당사자와 그 주변인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과 아이들 곁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내 친구들의 곁에는 좋은 어른들이 많았고 그분들은 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선을 빠르게 전환해냈지만 저 아이는... 착잡하네요. 바뀌지 않는다면 견뎌내는 수밖에 없는데.

 왜 이런 일은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 사는 곳에는, 특히나 차이를 강조하는 세상인 만큼 이런 일이 없을 수 없겠죠. 억울하지만 이 생각은 접어둬야겠습니다. 방안도 없는 채 내 속만 타들어갈테니까요.

 “그나저나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예.”

 “눈은 어떻게 숨기셨습니까?"

 “렌즈 꼈습니다...”

 “렌즈? 안경 렌즈 말입니까?”

 순간 속이 철렁했습니다. 맞다. 이 시절에는 안경 위주로 사용했지.

 “아니요. 그냥 눈에 끼고 다니면 되는 렌즈입니다. 미리견에서 사 왔습니다.”

 선우가 고개를 기울였습니다.

 “저도 미리견에서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만 그런 물건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아직 소프트 렌즈는 물론이고 하드렌즈도 개발되지 않았나보군요. 무슨 일 생기면 이 핑계를 쓸 생각이었는데. 적당히 해야겠어요. 자칫하면 들킬 수도 있겠다.

 “저도 조선에 오기 직전에 샀습니다. 신제품이라 하더군요.”

 선우의 얼굴에 의구심이 드러났습니다. 그냥 넘어가 주시면 안될까요... 미래에서 왔다고 말해봐야 안 믿으실 것 같은데.

 “한동안은 눈을 숨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

 추궁할 줄 알았건만 뜻밖의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드러내고 다닌다면 다들 아가씨를 외국인이라 생각할 겁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수군거릴 수는 있으나 불심검문을 피하기에는 제격 아닙니까.”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걸리면 외국인인 척 넘어갈 생각을 했는데 이걸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요. 하지만 옛날의 세현은 그리 넓은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폐쇄적인 곳이라면 역으로 배척당할 겁니다. 그래서 상황을 보려 했습니다.

 “검문은 자주 진행되나요?”

 “예. 해미에서 들어오는 물건과 사람은 대부분 세현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집니다. 그때 섞여 들어오는 불령선인들이 많습니다.”

 선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틀 뒤에 대형 선박이 하나 들어올 예정입니다. 곧 검문이 강화될 겁니다.”

 나는 신분증도 없으니... 대안이 없네요. 한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겠군요. 중간고사 이후에는 학과 사람들도 다 적응해서 뒷말이 안 나오길래 좋아했는데. 그래도 목숨 값이라 생각하면 이보다 더 저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경성만큼은 아닙니다만 예화의 말대로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다른 곳에 비해 약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군요...“

카테고리
#오리지널
페어
#Non-CP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