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잤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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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짝녀가 애인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법 (2)

친구라는 건 참 억울하다. 같이 있고 싶어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수시로 근황이 궁금해도 함부로 물어볼 수 없다. 왜냐면 그럴 사이가 아니니까. 그런 건 애인이나 가족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거다. 나랑 이가람 사이에서 하는 게 아니라.

오후 3시가 지나고 있었다. 가람이를 보내기까지 4시간 정도 남았지만 나는 그 시간도 아까워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가람이랑 함께 있고 싶다. 가람이랑 함께 자고 싶다.

"뭔 생각 해?"

질투가 났다. 집에 도착하면 항상 반겨줄 가람이가 있는 가람이의 여자친구가. 그 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저 귀여운 입으로 쫑알쫑알거리겠지. 분했다. 원래는 나의 자리였는데. 이젠 빼앗겨버렸다.

"스킨십을 안 한다길래."

"아, 나? 하하."

민망해하는 모습도 귀여웠다.

"혹시 같이 살고 나한테 실망했을까?"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가람이였다. 너랑 같이 살아서 실망할 게 뭐 있어, 턱 끝까지 말이 차올랐지만 나는 다른 말을 생각해야 했다. 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둘 사이를 갈라놓을 만한 말.

"데이트만 할 땐 괜찮았던 거 아니야?"

가람이는 내가 연애고수이자 레즈비언 스승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대했다. 원래도 연애와 관련해서 내게 물어보는 사항들이 많았지만 우리가 같이 잔 뒤에는 스킨십과 관련된 질문들도 많았다. 이번에도 그의 연장선이었다.

"히잉. 진짜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가람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땐 거의 만날 때마다 했던 것 같아."

"연애 초니까 그렇지."

"원래 연애한지 좀 되면 잘 안 해?"

"같이 산 뒤로 잘 안 했다며."

어느새 대화 주제가 섹스 얘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나도 안 한 지 좀 됐다."

괜시리 나온 말이었다.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아 그래? 오..."

아무리 다른 여자랑 자봐도 가람이만큼 내 이상향을 만족시켜주는 상대가 없었다. 쏟아지는 과제와 시험 사이에서도 몰래 밤샘 공부하는 척 외박하며 섹스하고 다녔지만 열심히 해다닌 것 치곤 건진 게 별로 없던 것이다. 차라리 괜찮은 섹파라도 찾았으면 말을 안 하지.

"온깁이면 인기 많을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아."

인기? 온깁이 텍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건 사실이다. 인기가 많든 적든 그럼 뭐해, 내가 좋아하는 건 넌데.

"내가 생긴 게 텍하게 생겼나봐."

자조적인 말이었다. 레즈들은 머리길이로 섹스 포지션을 많이 따지니까. 소위 '일스' 스타일인 나는 텍으로 패싱되기 일쑤였다.

"진짜 깁이면 하고 싶을 때 풀기가 애매하겠다."

"응."

너랑 하고 싶은 건 아무리 풀어도 풀리지가 않더라.

"나는 자위... 하면 풀리기는 하는 것 같아."

가람이가 부끄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하는 것 같아?"

"삽입은 안 하니까... 그러고 보니 진짜 오래 됐네...."

한편으론 행복한 연애를 하길 바랐던 내 마음이 안타까워졌다. 이렇게 좋은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렇게 안 해준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꼬시면 안 돼? 하자고 해."

"그게... 부끄러워서."

그럼 먼저 하자는 말도 못 하고 그렇게 지내왔단 말인가. 그런 가람이가 귀여우면서도 의외였다. 나한텐 이렇게 잘 말하면서.

"어우..., 덥다. 하하. 창문 열까?"

가람이가 이런 얘기가 쑥쓰러웠는지 찬 공기를 찾았다.

"밖은 많이 추울텐데. 차라리 옷을 벗어."

"그래야겠다. 어후."

가디건을 벗은 가람이가 반팔 차림이 되었다. 가람이의 신체 곡선이 더욱 드러났다. 학기 중에 같이 살던 때가 생각나 더욱 마음이 간절해졌다.

'아... 섹스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얠 꼬시지? 뭐라고 말해야 할까? 오늘 가능은 할까? 머리를 세차게 굴렸다.

"꼬시는 법 알려줘?"

"어?"

"하고 싶을 때 여친 꼬시는 법."

"너 또 저번처럼 그러려고 그러지."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안 넘어온다 이건가. 못내 아쉬웠다.

"아니~. 너무 고파 보이길래."

"두 번은 안 돼. 그건 진짜 바람 피는 거잖아."

그럼 한 번은 된단 말인가. 이미 저질렀으니 어쩔 수 없다고? 이상한 기준을 내세우는 가람이가 어이 없었다.

"바람? 너는 나랑 자는 게 바람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서로 안 끌려도 애인 있는데 다른 사람이랑 잔 건 바람인 거야."

서로 안 끌린다는 말이 뼈아팠다.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뼈아픈 한 마디에 대답이 매섭게 나갔다.

"그럼 우린 이미 바람 핀 거네?"

가람이가 나를 홱 쳐다봤다. 그래서 어쩔 건데 이가람.

"그건... 아니지."

"왜?"

"그건 너가...! 아무튼, 아니야. 그냥 잊어줘."

대화가 끊어졌다. 나랑 한 건 아무것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그냥 잊어달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기가 들었다. 그래? 지금까지 한 게 바람이 아니면 이제 바람으로 만들어줘야지. 절대 잊지 못하게, 잊어달라는 말도 못 나오게 만들어줄게. 응,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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