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짝녀가 애인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법 (1)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가람이랑 한 첫 섹스를 끝내고 그 때 한 생각이었다. 그러고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잠이 들었다. 주말 내내 가람이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뭐 상관 없었다. 어차피 나랑 먼저 잤는 걸. 그렇게 스스로 정신승리 하며 속에서 올라오는 질투를 잠재우려고 했던 것 같다.
짝사랑한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이가람은 어디서 굴러들어온 건지 모를 여자를 만들어왔고 나 몰래 썸까지 타더니 연애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결국 따먹는데 성공했단 말이지. 근데 우리는 그 뒤로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가람이는 아침마다 주민센터 수영을 다닌다. 그래서 아침테 만날 일이 거의 없어서 저녁에 가람이를 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여자친구란 녀석이 가람이의 몸에 흔적을 무진장 남겨놨단 말이지. 수영장에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 키스마크 같은 거 달고 다니면 오지랖 넓은 강사나 애기들이 물어본다. 저번에도 목에다가 대놓고 키스마크를 남겨서 내가 모르는 척 해주느라 힘들었는데 이 새끼는 생각이란 게 없는지 데이트 할 때마다 뭘 자꾸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섹스한 뒤로 기숙사에서 편하게 지냈다. 나도 노브라에 반팔만 입은 채로 잘만 잤고 가람이도 처음엔 키스마크 같은 거 신경 쓰는 척 하더니 샤워하고 나오는 걸 맞닥뜨린 뒤로 그냥 편하게 지냈다. 잠옷 패션 같은 것도 은근히 신경 쓰이잖아. 나만 그런가? 아무튼 진작에 이렇게 지냈으면 편했을 것을. 2년 째 룸메를 하는데.
나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학기 중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가람이도 바쁜 학과에 바쁜 학년이었으니까. 오히려 짬을 내서 데이트를 한 가람이가 더 대단할 정도. 그렇게 나의 막 학기 같은 4학년 1학기가 끝이 났다.
나는 종강하고 나서 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할 심산으로 본가로 가지 않고 기숙사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람이는 방학이 되자 진짜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자친구랑 산다고 했으니까 나랑 기숙사도 같이 살아주지 않고 영영 떠나갈 것처럼 얘기했었다. 내가 어떻게 중도휴학한 건데! 내 2학년 2학기가 유독 힘들었던 건 맞지만 휴학을 하는데에 가람이가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아니 뭐, 그냥 같이 더 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던 건데 얘는 내 맘도 모르고 여자친구랑 희희낙락 놀아다니기나 하고. 짜증났다.
- 뭐해
가람이에게 카톡을 남겼다. 얘 지금 뭐 하지?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스토리에 뭐 올라온 거 없나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 암것도 안해 ㅋㅋㅋ
답장이 왔다.
- 밥 먹을래? ㅋㅋㅋ
- 나 지금 일어났는데 ㅎ
그러곤 이모티콘이 날라왔다. 가람이다운 귀여운 다람쥐가 누워서 졸고있는 모습이었다.
- 학교로 갈까?
가람이의 답장이었다.
1시간 남짓이 흐르고 우리는 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음료를 사들고 학교 기숙사로 들어왔다. 나온 김에 물건을 챙기겠다는 가람이 때문이었다.
"아 찾았다."
가람이가 챙긴 건 다름아닌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아 이거야? 이거면 그냥 말 하지. 내가 가져다 줬을 텐데."
"아냐. 기숙사 와서 쉬고 싶었어."
오랜만에 가람이가 있는 방을 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안녕이겠지?
"이제 너 기숙사 나가네. 나는 룸메 또 어디서 구하나."
"나가지 말까?"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투였다. 가람이는 늘 이렇게 날 걱정했다.
"아냐. 너가 가고 싶은 거 아니야?"
"흠. 생각해 봐야겠다."
"아니면 내가 집을 아예 구해도 되고."
"헉 진짜?"
"어차피 본가 안 가고 여기서 취직할 것 같아서."
아 그렇구나-하는 가람이의 말투가 들려왔다. 혼자 또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화제를 돌리려 다른 말을 꺼냈다.
"요즘 여친이랑은 어때? 연하랬나?"
"아, 응. 근데 일하느라 바빠서 하루종일 심심해. 스킨십도 딱히 안 하고."
학기 중에는 외박을 밥 먹듯이 하던 가람이었다. 데이트만 하고 오면 키스마크가 늘 같은 자리에 새겨져 있었는데. 의외네.
"그래서 나 요즘 완전 백수잖아. 큭큭."
"좋겠다. 나 대신 공부 좀 해주라."
의미 없는 농담들이 오갔다. 보내주기 싫었지만 점점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갈거야?"
"음. 대충 7시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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