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과의 인터뷰
성현제를 어디서 만났느냐, 사람들이 그렇게 물을 때면 제이는 언제나 곤란했다.
던전도 아니고, 뭐 로맨틱한 만남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공항에서였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출국이라 보여주기식으로 출국장을 이용하는 모습. 캐리어도 없이 맨몸이다. 유명인을 인터뷰하느라 인파가 몰려서, 출국장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항의하는 게 들렸다. 기자면 다야? 헌터면 다야? 당신들 때문에 내 비행기 놓치면 고소할 줄 알아!
기자들에게 낯짝을 보여준 걸로 제 할 일을 마친 듯이, 성현제가 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빙긋빙긋 웃고 있었는데, 등을 돌리고 카메라에서 벗어나자마자 적당히 무료한 듯한 감정 없는 표정으로 돌아간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지만, 웃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성현제는 행동 하나하나까지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듯한 사람으로 보인다. 제이는 이 모습을 라운지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키가 진짜 크네.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솔직히 성현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할 게 없다. 성현제가 성현제지. 그 양반이 어떻게 살든, 제이는 솔직히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나랑 관계없는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예인만 봐도 환호하며 부산떠는 사람들이 이해가지 않는 것처럼, 제이는 헌터들을 볼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헌터가 뭐 대수인가? 자신도 헌터였지만, 솔직히 저렇게까지 대접받을 헌터가 대한민국에는 몇 없다. 브레이커, 해연, 세성…. 뭐, 딱 그 정도. 아니면 송태원 실장? 어쨌거나 지금의 제이는 저기서 걷는 사람을 신경쓸 시간이 없다. 출국에 신경을 쏟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로의 출국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이는 마시던 커피를 정리하고 이제 슬슬 체크인 게이트로 향할 생각이다.
게이트, 좌석. 여권과 티켓을 다시 한 번 점검한 뒤, 다음 일정을 떠올릴 때였다.
사고는 불시에 일어나기에 사고다. 제이는 종종 사고를 유발했다. 본인의 의지 없이 일어나는 일이니 불평하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 상황을 사고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걸어만 다녀도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면세점에서 쇼핑하던 사람들의 이목까지 잡아끄는 남자. 그 남자에게 제이의 스킬이 '튀었다'. 말 그대로, 정전기가 튀듯이. 유리창에 부딪친 빗방울이 튀어서 바짓단을 적시는 것처럼.
스킬이 무방비했던 성현제의 머릿속을 파고들고 만 것이다.
"……!"
멈추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자기력을 가진 것처럼 제이는 성현제의 머릿속에 이끌렸다. 성현제가 희미하게 저항했지만, 그 저항은 머잖아 뚫렸다.
이제 와서 설명하지만, 정말로 분수에 맞지 않는 스킬이었다. 스킬의 등급도 등급이었으나 상시 켜지고 있는 패시브 때문에 가끔 타인의 저항을 무시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주제 넘는 스킬을 조절할 수 없으니 제이는 보통 집에만 머물렀다. 수면이 방해받는다. 일상생활은 점점 어그러진다. 스킬에 자기가 잡아먹히고 있다니, 말도 안 되지. 그 말도 안 되는 사람이 여기 있다.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닐까? 남들은 스킬 온오프가 쉽다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이지? 너무 일반인처럼 살아서 그런가? 어떻게든 수련을 해야 했나?
사실 스킬 하나만 놓고 보자면 제이의 스킬은 잠재력이 크다. 타인을 조종하는 스킬이 세트처럼 존재하니, 이런 것만 보면 거의 완벽한 정신계 헌터인 셈이다. 아마 제이가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었다면 나라 하나는 거뜬히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상급 헌터들이야 저항이 있으니 괜찮지만, 하급 헌터나 일반인은 그런 것따위 없으니까. 정신계 헌터들이 기피당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저항하지 못하는 스킬.
그러나 제이는 이 능력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기로 했고, 이것을 꽁꽁 숨긴 채, 보조 능력 몇 가지만 가진 나약한 헌터 행세를 했다. 제이의 각성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단순히 제이가 마력 보유량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등급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그랬는데!
쓰나미처럼 성현제의 생각이 밀려들어온다. 다음목적지,지루하다,비행 시간,비공식적인일정이었다면전용기나스크롤을이용했을테지만이번엔어쩔수없이퍼스트클래스,거기에대한피로감그리고…….
"…괴리감?"
이게 뭐지? 제이는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맞나? 성현제가 원래 서른여덟이 맞았나? 머리카락이 저런 색이던가? 원래, 저런 분위기였나? 왜 성현제는 창 속에 비친 자신을 저런 눈으로 응시하고 있지? 저 사람은…….
거기까지 읽어냈을 때, 제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섬뜩하게 차가운 금색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지금 공항 4층의 국적기 라운지에 있었는데, 성현제가 거길 정확히 올려다 본 것이다. 주위의 온도가 10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뺨까지 소름이 돋아서 황급히 물러난다. 자리를 떠야 해. 여행이고 나발이고, 저 남자가 자신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대체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성현제는 금세 이곳으로 와서는 아까 자신을 '읽어낸' 여자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넣은 남자가 짐승처럼 미소지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사람들이 둘을 힐끔거린다.
"이름이?"
느긋하고도 약간 느린 목소리가 쏟아지듯이 내려왔다. '재밌군.' 연결된 통에 성현제의 생각 또한 함께 들렸다. 저항을 무시한 탓에 스킬의 여파가 이제야 미친다. 코피가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흘러내렸다.
제이는 절로 온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참으며, 간신히 입을 움직였다.
"…김, …김제이."
성현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걸 사람이라고 불러서는 안 됐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제이에게는 확실히 느껴졌다. 라운지 내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 피가 턱을 적시고 옷을 적시는 내내, 제이는 못 박힌 듯 제자리에서 넋을 놓은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현제가 손을 뻗어, 손수건으로 코를 막아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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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인데 일단 어디까지 써야할지 몰라서 드랍
성현제와 어쩌다가 계약 결혼이라는 미친 짓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요령껏 풀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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