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2차 창작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앙졸라스,

여덟 발의 총알.


이것은 수레바퀴의 첫 번째 바큇살에 관한 이야기다. 

고개를 들거라.

앙졸라스는 숨을 들이켰다. 그는 지금 창조주를 마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야. 

창조주는 흐릿한 빛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앙졸라스는 그 앞에 자신이 못 박힌 사람처럼 쓰러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 빛은 탄식의 빛이련가. 혹은 애도의 빛이련가. 부드럽고 거대한 담요처럼, 그 빛은 앙졸라스를 감싸 온다. 고전적이구나, 그 이지적 영혼은 아직 비평적 이성을 잃지 않아 그렇게 되뇌었다. 벌어진 입술 새로 작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감각에 따른 행동이었다. 채 빠져나오지 못한 마지막 삶의 열기가 그 숨과 함께 떨어져나온다. 필시 존재하지도 않을 바닥으로,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툭. 하고. 무게감을 가진 채. 

아프지는 않느냐? 

아픕니다. 

실재로 그러했다.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창자와 살갗을 비집고 들어온 고통들을 내뱉어내고서, 영혼은 숨을 다시 들이쉬었다. 앙졸라스는 존재하지도 않는 창조주의 손이, 존재하지도 않을 바닥으로 뻗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 손은 -만일 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뱉어내진 작은 한숨을 그 무엇보다도 무겁게 건져 들어 내는 것이었다. 붉디 붉고, 이제는 제 몸에 흐르지도 않을 핏줄기가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그것. 앙졸라스는 눈을 깜빡였다. 창조주의 손 위에 얹어진 것은 여덟 개의 총알이었다. 여덟 개의 고통들. 

그래, 아플 터이지. 

당신도 고통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그럼. 

빛이 울렁인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움직임이다. 불안정한 떨림. 창조주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전능한 존재가 아닙니까?

글쎄,

소리가 가라앉는다. 빛이 여전히 자신을 감싸고 있었으나, 앙졸라스는 이상하게 창조주의 존재가 자그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좁은 공간, 그 안에 울리는 먹먹한 소리들. 기이하리만치 낮은 소리들. 

나는 너희를 만들었을 뿐이란다. 나는 전능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공간을 가지고 있을 뿐. 나는 신이 아니다. 

......

실망하였느냐? 

아닙니다. 

앙졸라스가 답했다. 가을 바람처럼, 창조주가 내는 소리들이 금빛 머릿결들을 스쳐 지나간다. 필시 그것은 작은 웃음이었을 것이다. 

인간과 같군요. 

그래. 너희는 내 자식들이란다. 

그렇다면. 

앙졸라스는 몸을 일으킨다. 고통은 사라지고, 여덟 개의 총알과 함께 몸을 잡아 늘이던 무게들이 날아간다. 그가 생전에 했던 것처럼. 사람의 육체에 담길 수 있는 것과 영혼에 담길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감각과 실체가 사라지더라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창조주의 웃음이, 다시 한 번 앙졸라스의 머릿결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안정감을 주었다. 흐린 빛 속, 창조주가 천천히 다시 자신의 존재를 넓게 펼치기 시작했다. 앙졸라스는 그 움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거대함이 그에게 주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다른 것이었으므로. 

나는 당신을 숭배하지도, 경외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총알을 쥔 창조주의 손이 앙졸라스의 눈 앞에서 거둬들여진다. 어딘가 형체가 있을 것이다. 그 형체가 얼마나 거대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앙졸라스가 볼 수 있는 것은, 손 위에 얹어진 그 총알들이 빛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혹은 빛이 그것을 움켜쥐듯이 자신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창조주의 목소리는 기이하게 느렸다. 기이하게 강력했으며, 또한 부드러웠다. 마치 그 이지적 영혼의 고통을 대신 느끼는 양. 앙졸라스는 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 위에 얹었다. 창조주의 빛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단다.

어떤 것들입니까. 

나는 냉소하고, 부딪히고, 자기혐오하며, 확신하고, 시간을 견디어 냈으며, 또한 사랑하였다.

그것을 후회합니까? 

가끔씩은. 그래.  

창조주는 죽어가는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죽음 그 자체의 소리였으므로. 사람의 목소리라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기이한 울음. 여덟 개의 총알이 마치 창조주 그 자신의 형체를 꿰뚫고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앙졸라스는 죽음 또한 애도를 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고통스럽던가. 

육체는, 

앙졸라스가 말을 내뱉는다. 창조주는 너그럽게도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육체는 아프지 않습니다. 

나는 너의 삶을 본다. 네 살아가던 시간들.

앙졸라스는 손끝에 작은 물기가 스미는 것을 느낀다. 그곳은 창조주의 공간이었다. 공간은 또한 주인과 함께 우는 것이다. 그러나 차갑지 않았다. 비통한 눈물은 아니었으므로. 단지 위로의 눈물인 것이다. 

눈을 높이 두고,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더구나. 네 삶을 먼저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먼저 두었지. 너의 기쁨은 네 스스로가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쓰여졌지. 너의 고통을 내가 알고 있단다. 죽음이라는 것이 주는 공포를 딛고 올라서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 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리라.

......

나 또한 그 과정을 알고 있으니. 

창조주가 떨림을 멈추었다. 공간은 울음을 그쳤다. 이제 창조주의 빛이 앙졸라스를 다독인다. 그 빛이 불러오는 안도. 옳게 살아왔을 것이라는 확신에 대한 대답. 앙졸라스는 기꺼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구나. 

나의 의지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알고 있단다. 아주 잘 알고 있지. 다만 내가 아는 그 고통스러움을 네가 기꺼이 짊어지기로 하였던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우니.

빛이, 미소가 떠오른 앙졸라스의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진다. 그 당당한 영혼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완연한 의지의 표상이다. 

물을 것이 있습니다. 

창조주의 존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찌 되는 것인지. 

아, 그래. 

손이 뻗어져나온다. 손길과 비슷한 것이. 빛보다 훨씬 실체적인 접촉이 이루어진다. 앙졸라스의 머리에 닿는다. 느린 움직임으로 토닥이고, 뺨을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앙졸라스는 눈을 감았다. 거대한 손 위에 얹어진 것처럼. 웅크린 채 잠시간 쉬고 싶어지는 따뜻함에 감싸인다. 그러나 앙졸라스는 가만히 앉아 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창조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너에게 무엇이든지 주마. 

창조주가 말한다. 부드러운 황금빛 덩어리들이 앙졸라스의 발 밑에 피어난다. 잠시 존재했다가, 다시 사라진다. 그것은 넓은 아량을 보이는 말이 아니었다. 자비, 혹은 그 어떤 초월적 오만에도 기반하지 않은 문장이었다. 그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내어 주겠다는 온전한 말이었으며, 의사 표현이라 해야 할 것이다.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주마. 

제게 왜 그런 것을 제안하십니까? 

왜냐하면, 

푸른 빛이 비쳐 든다. 차가움이 아니라 온기를 담고서. 그 빛이 앙졸라스의 몸을 감싼다. 마치 사람들이 흔히 하듯, 포옹하는 것이다. 세상을 끌어안은 듯 소중히. 

너는 나의 자식이니. 내가 너를 만들었으니. 

.......

그러니 네 고통들에 내가 안식을 줄 수 있게 해 주겠느냐, 나의 아이야?  

그 푸른 빛이 앙졸라스의 머리를 다시 한 번 감싸안았을 때. 앙졸라스는 문득, 자신이 진정으로 죽음을 맞았음을 깨달았다. 그의 육신은 이제 없고, 영혼이 남아. 살아가던 세상을 뒤에 두고 있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안식. 앙졸라스는 잠시간 삶을 떠올릴 수 있었다. 창조주의 손길 안에서. 그는 손을 뻗었다. 그는 빛 사이로 손가락을 뻗고, 무언가를 손에 쥐어냈다. 다시 붉디 붉은 여덟 개의 총알이 그의 손 위에 얹어진다. 작은 초록빛이 점멸한다. 창조주의 놀람은 그렇게 표현되는가보다고, 앙졸라스는 받아들였다. 

무엇이든 제게 주실 수 있다면. 

그럼. 무엇이든. 네게 사랑을 주랴? 혹은 영원을 주랴? 

제 동지들을 주십시오. 

 

그 말에는 그 어떤 경의도, 존경도 없었다. 담긴 것이 없으니 그 무엇이 태도로서 드러나랴. 꾸미지 않는 이의 행운이자 불행은 그런 것이다. 창조주의 존재가 뒤로 물러난다. 푸른 눈이 다시 깜빡여지고. 앙졸라스는 여덟 고통을 손에 쥔 채 너른 풀밭 위에 자리한다. 동공과 눈꺼풀 위로 바람이 느껴진다. 손은 온기 위에 있다. 싱그러운 향내가 스쳐가고. 이 모든 것은 마치 실제처럼 느껴진다. 저 먼 하늘 위에 떠가고 있는 구름까지. 마치 그가 정말로 삶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저 멀리, 저기. 앙졸라스의 눈이 커지고, 그 눈 안에 자신의 동지들이 들어온다. 웃음 소리와 함께, 그들도 마치 살아 있는 것만 같다. 

충분하겠느냐? 

창조주가 묻는다. 앙졸라스는 손 위에 얹어진 총알들을 움켜쥐었다. 화약의 뜨거움은 여전히 그 총알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오. 

어째서 그러느냐. 

나의 조국이 이 곳에는 없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창조주가 다시 형체를 움직인다. 말발굽처럼 빠른 빛들이 명멸한다. 이제 앙졸라스는 파리의 거리에 서 있다. 저기, 불이 환히 밝혀진 카페의 창문 너머로 벗들이 보인다. 이 모든 것은 정말로, 실체저럼 느껴졌다. 그러나 앙졸라스의 손에는 붉은 고통이 쥐여져 있었다. 그는 환상을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단단했던 것이다. 

충분하겠느냐? 

아니오. 

어째서 그러느냐. 

앙졸라스는 여덟 개의 총알을 바라본다. 그는 총알 하나를 집어들었다. 입 안에 넣고서, 그것을 삼킨다. 카페의 불빛이 꺼진다. 다시 하나를 삼킨다. 건물들이 사라진다. 다시 하나, 거리가 흐려지고, 다시 하나, 달이 사라지고. 하나, 하늘도 사라진다. 그렇게 그는 다시 자신의 죽음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훨씬 더 느리게, 훨씬 더 천천히. 펄떡이는 삶과 생명이 스러졌을 때의 고통을 삼킨다. 그 고통들은 실체 없는 영혼의 창자를 뒤틀리게 할 만큼 강력하다. 앙졸라스는 그것을 견디어낸다. 창조주는 그저 보고 있었다. 목격하고 있었다. 당당한 영혼이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로 모든 총알을 삼킬 때까지. 여덟 번의 과정을 거쳤을 때, 앙졸라스는 다시 창조주의 온전한 공간 안에 서 있었다. 

아이야. 

나는, 

앙졸라스는 주먹을 쥔 채 그것을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다시, 그는 꿰뚫린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이다. 이 모든 것을 다시 반복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또한 그가 남긴 가장 큰 고통에 대한 죄책감이다. 여덟 개의 총알, 여덟 명의 벗들. 

나의 삶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가 말한다. 아니,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언이다. 못 박힌 의지의 표상이 외치는 말.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빛이 일렁인다. 공간이 일렁인다. 천천히. 창조주의 소리가 차즘 선명해진다. 

정말 다시 돌아가겠느냐?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시 반복하겠느냐? 

온 힘을 다해서 그리 하겠습니다. 

정말로 맹세할 수 있느냐?

그것이 나의 사랑이고, 영원일 겁니다. 

화약과 피비린내가 목구멍을 밀고 올라온다. 삼켜낸 총알들이 풍기는 죽음의 향취다. 앙졸라스는 굴복할 수 없음을 알았다. 진정으로 굴복할 수 없는 이가 되기 위해, 그는 안식이 아니라 삶을 선택하려 했다. 

그래. 

저를 보내 주실 겁니까?

창조주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뜨거움이 치밀어오는 앙졸라스의 가슴께를 천천히 토닥일 뿐이었다. 앙졸라스는 눈을 감았다. 고통이 그 손길로 달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애도와 안타까움은 사라지고. 그 곳에 단단함이 남는다. 

너를 믿는다.

무엇을 믿습니까. 

천천히, 졸음이 밀려온다. 앙졸라스는 완연히 잠 속으로. 아니, 잠이 아니라 훨씬 더 깊고 편안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 그리 물었다. 창조주가 답한다. 

네 삶을 살아갈 것을 믿는다. 

......

돌아가거든, 나의 후회를 잊거라. 나의 영향은 잊고. 다시 온전한 네 삶을 살아가거라. 

모든 답이 흐려질 때 즈음에, 앙졸라스는 꿈결 속에서 말 한 마디를 들었다. 

또 만나자꾸나. 

그리고 파리의 새벽이 밝아온다. 앙졸라스는 자신의 방 안에서, 펜을 쥔 채 책상에 엎드린 채로 깨어난다. 그에게 남은 것은 희미한 말 한마디였을 것이다. 또 만나자꾸나. 애정을 듬뿍 담은 말 한마디. 그러나 그는 자신이 누구를 만났었는가를 잊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죽음에서 돌아왔음을 알고 있었을 뿐. 잠시간, 그 영혼은 모든 고통들을 되새긴다. 다시, 또 다시. 어떻게 돌아왔는지, 누가 그리했는지는 모른 채로. 해가 뜨고 있었다. 앙졸라스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았다. 숨을 쉬면 파리의 향이 나고, 손을 움직이면 자신의 언어가 흘러나온다. 잠깐 그 청년은 잉크가 번진 종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새 종이를 꺼내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삶이 굴러간다. 수레바퀴처럼, 역사와 시간의 길을 따라서. 저 아름다운 청년의 의지대로. 그는 살아갈 것이다. 다시 한번 삶을 살아갈 것이며, 다시 한번 고통들을 삼킬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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