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업글

가족을 정의하다

유일하게 답하지 못했던 그의 죄책감

방울방울 by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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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05월 11일 글 재업

천재, 그래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다. 뛰어난 상상력을 갖고 그 4차원적인 생각을 현실에서 가능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으며 컸다. 그의 인생은 걱정 하나 없이 깨끗하고 바른길이었다. 명문 중학교를 지나 명문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명문대학교에 수석 입학하여 돈 한 푼 학교에 다니기 위해 써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묻는 것은 무엇이든 답할 수 있었고 알지 못했던 것도 하나를 배우면 백을 알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발전된 미래와 강한 조국을 위해서 일해볼 생각은 없나요?"

대학 졸업을 앞둔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한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정부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고 있지만,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 못 한다는 소장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유명한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연구소에 들어가고 싶었던 그는 의심을 묻고 흔쾌히 소장을 따랐다.

 


 "공룡아, 덕개 밀면 안 돼."

 "선생님 공룡이가 저 괴롭혀요!"

 웃으며 장난치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을 내려볼 때면 언제나 감정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선생님, 선생님 부르며 저를 잘 따르는 아이들이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저를 따를 수 있게 하면서 정작 자신은 감정을 지우고 그들을 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연구소에서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쌓여갔다.

 "선생님, 숲이 뭐예요?"

 "숲은…. 풀이랑 나무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는 곳이야. 벌레도 동물도, 예쁜 꽃들도 많이 모여 있어."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동화책을 읽어줄 때면 언제나 곤란한 질문을 해왔다. 숲, 바다, 사막... 보통 인간이라면 직접 보거나 겪은 적은 없어도 당연히 알고 있는 것들을 물을 때마다 그는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시험보다 어려운 질문을 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답은 없었지만, 오히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답하기 어려운 질문.

 "나중에, 선생님이랑 꼭 같이 가보자."

 지킬 수 없는 약속임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할 때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에 그는 마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언젠가는, 아이들이 다 크고 제 기능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면 가끔 자유시간이라도 주어지겠지. 그러면 공룡이의 능력으로 잠시 다녀오는 것쯤이야 가능할 거야 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결혼이 뭐에요?"

 "음….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평생 함께 가족이 될 것을 약속하는 거야."

 "그럼 가족은 뭔데요?"

 덕개의 질문에 웃으며 답하려던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가족, 분명 사전에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이라고 정의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걸 이 아이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전에 말해도 될까. 말하면 혼란스러운 감정만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그의 입을 막았다. 애초에 출생 신고도 되어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피로 이어진 가족이 남아 있을 리는 없었다. 어린 나이니, 혼인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고.

 "...그러게, 가족이 뭘까."

 처음으로 답하지 못한 질문이 생긴 것에 그는 큰 혼란을 느꼈다.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 걸, 나중에 찾아보고 알려줄게. 겨우 웃으며 아이들을 각자의 방으로 돌려보내면서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덕개의 순수한 목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커지면서 억지로 묻어두었던 죄책감과 탈출 욕구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병기가 아닌 평범하고 순수한 어린아이들이었고 개인이, 혹은 한 집단이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무기 따위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지적 생명체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는 머릿속을 비우고 오로지 단 하나의 생각만을 남겨두었다. 저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주자.

 


"공룡이 어디 갔다 이제 와."

 "잠...깐 바람 쐬고 왔어요! 하하핳 안녕히 주무세요!"

 급하게 계단을 우당탕 올라가는 공룡이를 시선으로 쫓다 시야에서 사라지자 거실 소파에서 졸고 있는 덕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피시방에 다녀온 것을 뻔히 아는데, 그렇게 숨기고 싶으면 바로 제 방으로 순간이동을 해도 될 것을. 집 안에서는 정말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로 초능력을 쓰지 말자고 한 약속을 아이들이 잘 지켜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라더야 흔적이 남지만 덕개와 공룡이의 능력은 정말 알 수 없으니까.

 라더는 이미 위에서 자고 있을 것이고, 공룡이는 방금 올라갔으니 이제 다시 내려올 일은 없을 테고. 졸고 있는 덕개만 방으로 가면 되니 잠시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소파 앞 테이블에서 며칠 전부터 흥미롭게 읽던 책을 가져와 식탁 의자를 끌어당겼다. 책은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갈등은 불가피하고, 죄책감은 영원하지만, 사랑과 행복은 일시적일 뿐이라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동의하고 싶지 않아 책을 다 읽은 후 머릿속에서라도 하나하나 반박해주겠다는 오기로 읽던 책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으로 후에 분류되는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은 인간관계 속에서...'

 "선생님 가족이 뭐예요?"

 "선생님 저 잘했죠!"

 "제가 사람을..." 

 "선생님!"

 "선생님, 쌤!"

 책을 읽다 피곤해 잠들었던 것인지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그를 덕개가 흔들어 깨웠다. 저도 이제 들어갈 거니까, 쌤도 들어가서 주무세요. 악몽을 꾸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덕개는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 곧 몸을 돌렸다. 악몽 때문에 빠르게 뛰는 심장도 진정시킬 겸, 잠시 방으로 들어가는 덕개의 모습을 보던 그는 문을 닫지 않고 방 앞에 서서 저를 바라보는 덕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어, 덕개야?"

 "저 이제 가족이 뭔지 알아요. 그때 그 어린애 아니라고요. 어떤 건지도, 왜 그때 쌤이 대답을 못 했는지도 그리고 우리를 데리고 나온 이유도."

 "...덕개야."

 "함께하는 거잖아요. 피로, 법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더라도 심적으로 누구보다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함께 웃고 울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 멋대로 훔쳐본 건 죄송해요. 공룡이랑 라더랑 제 이름이 들려서...

 "그리고, 감사합니다."

 능력을 사용했다며 침울한 표정으로 고백하던 덕개는 갑작스러운 감사 멘트와 함께 방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여전히 식탁 의자에 앉아 상황 파악을 못 하던 수현은 덕개가 나한테 감사할 일이 있나, 고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움직여 거실과 부엌의 불을 끄고 휴대폰과 책을 챙겨 차가운 어둠이 내려앉은 집에서 유일한 불빛이 남은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온 수현은 알 수 없는 추위를 느꼈다. 분명 어둡고 차가운 것은 문 바깥쪽이어야 맞는데 그의 방은 언제나 어두운 죄책감과 외로운 추위로 가득 차 있었다. 혹시 악몽을 꾸고 저를 찾거나 잠자는 새에 저도 모르게 초능력을 사용해서 곤란한 사고가 생길까 봐 방문을 닫지 않는 수현은 잠자기 전 습관처럼 매일 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아래에서 두 번째 서랍을 지갑에 넣어두었던 열쇠로 열어 자신의 총과 연구 자료들이 그곳에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제대로 잠군 뒤, 열쇠를 도로 지갑에 넣었다. 총은 혹시 모를 상황에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앞서 달려가기 위함이었고 연구 자료는-당장이라도 태워버리고 싶었지만-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부작용이 나타날까 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지갑을 제자리에 두기 위해 몸을 일으킨 그는 그제야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와 꽃다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쌤쌤 어버이날~~ 별건 없지만, 이 잘생기고 멋진 공룡님의 아이디어로 나머지 둘이랑 같이 준비해봤습니다! 집 안에서 능력써서 죄송해요. 근데 쌤 잠을 너무 안 자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지금까지의 용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ㅎㅎㅎ -천재 공룡(외 2명) 올림] 장난기가 가득 담긴 종이에는 공룡이의 글씨로 짧은 편지가 쓰여 있었다. 편지를 읽기 위해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진동 소리와 함께 라더의 감사 문자를 전해주면서 그에게 현재 시각과 날짜를 알려주었다. 오전 12시 25분, 05월 08일, 어버이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바닥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는 것뿐이었다. 온몸을 붙잡고 끈질기게 그를 따라오던 죄책감과 불안감이 떨어지지 않으려 마지막 발악을 하는 중이었다. 편지를 내려놓고 지갑에서 열쇠를 꺼내 다시 서랍을 연 수현은 그 안에서 연구 자료를 꺼내 출근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문서 파쇄기에 넣고 갈아버릴 것이라 다짐하고 서랍을 잠그는 그의 곁에는 더 이상 불안이 남아있지 않았다. 방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그는 이 집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제 방에서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아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지, 그가 한 일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렇지만 이제 그는 평생 그 죄책감과 함께할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는 훌륭하고, 따뜻한 가족이 있었으니까. 그는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 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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