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들

2024.08.30

송제 by 송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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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본 시선에, 두 사람은.





  지독한 자식.

  잠뜰은 온몸이 쑤시는 감각을 느끼며 겨우 눈을 떴다. 이제 마지막이었는데, 저 실실 웃는 망할 놈의 동료라는 녀석은 아직 나를 지옥에 가지 못하게 만든다.

   “웃어?”

   “어때, 효과 장난 아니지?”

   내 말은 안중에도 없이 여전히 그 재수 없는 뻔뻔한 얼굴 하고서 자신을 바라보더니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딴 약 너나 많이 먹으라고 했는데.”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게 동료란 법이지…. 뭐, 그건 1차 약이야. 2차 약을 먹으면 좀 괜찮아 질,”

   “2차 약? 그럼….”“치료 약은 아직 안 나왔다는 거지. 그래도 2차 약을 먹으면 괜찮을 거다.”

   속이 메스껍다. 이건 분명 약의 부작용일 텐데도 왠지 화가 치밀어 올라서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얼토당토않은 약을 먹여놓고서 해독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 나탈리라는 여자를 넘겨주고, 망할 덕개 밑에서 빌빌대며 겨우 죽다 살아난 것 치고는 쓴 결과다. 속에서부터 뭔가 욱하고 올라온다.

   “망할 놈.”

   드러누운 몸을 겨우 일으켜 라더 옆에 같이 앉는다.

   “살려줬는데 말이 많네. 뭐, 네가 그 자식과 같이 죽으려고 할 줄은 몰랐으니 나도 아주 놀랐다고. 이건 나를 놀라게 만든 값이라 생각해. 뭐 해? 일어나지 않고. 2차 약이라도 받으러 가야지.”

   라더의 주절거림을 무시한 채 숨을 고른다. 몸 전신이 뭔가 붕 뜬 기분이다. 나의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 라더는 지금까지 이런 감각을 견딘 채 살아왔다는 것인가? 새삼 라더의 무식하게 튼튼한 몸에 감탄이 든다.

   그의 말처럼 여기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목표가 생겼으니까. 물 좋고 공기 좋은 써니로니아에 가서 유유자적하고 사는 것. 그걸 이루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다 죽는 것은 아주 아쉬웠지만…. 아아, 머리가 아프다.

   “그래.... 가긴 가야지. 나 좀 일으켜 줘. 온몸이 쑤신다. 야.”

   “부작용 때문에 그래. 난 몸이 튼튼해서 지금까지도 죽지 않았지만…. 넌 오래 못 참을 거다. 빨리 일어나. 일으켜 줄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먼저 몸을 일으킨다. 한심하다는 듯한 그 표정에 품에 숨어 있는 총을 그 낯짝에 들이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녀석이랑 함께 지내고 난 이후부터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 그게 라더가 유일했다. ...잠뜰은 한숨 한 번 푹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기우뚱, 몸이 기울어진다. 아, 하고 짧은 단말마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 순간, 그가 상처투성이인 팔로 자신을 받아들인다.

   “아주 죽을 상이네. 야, 다리에 힘 풀렸나?”

   뭐가 그리 재밌다고 여전히 칠칠맞은 얼굴로 넘어질 뻔한 자신을 히죽거리며 바라본다. 짜증이 몰려오다 바람에 실려 사라진다.“...그래, 너라도 있는 게 어디냐.”

   그리 말하고서 몸을 고쳐세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와 함께 하기로 한 건 몇 안 되는 스스로의 의지였으니.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말이 많다. 아직 나는 할 말이 많은가보다.

   몸을 겨우 가누고 트럭 조수석에 몸을 앉혔다. 여전히 어딘가 멍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피곤하다. 눈을 감으면 깊은 잠에 빠질 것 같다. 이대로 또 다시 죽는 건 아니겠지. 그럴 일 없는 것을 걱정한다. 옆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잡고 악셀을 밟는 라더가 보인다. 언제나 그랬듯, 아주 자연스럽게. 문득 웃음이 나온다.

   “웃는 거 보니 약이 아주 잘 들었네.”

   “그런가 보네. 빨리 가기나 해. 나 진짜 다시 죽을 것 같거든? 눈 감긴다.”

   “한 숨 자던가.”

   “널 옆에 두고?”

   “아직도 그 타령이야? 너도 진짜 고집 세다.”

   코웃음치며 라더는 핸들을 좌측으로 꺾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트럭이 움직인다. 운전 하나는 잘 하는 것이 라더의 몇 없는 장점임을 다시 깨달았다. 아니면, 나 때문에 좀 더...“그럴리가.”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아무 것도 아냐. 잘 테니까 도착하면 불러.”

   그래라. 라더는 앞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운전하며 말했다. 그래, 아주 잠깐이지만, 이 트럭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도 아주 오래 걸렸다. 잠뜰은 눈을 감고서 잠깐의 생각에 잠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에 오기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고, 그 수많은 일을 견뎌냈다. 무식하지만 조금 믿음직한 동료도 있다. 잠뜰은 이 생활에서 벗어나길 한참을 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안에서 좋은 동료를 챙겼다. 믿는다는 것을 잃은 지 꽤 되었는데, 그가 그 감정을 다시...그래, 우리 서로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정말로.






   라더는 잠에 든 잠뜰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아니머스의 부작용 중 하나는 긴 잠에 빠지는 것이다. 라더는 문득 손을 잠뜰 쪽으로 뻗어 코 끝에 손가락을 대었다. 새된 숨이 손 끝을 간지럽힌다.

“...왜 했지?”

   분명히 아니머스를 먹였을 테니 살아있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왜 나는,

“...무식한 우정이라는 건가.”

   라더는 조소를 머금은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둑한 밤일 텐데도, 달빛은 너무나도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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