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조각 1

"돈을 뒤집으면 뭔지 알아? 굳. 돈은 좋은 거야."

방울방울 by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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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뜰TV : 미스터리 수사반 [하숙집 살인사건]

※ RPS로 소비하지 말아주세요.

※ 99%의 날조와 1%의 원작에 주의하세요.

범죄자 시점으로 서술한 글일 뿐, 현실에서 벌어지는 범죄 사건을 옹호하거나 미화할 의도는 없습니다.

사람을 죽였다. 시끄러운 비명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터널 안에는 고요한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강하게 힘을 줬기 때문인지, 긴장했기 때문인지. 손의 떨림이 도저히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다. 정말로.

“괜찮아, 잘한 거야.”

서인하는 자신보다 더 크게 떨고 있는 윤미영의 손을 잡았다. 운동도 해본 적 없는 애한테 맡기기 미안해서 직접 행한 것이었는데, 마음 약한 미영이는 현장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떨고 있었다.

끝까지 발버둥 치던 사람은 결국 그들의 손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두려움과 괴로움에 가득 차 있던 눈이, 공허하게 통 비어버렸다. 윤미영은 텅 빈 눈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매번 영화를 보러 오던 손님. 문화생활을 즐길 정도로 돈이 있고, 영화관의 단골이 될 정도로 소비가 많은 사람이었지. 무표정으로 익숙하게 팝콘을 시키던 단골. 이제 그는 영원히 무표정이 되었다.

“준비 끝났어?”

“응, 방금 막.”

건조한 말투로 묻는 최성진의 목소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답하는 서인하의 목소리. 그 사이에서 윤미영은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려 했다. 그래, 괜찮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야. 이건,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 윤미영은 이것이 끝임을 직감했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그의 인간으로서의 삶이 방금 끝났다.

“미영아, 가자.”

“어, 어?”

“다미 들어오기 전에 가야 해.”

“응, 맞네. 가야지.”

“우리 인생은 이제 시작인 거야, 알지?”


“학생! 인하 학생!”

악몽을 꾸던 서인하를 깨운 건 집주인인 엄경선의 목소리였다. 잠결에 듣기에도 그의 목소리는 크게 떨리고 있었다. 발견했구나. 방문을 열자 엄경선은 놀란 얼굴로 어제 서인하가 죽인 그 사람, 아니.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살해당한 미영이의 시체가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미, 미영이가요?”

서인하는 자신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떨림은 괜찮지 않을까? 엄경선은 그와 윤미영이 친했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윤미영의 죽음으로 인한 떨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뿐이야. 지금 내 표정이 어떻지? 잘 울고 있나? 과장된 얼굴은 아닐까? 내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가늘었던가? 이게 맞아? 보통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하더라.

“인하 학생, 어떡해! 두 사람이 친했잖아.”

“저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근데 제가 그만 일을 나가봐야 하거든요. 어떡하죠, 아줌마. 저 어떡하죠.”

“아이고, 그렇지. 가족상도 아닌데 함부로 쉬기 힘들지. 안타까워서 어째. 일단 내가 경찰 불렀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도저히 힘들면 꼭 쉰다고 하고.”

“네, 네. 그렇게 할게요.”

엄경선은 서인하의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친한 동생의 사망 소식에도 일 걱정하는 그를 말리지 못했다. 가족상도 아니고 겨우 친한 관계인데 일을 쉬겠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돈이 급하다고 습관처럼 중얼거리던 서인하, 윤미영, 최성진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돈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충격과 공포에 빠져있던 엄경선의 입이 썼다. 이 어린아이들을 이렇게 몰아세운 건 도대체 무엇인가.

몸을 벌벌 떠는 서인하를 한 번 안아준 엄경선은 1층으로 내려가 따뜻한 물을 끓였다. 사람이 죽었으니, 그것도 시체가 하숙집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되었으니 하숙생들 모두가 방을 뺀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 끔찍한 모습과 냄새는…. 다시 새벽의 일이 떠오른 엄경선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따뜻한 물을 컵에 따라 한 모금 마셨다.

“전부 나간다고 하면 어쩌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뒤따라 헛웃음이 나왔다. 직전에 아끼는 동생의 사망 소식에 일자리를 걱정하는 서인하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해놓고, 자신 또한 시체와 마주한 지 몇 분 만에 돈 걱정을 하는 이 상황이 참 차갑고 씁쓸했다. 냉정한 세계구나. 그렇지 않아도 동네가 재개발한다고 시끄러운데, 이제 슬슬 싼 가격에 하숙생을 받는 것도 버거웠다.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저게 눈이 아니라 돈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걸로 지홍이 학비도 내고, 하숙집도 공사 좀 하고, 하숙비를 좀 더 비싸게 받아서 집도 사고. 지홍이도 곧 결혼을 하게 될 텐데 부모가 집 하나는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어두컴컴한 미래를 생각할수록 엄경선의 심장이 제 박자를 되찾기 시작했다. 하숙생이 죽었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한다면, 서인하, 송다미, 최성진 세 사람은 하숙집을 옮길 능력도 없는 학생들이니 적어도 하숙집이 철거되기 전까지는 이곳에 있어야 할 것이다. 건물 철거 전에 밀린 하숙비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인하는 돈 많은 사람들이 싫었다. 미영이가 자주 이야기하던 단골 손님들. ‘오늘 그 사람 또 왔다!’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는 미영이의 말은 서인하의 마음에 질투를 남겼다. 영화관을 또? 좋겠다, 돈이 썩어나는구나. 누구는 방세를 내기 위해서 먹는 양을 줄이고 몸이 부서져라 택배를 옮기는데.

일을 하면서도 서인하의 마음 속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매번 같은 곳으로 택배를 시키는 사람들. 누구는 과일 하나를 사는 것도 손이 떨리는데 누구는 정기적으로, 자주 그리고 많이 주문했다. 재수없어, 짜증나. 돈이 많은 것들은 언제나 재수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겠지, 그가 평생을 이렇게 산 것처럼.

결핍, 그는 돈에 대한 강한 결핍과 집착을 갖고 있었다. 돈이 없어 버려졌고, 하필이면 그곳이 또 돈이 없는 보육원이었다. 정확히는 아이들에게 돈을 ‘안 쓰는’ 보육원이었다. 그런 삶을 살아온 서인하가 독립한 후에도 돈이 없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돈 많은 것들이 싫다. 최성진은 자신을 찾아온 형사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저런 것들은,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으니 여유롭게 공부하고 경찰이 될 수 있었겠지. 저들도 그와 똑같은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분명 아무것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편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 온실 속 화초 같은 것들. 그도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 수 있었으면 경찰이 뭐야, 의사는 되었을 것이 뻔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는 곧잘 칭찬 받고는 했는데, 애들 학교 보낼 돈까지는 없다고 교육을 끊어버린 그 망할 보육원 원장 때문에, 그의 삶이 이렇게 된 것이다.

최성진은 서인하가 자신과 같은 마음임을 알고 있었다. 윤미영은 마음이 여렸지만, 그래도 우리끼리 공유하는 비밀이 있으니 분명 함께할 것이다. 우리만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고, 우리만이 우리를 알 수 있다. 최성진의 머리와 서인하의 힘, 두 가지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었다. 대상은 당연히 그들이 싫어하는 존재로 하자. 윤미영이 매번 이야기하던 영화관 단골들. 허구한날 영화관에 앉아있는 그 인간들은 비싼 티켓값을 내고 그 긴 시간을 버려도 괜찮을 정도로 돈이 많은 것들이겠지. 어차피 매번 혼자 오던 사람들이니 계획을 실행하기에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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