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 잠뜰TV : 어서 오세요, 몬스터 주점에!
※ RPS로 소비하지 말아 주세요.
※ 0.01%의 작중 대사와 99.9%의 날조가 함께하는 글입니다.
※ 2023년 11월 07일 글 재업
언제 몬스터가 되었는가. 잠뜰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뱀파이어로 태어났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인간으로서 살았는가, 하면 그렇다고 하기에도 미묘해서 잠뜰은 해당 질문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대답하는 것을 꺼렸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20년, 몬스터로서의 삶은 글쎄 백 년 정도 되었으려나.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맞지만 몬스터로서의 삶이 너무 길어져 이제는 그때의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침에 해가 뜨면 밖으로 나갔겠지. 따뜻한 해를 마주하면서, 그 빛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거야. 이웃에게 인사하고 아침을 먹으러 부엌에 들어가는, 그런 일상이었을 텐데."
"글쎄요. 저는 몬스터가 아니었을 때도 밤에 일어났던 것 같은데."
“뭐?”
"해 뜨거운 걸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집이 좋아서요. 밖으로도 잘 안 나가고 나갈 때도 항상 해 떨어지고 나갔어요."
"…그랬어?"
"사장님은 몬스터가 된 거 좋지 않으세요? 저 같은 강시도 아니고, 뱀파이어잖아요."
"에이, 강시나 뱀파이어나."
대수롭지 않은 척, 대답을 뱉은 잠뜰은 슬쩍 라더의 눈치를 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뱀파이어는 수가 몇 안 되지만, 그들 중에서 운 좋게 엘리트였던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 몬스터 할 거 없이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강했다. 힘도 평균 이상, 평균 수명도 긴 편이고, 그 오랜 세월을 살면서 부를 축적하고 늘어나는 건 까칠함 밖에 없는 개인주의자들이 대부분이라 잠뜰처럼 마을에 나와 사는 존재들은 극히 드물다.
그나저나 강시 이놈은 몬스터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자부심은 또 얼마나 강한지 여기저기 몬스터니까~라는 말을 붙이고 다녀.
"야, 근데 너 목 돌아갔다."
"에이, 몬스턴데 뭐 어때요."
그래, 저렇게. 몬스터 중에서도 별로 강하지도, 메이저하지도 않은 주제에 몬스터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좀비처럼 동족이 많거나, 엔더맨처럼 강하기라도 하면 몰라. 몬스터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잠뜰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저것도 갓 몬스터가 된 이의 패기라 생각하기로 했다. 굳이 이해하려고 하면 나만 괴롭지.
"나 술통 좀 보고 온다.“
기묘한 술. 직접 만든 레시피로 만든 술이다. 인간이었을 적에는 술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술에 관심이 생겼다. 아, 아니다. 사람 만나는 게 좋았다. 이건 인간이었을 때도 그랬고, 몬스터가 되어서도 그랬다. 그렇지, 그래서 마을에 정착했지.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술집이다. 위험하게 마을 밖에서 술을 들여올 수는 없으니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대박이 났지. 그래도 초반에는 좀 재밌었던 것 같은데.
"진짜 언제까지냐~"
무식하고 힘만 쓸 줄 아는 몬스터의 주정도 1, 2년 봐야 재밌다. 이 짓거리를 몇 년 동안, 그것도 매일 보고 있는데 때려치우고 싶은 건 당연한 거지.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재미도 안주 만드는 거랑 강시 놀리는 것뿐 쌓인 술통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양을 세어보고 다시 술을 만들 날을 잡아야겠다 생각하는 것도, 이제는 재미가 아니라 의무다. 이게 삶이냐? 재미는 없고 의무와 취객 뒷바라지만 있는 이게, 이게 뱀파이어의 인생이야?!
벗어나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술집 일과 몬스터가 싫은 건 둘째 치고, 끈질긴 몬스터로서의 삶이 너무 싫다. 근데 또 그렇다고 삶을 끝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하루의 절반, 내 세상을 뒤덮는 화염을 피하지만 않아도 종결될 삶이 싫은 거다. 햇빛을 받고, 따뜻한 오후를 거닐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평화롭고 평범한 일상을 돌려받고 싶어.
물론 세 자릿수가 넘어가는 인생을 살면서 가만히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실행 불가능한 방법을 알고 있어서 한숨만 쌓인 거지. 어쩌다가 술을 개발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큰 행복감을 느꼈던 인간의 혼으로 만들어진 술’을 마시면 몬스터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걸 가게 시작하면서 알게 됐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마을이 너무 튼튼하기 때문이겠지. 어둑시니라는 든든한 문지기 덕분에 인간은 마을에 들어올 수 없다. 식재료라는 명목으로 납치를 해오면, ‘큰 행복감’이 충족이 안 될 거고, 직접 사냥을 나가기에는... 몬스터에게 이 세상은 너무 위험해.
포기는 아니다. 기회를 기다리는 거지. 언젠가 어떤 인간을 만날 기회가 오겠지. 그 인간에게 큰 행복감을 안겨주고, 혼을 잘라내어 술로 담그면 돼. 뱀파이어의 인생은 아주 기니까. 기회는 분명히 온다. 몬스터가 된 뒤로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잠뜰은 그 자신을 믿었다. 극악을 넘어 극악의 극악의 극악의 확률이 필요한 일일지라도 기회는 올 것이고, 그는 절대로 그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 안주랑 술 하나씩만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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