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처리반
※ 잠뜰TV : 사건 처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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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2월 29일 글 재업
“아아, 개운하다!”
“사람 죽이고 뭐 개운하대, 미친 거 아니야?”
의뢰인의 말에 기겁한 잠뜰은 그 감정을 즐길 새도 없이 다시 일에 집중했다. 이거 옷, 빨아야 할 것 같은데. 사건처리반 일을 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런 살인자들의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미친 사이코패스들이거나 도움 안 되는 변명만을 늘어놓았으니까. 잠뜰은 적절히 의뢰인의 말에 반응하되,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빨래~ 끝!”
그리고 이 사람은 아무래도, 미친 사이코패스 같지. 세탁기가 다 돌아간 소리에 한때 유행하던 옛날 광고를 외치는 의뢰인은 적어도 그가 아는 ‘정상적인 사람’에 속한 것 같지는 않았다. 뭐, 거실에 있는 시체 앞에서 어떻게 하면 의뢰인의 흔적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잠뜰의 손에 떠밀려 집 밖으로 나온 라더는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물었다. 되-게 재수 없는 스타일이네. ‘사건처리반’이라는 이름이 라더의 흥미를 끈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 자주 일을 주던 치는 그에게만 일을 맡기는 이가 아니었다. 그 의뢰인은 아는 살인 청부업자가 여럿이었고, 그중에 그처럼 깔끔하게 일할 줄 아는 자는 드물었다. 그런 의뢰인이 시체 청소업체를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었지. 그가 놀란 것은, 그 청소부가 자신을 사건처리반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사건처리반?”
이름 되게 재수 없네. 사건처리반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가 내린 감상평이었다. 청소부와 같이 이미 이 세계에서 사용하는 별칭이 있는데 제 마음대로 사건처리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상당히 재수 없는 행동이지. 그건 선을 긋는 행위였고, 자신을 단순 청소부와 다른 존재라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사건을 ‘처리’한다니, 뭐 경찰 흉내라도 내고 싶은 건가?
“그래, 정말 깔끔하게 처리해 준다니까.. 자네도 나중에 의뢰해 봐.”.”
“글쎄, 나는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해서.”
“그건 알지,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잖아?”
사건처리반의 명함을 건네주면서 의뢰인은 재수 없게 웃었다. 사건처리반이라는 이름에 라더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웃음이었다. 이래서 이런 놈들이랑은 대화를 최소로 하는데. 쯧,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는 말에 이끌려 앉았던 그가 멍청했다. 얕은 자학을 끝으로 라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 평소처럼 뉴스로 확인할 수 있게 처리할 테니까. 연락은 의뢰할 때만 해.”
그 의뢰인의 의뢰를 해결한 후, 짜증 나는 일에 휘말린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마약 거래를 다녀와 달라더니, 이 미친 정신 나간 자식이 지 죽을 자리라는 것을 알고 그 대신으로 라더를 보낸 것이었다. 이름이, 몬...뭐였지. 하여튼 안타깝게 됐네. 덤벼도 나한테 덤비냐.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몬 뭐시기는 사람을 많이 죽여본 놈이었다. 그냥 라더가 나는 놈이었을 뿐이지 이 불쌍한 남자도 나름 뛰는 놈이었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현장이 좀, 더러워졌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있던가. 라더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집중했다. 불법개조한 건물인지 지하 방음이 더럽게 안 되는데. 설마 저거 안 들킬 줄 알았나? 숨소리가 안 들렸어도 첫 총성에 발아래에서 무언가 떨어진 소리가 들렸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 그 수준의 소리는 라더 그가 아니라 몬 뭐시기였어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이 씨, 이거 어떡하지. 스트레스에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물려던 그의 손끝에 얇은 종이 하나가 걸렸다.
‘사건처리반’ 잠뜰.
어떤 현장이던 감쪽같이 조작해 드립니다. 깔끔 보장!
...명함이라고 하기에는 조잡한 홍보물에 가까워 보였지만. 이것도 재밌겠는데. 사악한 웃음, 그는 곧 망설임 없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라더는 사건처리반의 능력치를 의심했다. 옆집의 방문, 뒤이어 어떤 덜떨어진 놈을 초대하더니 끝끝내 경찰까지. 시간도 없는데 네 사람이나 더 죽여야 하게 생겼네. 괜한 호기심이 귀찮은 일만 만들었다. 오전에 디디 제약에서 거래도 하기로 했는데 이거, 약속 시간에 늦는 거 아니야? 나 같은 사람은 신뢰가 깨지면 안 된다고. 바지 안쪽에서 느껴지는 칼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렸다. 그냥 지금 들어가서 전부 죽여? 경찰은 잘못 잡으면 빡세지는데.
“오, 나왔다.”
계단을 내려온 경찰은 얼굴을 외우기 쉬운 타입은 아니었다. 너무 흔하게 생겼잖아. 저런 자식들은 머리 위에 대문짝만 한 명찰 안 달면 불법이라고 하면 안 되나? 귀찮은 일을 처리할 생각에 그는 일찍이 다 먹은 사탕의 막대기를 힘주어 깨물었다. 어쨌든 이 주변 경찰서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니까. 지금은 경찰을 쫓아갈 때가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라더는 흙이 묻어 더러워진 엉덩이를 털었다. 귀찮은 일이 되겠지만, 처리한다면 위에 있는 놈들부터겠지.
잠뜰의 브리핑을 들은 라더는 의외라는 얼굴로 눈썹을 올렸다. 뭐야,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게 했네? 사건 처리 능력이 좋긴 하네. 갑자기 찾아온 놈을 사건의 범인으로 만들고 프라이팬이라도 휘둘렀을지는 모르겠지만, 목격자 기억도 제거하고. 세 번 사용할 수 있는데 그놈에게 두 번을 썼다면 나머지 한 번은 이웃이 왔을 때. 그럼 옆집이랑 대화하면서 이상한 짓을 하던 게 기억을 지우던 거였나. 그냥 재수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능력 있는 재수 없는 놈이었다. 이런 놈은 싫지 않지. 그 자신도 그런 부류 중 하나니까.
“... 앞으로 당신도 그런 짓하고 살지 마시고요. 조심하시고, 의뢰비 입금하세요.”
말을 마치고 뒤돌아서는 잠뜰에게 그는 의뢰비를 건넸다. 비싼 값을 하는군. 그래도 범죄심리학을 오래 공부한 것치고는 의뢰인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가? 일부러 더 덤덤하게 이야기했는데 초짜라는 거짓말에도 속고 말이야. 그래서 살인자들과 자신을 구분하고 선을 긋는, 의뢰인한테는 관심이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쫓아오기도 하네. 주차해둔 트럭 쪽으로 걸어가던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끝까지 따라올 배짱까지는 없어 보이니까 그냥 내버려 둘까.
곧장 제 트럭으로 움직인 라더는 조수석에서 넥타이와 정장 재킷을 꺼냈다. 자, 자. 재미 좀 봤고. 이제 다시 새로운 일을 할 시간이다. 디디 제약에서 물건을 받고 그쪽이 제시한 장소로 가서 물건을 건네준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 운전을 좀 오래 해야 한다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별일이야 있겠어. 빨리해치우자. 사이드미러로 잠뜰의 모습을 흘긋 본 라더는 그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속도를 올렸다. 저를 쫓아오는 사신은 눈치채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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