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병실에서 연애하지 마세요

윤힐데 (안 사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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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베르트가 기억을 잃었다.

토벌 중이던 크리처가 뿜은 연기를 들이마신 부작용이었다. 제국에도 있던 종이며, 보통 일주일 이내로 기억이 돌아온다고 카이로스가 설명하였으나 병실에 모여든 이들의 안색은 좋아질 줄을 몰랐다.

“힐데, 정말 아무 것도 기억 안 나?”

아미의 물음에 그가 눈알을 굴리며 답했다.

“어…… 네.”

제 앞에 있는 게 누군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힝. 아미가 우는 소리를 냈다.

“일단 다 나가라, 정신 없으니까. 얘 환자야.”

새뮤얼이 사람들을 내쫓았다. 신체에는 이상 없어보이니 이틀 정도 두고보고 퇴원 시킬 거라고 덧붙이며. 그렇게 힐데베르트는 처음 포탈에서 튀어나왔을 때와 다름 없는 상태로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윤은 때를 놓치지 않는 프로였다.

그는 몸도 멀쩡하고 기억도 돌아올 예정이라는 힐데베르트를 사서 걱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 틈을 타 부사수를 어떻게 놀려먹을까 하는 궁리 뿐이었다.

최윤은 늦은 밤에 힐데베르트를 찾아갔다.

그리고 저희 낮에도 보지 않았느냐며 제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힐데베르트의 면전에 대고 차갑게 말했다.

“이제 나한테는 아무 감정도 없나보다.”

힐데베르트가 대번에 입을 다물었다. 그의 동공이 갈 곳을 못 찾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앞뒤 뚝 잘라먹은 소리였으나 대충 듣기에도 심상치 않은 뉘앙스가 풍겼다. 그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으나 최윤은 힐데베르트의 대꾸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사람 들쑤셔놓고 속 편하게 혼자 다 잊으면 그만이냐? 너는 우리 관계가 그렇게 쉬워?”

힐데베르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뒷목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이, 일단 진정…….” 힐데베르트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어 윤의 소매를 조심스럽게 붙들었다.

“진정하고 얘기를 해주시면…… 헉.”

그러자 최윤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영문도 모르고 오한이 돋았다. 생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에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난 것이었으나 기억을 잃은 힐데베르트는 제 죄책감이 그리 작용한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심장이 조이듯 아파오고, 마음이 초조해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것은 비슷했으니까.

힐데베르트가 허둥지둥 침대 옆 협탁에 놓인 티슈를 뽑아 건넸다.

“저,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울지 마세요…….”

최윤은 그 티슈를 낚아채 얼굴을 꾹꾹 눌러 닦았다.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펑펑 솟아났다. 그 광경을 줄곧 보고있는 힐데베르트에게도 이상반응은 점점 심해져 이윽고 병실 공기가 춥게 느껴질 지경에 이르렀다. 힐데베르트는 왜 저 자의 눈물을 닦아주긴 커녕 턱을 후려치고 싶은 기분이 드는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최윤은 연신 주먹을 쥐었다 펴는 힐데베르트의 앞에서 한참을 더 울고서는 발갛게 짓무른 눈가를 하고 떼를 썼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봐.”

생떼였다.

“예?”

힐데베르트가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나 최윤은 꿋꿋했다.

“아니면 날 안고 공중제비 세 바퀴 돌아봐. 늘 해줬던 것처럼.”

기억을 잃은 상태라지만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았다.

사랑……은 둘째 치고, 내가 저 남자를 안고 공중제비 세 바퀴를 돌 수 있다고? 힐데베르트가 최윤을 보았다. 남자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 당연한 요구를 한 것처럼. 힐데베르트는 되려 혼란스러워졌다……. 진짠가.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린데 저 얼굴이 눈물에 젖은 꼴을 보고 있자니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저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까?”

힐데베르트가 주저하며 물었다. 몸에 축적된 빅데이터에 기반해 본능이 요란하게 울려대는 경고등을 아무것도 모르는 이성으로 누르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힐데베르트의 심장이 쿵 울렸다.

힐데베르트는 제 가슴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저 자와 자신이 연인이라는 가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설레고 있는 건가? 이런 감각을 느껴본 기억이 없어 모르겠다.

“못 믿겠다면 말해줄까. 사랑해, 힐데베르트.”

게다가 옆에서 나불대는 저 주둥이를 자꾸만 후려치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게 원래 폭력성을 다소 동반하기도 하나?

왠지 속도 좀 울렁거리는 거 같은데…….

화장실 가고 싶고…….

이런 게 사랑인가?

언젠가 책에서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감정이 아니라는 구절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자. 이제 너도 사랑한다고 말해 봐.”

최윤은 힐데베르트가 깊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힐데베르트의 뺨을 감싸쥐고 아주 가까이서 눈을 마주보았다. 샛노란 금안이 일렁거렸다.

그러니까, 아마…… 이 자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금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게. 제가 알던 사랑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힐데베르트가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을 억지로 열어 더듬더듬 말했다.

“사……사랑……합니다.”

남자가 기다렸다는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

진짜 토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방금 사랑을 고백해놓고 화장실로 뛰쳐나가는 건 좀 아니지. 힐데베르트가 이를 악 물고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 지었다. 연인……이 행복하다면 뭐, 되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되찾고나면 분명 잘 한 일이었다고 여기게 되겠지.

최윤은 힐데베르트의 정신을 엉망진창으로 뭉개놓고서야 만족하고 느른해진 표정으로 곁에 앉아 과일을 깎아주었다. 힐데베르트는 제 연인……이 깎아준 토끼모양 사과를 먹고, 연인……의 손을 잡고, 연인……과 포옹하며…… 혼란스러운 머리로 계속해서 생각했다. 정말 이런 게 사랑이라면…… 나는 이 남자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모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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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멋부리는 바닷가재

    아 ㅋㅋㅋㅋㅋㅋㅋ 너무웃겨요 회사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황급하게 고개 숙임 ㅜㅠㅠㅌㅋㅋㅋ 속이 울렁거리고 화장실 가고 싶어졌는데 이게 사랑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 한줄한줄 너무 웃겨서 디비짐 ㅠㅠㅠㅋㅋㅋㅋㅋ

  • 생각하는 까마귀

    본능적인 거부감ㅋㅋㅋ 소마 감 열일하는뎈ㅋㅋㅋ 이성이 거부함ㅋㅋㅋㅋ 힐데 이제 큰일났다!

  • 운동하는 산양

    본능적인 거부반응에 흔들다리 효과 ? 비슷한거 느끼는힐데가 너무 웃겨요..ㅠㅠ 더 이어질 가능성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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