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이(Ai) 安寧
안녕, 아이(Ai)
* MIU404 이부키 아이 x 시마 카즈미
* 이부시마 교류회 M-TRIP에 낸 글입니다.
* 시점은 원작 이후로 원작과 무관하며 내용은 허구임을 밝힙니다.
*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2018>에서 일부 모티브를 따왔으나 모르셔도 읽는데 무방합니다.
* 내용 중 캐릭터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읽기 전 주의바랍니다.
* 2023. 03. 10 개장판 업로드
멸망은 고요히 내려와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 새까만 안개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없었다. 고층 빌딩도, 발전소도, 공장도, 쓰레기와 사람까지도. 고작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폐허가 돼버린 광경에 말을 잃었다. 멸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대부분 알 수 없었으나 단 한 가지는 알았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세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일만으로도 벅찬 상황에 온갖 사이비 종교가 판을 쳐 사람들을 농락하는 일은 다반사였고, 생활 환경이 사라진 사람들이 늘어 범죄율이 올라가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가장 바쁜 건 경찰이라는 뜻이었다.
그날, 멸망과 함께 이부키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 시마는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었다. 연락되지 않는 시마와 이부키가 걱정됐던 코코노에와 키쿄가 이토마키를 시켜 찾아내지 않았다면 종일 그 자리에 있었을 터였다
그들이 시마를 찾았을 때 그는 폐허 한가운데 서 있었다. 옷 여기저기가 구김이 져 있고 지저분한 것에 비해 상처 하나 없이 서 있는 시마는 마치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시마 씨!”
“시마!”
“…….”
“시마! 괜찮은 거냐? 어디 다친 덴 없어?”
멍하니 있는 시마를 발견하고 그에게 달려간 진바와 코코노에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며 말을 걸어도 시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 어딘가에 혼을 뺏긴 듯 보이기도 해 두 사람의 걱정이 불쑥 키워졌다. 시마의 옆에 이부키가 보이질 않은 것도 한몫했다. 지난 3년 동안 항상 붙어 있던 둘이었기에 더더욱 시마가 혼자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마 씨, 이부키 씨는요? 이부키 씨는 어디 계신 거예요?”
“이…부, 키…?”
아무리 부르고 말을 걸어봐도 답이 없던 시마는 이부키를 찾는 말에 반응했다. 초점 없는 시선이 여전히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뻗은 제 손끝으로 향한 것을 끝으로 시마는 전원이 꺼진 듯 쓰러졌다.
“시마 씨!”
“시마! 빨리 들 것을 이쪽으로!!”
“시마 씨, 정신 차려 보세요! 시마 씨!”
곧 도착한 구급 대원이 시마를 데리고 간 후 코코노에와 진바는 주변을 샅샅이 뒤져 이부키의 흔적을 찾았다. 수색견까지 풀어 흔적을 찾았지만 찾은 거라곤 바다에 닿는 곳의 잔디밭에 떨어진 선글라스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이부키는 없었다.
근처의 CCTV를 확인해보려 해도 새까만 안개의 여파로 사라져 해당 지역에서 대피했던 사람들을 청취해야 했다. 알아낸 건 고작 이부키가 먼저 어딘가로 뛰어갔고, 시마는 사람들을 다 대피시킨 후 이부키가 뛰어간 방향으로 뛰어갔다는 것뿐이었다. 이제 이부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만 남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시마는 그로부터 꼬박 사흘이 지나야 깨어났다. 깨어난 후에도 시마는 말이 없었다. 답을 피하는 게 아닌 답을 하지 않았다. 자동 반사적인 반응 외에는 그 무엇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료들과 놀라 찾아온 가족들의 병문안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시마는 코코노에가 이부키의 선글라스를 꺼내자 반응을 보였다.
“아….”
꺼질듯한 탄성 이후로 더 반응이 없었지만. 그런 시마를 보며 코코노에는 아주 많은 말을 속에 묻었다. 묻고 싶었던 말도, 하고 싶었던 말도 전부 삼키고 시마의 손에 선글라스만 쥐여주고 병실을 나갔다. 그렇지 않으면 시마 앞에서 큰 소리로 울 것만 같았다.
코코노에가 나간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틀어놓은 가습기의 물 끓는 소리만 병실을 채웠다. 손에 쥐어진 선글라스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시마는 얼굴에 써봤다. 파란색 필터가 씌워진 채 활짝 열린 창밖을 바라보니 온통 다 파랑이었다. 그제야 시마는 제가 잃어버린 걸 실감했다. 시마의 세상에만 파랑이 없었다. 울지도 못한 채 무력한 상실감 속을 허우적거렸다.
그날이 지나고 시마는 이부키에 대해서 답을 했다. 모든 사실을 말할 순 없으니 빛이 번쩍이고 난 후 사라졌다고만 했다. 새까만 안개가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사라졌기에 다들 이부키도 그랬으리라 짐작했다. 다만 코코노에의 사유가 확실하지 않으니 실종으로 처리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에 이부키는 근무 중 실종으로 최종 보고가 됐다.
[이부키 아이 순사부장 2022년 5월 20일 중점 밀행 근무 중 실종]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시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이부키가 최종적으로 사망 선고가 내려지는지부터 생각했다. 그때까지 이부키의 관사는 그대로 둘 수 없을 테니 그의 물건들을 제가 가져가 보관할 수 있을까? 안 된다고 해도 되게 할만한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봐도 두 사람은 그저 파트너였다. 4기수가 해체되면 언젠가 헤어질 업무상 파트너. 그 외에 이름 붙일만한 관계가 아닌 둘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을 빠르게 정리한 시마는 곧 퇴원 절차를 밟았다. 딱히 외상이 있지 않았기에 퇴원은 빠르게 이뤄졌다.
“이부키의 관사는 어떻게 됩니까?”
퇴원하자마자 시마는 경시청으로 향했다. 곧바로 4기수 대장에게 가서 이부키에 관해 물으며 관사는 어떻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물었다. 둘이 파트너였고, 꽤 친했다는 걸 알았던 4기수 대장은 어렵지 않게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원래는 실종 처리 3개월이 지나야 빼는 게 절차지만,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어서 빼야 해. 짐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으니 가족에게 연락하고 있지만 도통 회신이 없어.”
“그럼 제가 맡겠습니다.”
“자네가?”
“네. 짐을 보관할 만큼 공간도 있고 이부키는 제 파트너니까요.”
“뭐… 자네가 원한다면 일단 요청해보겠네.”
천만다행으로 시마는 현재 4기수 대장에게 이부키의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권리를 받을 수 있었다. 무슨 이유로 이부키의 가족이 연락이 안 되는지 몰랐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덕분에 원하는 바를 이룬 시마는 집으로 돌아갔다. 바로 이부키의 관사로 가 짐을 정리하고 싶었으나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집으로 돌아온 시마는 우선 이부키의 짐을 넣을 공간을 만들기 위해 창고와 손님방을 정리했다. 한참을 정리하고 나자 해가 저물고 있었다. 대장이 경시청으로 곧장 온 시마를 일주일은 쉬고 오라고 내쫓았기에 시간은 많았다. 지나치게 많았다. 조용해지면 머릿속이 시끄러웠기에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위에 적당히 먹을 것을 집어넣고 다시 집을 치웠다.
“아.”
정리하다가 드레스룸에 들어간 시마는 한쪽에 조심히 챙겨둔 쇼핑백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이부키의 생일에 주려고 산 선물이었다. 백화점을 둘러보다 이부키에게 어울릴 거 같단 생각을 한순간 어느새 결제를 완료해 들고 있었다. 백화점을 나오며 손에 든 쇼핑백을 보고 얼마나 제가 우스웠는지 몰랐다. 하필 생일에 벌어진 일로 전해주지 못하게 된 선물을 한참 바라본 시마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받을 이는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차마 버릴 순 없었다. 영영 그곳에 묵히게 되더라도.
하루를 청소로 보낸 시마는 그다음 날 바로 이부키 관사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관사는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아주 멀리 떠날 거란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울컥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려 시마는 한참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겨우 속을 삭이고 커다란 박스 몇 개에 짐을 차곡차곡 담고 보니 정리가 금세 끝났다. 한 사람의 흔적이 고작 박스 몇 개로 끝난다 생각하니 우스워졌다. 넌 세상을 구했는데 아무도 알지 못하고 남은 건 박스 몇 개에 든 짐이 전부라니. 텅 빈 관사를 보며 시마는 갈 곳 없는 원망을 또 꾸역꾸역 삼켰다. 저를 위해 멸망을 막는다는 이부키의 말 때문에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지도 못했다. 오늘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시마는 쉬지 않았다. 곧바로 신발장에 이부키의 운동화를 차곡차곡 정리하고 옷가지는 드레스룸의 빈자리에 걸어 정리했다. 보관에 주의해야 할 물건들은 따로 빼두고 나머지는 다시 상자에 넣어 창고에 넣어두었다. 따로 뺀 물건들은 다시 보관 방법에 따라 분류해 정리하고 나니 꼬박 하루가 지나갔다.
이틀을 온전히 정리로 보낸 시마는 사흘째부턴 할 일이 없어 괴로웠다. 호출이라도 올까 싶어 내내 옆에 둔 업무용 핸드폰은 종일 조용했다. 잠이라도 자면 좋겠으나 생각이 많아서인지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딱히 다른 생산적인 걸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 내도록 소파에 앉아 보지 않을 TV만 틀어놨다. TV 화면 위로 내내 울면서 웃던 이부키의 얼굴만 둥둥 떠 있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겨우 잠들었던 나흘째. 조용하던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막 잠이 들었던 터라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은 시마는 귓가에 들리는 진바의 목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쉬는데 미안하다는 서두로 시작한 말은 일손이 부족해 나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쉬는 게 불편했던 시마는 군말하지 않고 곧 가겠다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론 매일 출근이었다. 이전보다 부쩍 늘어난 사건·사고로 인해 모든 기수는 쉬는 날이 없이 일해야 했다. 바쁘고, 피로했지만 시마는 좋았다. 이부키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시간이 지나자 늘어났던 범죄율도 점점 수그러들었다. 사람들을 현혹하던 사이비 종교도 잡아들여 기수에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쉬지 못한 날들이 많았으므로 4기수는 우선 충전하고 돌아오란 명령이 떨어져 시마도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한동안 꺼두었던 개인 핸드폰을 켜자 라임 알림이 줄줄이 떴다. 확인해보니 생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바빠서 내일 만나지 못할 테니 미리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선물은 어떤 게 좋을지 말해놓으면 차후에 전해주겠다는 말들이 주르륵 떠 있었다. 걱정 끼치는 게 싫었기에 가족들에게만 답장을 해주고 라임을 끄니 그제야 핸드폰에 띄워진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2022년 7월 7일 목요일 PM 5:20]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칠석이었다. 매해 이맘때쯤이면 항상 비가 내렸던 것 같은데 오늘은 유난히 맑았다. 습하고 더웠지만 청량하다고 할 만큼 하늘이 파랬다. 꼭 이부키가 떠났던 날과 같단 생각이 들어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꾹꾹 눌러뒀던 것들이 나올 것 같아 시마는 입을 막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벅, 저벅.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렸으나 시마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냥 지나쳐 가길 바랐고, 저를 아는 사람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바람이 무색하게 인기척은 시마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저 호의를 베풀기 위해 멈춰 선 행인이라 생각했는데 한참 동안 말을 걸지도, 그렇다고 지나가지도 않았다. 의아함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시마는 제가 드디어 헛것을 본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왜냐하면, 이부키가 제 앞에 있었다. 멸망과 함께 사라졌던 모습 그대로.
간신히 가라앉힌 속이 다시 울렁였다.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수많은 말이 떠올랐다. 그 중 어느 것 하나 언어가 되지 못했다. 꾹꾹 눌러놓기만 하던 길 잃은 원망과 목에 걸린 수많은 말들이 새까만 눈동자에 맺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볼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땅을 적셨다. 마디가 불거진 커다란 손이 감쌀 때까지. 그 손안에 스며들 때까지.
그날, 그때처럼 볼에 닿은 체온이 높았고 손바닥은 조금 거칠었다. 다른 건 눈물을 흘리는 게 시마라는 것. 멸망이 더는 없다는 것.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시마를 어떻게 달랠지 몰라 쩔쩔매는 이부키가 있다는 것. 아, 정말로 이부키 아이가 돌아왔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 시마는 이부키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숨과 숨이 닿아 숨결이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격렬하게 뒤섞였다. 한참 뒤에야 떨어진 둘은 이마를 맞댄 채 숨을 골랐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자 사춘기 고등학생들처럼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안녕, 시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
기적처럼 시마의 세상에 쪽빛을 닮은 사랑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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