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이(Ai) 02
안녕, 아이(Ai)
* MIU404 이부키 아이 x 시마 카즈미
* 이부시마 교류회 M-TRIP에 낸 글입니다.
* 시점은 원작 이후로 원작과 무관하며 내용은 허구임을 밝힙니다.
*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2018>에서 일부 모티브를 따왔으나 모르셔도 읽는데 무방합니다.
* 2023. 03. 10 개장판 업로드
오전에 있었던 무장 강도 일 이후론 오후까지 큰일 없이 중점 밀행이 끝났다. 중간에 점심을 사기 위해 들렸던 편의점에서 이부키가 그토록 원하던 봄 한정 음료수가 있었고, 때마침 도시락 1+1 행사해서 좋은 일이 생겼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시마가 좋아하는 도시락도 있었다고 사 온 덕에 시마도 기분 좋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보통 밥 먹을 때면 울리던 무전도 거의 다 먹을 때까진 조용했다.
요코카와 공원에서 발생한 행인 간의 다툼, 테라지마 중학교와 니쵸바시 고등학교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 돌아다닌다는 제보, 야마다키넨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의 보호자 소동 발생 등등. 오후에도 스미다서 관내를 돌아다니며 두 사람은 여러 일이 큰 불길로 변하기 전에 막아냈다. 마지막으로 스카이트리 근방에서 발생한 무차별 폭행에 대한 초동 수사를 마무리해 형사과에 보고하고 난 다음에야 두 사람은 분주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시이마아아. 보고서는 왜 써야 하는 걸까.”
“일이니까.”
“그러니까 왜?! 너무 싫다고!”
“그럴 시간에 한 줄이라도 썼겠는데.”
“매정해. 매정매정 마인!”
흰 종이 한 장을 붙잡고 끙끙거리던 이부키는 이내 책상 위로 갈게 늘어졌다. 그 앞에서 노트북만 본 채 타자를 두드리던 시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밖에선 날아다니면서 책상 앞에만 앉으면 맥을 못 추니 야생 들개라는 말을 듣는 거지. 뭐, 딱히 틀린 말이 아니어도 지금은 사람 구실을 해야 할 때였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시마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저번에 가고 싶다고 했던 카페. 새 디저트 나왔다던데 가볼까?”
“시마?!”
“아∼ 그런데 지금 보고서 한 줄도 못 쓴 이부키 형사님과는 같이 못 가겠는걸∼”
“아냐! 나 보고서 금방 쓸 수 있어!!”
“그래?”
“응응! 그러니까 같이 가!”
산책하러 나가자는 말을 들은 개처럼 벌떡 몸을 일으킨 이부키의 눈이 반짝거렸다. 어쩐지 그 뒤로 붕붕 흔들리는 꼬리가 보여 시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려했다. 참아보기엔 너무 대형견과 닮아 작게 터지고 말았다. 그 소리에 이부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모습이 한층 더 대형견과 비슷해 시마는 크게 터지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했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까진 어떻게 숨기지 못했지만. 애써 웃음을 참고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단 표정인 이부키에게 살래살래 손짓했다.
“큼. 그럼 빨리 써.”
“좋-았어! 금방 끝내주지!!!”
“대충 써서 퇴짜 맞으면 그냥 갈 거야.”
“나빠!”
“그러니까 제대로 써.”
작게 구시렁거리면서도 이부키는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져뒀던 펜을 집어 들고 머리를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쓰는 건 쥐약이지만 할 땐 하는 이부키 아이. 퇴짜 맞으면서 써냈던 수많은 보고서를 떠올리며 오늘 있었던 일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순식간에 야생 들개가 들어가고 제대로 일하는 이부키에 시마도 다시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종이를 스쳐 지나가는 펜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한 분주소 안을 가득 채웠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해가 점점 길어졌다지만 두 사람이 분주소를 나왔을 땐 해가 저물어 가고 있어 점점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시마가 제시한 시간 안에 보고서 작성을 마쳤을 때 이부키는 마치 잔뜩 메마른 식물처럼 보였다. 어렵사리 쓴 보고서가 한 번에 통과한 후로는 물을 흠뻑 먹은 식물처럼 다시 쌩쌩해지다 못해 어딘가 한껏 들떠 보였다.
“왜 그렇게 들떴어?”
“그야 보고서 한 큐에 통과했다고? 거기에 시마쨩이랑 맛있는 디저트도 먹으러 가잖아? 아이쨩 Big Happy!”
“허 참. 나 같은 아저씨보단 네가 말하는 큐룻한 사람이랑 가는 게 더 좋지 않아?”
“응? 무슨 소리야? 시마랑 가는 거니까 더 좋은 건데?”
괜스레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겠다던 말이 생각나 핀잔 아닌 핀잔을 주던 시마는 갑자기 제 앞으로 불쑥 들어온 이부키의 얼굴에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부담스럽게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괜히 지고 싶지 않아 같이 마주 보던 시마는 곧 이어진 이부키의 말에 무너질뻔한 표정을 잡기 위해 애써야 했다. 너 고백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서 왜 그런 말을 해? 착각하게 되잖아. 튀어나올 뻔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빤히 바라보던 시선이 밑으로 떨어졌다. 불쑥 솟아오르려는 욕심을 숨과 함께 겨우 삼켰다.
“아이쨩은 시마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시마쨩은 모르는 걸까나.”
“하? 파트너로서겠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말을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낯을 괜히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그래도 수사1과까지 갔던 지성인으로서 시마는 꾹 참아냈다. 너는 내가 너를 어떤 마음으로 좋아하는지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거냐고 따져 묻고 싶은 것도, 네가 고백하고 싶은 사람에게 해야 하는 말을 왜 내게 하냐고 묻고 싶은 것도 꾹꾹 눌러뒀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자자∼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자고!”
그런 시마를 빤히 바라보던 이부키는 시마의 어깨를 덥석 끌어안으며 멈췄던 걸음을 재촉했다. 카페에 가기 전 일단 배부터 채우기로 해서 분주소 근처 식당부터 가기로 정해두었기에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오늘은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단 마음이 서로 맞았기에 가정식을 파는 곳을 선택했는데 곧 저녁 시간이라 서두르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지도 몰랐다. 매일 나오는 반찬이 달라지는 데다 맛도 좋아 늦으면 자리가 없는 곳이라 서둘러야 했다.
서둘러 도착한 식당은 역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이부키의 재촉 덕분에 마지막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가게를 가득 채운 생선구이 냄새가 느껴졌다. 가게 한 쪽에 놓인 메뉴판에 오늘의 메뉴가 적혀있었다. 삼치구이와 된장국, 몇 가지 마른반찬이 쓰여 있었다. 굳이 주문하지 않아도 메뉴가 정해진 곳이라 곧 음식이 나왔다.
이부키는 먼저 따끈하게 데워진 된장국부터 후루룩 마셨다. 속이 따끈하게 풀어지는 감각에 몸이 바르르 떨려왔다. 시마는 먼저 젓가락을 들어 손이 많이 가는 삼치구이의 뼈부터 발라냈다. 능숙하게 뼈를 다 발라내고 먹으려던 시마는 뼈를 바르는 건지 살을 부수는 건지 모를 이부키를 보고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꼭 어릴 적 생선 뼈를 바르지 못하던 막내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시마?”
“어느 세월에 먹으려고. 나 주고 이거 먹어.”
“에? 아냐!”
“그러다 가시 걸리면 디저트 못 먹어. 빨리.”
“시마쨩….”
“울진 말고.”
“안 울어!”
제 앞으로 내밀어진 접시엔 잘 발라진 생선 살이 정리되어 놓여있었다. 이부키는 그답지 않게 망설였다. 그의 삶에 이리 다정한 사람은 썩 많지 않았던 탓이었다. 특히 무심히 건네는 시마의 다정은 3년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에겐 별거 아니란 식으로 건네서 더더욱.
답답하게 구는 모습에 접시를 뺏어버릴까 생각이 들 때쯤 쭈뼛쭈뼛 건네는 접시를 받아 제 자리에 놓은 시마는 이부키가 초토화로 만든 삼치구이에서 뼈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살과 뼈가 뒤섞여 고르기 쉽지 않을 텐데도 능숙하게 움직이는 젓가락에 시선을 뺏긴 이부키가 먹지도 않고 빤히 보고 있자 시마의 한쪽 눈썹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안 먹고 뭐 해?”
“어? 어. 먹어, 먹어. 잘 먹을게!”
“그래, 맛있게 먹어.”
안 먹으면 큰일 날 거 같은 눈빛에 이부키는 멈췄던 젓가락을 움직였다. 잘 발라진 삼치 살을 밥에 얹어 한입에 넣었다. 잘 구워 비린내 하나 느껴지지 않고 살이 부드러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다른 마른반찬도 집어 입에 쏘옥 넣고 맛있는지 어느새 이부키의 상체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좋아하는 모습에 픽 웃은 시마도 대충 바른 삼치구이와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들썩이는 이부키가 이해될 만큼 입안 가득 맴도는 맛이 좋았다.
“맛있었다!”
“응. 아까 계산하면서 보니까 내일 점심은 고등어구이던데.”
“우와아∼ 먹고 싶다!”
“생선을 좋아하는지 몰랐네.”
삼치구이가 입맛에 맞았는지 이부키는 이미 멀어진 가게 쪽을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봤다. 선글라스를 벗어 촉촉해진 눈빛이 쉽게 보여 시마는 파트너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갔다. 하긴 그동안 분주소에서는 우동을 먹는 게 대부분이었고, 중점 밀행 도중에는 식당에 가기 힘들어 배달할 수 있는 가벼운 음식이나 편의점, 패스트푸드 위주로 먹었으니 알 길이 없긴 했었다. 뭐, 이전처럼 일이 끝나면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면 계속 몰랐겠지만. 지금은 피곤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만나기도 하니 앞으로 오늘처럼 모르는 것들을 알아갈 수 있겠지.
“그야 생선구이는 냄새가 심하잖아? 잘 안 빠지기도 하고. 관사에서는 하기 힘들단 말이지~”
“뼈를 못 발라서가 아니고?”
“윽! 남의 약점을 푹 찌르다니!”
이부키가 기습 공격받은 사람처럼 가슴을 붙잡고 웅크리더니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시마는 모르는 사람인 척 빠른 속도로 앞서 걸어갔다.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지자 뒤에서 매정 마인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꿋꿋하게 홀로 역으로 걸어가다가 잔뜩 삐진 이부키가 가까이 다가올 때쯤 그를 일별하며 생각해둔 말을 아무렇지 않은 척 내뱉었다.
“내일 먹으러 가던지.”
“어?”
“나도 마침 먹고 싶었거든.”
“진짜?!”
“어. 아, 생선은 내가 발라줄 테니까 넌 손대지 마.”
“으으으….”
“뭐야? 왜 그래?”
“시마쨩은 정말 날 너어어어무 좋아한다니까아아아아!!!”
“붙지 마, 붙지 마! 떨어져!!”
진저리치며 밀쳐내는 손길에도 이부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이 집에 와 신난 개처럼 시마에게 온몸으로 치댔다. 이번처럼 아무렇지 않게 내어주는 시마의 다정이 닿을 때면 이부키는 온몸이 간지러웠다. 간지러운 자리마다 뾱- 뾱- 새싹이 돋았다. 새파란 사랑의 싹이. 시마는 당연한 일들이라 별거 아니라고 행한다는 게 엄청 큐룻하다는 걸 시마는 모르겠지. 이부키는 히죽거리는 입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금 혼자 척척 걸어가는 시마의 뒤를 빠르게 쫓아갔다. 타인이 보면 저렇게 반응할 일인가 싶은 모습에도 이부키는 시마가 자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 이후로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을 누구보다도 사무치게 깨달았던 이부키라서 더더욱.
“시이마. 같이 가∼”
“떨어져서 걸어!”
“에이∼ 좋으면서!”
“알겠으니까 붙지 말라고!”
아니라는 말도, 싫다는 말도 하지 않는 이 다정한 사람이 눈물이 날 만큼 이부키는 너무 좋았다. 역시 오늘 아침에 달리기 끝에 내린 결정이 옳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부키에게 사랑을 지키는 것만큼 가장 큰 정의는 없기에.
긴 투닥거림 끝에 도착한 카페의 디저트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맛있었다. 입안을 가득 메우는 단맛과 신맛과 크림의 고소함. 단 걸 그렇게 즐기지 않는 시마의 입에도 맞을 만큼 적당한 단맛이어서 기분 좋은 배부름으로 나올 수 있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쉬지 않고 먹었던 디저트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야기하는 이부키의 모습에 시마는 문득 예전에 넷째가 말해주었던 맛있는 디저트 가게가 어디였는지 떠올려봤다. 그곳도 제법 이부키의 입맛에 맞을 듯하니 다음에 같이 가거나 근처에 갈 일이 생기면 사다 주면 좋아할 거 같았다. 순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의 웃는 모습을 보는 건 항상 좋았다. 시마는 오늘도 사랑에 지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그럼 시마, 잘 가.”
“너도.”
관사와 맨션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하자 이부키는 관사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서며 시마를 향해 양팔을 들어 붕붕 흔들었다.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개의 꼬리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듯해 숨길 수 없는 작은 웃음이 터졌다. 시마도 한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를 해 보이곤 맨션으로 가는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흥흥흥∼”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잔뜩 먹어 잔뜩 신난 이부키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만큼 행복한 하루였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다 잘될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거침없이 관사로 향하던 가벼운 발걸음이 어느 골목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가로등 불이 나갔는지 유독 어두운 골목 안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묘한 기시감에 한참 어둠을 바라보던 이부키는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막다른 곳에 도달한 이부키는 담벼락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양이는 전체적으로 노란색 무늬로 뒤덮여 있었고 가지런히 모은 앞발과 뒷발만 양말을 신은 것처럼 새하얀 색이었다. 고양이는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긴 꼬리를 살랑이며 이부키를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이 문득 기시감이 들었던 이부키도 마주 바라봤다. 언제 느꼈던 건지 깨달을 때쯤 야옹 우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릿속으로 소리가 울렸다.
[안녕, 아이(Ai).]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분조소로 들어선 시마는 항상 들리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의아한 표정으로 안을 둘러봤다. 이미 도착해서 분조소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을 이부키가 보이지 않았다. 인사를 건넸던 진바를 봐도 그도 모르는지 어깨만 으쓱였다. 아직 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직 시간은 7시 50분. 근무 시작은 9시였으니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걱정이 무색하게 캐비닛에 막 가방을 넣고 제 책상으로 향할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분주소 안에 울려 퍼졌다. 이부키는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오늘따라 유독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시마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부키는 아무것도 모르겠단 듯 생글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더 시마의 감에 빨간불이 점멸하는 것도 모르고.
“늦었네.”
“응? 나 지각은 안 했는데?”
“그 말이 아니잖아.”
“헤에∼ 걱정했어, 시마?”
“아니.”
“흐응?”
“파트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당연히 알아야 하니까.”
그뿐이라고 말하며 책상을 정리하는 척 시마는 시선을 돌렸다. 무얼 캐내려는 듯 못 박힌 시선을 알면서도 시마는 정리에 집중했다. 이부키는 또 몸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간지럼을 느꼈다. 그게 걱정이란 걸 지나가는 고양이가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애써 모른 척하는 시마를 마구 귀여워해 주고 싶었다. 그래도 오늘은 참아야 했다. 응. 오늘만큼은 참아야지.
“아침부터 세탁기가 고장 나서 바닥이 물바다가 된 바람에 늦었어. 덕분에 오늘 러닝도 못 했다구? 시마가 걱정할 줄 알았으면 미리 연락해둘 걸 그랬네.”
“안 했어.”
“응응. 고마워, 시마쨩∼”
“하아.”
행동은 참아도 이부키는 표정까지 숨기지 않았다. 제 형처럼 기특함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시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느 부분에 저렇게 보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알아도 썩 제 기분이 좋진 않을 테니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부키는 오늘도 자기는 마시지 않을 커피 한 잔을 내려 시마에게 갖다주었다. 코끝을 맴도는 고소하고 쌉싸름한 향을 맡으며 이부키를 바라봐도 잔뜩 휘어진 눈꼬리 탓에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것밖엔.
“잘 마실게.”
“응!”
제 임무를 다했다는 듯 이부키는 그제야 일할 준비를 했다. 오늘은 24시간 중점 밀행이니 준비할 게 많았다. 평소보다 늦게 온 만큼 이부키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마는 막 내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그 모습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조용히 바라봤다. 어제저녁에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 사이에 묘한 거슬림이 있었다. 어제 아침에도 느꼈다. 붉은빛으로 점멸하던 그의 감. 그의 감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기수 404에서 1기수 본부. 담당 구의 밀행 종료, 분주에 돌아왔습니다. 말씀하세요.”
-1기수 본부, 알겠습니다.
오전 중점 밀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를 마친 두 사람은 주차장을 벗어나 어제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에도 여기저기 뛰어다니긴 했지만 다행히 돌아오기 전엔 호출이 없었다. 어제 약속했던 대로 점심은 고등어구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같은 401에게는 미리 연락해두었기에 따로 분주소엔 들리지 않았다.
둘이 도착했을 땐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서 그런지 식당엔 빈자리가 많았다. 그중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가게의 구석으로 시마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별생각 없이 뒤따라간 이부키는 자리에 앉아 가게 안에 가득 찬 고등어구이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아댔다.
“우와∼ 엄청 맛있는 냄새! 더 배고파졌어!”
“곧 나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시마는 말이지, 자주 나를 어린애 취급한단 말이야.”
“잘 아네.”
“우린 동갑이라고? 어디가 애 같다는 거야!”
“그런 모습이.”
“너무하잖아!”
의자에 몸을 푹 기댄 채 입술을 삐죽 내밀어봐도 그게 더 어린아이 같아 보인다는 걸 모르는 게 분명했다. 팔짱까지 끼고 ‘나 삐졌소’를 팍팍 티 내도 시마는 딱히 풀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금 있다 밥이 나오면 새까맣게 잊을 터였다. 차라리 이부키에게 어떻게 사실을 내뱉게 할지를 고민하는 게 더 나았다.
“식사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이 음식을 각자의 앞에 내려주자 활짝 웃으며 젓가락을 드는 게 삐진 건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듯 보였다. 게다가 어제 고등어는 손대지 말라는 말도 잊어버린 것 같아 이부키가 손대기 전에 접시를 뺏어왔다. 허망하게 먹을 걸 뺏긴 개처럼 바라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시마는 어제처럼 슥슥 생선 가시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어제 했던 말이 떠올랐던 건지 아니면 쉽게 뼈에서 발라지는 생선 살이 신기해서인지 이부키는 별말 없이 시마의 젓가락질을 바라봤다.
“자.”
“우~와! 잘 먹을게, 시마!”
“그래.”
“음∼ 맛있어! 시마도 얼른 먹어봐!”
잘 발린 살을 밥에 얹어 한 입 먹은 이부키는 두 눈을 크게 떠졌다. 맛있는지 연한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부키의 재촉에 시마는 바로 살을 발라내 밥에 얹어 한 입 먹었다. 오늘도 비린내는 전혀 없었다. 시마의 눈썹이 들썩이는 걸 본 이부키는 히죽 웃었다. 제가 좋아하는 걸 시마도 좋아하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그게 맛있는 음식이라는 건 더더욱.
한동안 조용히 식사가 이어졌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기분 좋은지 이부키는 자꾸 몸을 들썩였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에도 시마는 굳이 말을 얹지 않고 가끔 이부키를 살피며 묵묵히 밥을 먹었다. 어제저녁과 다름없는 식사 시간이었다. 시마는 속으로 무언가 셈하다 툭 이름을 불렀다.
“이부키.”
“응?”
“고양이와 대화할 줄 알더라.”
“큽! 켁, 켁!! 므, 무…슨…?”
폭탄은 난데없이 떨어졌다. 물음도 아닌 확언으로. 꼭꼭 씹은 밥을 삼키고 막 된장국을 마시려던 순간에 터진 폭탄에 이부키는 사례가 걸려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기침을 크게 했다. 많이 놀라 기침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은 이부키에게 시마는 무심히 물을 가득 따른 컵을 내밀었다. 고맙단 말도 못 하고 컵을 낚아채 벌컥벌컥 물을 마신 이부키는 몇 번 더 기침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됐다.
“무, 큼! 무슨 말이야, 시마?”
“담벼락 위에 치즈 태비 고양이 한 마리.”
“어….”
툭 말은 내뱉은 시마는 이부키가 당황하든 말든 태연히 밥을 먹었다. 잘 바른 생선 살을 밥 위에 얹고 김 한 장도 그 위에 살짝 누르듯 얹어 한입에 먹고 적당히 식은 된장국을 마시는 일련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부키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시마가 무언가를 봤음을 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제 뭔가 느껴지는 건 없었는데. 아무래도 어딘가 들뜨고 가라앉아 있던 탓에 시마의 기척을 놓쳤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가 딱히 시마를 경계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랐다.
“…들었어?”
“어느 정도는.”
“끄응-.”
어떻게 무마할 수도 없게 퇴로도 차단당했다. 이부키는 머리를 싸맨 채 끙끙 앓다가 힐끗 눈동자를 올려 여전히 밥을 먹고 있는 시마를 바라봤다. 숨긴다고 숨겼었는데 어떻게 알았던 걸까. 왜 그때 거기에 있었던 걸까. 걱정했던 걸까. 돌이켜 보면 어제도 오늘도 시마가 묘하게 군 구석이 있긴 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어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3년 전 그때처럼.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네.
“이부키.”
“응?”
“밥부터 먹어.”
“…응!”
아무렴 어떤가. 시마는 시마고, 자신은 그의 파트너 이부키 아이인걸. 시마가 아무 생각 없이 꺼냈을 린 없으니 이부키는 일단 남은 밥부터 넣고 봤다. 그다음은 다 먹고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할 말도 있었으니까. 복잡해 보이던 얼굴이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 걸 일별한 시마도 마저 밥을 먹었다. 일단 물꼬를 텄으니 이부키는 도망가지 않고 이야기할 테니까. 그거면 됐다고 시마는 생각했다.
-경시청에서 각 국.
느긋하게 흘러갔던 오전은 꿈이었던 것처럼 점심을 다 먹고 가게를 나서면서부턴 두 사람은 정신없이 현장을 오갔다. 한 현장의 초동 수사가 끝나고 차량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말을 꺼내려 할 때마다 무전이 울리자 종국엔 서로 중점 밀행이 끝나고 난 후에 이야기하기로 합의를 봤다.
저녁은 햄버거를 먹기로 했는데 막 한 입 베어 물던 시점에 울린 무전으로 인해 두 사람은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다 식고 눅눅해진 햄버거를 욱여넣을 수 있었다. 혼이 나간 표정으로 턱을 움직이던 두 사람은 해가 지고 어두워져 차창에 비친 서로를 보고 나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시마 완-전 소무리스 같아.”
“소울리스겠지.”
“맞아, 그거!!”
“그러는 너도 만만찮거든.”
“우리 완전 좀비쟝~”
서로의 몰골에 어린아이처럼 키득키득 웃으며 놀리다 보니 어느새 축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가벼워졌다. 둘의 표정도 한결 밝아져 남은 햄버거도 순식간에 해치우고 다시 대기 상태로 돌아갔다. 늦은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그래도 어김없이 두 사람은 출동할 터였다. 범죄는 밤낮없이 일어나니까. 그렇게 쉬기 위해 분주소로 돌아가기 전까지 둘은 어둠이 내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2시간 휴식 후에도 범죄는 끊이질 않았다. 어둠이 가라앉고 빛이 내려앉을 때까지 404는 바쁘게 돌아다녔다. 바빴던 만큼 작성해야 할 보고서 내용도 많았기에 둘은 언제나 그랬든 9시를 훌쩍 넘어가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다행이랄 점은 오늘은 시말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지만 쨍하니 뜬 태양을 보고 분주소를 나오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럼, 시마 조금 이따 봐.”
“이부키.”
“응?”
“오늘 우리 집에서 자.”
“에? 나 어디 안 가, 시마.”
“알아.”
“그럼,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에 시마의 새까만 눈동자가 모로 돌아갔다. 중점 밀행 도중 일이 끝난 뒤에 이야기하자고 합의를 볼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었으나 시마도 설득할 이유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붉게 깜박이던 감의 잔재처럼 불안이 맴돌아 이부키를 제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걸 그대로 말할 순 없으니 이부키가 자주 투덜거리는 잘 돌아가는 혀를 굴려봐야 했다.
“자고 일어나서 우리 집에 올 거라며. 그럴 거면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는 거지.”
“그래도 되는 거야?”
“안 될 건 없지.”
“음-”
“싫으면 말고.”
“싫은 거 아냐! 나 이제까지 가본 다른 사람 집이라곤 가마 씨 집이거나 범죄 현장이 전부였으니까?”
그래서 초대받은 게 어색하다는 녀석의 얼굴엔 어색한 미소 위에 약간의 설렘이 분홍빛으로 덧그려져 있었다. 드문드문 말해주던 이부키의 과거 이야기로 마냥 밝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마저 특별해질 수밖에 없던 건 썩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가마 씨 집에도 갔다며. 우리 집도 그렇게 생각해.”
“…응!”
“여분 속옷이랑 옷만 챙겨서 가자.”
“관사까지 같이 갈 거야?”
“왜?”
“아냐, 아냐! 가자, 시마!”
눈이 시릴 만큼 내리쬐는 태양보다 더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새까맣기만 하던 눈동자에 빛이 스며들어 물안개 같은 미소가 피어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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