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있는

소리 없이 터지는


※ 돌이킬 수 있는 스포일러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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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상을 한 구석에 몰아넣기에 불꽃은 아주 강력하였다. 서형우가 생각하기에는.

차라리 윤서리 수서관의 정체가 들통났다면 이번 시간선에선 최주상이 살 수 있었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그가 쌓아올린 뒷골목의 모든 인간들까지. 애석하게도 시간은 최주상의 계획대로 유순히 흘러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치밀하게.

기름같은 것이 반들반들히 자리하기에 서형우 팀장의 얼굴은 푸석하고 말라비틀어졌다. 그의 심성처럼……. 어떤 틈이 있을 것이나 그것은 건조함을 나타내기 위한 장식일 뿐. 틈이라 생각한 것을 파고들었다가는 금세 막다른 골목에 도착할 것이다. 뒤쫓아온 것은 그의 장기말이오, 골목에 쓰인 결말은 붉은 죽음일 터이니. 승자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 뒤 입술은 기름진 행복으로 번들거릴테니.

그러나 그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죽음조차 최주상의 판 위의 놀음임을.

계절은 막 가을에 접어들은 순간이었다. 혹은 여름이 죽어가며 마지막 숨을 짜낼 때였다. 제 21호 태풍 제비(JEBI)가 올라온다는 뉴스가 작게 실리었다. 어차피 한반도를 통과하지 않는 태풍이니 그렇게 작은 토막으로 뉴스 위에 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그의 용의가 커다랗고 몹시 사악하여 커다란 잿빛 구름을 경기도 남부에 퍼부었다. 빗소리는 잔인하여 떼로 몰려오니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전언 속에도 섞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섹션의 마지막 작전은 간단했다. 말살. 혹은 몰살. 무엇이든 좋았다. 돌연변이를 제거하여 역사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 서형우 팀장은 제 얼굴처럼 죽어버린 손가락을 책상 위에 토독거리며 이리 말했다.

"[후두두두 떨어지는 빗소리……]산성부터 조져. 비원은 그 다음이다."

……윤서리의 셔츠 깃에 달린 아주 작고 세밀한 녹음 통신기조차 눈치 못 챌정도로 서형우 팀장은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최주상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일부러 빳빳하고 뚜렷하게 대답하는 것 역시 통신기 너머로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찌……익……. 통신기가 부러지며 내는 마지막 비명까지 완벽하였다. 모든 것은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다. 단 하나, 그의 죽음만이 윤서리 수사관의 몫에 달렸을 뿐.

"애들 다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래."

 그는 찌푸러진 미간을 왼손으로 부여잡으며 그리 말하였다. 누구보다 커다랗고 괴상한 파쇄기가 움직일 시간이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하여.

윤서리는 서형우의 시선이 거둬지자 심장께를 부여잡았다. 중력이 휘청이며 자꾸만 그녀를 끌어당기었다. 벌써 몇 번의 실패를 행해온걸까? ……기억나지 않았다. 혹은 고의로 그리하였다. 이 또한 실패로 기록된다면 나는……. 제 손에 사그라진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하였다. 제 손에서 엇나간 몹시도 많은 시간선들을 생각하였다.

지쳤다. 그래선 안 되었으나 몹시도 지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가만히 있어보았다. 역시 그래선 안 되었으나…….조작하고 덧씌워 억지로 그어갔던 시간이라는 직선은 그녀의 하나뿐인 '아저씨'의 손에 의해 고요히 흘러갔다. 그녀의 손에는 붉음 한 방울 묻지 않았다. 일종의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그래서는 안 되었다는 것. 최주상이라는 사랑은 너무나 커다래서 가늠할 수 조차 없는 하늘을 그려내었다는 것. 그를 안다고 생각했으나, 윤서리는 지독히도 틀렸다. 그의 사랑은 직선보다 높은 차원에서 그어지는 것일지니.

남이란 남은 모두 내몬 후에야 기어코 자신을 마지막으로 내몰 최주상을 생각했다. 결심하였다. 그에겐 절대 남이 아닐, 자신이 어떻게든 최주상이 그리는 직선을 막아야 한다고.

산성에선 그러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비원만큼은.

"팀장님."

"말해."

"비원. 오로지 제 손만으로 잡고싶습니다."

서형우는 여전히 제 부하를 보지 않은 채 오른 팔을 대충 들고는,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아주 깊이 인사하며 임시본부를 나왔다. 빗방울은 여전히 하늘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떠한 가림도 없이 뻔뻔하게 빗물 속으로 전진했다.

"김 경위. 비원 쪽으로 보내던 애들 다 철수해."

"팀장님, 정말로 그 큰 곳에 윤 경위님 혼자 보내시려고……."

서형우는 비린내가 나도록 웃어제꼈다.

"골칫덩어리가 죽으러 간다는데 말릴 이유가 있나."

"……예. 없습니다. 그리 하달하겠습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단 말이지. 서형우가 승리감에 승리감을 덮어 씌우며 또다시 웃었다. 절망과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어도 꾸역꾸역 살아남던 자식이 제 발로 죽음을 찾아 가다니! 푸석한 그의 얼굴에 잠깐 기름기가 돌았다.

실탄 사용 허가는 이미 내려졌었다. 더할 말이 없었다.

얇고 가녀린 풀떼기들의 허리를 꺾어버리겠다는 듯 빗방울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아스팔트는 거무죽죽해서 피를 가릴 수 있으나 그 냄새까지는 그리하지 못하였다. 냄새는 오히려 빗물에 의해 널리널리 퍼지는 축에 가까웠다. 오늘을 제하고도 수없이 맡아본 냄새였지만, 윤서리는 오늘따라 그 냄새가 지독하다고 느껴서 얼굴을 찡그렸다.

핏물. 그것을 역행해 찾아가면 최주상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이래서는 아니 되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건물로 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모든 것이 죽어있었다. 섹션의 존재를 모르는 어느 작은 경찰이 뒷골목의 신고라고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핏물이었다. 그리고 덩어리. 한때 숨을 쉬었으나 이젠 핏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살결 뭉텅이들이 널브러져있었다. 그 뭉침에는 윤서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자국들이 보였다. 인위적인 파쇄의 자국들. 파쇄자의 짓이 아니라면 어느 시체의 머리가 저리 네모낳게 깨져 있을 수 없었다. 이 뒷골목에 숨어든 진짜 쥐새끼들과 작전 마지막날까지 빠져나오란 명령을 받지 못한 또다른 '쥐새끼'들까지. 모두 그리하였다.

'도대체 얼마나…….'

내리는 비 속에서 겨우 비원의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의 모든 층이 고요히 침묵하고 있었다. 통째로 죽어가고 있다는 듯이. 그리 자신의 비참함을 꽁꽁 숨겨놓으며. 혹은 마지막 행복 속에 있는 별이 하나 있었다.

늦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라도 숨이 붙어있을 때 구해야 했다. 그녀는 경찰에서 속절없이 세월만 때운 바보가 아니었다.

서둘러야했다.


"몇 명 남았지?"

"이제 29층입니다."

"하. 그래……."

손에 닿은 살점을 닦지 않은지 몇 명이나 되었더라?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세지를 않았으므로. 그런 마음가짐으로 최주상은 섹션의 마지막 작전에 어울려주었다. 산성, 그리고 섹션 사이 위태로운 외줄타기는 늘 그의 심장을 긴장 속에 몰아넣었다. 그런 삶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은 결코 그네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 역시나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이제 그의 심장은 평소의 사람들처럼 뛰고 있었다. 그의 손에 '남'의 살점과 피가 얼마나 묻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끝이 마침내 다가왔으니. 절대 '그네들' 뜻대로 되지 못 할 끝.

"올라가자."

"시발,이딴 놈이 있다고 연……."

점멸하는 비상구의 초록등. 그리고 미처 시체 되지 못하고 꿈틀대던 인간 하나가. 겁에 질린 마지막 발악을 하려 했으나……라땅의 가벼운 손짓에 6.5mm 구경의 탄환은 최주상 근처에도 가지 못하였다.  

"너도,너너너너너도, 돌연변……."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공포탄마저도없는아무위협도할수없는쓰잘데기없는권총방아쇠만이애설프게]

"……얘, 적당히 쉬게 해주겠나."

"예. 아예 옥상에서 뵐까요."

"그래, 그렇다면 부탁하마. 현이도."

"네."

 한 번에 죽이지 못해 미안하단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어깨를 누르는 수백의 '남'들이 있었다. 그의 손에 죽지 않았다면 섹션에 의해 죽었을 것은 알지 못한 채로. 다만 비원만은 그가 일으켰으니 모조리 그의 선에서 끝내야 했다. 그것이 '그네'와 '남'의 차이였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최주상은 홑 된 육신으로 옥상에 올라갔다.

그네들도, 남도 절대 아니 될 인간이 먼저 도착한지도 모른 채.

윤서리는 모조리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근처부터 풍기던 실패의 비릿한 냄새를 애써 무시했으나 몇 층 올라가지 않고 금방 깨달았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머리 속이 빠릿빠릿 굴러갔다. 그녀는 저를 키워준 사람과 그 옆을 지키던 사람들을 너무나 잘 알았다.

돌연변이는 혼자 있을 때 그 성질을 띄면 돌연변이가 아니다. 둘이 있고 마침내 대비되어야 돌연변이일 것이다. 최주상이 맥빠진 어깻죽지를 애써 감추었으나 입만은 그러지 못했던 날이 떠올랐다.

'죽으려하는구나. 기어코.'

어린 날 무심코 들었으나 절대 지울 수 없었던 말. 누군가는 잊기를 바랐으나 도저히 잊히지 않았던 말. 이제는 모든 퍼즐이 말이 되었다. 나를 혼자 두고 떠나려는구나. 그러나 그 어떤 '자식'이 저를 키워 주고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을 놓을 수 있을까! 없다. 있을 턱이 만무했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서 비는 여전히 사납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윤서리는 총신에 실린 단 하나의 무게를 깊이 느꼈다. 호흡 깊이.

그녀는 잠시 머리 속으로 과거를 헤메었다. 너무나 쉽게 정답을 찾아내었다. 어린 날 그녀를 가두었던 곳. 최주상과 자신만의 공간. 오직 태양만이 벗인, 비원의 최상층으로 가는 비밀 루트. 윤서리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그리고 셋. ……긴장감이 그녀의 온 몸을 적시고 나서야, 종착지에 이르렀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실눈도 뜰 수 없도록 빗물이 추적추적 쏟아지고 있었다. 비─잉 고개를 꺾어가며 하늘을 돌려보면 먹구름이 차지하지 않은 하늘 한 점 조차없었다. 먹구름은 제 수명을 오늘까지로 정한 듯 비를 토해내었다. 그런 하늘에 대해 윤서리가 할 수 있는 발악이란 없었다. 그저 그녀는 쳐들었던 고개를 꺾고 비 속에 녹슬어가는 쇳덩어리 총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조금만 지나면, 그리던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윤서리의 마지막 작전은 성공해야만 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낡은 구둣발소리가…….

"……가영아?"

"아저씨."

지금. 마천루의 꼭대기에 선 두 사람. 모두 살아서 나가야만 했다. 윤서리는 총신이 유독 비 속에서 차디참을 느끼며 그 구(口)를 제 관자놀이에 겨누었다.

이것이 적어도 둘이 확실히 사는 방법이리라.

"가영아. 제발……. 그 권총은 내려 놓아라."

"아저씨.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떻게 했어요?"

"가영아."

"제 말에 먼저 대답해주세요."

철컥.

빗물이 두 사람의 눈가 아래에서도 미친듯이 쏟아져 내렸다. 멈출 줄을 몰랐다. 윤서리의 머리카락과 진득히 얽힌 총구부터, 관자놀이까지. 일 센티미터보다 작은 간격. 최주상은 그 간격을 세밀하게 조절하여 총신만을 파괴할 줄 안다. 그러나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이 다시 긴장의 종을 울렸다. 쿵, 쿵, 쿵, 쿵! 평소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실패의 가능성을, 그것이 가져올 치명적인 결과를 생각하게 했다.

"……죽였다. 전부. 내 손으로. 그래도, 가영아……."

"우주라땅은? 김현이는?"

"그 둘은 아니다. 죽이지 않았어, 그러니까……."

아, 평소의 최주상이라면 분명히 발견해냈을 안도의 한 박자. 빗방울 서너개가 떨어질 동안 그녀는 잠깐 안도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었다. 옥상에 이르기 전 무언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곤 이곳에서 다시 보자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녀는 이 총구를 스스로 거둬들일 일이 없었다.

"자수해요. 이번에는. 그러면 살 수 있어요."

"……어떤 미래를 보고 온거니, 가영아?"

"……아저씨."

"되었다. 약속하마. 응? 몇번이고 그러마. 그러니까……."

그녀에겐 준비한 말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최주상은 총을 처음 잡은 소년범을 설득하는 오래된 경찰처럼 행동했다. 약속하겠다, 가영아. 새끼 손가락 걸고. 아저씨는 늘 약속 지키는 것 알지, 윤서리 수사관? 그는 두 손을 들고 자세를 천천히 낮추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오롯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아주 소중한 생명을 한 톨도 세계에게 뺏길 수 없다는 듯이.

무언가 그녀 안에서 북받쳐 올라오려 꿈틀대었다. 자꾸만 치기어린 감정을 내뱉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 그저 눈 한 번 깜빡이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것만 같은 기분. 그러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음에도. 누구보다 아프게 겪었음에도. 녹아버렸다.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오래된 이름에 걸린 마법에 의하여.

……그 순간에도, 최주상은 여전히 오래된 경찰관 행세하며, 천천히 그의 신가영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그녀는 감정에 파묻혀있었다. 손과 손이 닿을 때까지. '탁'하며 맞부딪힐 때까지.

마침내 마주친 소리는 손과 손이 맞부딪히는 것보단 둔탁하였다.

윤서리는 끝까지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다만,

"미안하다."

그 총구가 비틀어졌을 뿐.

동시에, 신가영의 밑바닥이 꺼진다. 아주 모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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