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소설

무제 [0]

소설입니다

교문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그녀의 새로운 학교가 될 곳이었다. 힘찬 걸음걸이로 교문을 통과한 그녀는 주변을 살짝 돌아본다.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과 같이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지나고 있었다. 스캔을 마친 여자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또… 다 초식이야….”


그녀의 이름은 이아울. 늑대 귀와 꼬리를 가진 탓에, 초식 수인들이 정체를 알게 되면 무서워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벌써 학교를 옮긴 것만 5번째. 어떤 때는 친구를 괴롭히던 녀석을 잡아먹으려 해 전학, 그냥 생긴 게 무섭다는 이유로 전학, 늑대인 주제에 무슨 학교냐며 퇴학까지…….

“그만 좀 옮기고 싶다고, 이 더러운 학교.”

아울은 같은 육식류 수인과 다르게, 학교라는 곳이 싫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꿈 하나 때문이었다. 육식은 다들 과격한 취향을 갖고, 직업도 그쪽으로 잡았지만… 아울은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교문 앞에 다다를 때쯤,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울은 교문 옆 기둥에 시선을 두었다. 신경쓰이는 소리에 캡모자로 눌러놓은 귀가 쫑긋 설 지경이었다.

“다음에는 더 갖고다니는 거다?” 위협하듯 나지막이 말하는 목소리와,

“싫어… 돈 없단 말이야….” 울고있는 듯 떨리며 흐느끼는 목소리.

그녀는 발소리를 죽이고 기둥 반대쪽에 기대어 유심히 소리를 들었다. 아무래도 학생들 사이에 ‘일진’이 여기에도 존재하는 모양.

조금 시간이 지난 뒤, 학생 무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아울은 조심스레 기둥 뒤쪽을 들여다봤다.

흰 머리의 소녀가 바닥에 흙투성이로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며 슬며시 소녀에게 다가갔다.

“저기…….” 슬쩍 쓰러진 학생을 건드리며 말을 건네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괜찮아…?”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쓰러져 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흰 머리카락이 보송보송해보이는, 양뿔을 가진 작은 소녀. 순간 아울과 마주친 눈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눈이 참 예쁘다고 순간 생각했다.

“아까 그 놈들….”

“나, 난! …절~대 신경쓰지 말고 가!”

그녀는 그렇게 소리치더니 일진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아울은 그 자리에 서서 어이없다는 듯 그녀가 달려간 방향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뭐야… 좀 도와줄랬더니.”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교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그 소리에 맞춰 선생님이 교문을 열고 교탁 앞에 섰다.

“오늘은 새 전학생이 있는 날이다. 간단히 소개만 하고 들어갈 거니까, 다들 사이 좋게 지내라.”

선생이 손짓하자, 아울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자 치고는 큰 키와 푹 눌러쓴 캡모자, 그 속에 보이는 험악한 인상은 학생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충분했다.

“이름은 이아울이라 하고… 개야. 잘부탁한다.”

‘실은 늑대지만 말이지.’

크게 술렁이는 분위기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아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의심하진 않는구나— 하고.

“개지만 시골 개 출신이니까, 그렇게 안 무서워해도 돼.” 그러면서 한번 웃어보인다.

“이만 들어가라. 저어기… 그래, 빈 자리가 좋겠다. 배혜인이 옆에 가서 앉아라.”

“네.”

‘그게 누군지 알아야 가지.’

….

“어?”

선생님이 지목한 자리에는, 엎드린 채 움직임이 없는… 교문 앞에서 본 그 학생이 있었다. 아울은 옆에 앉으며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네가 혜인이야? 반갑다.”

자기 이름을 불리니 살짝 움찔하는 듯하더니, 다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너 안 자는 거 다 안다. 그냥…… 다른 건 아니고. 아! 동정하는 거도 아냐. 그냥 내가 알고 싶어서 그런 건데… 너 괴롭히던 애들, 누구냐?”

“…….”

“우리 반은 아닌 것 같은데. 찾아내면 내가….”

“신경쓰지 마.”

“야, 진심이냐?”

“…….”

“하, 됐어. 뭐 어쩌겠어.”

“걔네들… 육식이야.”

“뭐?”

“여우들이라고. 너같은 시골 개가 이길 애들이 아니야. 괜히 신경쓰다 휘말리지 말고… 서로 아는 체 하지 말자.”

“…….”

아울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엎드려 있는 혜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한낮 시골 개가 아니라면?”

“으윽?!” 혜인은 귀에 느껴지는 따뜻한 숨결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의문이 생겨 찡그린 얼굴로 되물었다.

“뭐가… 아니라고?”

그 말에 아울은 쓰고 있던 캡모자를 들추며, 씨익 웃은 채 손가락을 제 입에 갖다댔다.

“나 사실, 늑대거든.” 그녀의 긴 늑대귀가 모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귀를 확인한 순간, 혜인의 낯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미… 미안. 내가 잘못했어.”

“어? 아냐, 아냐. 내 타겟은 네가 아니라고.”

“돈은 얼마든지 준비할 테니까… 제발 잡아먹지만 말아줘….” 아울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혜인은 혼이 나간 채로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 생각보다 심각하네.”

— 1교시의 수업이 끝난 후.

“지금이면 항상 걔네들이 왔는데….”

“걔네?”

“네가 궁금해하던… 여우 애들.”

“아.”

“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안 오네.”

“내가 있으니까 그런가보지. 하하!”

“네가 뭐 되냐고….”

“아앙?”

“죄송합니다. 저 맛없어요.”

“흐흐, 농담이야. 근데, 무섭지도 않아? 내가 늑대라는데.”

“난 널 안 믿어. 넌 그저 시골 개일 뿐이야. ‘시고르자브종’이겠지.”

“그렇게 나오신다 말이지? 뭐, 딱히 무서워하길 바란 건 아니지만. 내가 굳이 너한테 말해준 건….”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던 중, 누군가가 아울의 책상을 내리쳤다. 큰 소리가 나자, 그녀는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어이, 잡종! 나와. 우리 돈통이랑 할 말이 있거든?”

“…….” 아울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들이 그 여우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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