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크주인] 조각글
아쿠네코 나크x주인♀️
콧등 위로 느껴지는 그의 숨결이 간지럽다. 당장이라도 그의 입술에 닿았을 거리일 터. 그러나 주인의 입술을 덮은 건 따뜻한 체온이 아닌, 까슬한 면장갑의 감촉이었다.
주인은 눈을 떴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상황인지 확인하려고.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긴 속눈썹과 함께 바닥을 향해 내리깐 루비 빛 눈동자였다. 왼 얼굴을 덮고 있는 그의 앞머리 뒤로 언뜻 비치는, 우수에 차 있던 사파이어색 눈동자도 오늘은 빛을 잃었다. 앞에 있는 남성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 뼘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을 정신은 대체 어디에 남아있었는지. 그 사실이 마음에 안 든 주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설명해.
주인은 말 대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재촉했다. 입술을 열었다 닫길 반복하던 그는 결국 마지못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인님을 무안하게 만든 건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고귀한 당신에게 입맞춤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싫다는 걸 돌려 말하는 게 아니라?"
주인의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나크는 단 한 번도 태어나서 이토록 강렬한 기쁨을 맛본 적이 없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고귀한 그의 주인이 선택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니. 그의 심장은 내달린다는 표현으로 부족할 정도로 쿵쾅거리고 있어서, 말을 맺는 매 순간순간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나크는, 태어나서 이 순간만큼 가슴 벅 차본 적이 없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럼에도, 저는 주인님의 마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끔찍한 살인귀다. 누군가의 어깨를 그 손으로 감싸기에는 너무 많은 피를 묻히지 않았던가. 특히나 그 상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모하는 이라면.
"당신은, 저 같은 사람을 선택하면 안 됩니다."
나크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주인은 대답 대신 눈동자를 데구루루, 한 바퀴 굴렸다. 마치 그가 한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조소를 흘리는 그녀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행동은 항상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뭔가 착각하고 있단 생각은 안 해봤어? 나는 네게 행복을 가져다줄 부적 같은 게 아니야. 네게 보물처럼 소중히 여겨지고 싶단 생각따위 추호도 해본 적 없어."
주인은 그리 말하며 나크의 손을 두 손으로 떼어냈다. 가벼운 동작에 나크의 투박한 손이 가감 없이 떨어져 나갔다.
"난 네게 있어 지독한 족쇄가 되겠지."
죽는 그 순간까지 네게 시중을 들게 하고, 나에게 수천 번의 달콤한 말을 속삭이게 하며, 네 모든 순간을 내게 집중해달라고 응석 부릴 거야. 갓 태어난 아기처럼 너의 모든 에너지와 사랑을 양분처럼 빨아먹으며 네 삶을 통째로 빼앗을 생각이니까.
"그러니까 내게 죄책감 따위를 가질 이유는 없어, 나크. 이건 내가 주인으로서 네게 주는 벌이니까..."
그토록 날카로운 말을 뱉는 동안에도 미소 짓는 주인의 표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하고 아름다웠다.
주인님, 벌을 주는 사람은 그런 미소를 짓지 않습니다.
그리 말하려 했건만, 나크는 대답할 수 없었다. 주인이 자기 양 뺨을 잡고 다시 한번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두 번이나 주인을 무안하게 만들어서야, 집사로서 실격 아닌가. 나크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에게 내려진 벌에 순응했다.
* 밑의 결제선은 채널이 터지거나 사라졌을 때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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