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주인] 조각글
아쿠네코 세라핌x주인♀️
기회다.
지능 천사가 나를 깔보며 코앞까지 들이닥쳤던 그 순간, 본능적으로 내 손은 손목 아래 숨겨두었던 단도의 칼자루를 잡았다.
'주인님께 위험이 닥치면 이걸 사용해주세요.'
미야지의 눈을 피해, 라토가 내게 몰래 쥐여준 단도였다. 그가 가진 단도 중에서도 가장 크기가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옅은 색의 흉기였다. 핑그르르, 내 손끝에서 칼자루가 돌아가며 칼날은 지능 천사의 목 바로 아래를 찔렀다.
모든 일이 소설 결말처럼 술술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능 천사는 그렇게 주인님의 손에 목숨을 잃고, 세계에는 평화가 찾아왔답니다. 나의 소설은 이루어지기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결말이었다. 그래, 마치 동화처럼.
지능 천사는 악마 집사들이 떼로 덤벼들어도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너무나도 가볍게 자기 목 근처에서 나의 단도를 잡아챘다. 그의 손바닥에선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일격은 그에게 있어서 미약하고 헛된 손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능글맞던 미소는 어느새 얼굴에서 지워져 있었다. 지능 천사의 달처럼 새하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사신과 눈이 마주친다면 이런 기분일까. 당장이라도 천사에게 지워질 수도 있단 생각에, 목 안쪽부터 끈적거리며 공포감이 밀려온다. 나는 꼴깍, 침을 삼키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꺼풀만큼은 공포에 충실히 바들바들 떨렸지만, 어차피 나는 시선조차 어디 둘 데 없는 피식자였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던 천사는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조소를 흘렸다.
"재밌네. 이름은?"
이름이라. 그런 걸 말해줄까 보냐.
"없어."
"그건 특이한 이름이네. 없어 양."
가슴까지 차올랐던 독기를 모두 끌어올려 뱉었건만, 지능 천사에게 돌아온 것은 비아냥이었다. 지능 천사의 손이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지워지는 건가 싶어 눈을 감는 순간, 인형같이 딱딱할 줄만 알았던 그의 손이 내 귓가에 닿았다. 귓바퀴부터 사르르 뺨을 타고 내려와 턱에 닿는 손길이 부드럽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지능 천사는 여전히 삐딱하게 웃으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을 기억할게, 없어 양. 오늘은 이만 작별이지만, 우린 또 만나게 될 거야."
그는 그리 말하곤 거대한 날개로 펄럭, 힘찬 날갯짓을 했다. 한 번의 날갯짓에 그의 몸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멀어졌다. 나는 날개옷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그의 옷자락을 바라봤다. 아직도 그 부드러운 손이 마치 벌레처럼 내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 밑의 결제선은 채널이 터지거나 사라졌을 때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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