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토주인] 조각글
아쿠네코 라토x주인♀️
"주인님은 손에 있는 반지를 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건가요?"
"맞아."
"더 이상 반지를 뺄 수 없으면, 주인님은 돌아갈 수 없겠네요."
사락. 책의 페이지를 넘기던 주인의 손이 멎는다. 빼곡히 쓰여있던 종이에서 시선을 조금 들어 올리자, 거기엔 바로 코앞에서 쭈그린 채 자신을 관찰하고 있던 라토가 있다. 그녀의 잔잔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그는 반갑다는 듯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뒤이어 그의 오밀조밀한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퇴폐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 주인님을 손을 꽁꽁 묶은 채로 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실에 가두어둔다거나... 어디까지나 예를 들면, 말이죠."
조금 전까지 순진무구했던 소년의 표정은 어느새 사냥감을 매섭게 노리고 있는 야수의 얼굴로 변모해 있다. 시릴 정도로 새파란 눈동자는 마치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위로 올라간 눈꼬리와 눈 밑에 내려앉은 다크서클 때문에 사나워 보이는 라토다. 하지만 주인은 겁을 먹긴커녕, 라토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를 빤히 바라본다.
악마 집사들의 주인이란 참으로 쉬운 위치가 아니구나. 자신의 전담 집사만 해도 틈만 나면 이렇게 자신에게 집착하고 광기를 내보이는데.
"라토 말대로,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꼼짝없이 이 세계에 계속 있어야겠네."
주인은 소년에게 장단을 맞춘다.
"그렇죠? 크흐흐..."
주인의 말에 소년이 웃음을 흘린다. 마치 신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갖고 싶은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그가 환하게 웃는다. 그토록 내가 자신과 같은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게 좋을까. 같이 있는 시간 내내 나를 관찰할 뿐이면서.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그를 보니 어쩐지 마음이 누그러지는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역시, 자신도 모르는 새 라토에게 꽁꽁 묶여서 지하실에 갇히는 건 싫다. 자신뿐만 아니라, 아마 라토도 그런 짓을 벌였다간 다른 집사들에게 제법 꾸중을 들을 테니.
슬슬 이 광기 어린 대화도 끝내야겠구나. 주인은 그리 생각하며 손에 들린 책을 탁, 접는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라토가 구해주러 올 거잖아? 어제 읽어준 동화책의 기사님처럼."
자, 라토. 뭐라고 대답할래? 주인은 여유롭게 미소 짓는다. 라토를 본지도 벌써 수개월이다. 악마 집사의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스스로 책을 읽을 여유 정도는 쟁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인님에게 허를 제대로 찔렸기 때문일까. 라토가 순식간에 침묵했다. 그는 아까처럼 더 이상 활짝 웃고 있진 않으나, 마치 흥미로운 것을 보듯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내려앉아 있다.
아마 주인님을 위험에서 구하는 기사님이 되는 시나리오도 소년의 마음에 제법 들었던 모양이다. 라토의 반응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신한 주인은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기다릴게, 라토."
"물론이죠, 주인님."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기사처럼, 라토가 책 위에 올려져 있던 주인의 손을 낚아채 손등에 입을 맞춘다. 키스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알록달록한 삽화를 흉내 내는 그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워서, 주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쪽 세계에 조금 더 머무르겠구나. 이런 너를 두고 내가 어디를 갈까.
* 밑의 결제선은 채널이 터지거나 사라졌을 때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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