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글이 간절할 때 열리는 타입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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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 사내. 오늘도 칠흑빛으로 점철된 머리카락이 부슬대는 것을 내버려 둔다. 정돈할 가치가 없다. 가치가 없는 것은 죽어 마땅하다. 그러니 제 것에 속하는 제 머리카락조차 숨을 잃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서슬 퍼렇게 빛나는 마젠타색 눈동자가 힘을 잃어간다. 원래부터 빛을 좇지 못할 운명에 수긍한 그림자에게 볕이 드랴. 그러나 오늘은. 지금은. 이 시간만큼은. 손을 떨구게 되는 것이다.

 

 

 

“야, 야. 그러다 죽겠다.”

 

“죽으라지. 이 동네에서 사람 하나 죽는다고 신경 쓸 자식이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맞아. 심하다, 심해. 그리 낄낄대는 소리가 가로등 불빛에 바스라진다. 철퍼덕, 소리와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은 이름 모를 사내의 덕분이다. 역혈이 숨구멍을 틀어막는다. 목이 쥐이지 않았는데도 숨을 쉴 수 없다. 초점을 잃어 멀거니 허공을 응시하는 A를 보며, 사내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누가 지나가다 부딪히래. 사과라도 똑바로 하면 모를까, 새끼가…….

“새끼가, 뭐?”

 

“뭐, 뭐야.”

 

“저, 저 새끼 뭐야. 어떻게……!”

 

 

 

어떻게 긴 뭐가 어떻게야. 서프라이즈, 라고 해 둘까? 팔을 뒤로 구부려 손으로 땅을 짚는다.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킨다. 쿨럭, 기도까지 틀어막으려 드는 해혈을 뱉어내듯 쏟아낸다. 한 손을 들어올려 뒷목을 붙잡고 고개를 한 바퀴 돌린다. 그러고는 웃는다. 칠흑 속 짙게 빛나는 분홍색 눈초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소름 끼치는 감각을 느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분명, 숨통을 끊었는데. 숨이 넘어가는 걸 봤다고, 내가 분명……! 그리 소리치는 사내의 공포로 물든 낯을 보며, A는 웃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웃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고요와 정적을 깨부순다. 산산조각 난 파편이 튀어 모두에게 박힌다. 그 웃음소리에. 자리하는 생명들은 한속이 등줄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일종의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다.

 

 

 

“다 했어?”

 

그럼 이제 내 차례네.

말을 마친 사내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꺼내 든 것은,

메스 한 자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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