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케틀바이] How to train your dog (1)

롤 초능력특공대 스킨(사미라, 바이) + 케이틀린

빗발치는 총알 아래로 바이는 구조물에 몸을 피하며 반정부 세력을 한 놈씩 줄여나갔다. 목숨의 줄다리기는 늘 긴장이 가득했다. 쉴 새 없이 달리고 주먹을 날리다 보면 임무가 종결되는 식이다. 하지만 구석으로 몰린 이때, 시선을 끌어줄 동료가 있었다면. 바이는 짧게 혀를 찼다. 한 번에 처리하자. 건틀릿의 출력이 거세지자 팔을 감싸는 압력이 강해진다. 바이는 대기를 찢는 익숙한 소리를 들으며 또 한 번 주먹을 쥐었다.

전투에선 두 가지만 지키면 돼. 허락 따위 필요 없고, 용서 또한 구하지 마라.

땅을 박차 오른 바이는 건물 기둥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천장과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당황한 적의 비명소리가 떨어지는 구조물과 함께 파묻혔다. 바이는 남은 목표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누가 술래지? 폭발 보호막이 터지고, 공격을 가한 적이 보였다. 바이는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띠었다.

승리가 아닌 정복을 위해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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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는 본부로 돌아가 작전 보고를 마쳤다. 뜨겁게 달궈진 건틀릿을 벗으니 무거운 무게만큼 온몸을 감싸던 긴장이 빠져나갔다. 혈흔이 낭자한 옷을 벗어낸 바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폭발 보호막이 모든 피해를 받아줄 순 없었다. 사지가 멀쩡한 걸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샤워실을 찾아 따듯한 물줄기를 틀었다. 더러운 불순물이 씻겨나가자 매끈한 근육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이는 한동안 물줄기를 맞으며 피로를 풀었다.

바이는 샤워를 마치고 샤워실에 비치된 서랍 속에 든 새로운 군복을 꺼냈다. 군 인장이 새겨진 자켓을 어깨에 걸치고는 복부를 훤히 드러낸 채 껄렁한 걸음으로 기지로 향했다.

휴식이 필요했다. 맥주나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기운이 돌아오면 떠들썩한 거리로 나갈 생각이었다. 기지에 가까워지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좀처럼 모일 일이 없는 부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바이는 의아한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파티도 아니고 축하할 일이 뭐가 있다고.

“어이, 바이! 새로운 부대원이야! 서로 인사하라고.”

“그래. 나중에.”

보나 마나 사미라 대신 들어온 놈이겠지. 바이는 관심 없다는 투로 대꾸하며 라운지 소파에 겉옷을 던졌다. 바이는 방으로 들어섰다. 철제 침구 곁에 투박한 건틀릿을 내려놓고 냉장고 안에 잔뜩 쌓아놓은 맥주 더미에 손을 뻗었다.

칙- 

하얀 거품이 일렁이는 맥주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빨아들이자 입새로 탄성이 터진다. 바이는 의자에 늘어졌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러나 마음이 불편했다. 새로운 부대원은 부대를 나간 사미라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온 사람이다. 바이는 목에 걸린 군번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목에는 두 개의 군번이 걸려있었다. 사미라가 남겨두고 간, 부모처럼 따르던 그녀가 두고 간 유일한 물건. 가슴 한구석을 찌르는 외로움은 늘 나아지지 않는다. 눈썹을 찌푸린 바이는 맥주를 들이켰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지. 

머리로 알고 있어도 쉽사리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군번을 부적처럼 들고 다녔다. 바이는 마음이 먹먹해지자 고개를 저었다. 괜한 걸 떠올렸다. 낮잠 좀 자고 나서 몸정이나 나누러 갈까. 바이는 침구에 펄썩 누워 눈을 감았다.

라운지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바이는 방문을 닫지 않은 것을 깊게 후회했다. 다시 몸을 일으켜 방문을 닫으려드니 처음 보는 눈동자가 보였다. 새로 들어온 부대원이었다. 경직되어 보이는 신참은 바이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에 합류하게 된 케이틀린 키라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바이는 신참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작은 관심이 들었다. 보아하니 얼굴도 반반하고, 겉모습으로는 제 몸 하나 못 가눌 것 같은데. 바이는 넉살 좋게 웃어 보이는 동료에게 신참의 능력을 물었다.

"뭐로 들어온거야?"

“아. 저격수.”

바이는 표정을 굳히며 케이틀린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함께 적진에서 날뛰어줄 파트너가 필요했는데 뒤꽁무니를 따르는 사람이라니. 위에서 지시만 내리는 사령부가 뭘 알고 있겠냐마는 그게 신참에게 따질 문제는 아니었다. 바이는 실망을 내색하지 않으려 콧등을 비볐다. 신참이 바이와 선방에 서지 않는다면 바이가 두 사람 몫을 해야했기에 바이는 약간의 빈정을 담아 말을 걸었다.

“총잡이가 필요하긴 했지. 내 뒤에 있으면 고운 얼굴 다칠 일은 없을 거야."

부대원들은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했으나 신참은 어딘가 불쾌한 기색이었다.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거리는 그녀에 바이는 피식 웃었다. 바이가 작별을 하며 방문을 닫으려자, 신참의 가늘어진 푸른 시선이 바이의 가슴팍에서 흔들리는 군번을 읽었다.

“바이올렛.”

바이는 제 귀를 의심했다. 신참이 상사의 이름을 부른단 말인가? 이래서 햇병아리는 교육이 필요하지. 바이는 케이틀린에게 성큼 다가가 고개를 가까이 들이댔다. 시선을 피하지 않은 신참이 흥미로웠다. 푸른 눈이 정말 예쁘네. 곱게 뻗는 눈썹과 날렵한 콧대라. 얼굴을 믿고 까부는 건지 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바이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듯 입꼬리를 사납게 끌어올렸다.

“이것 봐라.”

마침 신참의 환영식도 잊고 있던 참이었다. 바이는 딱딱하게 굳은 신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방으로 끌어들였다. 당황하는 부대원들에게 고개를 까닥이며 방문을 닫았다.

“이야기 다 나눴지? 못다 한 얘기 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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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 이름을 막 부르고 말이야. 사미라가 여기 있었으면 넌 죽었어.”

바이가 신참을 향해 앉으라는 듯 책상 의자를 들이밀었다. 마실 것 줄까? 바이가 냉장고를 열며 맥주를 흔들었다. 신참은 잠시 고민하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딱해 보이는 철제 침구와 바닥에 배치된 두꺼운 건틀렛. 간단한 운동 기구, 방구석에 쌓인 구겨진 캔더미. 바이는 자리를 자주 비우거나 방에 애착이 없어 보였다. 시원한 캔 두 개를 꺼내든 바이는 저격수에게 하나를 던져주고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여긴 왜 들어왔어?”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보나 마나 능력자이니 잡혀왔겠지. 그저 가볍게 말동무나 나눠줄 사람이 필요했다. 신참은 맥주를 쥐고 바이가 건넨 의자를 바라보기만 할 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바이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신참의 푸른 시선이 느리게 바이로 향했다.

“이로운 일에 힘을 보태고 싶어서요.”

교과서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바이는 사미라가 했던 말을 떠올리곤 픽 웃었다.

군인은 두 종류가 있어. 수호자와 사냥을 즐기는 타고난 싸움꾼. 
양은 늑대 무리에 어울리지 않아. 너는 어느 쪽이지?

그때는 수호자란 놈들이 우스웠는데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날 줄이야.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그런 목적이 중요한가? 바이는 캔 속 내용물을 무심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이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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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홀짝이는 가벼운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신참의 행동을 보아하니 귀하게 자란 것 같았다. 상처 하나 없는 손과 차분한 시선, 침착한 어투와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 바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고작 세 잔을 마셨을 뿐인데 전투에서 피를 흘린 덕인지 취기가 올라왔다. 키라먼과 대화를 나눈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바이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술집을 찾으려던 계획은 이미 어둠으로 도색된 거리에 취소되었다. 바이는 입술을 삐죽였다. 힘들게 고생한 만큼 보상을 받고 싶었다. 내일 또 다른 임무가 있고, 이대로 밤을 내려놓기엔 몸이 아쉬웠다. 바이는 신참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볼 동료 사이인데 무슨. 고개를 젓던 바이는 제 몸을 훑는 새파란 눈동자를 보았다.

케이틀린의 시선에서 익숙한 관심을 느꼈다. 상반신을 집요하게 훑는 시선이 바이는 너무나 익숙하다. 그녀는 여전히 상의을 입지 않은 채 스포츠 브라만 입고 있었다. 케이틀린은 바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자, 시선을 황급히 거두며 몸을 일으켰다. 바이는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문앞을 가로막았다.

“아직 이야기할게 남지 않았어?”

바이는 몸을 일으켜 케이틀린에게 다가갔다. 케이틀린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도발적인 바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달려드는 군견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케이틀린은 바이의 욕망을 더 부채질했다.

바이는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몸을 더 밀착했다. 늦게나마 뒷걸음질 치는 행동에 웃음이 지어졌다. 

"어이구, 조심해야지." 

바이는 침대 모서리에 걸려 뒤로 넘어지는 케이틀린을 감쌌다. 푸른 시선이 반사적으로 바이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케이틀린의 당혹 어린 눈빛에 바이는 정말로 즐거워졌다.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것 같은데요.”

“너, 내 몸을 자꾸 바라보더라. 뭐가 궁금해?”

케이틀린이 시선을 피했다. 바이는 여유를 갖고 돌아가는 상황을 즐겁게 감상했다. 케이틀린은 망설이던 입술을 열었다.

“저희,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뭐… 그렇지.”

바이는 신참의 허리를 감싸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케이틀린을 침대에 눕히고 품에 가둔 채 마주하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도망갈 곳 없이 밀어붙여진 신참은 여전히 망설이는 것 같았다.

“당신은 나를 모르잖아요.”

“내일 임무를 다녀오면 알아갈 기회도 없이 죽을 수 있는걸?”

흐트러진 푸른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침구 밖에 어정쩡히 머물던 무릎을 케이틀린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으니 숨결에 긴장이 붙는다.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건가요?”

“지금을 즐기는 건 어때?”

바이는 푸른 눈동자를 향해 싱긋 웃었다. 고개를 숙여 쇄골을 훑으니 머리 위에서 승낙이 떨어졌다.

“… 재밌네요.”

바이는 고개를 올려 케이틀린의 붉은 입술을 머금고 핥아올렸다. 옷자락이 떨어지는, 숨을 나누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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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군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투철한 정의감이나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목표가 주어지면 마음껏 날뛰어도 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바이는 능력자들이 모인 특수부대에서 그녀를 지도해 줄 상사를 만났다.

“난 사미라다. 너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사람이지.”

돌아갈 가족을 묻는 질문에 바이는 모른다고 답했다. 엉뚱맞은 대답에도 사미라는 별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많은 전장을 사미라와 함께 누볐다. 죽음의 순간을 피해 가며 부대의 명예를 쌓았다. 전우애가 두둑해진 시점에 바이는 저도 모르게 마음을 짓누르던 짐을 털어놓았다. 과거의 기억이 없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사미라는 호탕하게 웃으며 등을 퍽 때렸다.

“난 과거가 있어도 신경 안 써.”

바이는 간결한 대답에 상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하긴. 사는 것이 별거 있나. 지금에 만족하면 되는데.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없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부대가 커지고 규제가 늘어나자 사미라는 독자적인 용병을 선택했다. 바이는 벽에 기대어 짐을 챙기는 사미라를 지켜보았다. 바이가 그녀를 따라 부대를 나가겠다고 하자, 사미라는 묵직한 샷건의 총탄을 장전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넌 안 돼.”

“왜요?”

단칼에 거절하는 말에 불퉁한 대답이 튀어나갔다. 사미라는 총신을 내려두고 바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개죽음도 상관없냐?”

바이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멈칫거렸다.

“난 스릴을 즐길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넌 그럴 깜냥이 안돼. 과거를 모른다 한들 미래까지 던져버릴 필요는 없잖아?”

사미라는 목에 걸린 군번줄을 빼내어 책상으로 툭 던졌다. 그녀는 총을 넣은 배낭을 메고는 굳어버린 바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기 그대로 남아. 적으로 만나지나 말자고.”

사미라가 떠났다. 

바이는 깔끔하게 비워진 방을 둘러보았다. 상사는 늘 그곳에 있었기에 느끼지는 상실감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렇게 가버릴 거면 먼저 말이라도 해줬어야지. 사미라와 함께하던 임무를 홀로 맡으니 그녀의 빈자리가 더더욱 깊게 느껴졌다. 임무야 어쩔 수 없지만, 임무가 끝난 후에도 벙커에 혼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바이는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인파가 몰리는 유흥거리를 걸으면 쓸쓸함을 잊을 수 있었다.

의미 없는 개죽음- 

상관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 그녀의 조언을 따를 생각이었다. 순간을 즐기라는 것이 이런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이는 가슴팍에서 서로 부딪혀 엉키는 군번줄을 힘주어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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