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ysion Project (엘리시온 프로젝트)
7화
그렇게 누군가의 신고로 와준 구급차 덕분에 금방 병원에 도착하였고 우리 둘 다 진찰을 받았다. 다행히 미이는 검사 결과 가벼운 뇌진탕으로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며칠 정도 푹 쉬면 괜찮아진다고 하였다.
반면,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은 오히려 내 쪽이었는데 의사 선생님도 오죽하면 괴물들한테 맞은 흔적을 보고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얻어맞았냐고 물어보실 정도였다. 이때 마음 같아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해도 안 믿어줄게 뻔해서 의사 선생님께는 길 가다가 양아치들에게 잘못 걸려서 얻어맞았다고 대충 둘러댔다.
아무튼 이후 우리 둘 다 치료를 받은 뒤 미이는 하루 정도 입원하기로 하였다. 나도 며칠 정도는 입원하는 게 어떻냐는 얘기가 있긴 했지만, 괜히 이번 일로 인해 학업에 지장 가는 것이 싫어서 당분간 기숙사에서 안정을 취하고 상태가 안 좋으면 그때 입원하겠다고 의사 선생님께 사정해서 겨우 그러기로 허락을 받았고 안경이 없어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렇게 어찌해서 기숙사로 돌아왔었다.
그렇게 다음 날 망가진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예비용 안경이 따로 있긴 하지만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등교를 하긴 했지만 치료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그 사건으로 인한 피로가 몸에 많이 남아있는지 온몸은 온갖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게다가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이유 모를 두통 증세까지 생기는 바람에 그야말로 내 상태는 최악 중에 최악이다. 오죽하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1교시도 빠질 정도였다. 다행히 담임선생님께 잘 설명해서 결석 처리는 면했고 등교 후에도 다음 수업 준비를 하거나 친구들이랑 한창 수다를 떨며 쉬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그저 책상에 엎드렸다.
평소 안경을 써도 눈매 때문에 날카로운 인상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인데 오늘은 렌즈 낀 상태에다가 머리가 아파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게 되었는데 다른 애들은 그런 내 모습에 잔뜩 겁을 먹어 근처에는 아예 오질 않고 있다... 나에 대한 수군거림은 덤으로.
하지만 어딜 가나 별종은 존재하는 법. 그렇게 책상에 엎드린 채 말 없이 끙끙 앓고 있던 그때, 누군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쳐서 누군가 싶어 살짝 고개를 들어보았는데 그 앞에는 주황색과 갈색 사이 정도 되는 밝은색 쇼트커트에 비슷한 밝은 붉은 빛이 도는 눈동자. 그리고 조금 중성적인 외모를 가진 남학생이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유지온'. 나와 같은 반 소속이며 평소 다른 애들과 거리를 두며 사적인 교류도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매우 좁은 나와는 정반대로 남녀 관계없이 친한 친구가 많고 더불어 인기도 많은, 소위 말하는 인싸 계열에 해당하는 남학생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나를 바라보며 어디 아프냐고, 괜찮냐고 물어보았는데 평소였다면 별일 아니며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상태가 상태인지라 도저히 말할 기운도 없어서 고개만 좌우로 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엎드렸다.
"야, 너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이는데 진짜 괜찮은거 아냐? 보건실 가야할거 같은데 내가 데려다 줄까?"
"뭐? 됬거든? 나 혼자 갈 수......"
하지만 지온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걱정되기라도 한지 보건실에 가는 게 좋겠다고 하며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괜찮다고 혼자서 가겠다고 했지만 계속되는 두통 때문에 걷는 것은 커녕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도 힘들어져서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아 쓰려질 뻔했다.
다행히 쓰려지기 전에 지온이 잽싸게 잡아준 덕분에 쓰려지진 않았지만 온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식은땀 까지 나는 지경이 되어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른 애들도 그런 내 상태를 보고 나서야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그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보건실에 도착 하였다.
도착하자마자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나 대신 지온이 보건 선생님께 내 상태를 말해주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나를 보건실 침대에 눕히고 선생님께는 자기가 잘 말씀 드릴 테니 푹 쉬고 오라는 말을 한 뒤 교실로 돌아갔다.
아무튼 나는 보건 선생님께 두통약을 받은 뒤 그것을 먹고 잠을 청했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는지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에는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갔다.
'....... 이런 망할......'
결국 보건실에서 자느라 오전 수업을 완전히 날려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한숨 푹 잔 덕분에 몸이 많이 가벼워졌고 두통도 많이 나아졌다. 다만 아직 머릿속이 멍한 건 남아있었고 식욕도 없어서 이후 보건실을 나와 점심은 매점에서 산 빵으로 대충 때우고 오후 수업이라도 제대로 듣기 위해 교실로 돌아갔다. 이후 오후 수업을 듣긴 했는데 담임 선생님을 포함한 다른 선생님들이 오전에 있었던 일을 다른 애들한테 들으셨는지 수업 도중 나에게 몸은 이제 괜찮니 힘들면 조퇴하는 거 어떻냐고 물어보시곤 하였다. 물론 나는 이제 괜찮다며 수업을 계속 듣긴 했지만 말이다.
*
그렇게 오후 수업을 무사히 끝내고 하교 시간. 평소라면 바로 기숙사로 갔겠지만 오늘은 그전에 어제 갔던 병원에 가기로 했다. 일단 어제 미이가 일어날 때를 대비해 병원에 내 전화번호를 남기긴 했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미이의 상태가 괜찮아졌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근데 너... 오늘은 다른 애들이랑 약속 없어?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건데?"
그런데 어째선지 수업이 끝나고 나서 지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교문을 나오고 나서도 계속 내 옆에서 페이스를 맞추면서 같이 걷고 있다. 평소 같으면 다른 애들이랑 번화가에서 놀고 그러던데 대체 뭔 바람이 분 거지?
"아아, 그거야 너 아침부터 식은땀에 안색도 창백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으니깐.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고 해도 길거리에서 갑자기 쓰려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냐. 가뜩이나 너 항상 친구 없이 혼자 다니니깐. 그래서 애들한테는 오늘 사정이 있다고 하고 왔어."
"하아... 미안한데 난 그런 관심 필요 없거든? 그리고 이제 괜찮으니까 괜히 오지랖 부리면서 신경 쓰지 말지? 확 그냥 샤프로다가 네 양쪽 눈을 찔러버릴까보다."
"워워, 너무 그러지 마라. 그리고 아픈 친구를 도와주는 것이 친구로서 당연한 행동이니깐. 이럴 때 일수록 도와줘야지."
"하여간, 이상한 녀석........."
생각해보면 내 인상과 성격 때문에 잘 다가오지 않았던 다른 애들과는 달리 그는 나와 이곳에서 처음 만나고 같은 반이 되었을 때부터 계속 다른 애들에게 대하듯 나에게도 허물없이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처음에는 내가 친구가 없으니 불쌍해 보여서 오지랖 부리는 거라고 생각해 그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 내가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었고 급기야는 난 너와 친해질 생각 따위 없고 너 그러는 거 엄청 귀찮으니 그만하고 좀 꺼지라고 까지 했지만 그런 말을 해도 그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격한 현타와 함께 포기하고 그렇게 어쩌다가 친해지게 된 사이가 되었는데 계기가 평소 동급생에게도 존댓말 하는 내가 지금은 거의 유일하게 (미이의 경우는 예외지만) 말을 놓는 상대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종종 내 쪽에서 철벽을 치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대화 이후 몇 분간 아무 대화 없이 조용히 걷기만 하다가 갑자기 그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너 말이야 어제 혹시 무슨 일이 있었어?"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단순히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너 평소에는 안경만 쓰고 다니다가 갑자기 렌즈를 끼고 왔을 때부터 뭔가 촉이 안 좋았달까... 이상하다 생각했거든... 게다가 너 부축 했을 때 팔 안쪽을 우연히 봤을 때 무슨 멍 자국 같은 게 보았거든. 네 상태 보러 잠깐 보건실에 들렀을 때 보건 선생님도 나한테 누구한테 맞기라도 했는지 온몸에 멍 자국이 있다고 무슨 일 있었냐고 나에게 물어보셨고."
"............"
멍이라니... 설마 어제 일로 인해 몸에 멍이 든 건가? 하긴 어제 그렇게 얻어맞았으니 멍이 안 생기는 게 더 이상하겠지......
지온은 이후에도 집요하게 어제 있었던 일에 관해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예기해줬다. 단, 의사 선생님께 말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브와 괴물에 대한 얘기는 뺐으며 그 얘기를 들은 지온은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런 일 진작 얘길 했어야지! 아니 것보다, 넌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등교했던 거야?!"
"어차피 지난 일이잖아. 지난 일을 지금 얘기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아... 그래서 경찰에 신고는 했어?"
"아니, 하필 그때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신고 하고 싶어도 못 해. 게다가 나도 그때 주변이 어둡기도 했고 안경도 망가져서 얼굴을 제대로 못 본 상태였을뿐더러 그때 같이 말려든 애도 기절했었던 상황이었고.....
아 스바 다시 생각나니 또 개빡치리려 하네... 만약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아주 그냥 그 자식들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테다......"
"워워... 네 맘은 이해하지만 좀 진정해. 그러다 애먼 사람 잡겠다."
그때 일을 떠올리니 그때 느꼈던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지온은 네 맘은 알겠지만 지금은 진정하라고 하며 우리들은 공원을 지나 병원을 향해갔다.
그런데 아까부터 누가 쫓아오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은... 기분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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