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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업물은 웹툰 <신의 탑> 등장인물을 기반으로 SF AU로 작업한 2차 창작물임을 밝힙니다.
새벽내 슬어 고형화된 얼음이 암반을 타고 떨어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새의 울음 대신 이를 자명종 삼아 눈을 떴다. 해가 없는 이 땅에는 세 개의 위성이 올라와 빛을 쬐고 다시 떨어진다. 주야의 주기는 지구에 비해 길고 편차가 크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지구에서보다 약 2.7배의 시간 가량을 더 살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똑같은 시간을 살고도 지구에 돌아가면 나보다 더 오랜 역사가 몸에 묻은 사람들과 마주할 것이다.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배우며 학사니 박사니 하는 학위까지 따고 얻은 뉘우침은 만물이 불공정하게 안배된다는 사실이다. 시간까지도. 그러니까 나는 불공정하게 배정받은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불공정한 탐사선에 탑승해서, 불공정하게 불시착하고, 불공정하게도 홀로 살아남았다. 우주를 누빈다면 언젠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오히려 살아남은 쪽이 기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일단 우주에 나오면 이 인류가 지구를 테라포밍하고 그 위에 알뜰하게 꾸린 작은 공동체의 의미는 희박해진다. 희박해진다는 것은,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유리되고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물론 유리감이 먼저였는지, 우주에 내보내진 것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대개 영장류만의 방식으로 길들여지고 정복당한 별에 안주하지 못하는 사람은 태생부터가 유리자인 법이니까.
일어나 걸음을 옮긴다. 일단 식사를 해야 한다. 까끌까끌한 소리가 버적버적 울린다. 구체적인 측정은 어렵지만 예상컨대 이 별의 매질은 밀도와 압력이 지구에 비해 다소 높다. 그러나 우주복이라는 갑옷을 벗은 인간이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평생 살아야 한다는 조건 하에, 다른 행성에 비해서야 무난하게 버틸 만한 별일 것이다. 이 별이 제대로 연구된다면 화성이나 달보다 더 매력적인 지구의 대체재로서 평가받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연구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내가 돌아갈 일은 없다. 성간을 넘어서 PGC 3074547의 이름 없는 행성에 불시착한 내가 혼자만의 힘으로 함선을 수리해 태어난 별로 돌아갈 방도도 없거니와, 여기에서 그 삶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온전히 보존하고 싶은 존재 또한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별에는 미생물보다 큰 것이 산다.
아주 영리하고 아름다운 생물이.
지구와 비슷한 형태는 아니겠으나 어쨌든 여기에도 초목이 산다. 대체로 짙은 녹음을 드리우지는 못한다. 아마도 일사가 지구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별의 생명은 수원을 근간에 두고 있는 듯하다. 지구에 비해 황량하고 보잘것없는 육지와는 달리 바다에 녹은 산소의 농도가 15ppm 이상은 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영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해중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아름다운 생물군이 헤엄치고 있다. 이 작은 행성은 어림잡아 9할이 바다이고, 1할이 육지일 것이다. 처음부터 아가미도 비늘도 없는 인간이 발 디딜 틈 따위 없는 곳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곳에서 연명하고 있나.
우리 별의 조개와 비슷하게 생긴 생물은 조개라고 부르고, 물고기와 비슷하게 생긴 생물은 물고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이상의 부름은 불필요할뿐더러 내 나름의 테라포밍이나 다름없을 것 같아서 붙이지 않았다. 구약 성전에 나오는 아담이나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오만하게 이것저것 명명할 의지도, 자격도 없다. 나는 지구에서와 달리 이 별을 다스리는 존재가 아니라 여기에 기생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조개를 두세 마리쯤 채취해 나온다. 미역처럼 생겼지만 땅 위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육지 미역이라고 부르게 된 것들과 함께 불에 올려 주린 배를 채운다. 자주는 필요 없다. 이 장소에서는 신진대사도 느려지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수심이 얕은 지대에서 배를 채우고 나면 해중숲을 거닐며 나름의 순찰을 한 번 거친다. 위협적인 포유류는 없지만 위협적인 식물은 있다. 그러나 그 식물의 인근에 접근하지만 않으면 무시할 수도 있을 만큼 이곳의 생태는 평화롭다. 물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식물들은 대개가 쉽게 유영하고 자리를 바꾸는 법이지만, 그중 드물게 있는 위협적인 생물군은 해중 암반에 뿌리를 단단히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피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표식만 철저하게 남긴다면 좌표를 헷갈릴 일도, 실수로 심기를 거스를 일도 없다.
순찰이 끝나면 나름의 중심 야영지로 삼은 자리에서 불을 피우고 남은 재를 치운다. 흔적들을 적당히 정리한 뒤에는 바닷가로 이동한다. 바다에 입수한다. 연명도 사망도 무의미한 여생의 남은 한자락 의미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 여자는 얕은 수심 구역에서는 만날 수 없다.
우리 방식으로 고래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거대한 해양 생물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금색 구체로 보이는 해양 생물의 군집이 자주 관측되는 해역에 그가 있다. 늘 비슷한 지대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딱히 멀리까지 헤엄을 치는 종류의 종족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수중에서도 얼마든지 안전하고 자유롭게 숨 쉬며 움직이고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영장류나 포유류는 아닌 듯하다. 오히려 종족 특질 자체는 파충류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생존에 필요한 섭취량이 매우 적다. 언어 체계는 전혀 다르다. 사람처럼 발성 기관을 사용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질의 파장을 이용하는 본질만큼은 동일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물 속에서 들리는 그의 음성과 공기 중에서 들리는 그의 음성 간 감각의 차이가 현격히 컸다. 대기 중에서 들은 그의 목소리는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비롭게도, 의사 소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순하고 가시적인 소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나의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발성 체계에 의해 응답했는데, 이 소리는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닿는 것처럼 작용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와 대화할 수 있다. 아주 내밀하고 섬세한 것들까지 전부 나눌 수 있다. 이 소통이 처음 성립했을 때 나는 그가 외계 생물보다는 신에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그의 신체를 파충류에 빗댄 것처럼, 그의 피부는 매우 얇다. 투명한 듯한 질감이지만 실제로 투명하지는 않다. 그의 표피는 바다에 투과된 빛을 반영해 푸르고 흰 보석처럼 빛난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스스로 발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을 머금은 오팔처럼 옅게, 그러나 영롱하게…… 그의 어딘가는 빛나고 있다. 지느러미는 없다. 비늘도 없다. 그는 무엇인가…… 사람과 다르다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외형이 우리 인류와 많이 닮아 있다. 내가 여기에서 그에 대해 묘사하며 '그'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가 가진 특성들이 종족 전체의 특징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를 제외한 동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짚고 싶다. 그의 외관에 대해 조금 더 짚어 보자면, 그의 미색에 대해서는 어떤 표현도 궁색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를 마음에 들어해서, 아니,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열렬히 사모하는 어떤 감정 때문에 이렇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이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종이 이 넓은 우주 어딘가에 실존했고 그 유산이 그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투명한 피부는 사람의 살갗과 정확히 같은 질감으로 느껴지지만, 그 구성 요소가 실제로 사람의 육신과 같은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더 좋은 효율로 짜인 직물에 비유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인체는 많은 연료를 필요로 하는 '비교적 고효율'에 속한 생체 기계일 뿐이다. 그리고 굳이 이 비유를 연장하자면 그의 육체는 '최고급 효율'을 자랑한다. 물 속에서도 찢어지거나 쉽게 데일 것처럼 약하지 않고, 오래 물 속에 넣으면 불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는 인체처럼 불리한 조건의 경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질감은 몹시 매끄럽다. 이러한 몸을 가지고 있다면 바다라는 거대한 유속의 장 안에서도 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물 속에서 파도처럼 흐르르한 그의 긴 선홍색 머리카락은 내가 지구에 두고 온 수많은 봄꽃들의 이데아 같다. 어슴푸레한 새벽을 언제나 물고 있는, 수중에서 깜빡이는 눈동자는 물에 의해 탄생하고 하늘에 의해 세공된 것처럼 투명하다. 무엇보다 그의 음성, 외이를 타고 들어오는 대신 온몸을 바람처럼 감는 그 '소리'의 기이한 감각은 생전 겪어본 모든 감정 중에서도 최초의 안도감처럼 편안하고 부드럽다.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그, 혹은 그의 종족은 근사한 생물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그런 종합평가 하에 가두고 싶지 않다.
그에게 작은 선물을 가지고 가서 이야기를 듣는 것 남은 유일한 일과이다. 조개 껍데기나 물에 들어가면 투명하게 속이 얼비치는 꽃잎 따위를 가져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어디엔가 선물을 보관하는지, 아니면 과연 풍랑 속으로, 자연에서 온 것을 다시 자연의 길에 안배시켜 돌려보내는지도 모른다. 물어보면 대답해 주지 못할 것 같을 문제는 아니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준 '마음'은 어떻게 하고 있어? 따위 요지의 질문을 건네는 순간 그것은 단지 물품을 어디에 보관하느냐로 귀결되는 문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섬세하다. 전혀 다른 은하의 전혀 다른 생태를 누리는 전혀 다른 별에서 온 생물이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고, 미간의 일그러짐이나 호흡의 불규칙성이 언제 어떻게 발생하는지 기민하게 눈치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생물보다는 관념에 가까워 보인다. 성대에서 귀로 향하지 않는 소리의 전달과, 투명하고 매끈한 눈동자, 그리고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듯 가볍게 수압 사이를 휘젓는 몸짓과 그 모든 예민한 촉각 영함이, 그리고 근원을 모를 신비하고 슬픈 눈빛이. 사람보다는 신, 생물보다는 관념, 어떠한 의지, 생태 그 자체의 영역으로 그를 확장하여 인식하게끔 만든다. 어쩌면 착각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부정확하게' 판단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다르게 말하면 그를 '규정하지 않은 상태로' 남기려는 몸부림이다. 이 작고 그러나 한 개인에게는 과중하게 넓은 별 안에서, 더 나아가 광대한 우주 안에서 그를 보고 겪고 누리고 남기는 것은 오로지 나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에 대해 적겠다. 근사한 나의 인어, 작은 신, 달의 영장에 대하여.
내가 이 별의 소금같은 흙으로 이루어진 땅을 밟은 날, 나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직후이기에 아직 인지 능력이 다 돌아오지 않았었다. 당시 탐사 일지에도 그때의 기록은 남아 있으나 지금 기록하는 이유는 그것과는 명백히 다르다. 이 여자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사적이고 세부적인 사전 설명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모선이 웜홀(로 추정되는 차원 이동 경로, 이에 대해서는 탐사 일지에도 기록한 바와 같이 충격 상황에 대해서는 그 과정이 급하고 혼란스러웠기에 기억이 불분명하다.)을 거치며 비가역적 파손 상태에 이르렀을 때 보호 장치는 원활히 작동했기에 나는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부상에서 급속 치료의 진행이 마무리될 때까지 보호관에서 비의식 상태로 대기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막 보호관 밖으로 뱉어져 나왔을 때에는 이미 많은 사건이 종료된 이후였다. 함선은 거의 파괴되었고, 내부 에너지는 고갈되었을 뿐더러 재충전이 불가능했고, 나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그 당시로서는, 확인할 방도가 전무했다. 물론 약간의 수리를 거쳐 좌표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맛이 간 계기판에 정확한 좌표 따위 송출되지 않았고, 게다가 오류나 오차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여기가 좌표계가 가리키는 대로 PGC 3074547 은하계 내부라고 믿었을 뿐이다. 그 믿음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진실이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는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진실을 압도하는 사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나는 이쯤에서 내 삶도 하나의 사건으로 완결되리라는 확신으로 희미하게 남은 인류의 사명에 따라 일지를 기록했다. 회송 수단은 없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청자가 있는 인간의 삶과 청자가 전무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봤을 때, 그 행위가 인류를 위한 것이었는지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덜 풀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목적지 없이 걷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돌아오기 위한 지표는 중간중간 확인했다. 증류된 사해처럼 희고 부드러운 지면, 누군가가 의도해 색을 추출한 듯 밝은 상아색의 암반,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가늘고 연약한 몸을 자랑하는 계곡물, 생전 본 적도 없는 각진 모양의 열매를 대롱대롱 달고 있는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 그러나 탐사는 길지 않아 종료되었다. 바다, 바다, 그리고 바다. 이 별이 온통 바다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아주 운 좋게 육지 위로 착륙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천운 중의 천운이 나를 건졌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나. 돌아갈 길도 없이, 이 외롭고 소름 끼치도록 고요한 무연고의 별에 혼자 착륙했다면. 우울한 예감은 밤낮으로 나를 덮쳤다. 이상하게도 포유류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하늘을 활공하는 조류도 거의 없었다. 뭍 식물과 해양 생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별이었다. 육지 생물인 나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러나 때때로 몸을 휘감는 절박한 외로움과 쓸쓸함, 아주 옅고 얇게 그러나 겹겹이 깔린 절망이 물을 향해 나를 떠밀었다. 매일매일, 한 발씩 거기에 더 가까워져 가는 것 같았다. 수영을 익히고 물 속에서 숨쉬는 법을 익힌 데다 남은 장비라고는 어느 환경에서든 일신만은 보호해 주는 우주복밖에 없는 나에게 익사란 가장 난해하고 괴로운 방법이었을 텐데도. 물은 다만 내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평화처럼 보였다. 특히 이 별의 물은 더더욱.
그래서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옅은 바닷가를 가로질러 체감상 십오 분 가량을 앞으로만 헤엄치면 작은 바위가 바다를 가르고 삐죽 튀어나와 있다. 거기에서 아주 오래, 꽤 많은 날일간 이 별을 비추는 세 개의 별들이 뜨고 다시 질 때까지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물은 아주 맑고 투명해서 때로는 수심이 너무 얕아 보였고, 때로는 색색깔의 물고기와 둥근 구체 모양의 해양 생물, 꼬리가 아주 길게 튀어나온 아름답고 괴상한 갑각류 따위가 선명하게 관측되었다. 그것들이 배회하고 가끔은 바위 위에 우두커니 앉은 이상한 여자를 관측하기 위해서인지 파도를 일으키며 수면을 박차고 튀어나왔다가 다시 뛰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나에게는 유일한 수행이었다. 죽을 때까지 노려보고 있으면 언젠가 자연히 잠들듯 죽은 뒤에 이 별의 눈부신 해양 생물이 될까. 어쩌면 깊은 아래에 뼈로 잠겨 산호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해 볼까, 그런 생각으로 시간을 공회전시키며.
그리고 세 개의 별이 떠올랐다 지는 것을 서른한 번째 포착했다. 그러니까, 우리 방식으로는 한 달여가 지났다고 판명할 수 있는 날이었다. 한 달이나 이 곳에서, 이 느려터진 시간 감각을 감내하며 살아남은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 바위에서 밤을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길다면 긴 시간을 홀로 깎이며 나는 충동과 본능에 어느 정도 좌지우지되는 상태가 되었고, 언제든 쉽게 바다에 몸을 던지고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해가 진 뒤에도 멈춰 있는 사람처럼, 돌 위의 돌처럼 깎인 채 머물러 있었다. 세 개의 별이 지고 칠흑같은 밤이 도래할 때까지. 이 별에는 달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새삼스럽게 우리 별은 빛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고 여기게 될 정도로 이곳의 밤은 까맣다.
그러나 달 대신 스스로 발광하는 해양 생물이 있었다. 거기, 물에, 내 발 아래, 유체로 이루어진 땅 속에.
둥글둥글하지만 해파리와 조금 다르게 생긴 그것들은 어디에서 흡수한 빛을 발산하는지 몰라도 반짝거리며 넘실넘실 바다를 밝혔다. 비록 그들 자신 외에는 그 무엇도 비추지 못하는 연약한 빛이었지만 그 가냘픈 빛이 좋았다. 태어나 반평생을 올려다보며 살았던 또다른 망망대 해, 즉 우주 같았다. 이따금 일어나는 파도의 쉽게 깨져 버리는 거품들, 그리고 잔물결로 빼곡하게 차오른 윤슬을 보여주었다. 바로 그것들이, 그 바닷속 반디들의 미광이. 나는 한참 넋이 빠져 그들의 윤무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에서, 더 멀고, 넓고,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올라오고 있었다. 꼭 빛의 호위를 받는 것처럼 어슴푸레하고 다채로운 빛깔로 미끄러지며. 첫눈에는 조금 작아 보였고 조금 더 가까이에 다가왔을 때는 근사한 드레스를 입은 베타처럼 아름답게 너울거리는 연분홍색 지느러미를 가진 거대한 바다의 공작새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 아니 그가 다가왔을 때 나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건 단지 해양 생물이 아니었다. 아가미도 없고, 비늘도 없고, 지느러미 대신 팔과 다리가 붙은 존재였다. 다섯 손가락과 다섯 발가락을 가진. 그는 사람이 그 자신의 모습을 본따 창조한 여러 신들처럼 반짝거렸고, 섬세하게 세공되어 있는 보석처럼 근사했다.
그때 작은 탄성과 함께 균형을 잃고 바다로 쭉 미끄러져 떨어지는 내 등을 바다에서 뻗어져 나온 그의 손이 받쳤다.
놀랍도록 차갑고, 부드럽고, 미끄럽고, 중독적인 촉감이었다.
물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인영조차 신격적이었다. 태어나서 그런 생물과 마주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무례하게도 반복적으로 그를 세심하게 뜯어보려는 눈을 의식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돌렸고, 물 속에서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숨을 쉴 수도 없으며 거동이 묵직하고 둔한 생물을 향한 무한한 호의와 호기심이 깃들어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는 두 눈동자에 이끌려 다시 그를 취한 듯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그런 나를 기다려 주는 듯 알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진 여자는 말을 걸거나 나를 건드리지 않고 다만 고요하고 깊어 반질거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너무나 검질기고 매혹적이어서 나는 한참 뒤에야 언어를 처음 익히는 인류처럼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성대가 비벼져 소리가 터져 나가는 순간 이 바닷물 안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짧아질 것이고 나는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평생에 단 한 번일 그 순간을, 영원한 기억 속에 가능한 한 생생하고 세세하게 핀으로 꿰어 박제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숨이 차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때까지, 힘겹게 물을 가르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야만 할 시간이 올 때까지 숨죽여 그를 관찰했다. 낯선 친절로 점철된 차가운 촉감을 일깨우는 그 손에, 다시 닿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무엇이었을까. 벼락처럼 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삶에 내리꽂힌 그 생물은, 그 여자는, 그 달 같은 연인은.
무엇이 되려고 길고 신산한 운명을 활공해 나에게 날아온 것일까.
잊을 수 없었다. 딱딱하지만 부드럽고 까슬하지만 안락한 모래 바닥 위에 잎을 깔고 누워 웅크리고 눈을 감아도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가 쓸고 지나간 영혼이 들썩거렸다. 그가 닿음으로서, 그 마주침이 나를 관통하고 지나감으로서 체내의 분자 구조와 관성적 생존을 연명하던 옅은 본능 모두가 뒤집혀 재배열된 것만 같았다. 당시의 나는 얼얼한 충격에 잠겨 미처 떠올리지 못했지만 이제와 떠올리면 그건 어떤 형태의 사랑이었다. 일종의 선각처럼 강렬하게 사로잡히는 작용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조잡한 색채 영화 속 다큐멘터리 팀이 잠수정을 끌고 심해 저 끝까지 내려가 창살을 꽂고 도륙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알록달록한 환상의 상어와 마주쳤을 때, 그 거대하고 신비한 영혼에 이끌려 모든 전의를 잃고 해면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나는 첫눈에 심장을 부드럽게 찔러 관통하고도 피 한 방울 내지 않은 칼날과 같은 이 존재를 향한 열망을 평생토록 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건 확신이라기보다 예견이었다. 반드시 일어날 일, 어떠한 순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납작 엎드리고 마는, 신을 향한 항복이었다.
나름대로 참아 보려고 했지만 채 일곱 '세 별 날일'을 견디지 못하고 엿새가 되는 날에 나는 다시 바다에 뛰어들었다. 한 번이라도 다시 바다에 나갔다가 그를 발견하면 매일 그를 찾으러 바다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를 발견하는 날까지 매일 바다에 빠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이 순간의 이끌림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실체를 다시 갈구하는 순간 동일한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름의 인내에 사력을 다했으나, 그 인내가 고작 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너울거리는 해중의 반디들이 막막한 앞길을 밝히며 새벽이 올 때까지 발 아래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소통할 수 없는 것들에게 기대어 그들이 부르는 무형의 속삭임을 위로 삼아,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무의미하게 공전하는 시침을 흘려보냈 다. 세 개의 별이 차례대로 떠올라 너울거리는 파도 너머로 아지랑이처럼 무지개를 투사하고, 다시 거꾸러져 어둠의 장막 뒤로 몸을 숨길 때까지.
눈을 떴다.
까만 밤이 되돌아 땅을 덮치기 직전, 차가운 불길과 같은 석각이었다. 몸을 맡기고 있기에는 살짝 서늘한 바람이 이리저리 휘돌 시간이었음에도, 기이하게도 습한 안온함이 몸을 덮고 있었다. 안와를 찌르는 붉은 빛을 피하기 위해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가리자 눈앞에서 물에 젖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따가운 눈을 몇 번 더 깜빡여 간신히 확보한 시계에 그가 드리워 있었다. 지구에 두고 온 봄, 깜깜한 새벽 이슬에도 미끈한 반사광을 일으키는 그 여자가, 여기, 눈앞에, 연약한 지구 출신 영장류의 몸을 차가운 바다의 삭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눗방울처럼 투명하게 반질거리는 바다의 가림막을 두른 채로.
눈으로 보고도 그 광경을 믿지 못한 내가 얼마나 얼떨떨한 신음을 냈는지에 대한 기억은 불분명하다. 그로부터 거리를 두려다가 바닷물에 빠지고 말았는지, 아니면 무턱대고 손을 뻗어 그 비늘 없이 매끈하고 투명한 신형을 어루만지려 들었는지, 그런 기억 역시 희미하다. 중요한 것은 공기 중에서 날카롭게 나를 관통해 지나가는 듯 뾰족하고 불투명한 파동으로 이루어진 그의 '소리'를 처음 들었던 그때의 감촉이다. 두려워하지 않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불분명한 언어 체계 간의 감지로 인하여 주객체가 모두 지워졌을 뿐 나에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르는 너그러운 관용이었을까? 당시의 내가 '감각'한 소리는 그렇게 전해져 들어왔다. 몸을 찌르고 들어와 혈관 곳곳을 누비며 스며들었다. 감전에 가까운 형태로 그렇게 몸에 깊숙이 들어와 박힌 그의 언어는 이제 나에게 물처럼 부드럽고, 공기처럼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달아났다.
보통의 속도로 헤엄쳐서 십오 분이 걸리는 거리를 십 분여 만에 주파했고, 희고 푸른 모래 알갱이들을 꾹꾹 짓누르며 달렸다. 두 다리와 두 팔을 가지고도 물을 거닐고 고래처럼 살아가는 그 여자를 등 뒤에 두고.
왜 달아났을까. 그때의 나는. 그의 소리가 저릿하게 몸에 울려퍼지는 감각을, 내 몸 전체가 그의 언어로 치환되고 있다는 격정적인 변화를 견딜 수 없었나. 쏟아져 내리는 물이 역류하여 절벽을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안 될 것 같았고, 두려웠고, 거대했을까. 이 온몸이 어떤 이상한 음절로 씻겨나가는 것 같았던가. 누구에게나, 같은 사건에 대해서 최초의 충격은 그 이후의 어떤 모방적 사태에 대한 반응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시의 얼얼함을, 알 수 없고 막연한 두려움을, 그때 밟았던 모래와 내가 찢고 달아난 물의 은막이 얼마나 따스했는가를 복기해볼 따름이다. 그 어떤 감각도 진짜의 기억이 될 수는 없다. 진실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만 나는 사실에 근접하게 그를 복기할 뿐이다. 그에 관한 것을, 그를 처음 마주친 한낱 영장류가 감당해야 했던 감동과 사랑과 충격을.
어쨌든 그날은 밤이 다시 찾아왔다. 의심할 바 없이 철저하게 하나가 되는 시간. 그간 나는 밤이면 새까맣게 잠듦으로서 고독과 추위를 이겨내거나, 추위를 감내하고 밤바람을 가르며 바다에 달려들어 오밀조밀한 발광 생물이 발 아래에서 유영하는 장면을 끝없이 들여다 보았다. 셀 수 없는 것을 세었다. 셀 수 없는 것을 센다는 것은 무수히 셀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다시, 끝없이 다시 셀 수 있다. 그러면 밤은 지나간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와 마주쳤다. 이미 그를 겪었다. 세 별이 지고 뜰 때마다 새롭게, 다시, 더 강렬하게 그를 고대했다. 까맣게 감은 눈꺼풀 뒤 의식은 반복적으로 수마의 손길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그렇게 제멋대로 난립하 는 의식은 다시 석각에 마주쳤던 빛 아래의 그에게로 돌아갔다. 돌아가고 또 돌아갔다. 어떻게 보면 이상하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지구에서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나와 단 한 명의 사람만 남는다면 그에 대해 끝없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통 가능하며 불가해한 어떤 존재에 대해 반복해서 복기할 것이다. 그에 대한 생각이 닳고 닳아 남는 몫을 없앨 때까지. 그러나 그는, 그 여자는, 그 빛의 연인처럼 자색 수풀로 엮어 만든 긴 옷 아래로 드러난 흰 발은, 그리고 그 무결한 눈동자는.
나는 다시 달아났다. 이번에는 내 손으로 만든 조잡한 둥지로부터, 숙면으로부터, 망각으로부터.
물 속을 거품처럼 유영하는 아름다운 고래가 있는 그곳으로.
날이 밝았을 때 이미 나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수면을 꿰뚫고 공기를 한 줌 허파에 넣어 다시 입수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을 가르고 올라가 공기를 훔친 뒤 다시 잠수했다. 그날은, 내일 또 이곳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부끄럽게도 달아나고 만 불과 수 시간 전으로 돌아가서 여자와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일을 복기하리라. 세 개의 오시하는 눈이 나를 내려다보는 이 하늘 아래에서, 후회와 닮은 표정으로.
망망대해에서 신장 이 미터가 채 되지 않는 분홍색 여자를 찾는 일이 수월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찾지 않아도 그는 다가왔다. 아니, 타지의 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찾아 헤맸기 때문에 보상처럼 다가와 주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는 왔다. 긴 새벽을 타고. 어스름한 어둠이 켜켜이 걷히고 세 개의 별 중 첫 번째 별이 먼저 떴을 때, 그 첫 빛을 상징하는 듯이 불현듯 푸른 모래알로 이루어진 사장에 드러누워 슬픈 눈으로 쉬고 있던 내 머리 위에 양류楊柳처럼 화려하게 핀 머리카락을 드리우며 나타났다. 나를 찾았구나. 물 냄새와 함께. 다시 피부 구석구석을 찌르며 통각처럼, 어쩌면 간지러운 미풍처럼 혈중에 울려퍼지던 그 소리로부터 나는 다시 도망가지 않았다. 다만 맥이 빠지고 얼이 빠져 순진한 얼굴로 반문했을 뿐이다. 나를 찾았어? 나의 소리도 그에게는 놀랄 만한 것이었을까? 여자는 잠시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다가, 곧 대번에 나의 발성 체계와 언어 구조를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나를 배려해서 나의 방식으로 답해준 것인지, 아니면 그의 종이 가지고 있는 언어 특성 속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가 곧 긍정과 순응과 낙관의 의지이기에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는 나를 찾았다고 했다.
이 별에서, 그와 같은 지성체를 다시 만난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원래 그만 이 별에 왔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 별에 그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나는 너무 작고, 연하고, 무르게 보여서 내가 자신을 찾아내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이 별에 그와 같은 지성체는 없지만 이 생은 너무 외롭고 길다고 여겼기에 친구 몇에게 그의 지혜를 나눠 주었다고 했다. 프로메테우스의 현현이 있다면 그건 나나 내가 떠나온 별의 멍청이들이 아니라 그여야만 할 것 같은 말과 과거였다. 나는 그에게 차마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따금은 내 질기고 과밀된 육신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그보다도 그의 범우주적인 현안과 섬세하고 은밀한 배려 앞에 있을 때면 바닷물에 비친 나를 거듭 들여보는 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그의 빛을 닮아 투명하고 부드러운 눈동자를 볼 때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파도에 떠밀려 뭍으로 뱉어지는 몸과 같은 충동을 느꼈다. 영원할 것 같고 상할 일 없을 것만 같은 단단하고 연약한 믿음이라는 충동을, 어쩌면 이대로 이 별에서 살이 슬어 뼈만 남고 뼈가 삭아 한 줌의 모래 언덕이 되더라도 그 곁에 이 여자가 있다면 그런 정적인 무사무욕의 삶도 괜찮을 것도 같다는 그런 환상에 가까운 믿음이. 환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인류는 본시 공포와 불안이 관측되는 희망의 지름의 세 제곱만큼 커다란 족속이다. 그러한 비겁하고 두려워하는 종족 특성에 따라 나는 지금까지 그에게 묻지 않았다. 그토록 강렬한 섬망 같은 의지를, 믿음이라는 허구를 포착한 적이 있는지. 만에 하나라도 내가 그러한 신기루를 그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지 말이다. 혜안을 가진 그라면 당연히 긍정해줄 것이다. 긍정할 수 없다면 더 부드럽고 진실된 말로 나를 감싸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긍정과 부정이, 낙관과 절망이 지금의 내 그릇에 담기에는 아직 너무나 비대한 크기이다. 나는 이 마음이 이 별에 도사린 거대한 파랑에 부딪치고 쓸려 조금은 작아지기를, 그렇게 반질반질한 구슬 크기가 되면 다시 저울에 올려볼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자는 나의 이름을 듣고 입을 벌려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D■―■■■■.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 동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 것 같았으나 처음부터 발성 체계가 다른 종 간의 교류였기에 그 달싹임이 진짜 부름으로 화하는 일은 없었다. 마음과 배려에서 성대가 생기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과 배려와, 그 무엇보다 화사한 불안으로 인하여 매일 입수해 왔지만 아직 몸에 아가미가 돋지 않은 것처럼. 나도 여자에게 이름을 물었다. 정확히는 이름이 라는 구체적 명사 대신 너를 무엇으로 부르면 되는지, 너의 역사와 존재는 어떤 형상으로 규정되는지 물었다.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만 적확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 같았기에 오랜 고심 끝에 꺼낸 질문이 무색하게도 여자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 웃었다. 그때 훅 피부를 타고 끼치는 어떤 무형의 발음이 있었다. 정확히 그의 역사 속에서 무엇으로 불렸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말간 웃음, 이 차고 푸른 별에 결단코 도래하지 않을 봄날 터지는 꽃망울과 같은 미소의 형상과 내가 어렴풋이 들은 소리를 종합하여 그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A■■■.
어떤 별에서 기원한 은혜와 자비의 신처럼.
처음으로 그를 A, 하고 불렀을 때 그는
싫어.
“뭐라고?”
요즈음은 그 판이 나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거지? 백 년에 한 번이나 나올 법한 불퉁한 눈빛으로 선홍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자가 패드를 톡톡 친다. 의도적으로 힘을 뺀 부드러운 움직임까지 모르는 척할 수야 없는 법이다. 나는 입력을 중단하고 패드에서 손을 완연히 뗀다. 고장나고 으스러져 단지 보관함으로서의 기능만 간신히 하게 된 수면 캡슐 안에 패드를 밀어넣고 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자잘한 질투와 유치한 사랑이 커졌든 아니든 간에 엔은 내게 여전히 지혜와 권능, 성스러운 아름다움의 주신이다. 잠자코 머리를 기대자 그의, 특유의 지구 위 영장류보다 조금 얇고 투명한 피부를 두른 손가락이 무릎을 덮는다.
“판은 물론이고 너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온 우주를 통틀어 가능할까?”
무심코 흘러나온 진심을 나는 다시 곱씹는다. 엔도 내가 그렇게 하기를 기다린다. 아니, 몇 개의 외행성을 지나온 전례와 떠나온 고향별을 돌이켜 봤을 때 그럴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랑으로 인한 고집과는 결이 다른, 나에게 완전한 진실이자 진리이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A, 너를 남기는 일은 너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아름다운 기록이 될 거야.”
부끄러워 깊은 반달 모양처럼 패인 눈동자로 A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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