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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 Silent 1

목소리를 잃은 힐데 이야기

[카힐] Silent

W. 분점주


너는 내 편인 적이 없었지.

너를 사랑한 내가 어리석었나?

"카일."

나는 익숙한 황무지의 중심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러면서 바람 소리가 너무 커, 그런 생각을 하며 중얼거렸던 것 같다. 시선의 끝에는 내 부름의 대상이 있었을 자리가 놓여있었다. 그것은 새카맣게 타다 남은 장작의 재와 닮은 것들이 나뒹굴며 전쟁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이 흔적은 인류에게 더없이 확고한 승전보가 되어줄테다. 내게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깊은 구멍을 내어놓은 채.

바람이 불었다. 내 머리를, 흔적을 훑으면서.

밭게 떨리는 손에는 더이상 힘이랄 것이 들어가질 않았다. 팔꿈치 아래까지 까맣게 타버린 내 손에는 제국에서부터 함께였던 애검이 들려있었다. 그의 것이었을 붉은 피를 끈적하게 흘려보내는 나의 검이.

···아.

나는 결국 자안의 소드마스터가 찾아준 이들을 모두 이 검으로 거두어갔구나. 과거에는 이 검에 스러진 그들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 같은데.

몸이 납덩이라도 된 것처럼 무거웠다.

차라리 이대로 죽기라도 하면 좋았으련만, 세상은 내가 원하는대로 흐른 적이 없었다. 내 옆구리를 반이나 갈라놓은 검은 주인을 잃고 바닥에 뒹구는데, 내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살아남겠지.

말초신경이 다발로 퍼져있는 신체의 끝부분에서부터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더랬다. 그렇다고 여기서 더 흡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내면에 남아있는 인간을 향한 분노는 사그라들지를 않아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참자.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인간은 이제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으니, 엄한 화풀이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카일 ----."

분노를 돌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곱씹었다. 애정을 느끼게 해준 인간들이 잘못된 분노로 눈이 먼 내게 휘말리지 않도록, 그가 알려주었던 성을 포함해서.

"힐데!"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인간의 목소리였다.

"힐데! 힐데!!"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공포와 경악이 서리기도 한….

"아. 아미."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툭, 기억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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