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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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들고 바람과 물이 흐르는

G24 스포일러 / 트레저헌터+멀린

이차 by 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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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8


헌터가 집을 보러 다니고 있어. 멀린은 놀라 되물었다. 집을?

디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마을 외곽에서 혼자 있는 그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그가 혼자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으나 몇 발짝 다가서니 낯선 남자와 함께 있어 잠시 지켜보았다고 했다. 그들은 숲과 마을의 경계에 위치해 인적이 드문 빈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 것과 비슷한 시간이 지난 후 나왔다. 트레저헌터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몇 마디 건네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디바는 트레저헌터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할 만큼 멀어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자신도 이만 돌아가려는 남자를 불러세웠다. 그는 집 매물을 소개해 주는 업자로, 보기에 적은 나이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기력이 쇠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방금까지 상대했던 고객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는지 몹시 지친 기색이었다. 땀이 난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고 있었다.

트레저헌터가 찾아온 건 열흘 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돈을 원하는 만큼 줄 테니 아는 매물을 전부 보여 달라는 요구였다. 넓으면 좋고 방이 많아야 해. 동시에 그가 내건 조건이었다. 아, 물론 내 마음에 들어야 하고. 그럼 출발하자.

지금 바로요?

지금 바로.

남자는 처음에 신이 났다. 원하는 바가 단순하고 통이 큰 고객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의 조건에 맞는 매물이 몇 개 있었으니 근시일에 거래가 이루어지리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첫 번째 집에서 적당히 포장해 넘기려 했던 사소하지만 문제적인 결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혹평하고는 다음 집으로 안내하라며 밖으로 나서는 뒷모습에 기대는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심지어 트레저헌터는 어떤 집들은 꼼꼼히 보지도 않고 발걸음을 돌려 버렸다. 남자가 ‘왜 더 보시지 않고’ 하면 그럴 필요도 없다는 의미를 담은 지적들이 물 흐르듯 쏟아져 나왔다.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끌려다니기를 꼬박 열흘째였다. 그래서 중개를 요청하러 온 다른 사람들은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살이 조금 빠졌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집을 찾는 이유에 대해 말했느냐고 묻자 예상대로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원하는 집만 찾아 드리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 손님이 대답하고 싶지 않아 하면 목적은 자세히 캐묻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그의 이유는 할 수만 있다면 알고 싶다고 그는 토로했다. 그 말을 들은 디바가 생각에 잠기자 남자가 서둘러 말했다.

“아, 그래도. 혹시라도 그분에게 그만두라는 말씀은 말아 주십시오. 저도 거금을 받는 조건으로 응한 것이고……. 사실은 매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매일같이 일당을 두둑이 주고 계십니다.”

디바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멀린은 턱을 만지며 곰곰이 생각하는 중이었다.

트레저헌터와 집. 안 어울리기도 이리 안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집이라 함은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추상적 개념에 빗대어 쓰기도 하지만 트레저헌터는 중개인에게 따로 일당까지 쳐주며 물리적으로 사고파는 집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차라리 그로서는 장작을 베개 삼고 하늘을 이불 삼는다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어디 그가 한 군데에 정착해 무탈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하는 성미던가? 돈을 준대도 그렇게 할 인물은 아닐 것이었다. 허나 그가 집을 사려는 것은 사실이고 나름대로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퍽 거사인데도 제로의 누구에게도 말을 흘리지 않은 것이 더욱 묘한 확신을 들게 했다. 디바도 같은 생각을 했기에 멀린을 찾아왔을 터였다.

디바는 이야기하는 내내 염려스러운 얼굴이었다. 막혀 있던 기억과 인지가 돌아온 날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나 쉽사리 기억 저편으로 묻어 두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트레저헌터 자신으로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디바가 트레저헌터를 예의주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행히 걱정한 만큼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점차 기운을 차리는 듯하던 차에 집을 구한다는 뜬금없는 행적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그의 개인적인 사정과 연관이 없지 않으리라는 직감은 불길함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어쩐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 디바의 솔직한 심경이었고 멀린 역시 동의했다.

트레저헌터는 저녁 식사 전에 돌아왔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세안부터 했다. 그런 다음 하루 수확을 정산하고 총기를 정비한 뒤 식탁 앞에 앉았다. 식사 중에도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멤버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했고 가끔 농담을 섞었다. 그 일련의 과정에 부자연스러운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멀린은 트레저헌터를 주시하느라 숟가락을 문 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트레저헌터는 대개 의연하고 환기가 빠르지만 복잡한 감정이 들 때 요령 좋게 숨기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그마저도 금세 시치미 떼기를 잘해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쉬이 헤아리기 힘들었다. 따라서 멀린으로서는 주의 깊게 관찰하면 이변이 눈에 띄리라 의심치 않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끝내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고 오히려 식사를 마친 뒤 말을 걸어온 건 트레저헌터였다.

“따라와.”

“어?”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 계속 뚫어져라 쳐다봤잖아.”

텐트에 멀린을 들여보낸 트레저헌터는 유리 등잔에 불을 켜고 천막을 쳤다. 온난한 불빛이 작은 공간을 넉넉히 채웠다. 멀린은 발바닥을 맞붙이고 앉은 채 그가 하는 양을 바라봤다. 전등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을 때까지 트레저헌터는 차분한 기색이었다. 마치 멀린이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다 알고서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멀린이 입을 뗐다.

“……너 있잖냐.”

“응.”

“내가 본 건 아니고 들은 건데.”

“응.”

“최근에 네가 뭔가 하고 다닌다고 해서 말이야.”

“응.”

멀린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트레저헌터는 다소 뻔뻔할 정도로 평온하게 멀린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린이 발끈해 소리쳤다.

“너 다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대강은?”

“사람이 심각하게 얘기 좀 하려는데 장난치고 있어!”

“딱히 그럴 생각은 없는데? 잘 듣고 있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멀린이 자신의 머리를 마구 흩뜨렸다.

“아, 몰라. 애초에 돌려 말하는 거 직성에도 안 맞고.”

“그러게 처음부터 편하게 했으면 좋았잖아. 어울리지도 않는 무게를 잡고.”

“시끄러워! ……하여튼, 요새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디바도 걱정했어. 설마 진짜로 거기서 살려고?”

“거주하려는 생각은 아니야. 산다고 해도 내 생활로는 집을 방치하게 될걸.”

“그럼 왜?”

“글쎄…….”

트레저헌터의 시선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일순 다른 곳으로 내려앉았다.

“글쎄? 무슨 대답이 그래? 너 또 혼자 생각하고 이상한 꿍꿍이 숨기고 있는 거 아니지?”

“그게 걱정이셨구나? 혼자 결정한 게 맞긴 한데, 정말 별 거 아니라 얘기 안 한 거야.”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네. 멀린이 눈을 게슴츠레 뜨자 트레저헌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이래도. 못 미덥게 들리겠지만 내 선에서 끝낼 일이라서 그래. 솔직히 말하면 자기만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정말로 다른 마음 없어. 들키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걱정 시킨 것 같지만.”

몸을 기울여 바닥에 손을 짚고 말하는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 썩 편안해 보였다. 트레저헌터는 멀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멀린은 팔짱을 끼고 으음 소리를 냈다. 그의 말대로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았다. 트레저헌터는 자세한 내막은 털어놓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잠깐 궁리한 멀린이 단호하게 내뱉었다. 내일 나를 데리고 가.

트레저헌터는 의외로 순순히 수락했다. 만일 거부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따라나설 심산이었는데 그다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래. 직접 보는 게 낫겠지.” 한 것이다. 그러고는 예상 외의 반응에 벙쪄 있는 멀린의 얼굴 위로 담요를 던져 주며 동이 트는 대로 출발할 예정이니 일찍 자라고 일렀다.

등을 맞대고 잠든 다음날 아침은 구름이 없었다. 멀린이 하품을 하며 천막을 걷어냈을 때 트레저헌터는 이미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이쪽을 돌아본 그는 인사 대신 빵 한 덩이를 던졌다. 잠결에도 날아오는 것을 반사적으로 받아낸 멀린은 또 하품을 하고서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트레저헌터가 제 정수리 부근을 가리켜 보였기 때문에 다른 손으로 뻗친 머리카락을 적당히 눌렀다. 우물거리며 다 먹었을 쯤에는 아침놀이 투명하게 보였다.

디바가 말한 업자는 생각만큼 초췌한 낯이었다. 어제 한껏 시달렸는데 오늘도 이른 시각에 끌려나와 한층 더 피로가 짙어 보였다. 처지가 딱했으나 계약의 지속에는 그의 의지도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었다. 트레저헌터가 멀린을 짧게 소개했고 그들은 긴 말 없이 바로 걸음을 옮겼다.

정오가 될 때까지 트레저헌터를 뒤따라 다니며 멀린이 느낀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트레저헌터가 작정을 단단히 했고 상상보다 훨씬 감각이 매섭다는 것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집안을 휘 둘러보고 일차적으로 감상을 말한다. 나쁘지 않다, 너무 춥다 혹은 덥다, 통풍이 나쁘다, 채광은 좋다, 냄새가 난다, 최악으론 못 써먹겠다(이 말을 하고 나면 곧바로 뒤돌아 나간다) 등. 첫 심사를 통과하면 다음은 방과 가구를 본다. 습기가 차지 않는지부터 시작해 지나치기 쉬운 것까지 세심하게 살핀다. 여기에도 혹독한 평가는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꼼꼼히 뜯어보고 나서야 총평을 하는데 당연하게도 아직까지 합격점을 받은 집은 없다. 큰 흠이 없어도 느낌이 별로라는 이유로 퇴짜를 놓기도 했다. 점점 수척해지는 남자를 보자 트레저헌터를 처음 만났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져 동질감이 든 것이 둘째였다. 마지막으로는 트레저헌터에게 의뢰하는 것과 반대로 그에게 의뢰를 받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을지에 관한 영양가 없는 고민을 잠깐 했다가, 애초 이 녀석과는 금전적으로 엮이지 않는 편이 낫다고 결론지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말하길 오늘은 이 집이 마지막이었다. 개울가에 자리한 그 집은 멀끔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훑어본 트레저헌터가 안으로 들어갔고 남자가 뒤를 따랐다. 멀린은 바로 따라가지 않고 잠시 자리를 지켰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동행했지만 결국 그가 무엇을 위해 이만큼 필사적인 것인지 흐릿했다. 살지도 않을 집을 무엇 하러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까다롭게 찾는단 말인가.

‘자기만족이라고 했었지.’

어젯밤 대화를 돌이켜 보던 멀린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쳤다. 그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 트레저헌터를 찾았고 그제야 어렴풋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째서 그 스스로가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했는지도.

마루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남은 가구가 몇 없어 휑했지만 안락한 공기가 감돌았다. 큰 창문 밖으로 개울이 내다보였고 불그스름한 석양이 비스듬히 비쳐 들어왔다. 한낮이라면 햇볕이 가득 들 터였다. 트레저헌터는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산들거렸다. 개울의 윤슬이 눈부시게 부서지며 흘러가고 있었다.

단절을 떠올렸다. 세상의 입자 하나하나로부터 추방 당해 말라 부서진 이들. 희고 검은 곳은 늘 죽은 것들의 냄새가 났다. 손을 들어 가만히 목을 쥐어 본다. 눈을 감으면 황혼에 눈앞이 붉다. 숨을 쉬는 건 너무나 쉽고 죄스럽다. 자신을 이 쉬운 삶으로 올려보내고 타 버린 이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그는 그 방법을 몰랐다. 어쩌면 그에게는 자격조차 없어서 무엇을 하든 합리화에 불과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범했을지도 모를 가정을 떠올려 보는 것만 해도 그랬다. 그들이 돌아가고 싶어한 것이 이 풍경이 맞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모든 게 하염없이 무겁다.

눈을 뜨자 개울가에 행색이 초라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물고기를 잡으려는 듯 작은 손으로 몇 번이고 물을 움켜냈다. 그러다 질렸는지 이번엔 옆에 피어 있는 들꽃을 꺾었다. 한 손에 가득 찰 만큼 꺾고 나자 시선을 느낀 듯 눈이 마주쳤다. 서서히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모친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른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녀 역시 변변치 않은 차림이었다. 꽃을 꺾던 아이는 그녀에게로 달려가 버렸다. 돌아가는 그들을 멀거니 바라보던 트레저헌터가 남자에게 저들을 아냐고 물었다. 남자는 거주지는 모르겠으나 이 근처에서 종종 보이는 빈민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트레저헌터는 아주 잠깐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로 할게요.”

“예?”

“대신 저 사람들 명의로 해 줘요. 지금 지불할 테니까.”

“예?”

얼마냐는 재촉에 버벅대며 액수를 말하자 그 자리에서 돈을 들려 준 트레저헌터가 아, 하더니 금화 주머니를 하나 더 꺼내 얹었다.

“보수를 좀 해야겠던데, 이걸로 그쪽이 알아서 해 줘요. 알았죠?”

“…….”

“멍하니 뭐해요? 계약하려면 얼른 저 사람 쫓아가야지.”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남자가 허둥지둥 여자의 뒤를 쫓아 사라졌다. 뒤에서 보고 있던 멀린이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진짜 괜찮냐?”

“괜찮아. 나는.”

멈추어 서서 이야기하는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며 트레저헌터는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멀린은 그들과 트레저헌터를 번갈아 보다 대뜸 그의 목에 한 팔을 걸었다. 그 바람에 살짝 기우뚱한 트레저헌터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벌렸지만 멀린이 웃으며 한 말에 곧 표정을 풀었다. 이제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우리도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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