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 베텔기우스
* 고대 시절, 아직 그들이 14인 위원회와 창조국 관리국장이 되기 전. 아카데미아 학창 시절
* 날조가 많음. 헛소리도 많음. 이런 해석도 있구나 하고 봐주세요.
* 하데스 x 로샨(아젬) x 휘틀로다이우스
* https://youtu.be/cbqvxDTLMps?t=56
" 로샨~ 수업 끝? "
" 응, 오늘은 오전 수업만 있어서 오후엔 과제 해야지. "
" 라하브레아 수업이야? 아님 미트론? "
" 미트론, 해양 생물 이데아 조사 보고서 작성이야. "
해가 중천에 뜬 시간, 아카데미아 정문으로 향하면서 휘틀로다이우스가 말을 걸어왔다. 수업 끝이냐, 과제는 뭐냐는 물음에 답해주고 곁을 보니 오늘은 웬일로 하데스가 보이지 않았다. 둘이 같이 다니는 듯싶더니 왜 이번엔 또 혼자인지 궁금해 물으니
" 아- 하데스는 에메롤로스 교수님이 불러서 잠깐 다녀온데 "
" 그 교수 수업을 하데스가 듣던가? "
" 이번에 교양으로 듣는 모양이야. "
" 그래서 휘틀로 너만 온 거구나. "
나는 또 뭐 어디 아픈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그리 생각하며 과제물들을 품에 다시 안아 들고선 걸음을 옮겼다. 하데스는 어련히 오겠지 싶었다. 매일 다니는 루트가 단순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눈'을 갖고 못 찾아오면 그게 바보지. 하데스일까.
" 과제 하면 뭐 할 계획 있어? "
" 딱히? 그냥 바로 집으로 갈 것 같은데 "
" 없으면 놀러 가자- 꽃이 되게 예쁘게 폈어. "
" 둘이서? "
" 그럴까? "
" 하데스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오지 않을까. ... 걔 은근 자기 두고 가면 서운해하잖아. "
하데스를 두고 휘틀로랑 둘이서만 갔을 때 벌어질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전공수업은 둘째치고, 마주치는 내내 말 한마디도 안 할 거는 안 봐도 뻔했고, 평소에도 안 그래도 틱틱대는데 그게 더해질게 뻔했다. 물론 하데스를 골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혹하기도 하는데 최근 시험이나 과제가 몰아치다 보니 그 후폭풍을 감내할 체력은 없었다. 그러니 결론은.
" 그냥 맨날 가는 거기 있다 보면 하데스가 오겠지. 걔 오면 가자. "
" 로샨 오늘따라 친절하네? "
" 내가 뭐. "
" 아니 뭐- 하데스랑 너. 허구한 날 싸우잖아? 가끔 학생들 사이에서 너희가 왜 싸우는지에 대한 토론도 진행하는걸. "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그런 게 토론 의제가 되는 거지?
" 누가 그딴 주제를 토론 주제로 제안한 거야? "
" ---. "
" 내일 에메롤로스님 수업 같이 듣는 놈이네. 가만 안 둬. "
" 저런, 그 친구에게 묵념해줘야겠네. 명계로 가진 않겠지만 가기 직전이 되겠는걸. "
대체 누가 저런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는 거야? 차라리 내기를 하던가, 물론 내기를 했다 하면 내기 했던 애들 하나하나 다 찾아가서 따질 생각이긴 했다. 그렇지만 토론 의제라니. 우리가 그렇게까지 많이 싸웠냐고, 그냥 단순히 서로 지기 싫으니까... 까지 생각하다가 생각을 그만뒀다. 그래 싸우는 게 맞다. 한숨을 짧게 쉬고 앞을 보니 셋이서 매일같이 오는 언덕에 도착했다.
입학식날 셋이서 처음 봤던 자리기도 했고, 사람도 안 오고 조용하다 보니 셋이서 꽤 자주 오다 보니 고정석이 되어버렸다. 도착해서 나무에 대충 등을 기대 앉고선 과제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이번에 내준 과제는 어떤 이데아야? "
" 지느러미가 달린 포유류 형태의 소형 이데아 관찰기록. "
" 그게 뭐야? "
" 몰라, 근데 생긴 거 보면 되게 귀엽던데. 하얗고, 복슬복슬하고, 근데 물에 들어가니까 축축해서 물에 들어간 채로는 만지기 싫어. "
보고서에 한 줄을 추가하며 말했다.
" 나중에 되면 보여달라고 부탁드려볼까~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어떻게 생긴 건지 보고 싶네 "
" 너도 미트론님 수업 듣잖아. 한 번도 안 봤어? "
" 그렇긴 한데 그 수업에 나오는 이데아들은 에테르들이 너무 눈부셔서 말이야. "
" 수업 중에 그거 그만 보랬지. "
" 저절로 보이는걸? 그러니까 입학식 때 로샨 너랑 만났지. "
휘틀로의 말에 질색하는 얼굴을 하며 고갤 돌려 보고서를 마저 작성해나갔다. 하얗다, 복슬복슬하다. 뭔가 거창하게 늘여놓고 있지만 내용을 놓고 보면 저런 내용이 대다수였다. 생존능력이 떨어져 보이니 털색과 비슷한 눈이 많은 지역에 가면 보호색으로 활동하지 않을까. 같은 내용도 적어가며 보고서의 내용을 채워갔다. 그렇게 깐깐한 인물은 아니었으니 한 페이지 정도면 상관없을 테고...
그렇게 거의 다 적어 내려갈 때 즈음,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왔어? "
" 뭐하냐? "
" 과제 하지 그럼 뭘 하겠냐. "
" 지느러미가 달린 포유류 형태의 소형 이데아 관찰기록... 이거 제출일 어제 아니었나? "
" 미트론님한테 사정해서 내일까지로 늘렸어. 내일 내야 해. "
" 하데스 어서 와~ "
그림자의 주인공은 하데스였다. 보자마자 과제 제출일 먼저 지적하는 것을 보며 뚱한 표정으로 있으니 미묘한 얼굴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과제는 제때제때 제출하니 나 같은 경우는 본 적이 없겠지. 속으로 구시렁대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마무리까지 해서 미트론님의 사무실로 보내버리니 하데스가 또 뭐가 꿍한 것인지 팔짱을 끼고선 내려다보고 있었다.
" 왜. 또 왜. "
" 너 에메롤로스 교수 수업 시간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
" 내가 뭐? "
" ... 아니다. "
" 뭐야, 말할 거면 빨리 말해. 에메롤로스님이 뭐라셨는데? "
하데스의 밍기적이는 태도에 왜 저러나 싶다.
평소에는 따박따박 다 말하면서 왜 지금은 꿀 먹은 히포크리프 마냥 말도 안 하고 쳐다보는 건지.
"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
" 아- 너 진짜. "
" 워- 워- 또 싸우려는 거야? "
울컥해서 일어나서 따지려 하니 휘틀로가 말려왔다. 그에 혀를 차며 다시 풀썩 앉으니 하데스의 얼굴이 미묘해지는 것 같아 보였다. 대체 뭔데?
" 둘이 싸우는 건 정말 안 질리나 보네~ "
" 싸운 적 없어. " "싸운 적 없다 "
" 그래그래~ '이번엔' 안 싸웠지. 아무튼... 하데스 너도 갈래? "
" 어디를. "
" 오늘 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휘틀로가 가자더라 "
반응이 미적지근한 건 둘째치고, 놀러 가는 건 좋으니까. 그리 말하며 하데스를 바라보니 팔짱 끼고 있던 자세를 풀더니 심드렁히 한숨을 내쉬면서도 가자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가자 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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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틀로가 말한 꽃밭은 확실히 예뻤다. 여러 가지 색들이 뒤섞인 꽃밭은 바람에 가볍게 살랑이고 있었다. 과제 한다고 시간이 좀 지나서일까 해가 이미 절반쯤 아래로 내려가 노을빛이 비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에 멍하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다가 꽃밭에 풀썩 주저앉았다.
" 야, 꽃잎 날리잖아. "
" 뭐 어때, 예쁘잖아. "
하데스의 투덜임에 휘틀로가 가볍게 대꾸한다.
" 평화롭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아모로트에서 나와본 적이 많이 없네? "
" 아카데미아에서 수업 듣고, 과제하고, 시험을 치고, 연구하고. 할 일이 워낙 많으니까. "
갑자기 생각하니 조금 울적해졌다. 무언갈 배우고, 관찰하고, 창조하는 것 자체는 상관없었지만 너무 아카데미아에만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미묘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두사람을 바라보자 그게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만 이런 건가.
" 그러고 보니, 너희는 졸업하면 뭐할 거야? "
" 글쎄... 딱히 정한 건 없는데, ... 아. 에메롤로스님이 의회로 지원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었어 "
" 로샨은 그럼 의회로 가는 거야? "
" 졸업까지 정해지는 거 없음 그렇지 않을까. 휘틀로 너는? "
" 난 창조물 관리국으로 넣어볼까 해~ 창조물을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
휘틀로가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 하데스 넌? "
" 나도 아마 의회로 갈 거다. 라하브레아님 제안이었으니. "
" 그럼 나 졸업하고서도 너랑 붙어 다니는 거야? "
" 싫냐? "
" 누가 싫대? "
졸업하고서도 저 얼굴을 계속 볼 생각을 하니 지겹네- 같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꽃밭에 그냥 드러누웠다.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니 저녁노을에서 어느새 달이 떠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이 되어있었다. 저 많은 별들이 정말 '우리' 인 걸까. 그렇다면 저 별들은 과거의 '우리들'이 아직 하늘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걸까. 급격히 드는 생각에 멍하니 바라보다 두 사람 쪽을 바라보았다.
" 여기, 우리밖에 없지? "
" 그렇지? "
" 왜, 또 뭘 하려고. "
우리 밖에 없냐는 물음에 확답을 받고 일단 그냥 냅다 가면을 벗었다 내 옆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가면을 벗으니 놀랐는지 두사람이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것을 보며 말했다.
" 왜, 내 맨얼굴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잖아. "
" 아니.... 하..... 로샨 너 가면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잖냐. "
" 아는데, 우리끼리라잖아 뭐 어때. 그리고 하루종일 쓰고 다니니까 불편해. "
" 너 진짜- "
" 워- 워. 진정하고, 로샨 말대로 우리밖에 없으니까. 괜찮잖아- "
휘틀로의 중재에 심드렁하게 한숨을 내뱉고선 눈을 감았다. 옆에 풀썩 하고 두 사람이 눕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떠서 옆을 바라보니 나처럼 가면을 벗고 내 양옆에 누운 두 사람이 있었다. 휘틀로야 원래도 내가 이러면 따라 이러는 편이었는데 평소라면 꿋꿋하게 쓰고 있을 하데스 역시 가면을 벗고선 내 옆에 누워있었다. 웬일이지.
" 네가 웬일이야? "
" 왜, 뭐, 왜. "
" 아니, 맨날 이러면 혼자 꿋꿋하게 가면 쓰고 있었잖아. "
내 물음에 하데스가 말이 없어졌다.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하데스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휘틀로 역시 바라보았다.
" 그러고 보면, 너희 눈은 되게 예쁜 것 같아. "
" 무, 뭐? "" 그런가? "
당황스러워하는 하데스를 뒤로하고 웃으며 말하는 휘틀로를 보며 말했다.
" 별을 보는 것 같아서 "
" 우리 눈이? "
" 응, 휘틀로 너는 제비꽃 같고 하데스는 하늘의 별 같거든. "
내 말에 휘틀로가 눈을 접어 웃는다.
" 로샨 너도 예쁜걸~ 눈도 그렇고, 우리들만 '볼' 수 있는 그 에테르도 말이야. 그치 하데스? "
" 또 헛소리. "
" 왜- 맞잖아? 너도 처음에 보고 예쁘다고 중얼거렸으면서? "
" 하데스 그랬어? "
" 안 그랬어! "
악 소리를 내며 소리치는 모습에 오른쪽 귀를 막았다. 하데스 목청 너무 커.
" 아무튼, 이렇게 셋이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뭔가 평화롭고 좋네. "
" 종종 이렇게 올까? "
" 한번은 수업 땡땡이치고 오자. "
" 수업 땡땡이치면 교수들에게 말한다. "
" 하데스 융통성 없어- "
밤하늘 가득 수놓아진 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기억에 잠깐 몸을 굳히고 생각했다. 하데스와 싸우고 사라지는 나. 하데스의 곁을 떠나는 휘틀로, 혼자 남은 하데스. 단편적인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에 괜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주 가끔, 미래의 일을 스쳐 지나가듯 보고는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걸까. 얘네와 그렇게까지 멀어지는 미래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드는 불안감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있잖아, 우리가-
" 만약에 싸우게 돼서 멀어지더라도 다시 화해할 수 있겠지? "
" 뭐, 언제 나와 같지 않을까? 나는 몰라도- 하데스랑 로샨 너네 둘은 자주 티격태격이니까. "
" 그건 싸운다기보단 로샨 저 녀석이 먼저- "
" 아니 근데 열 번 중 세 번은 하데스 네가 먼저- "
" 이것 봐~ 아무튼, 화해할 수 있지. 우리가 괜히 친구겠어? "
" 그렇...겠지? "
" 그럼 그럼~ "
태클을 걸려는 하데스의 말에 대꾸하다 휘틀로의 말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화해할 수 있지. 괜히 친구겠어. 그의 말에 목덜미를 가만히 매만지고는 웃으며 끄덕였다. 그래 친구니까, 화해할 수 있어. 시간은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할 수 있겠지. 어찌 됐건 나도, 휘틀로도, 하데스도. 서로에게 무른 편이니까. 그러니까 방금 스쳐 지나간 기억은 그저 기우일 거라 믿어.
" ... 내일 수업 쨀까? "
" 오, 난 찬성- "
" 얌마 로샨! 휘틀로다이우스! "
너희랑 오래도록 같이 지내고 싶어.
내가 봤던 그 '기억'이 그저 만약의 일로 치부되길 바라.
결국 다 떠나서 셋 다 흩어지게 되는 미래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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