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景
23.12.31
궁은 사라진 새 황태자를 찾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고귀한 태자마마가 이 엄동설한에 떨고 계실까 염려스러운 탓은 아니었고,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측근의 죄를 물어 괜히 제 목이 날아갈 성싶었던 것이다. 실로 훤한 대낮에 사씨 일가가 수확철의 벼마냥 차례차례 목을 풀썩 베이던 때에 궁인들만큼 까딱했다간 파리 목숨 취급 당할 위치가 또 없었다. 궁인들은 너나 할 것없이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태자는 털끝만치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느냐 하면 아니, 그 얄궂은 어린 애가 너무 이런 일이 익숙했을 뿐이다. 들키지 않도록, 다른 표현으로 섣불리 눈에 띄어 엄한 시비가 걸리지 않도록 볕이 들지 않는 길을 교묘하게 걸어다니는 것과 성벽의 개구멍으로 채 자라지 못한 몸을 욱여넣어 빠져나가는 일쯤 대단한 계책따위 세우지 않아도 가능했다. 그래, 영특한 아이다. 영특하므로 태자는 이런 개구쟁이 짓을 하면 혼이 나는 건 자신보다 그 아랫사람들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설픈 마음으로 가벼운 행동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걸 스승이자 최측근인 명서령은 파악하고 있었다.
반나절을 헛된 걸음에 소모한 명서령은 생각했다. 황궁 내에는 계시지 않는다. 설마 이런 때에 부적절한 일탈을 하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한 탓에 가장 나중으로 미뤄뒀던 개구멍으로 향했다. 눈이 그새 소복히 쌓여 선뜻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땅이 쓸린 자국이 있었다. 정말 몰래 나가고자 했더라면 이런 서툰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치밀하시질 못하고…. 명서령은 쪼그려 앉아 성벽 밑에 난 구멍 너머를 쳐다봤다. 그야말로 ‘개’구멍이었다. 고작 개나 고양이 따위나 넘나들 수 있을 만큼 작아서 제법 마른 편에 속한 명서령도 쉽게 통과하지 못할 크기였다. 백진이 일곱 살적에 여기를 통해 바깥 마실을 나간다는 걸 알았을 때는 크게 경을 쳤었다. 다시는 위험한 단독행동은 하지 않겠다 약조를 받고서야 아이의 시무룩한 손을 잡아줬었다. 매서운 소리와 함께 망나니의 칼처럼 흔들리는 눈보라에 머리카락이 부산스레 흩어졌다. 시끄러운 궁인들의 외침을 눈발이 휘몰아치며 덮었다. 이곳에 그 애를 걱정하는 자는 없다. 그렇다면 그 애에게 안이나 밖이나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해가 넘어갔다.
도성의 동녘은 독특한 지형으로, 항아리 모양으로 굽어진 만이 있어 마치 커다란 호수처럼 바닷가가 자리한다. 불쑥 앞으로 솟은 곶에서 웅대한 일출을 보노라면 누구든 창룡이 낳은 벽령지(地)의 위대함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국의 사신들도 아는 분명한 명소였다. 그러나 도성의 진짜 토박이들만 아는 곳은 따로 있었다. 도성과 해안 사이에 야트막한 산이 있다. 태초에 창룡이 승천하기 전 벗어던진 허물이 산이 되었다 하여 창각산(蒼殼山)이라 불리는 산인데, 정상에 오르기 전 작은 언덕처럼 평탄하게 닦인 평지가 있다. 그곳에 오래 전부터 자리한 작은 누각 월련루(月戀樓)에서 보는 일출이 진국이라는 것이다. 매해 원일(元日)만 되면 그 대단하다는 명소에서 용의 정기를 받고자 각국에서 몰려온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나, 여러 사정으로 아무나 오르지는 못한다. 통제가 오히려 불을 지핀 탓에 기를 수련한다는 도사나 웬 분수 모르는 민간인의 침입으로 이맘때만 되면 늘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근 십 년은 잠잠했다. 십 년하고도 반년 전에 월련루가 화재로 전소되었다. 기록으로만 따진다면 자그마치 일천 년을 고고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유서깊은 성지가 홀라당 타버렸단 소식에 백성들과 많은 학자들이 큰 충격에 빠졌으나, 정작 군주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누각에 불을 지른 건 당시 권력 암투에 휘말려 억울하게 멸문을 당한 어느 충신이 앙심을 품어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분신하며 도성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고 했다. 용이 더러운 피로 젖었으니 벽령의 끝이 머지 않았다, 오염된 이 땅을 저주하겠노라고. 태경제 백무천은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그가 얼마나 억울한지보다 일 년간의 맹전 끝에 차지한 평원 남쪽 봉훈성의 미인들과 노는 일에 더 관심이 깊었다. 충신의 피를 양분 삼아 그때 당시에 태어난 황자만 해도 서넛은 되었다. 다분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나,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쉬쉬하던 분위기 탓에 금방 묻혀버렸다.
백진은 월련루의 역사를 홍문관 직제학 이규형 영감에게 들었다. 당시 백진의 나이가 여덟 살이었다. 뜬금없이 태자소부 명서령을 대동하고 창각산을 오르는 데에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당시의 백진과 명서령은 알 수 없었다. 무릎도 안 아픈지 어린 것들보다 한참이나 앞서 나가던 노관의 고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꼬장꼬장한 노관은 여느 궁 내의 서슬퍼런 피가 흐르는 어른들과는 다른 별난 구석이 있었다. 이 영감은 야트막한 평지에 우뚝 서더니 동녘을 가리키며 말했다. 월련루는 벽령의 시초되는 용의 피, 태천제께서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며 지으셨다고. 주초(柱礎)는 사랑이요, 주(柱)는 절개라. 변함없이 사랑으로 임의 땅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라고. 제법 아름다운 설화인 데 반해 이곳은 시꺼먼 주춧돌과 메마른 터만이 남아 옛 명소라는 이름이 우스울 정도로 살풍경했다. 나름 건국신화와 관련된 성지인데 복건할 생각도 없나, 영감은 그렇게 중얼거렸더랬다. 아직도 탄 자국이 사라지지 않은 수풀이 들쭉날쭉 자라 수평선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다.
백진은 정신없이 뛰어올라 그곳에 다다랐다.
어째서 그리 하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런 사감이 없는 곳이었다. 친모와의 소소한 추억도, 하다 못해 이 영감이 강제로 스승님을 대동해 등산을 자행했을 때도 이렇다 할 즐거움은 없었다. 그때 그 한 번이 끝이었다. 그런데 발이 저절로 이끌렸다. 어머니께 사약을 내린다는 전교에 미친 듯이 뛰어 왕부(王府)로 달려갔다. 아무리 역란이 의심되어 추국을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하루 아침에 멀쩡하던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법이라고 읍소했다. 무려 오늘로써 황태자에 등극하는 귀한 황손의 외침인데도 그 절절함에 반응하는 자는 없었다. 백진은 처음으로 위계와 법도를 무시하고 곧장 정전으로 향했다. 위대한 벽령의 하늘, 용의 피를 뵙습니다, 그런 인사 치레도 없이 곧바로 ‘어머니를 살려주십시오!’라고 외쳤다. 황제는 오만한 눈을 빛내며 납작 엎드린 아이를 내려다봤다. 그뿐이었다. 면류가 부딪히는 소리 외에 어떤 답응도 없었다. 아이의 절망스런 외침이 몇 차례 반복되자 그제서야 한마디 내뱉길, ‘저게 이번 태자인가’ 하였다. 그리고 손짓 한 번. 무관이 태자를 바깥으로 모셨다. 끝이었다. 황태자고 뭐고, 황제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던질 수 있을 만큼의 가진 패가 없었다. 백진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무력한 자신에게 치가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스승이라면 달랐을까? 스승이라면 현명하게 제 어미를 살릴 방책을 도모했을까? 다시 왕부로 돌아갔을 때는 하필 친모가 그릇을 들고 있었다. 기가 막힌 순간이었다.
흔한 예시가 있었다. 어미의 복수를 해달라든가, 어미가 없어도 천세를 누리시라던가, 애수에 찬 우아하고 격정적인 단말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통속극을 기대했을 관료의 눈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사미인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응시했다. 슬픔도, 원망도, 분노도, 그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담담한 얼굴로 한동안 쳐다봤다. 영겁같은 눈맞춤이었다. 백진이 무어라 말하려 입을 떼려고 할 때, 사미인은 일순… 조소했다. 피식, 허탈하게 내뱉은 그 이의 웃음소리는 백진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단 한 번도 웃은 적 없던 어머니였다. 한 줌 애정을 허락한 적도 없이 늘 타인을 보듯 바라보던 여인이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의미도 이유도 알지 못했으나 그건 분명한 비수였다. 비수보다 더 큰 말뚝이었다. 거리끼지도 않고 단숨에 사약을 들이마시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백진은 도망쳤다. 왜? 어째서? 의문이 겹겹이 쌓여 가슴을 짓눌렀다. 의중을 알 길이 만무했다. 대신이라는 듯 세상 모든 차가운 감정들만이 몰려와 여린 심장을 압박했다. 얼음으로 가득한 호수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눈물이 눈보라처럼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금실로 용을 수놓은 절일 기념 의복의 소매가 나뭇가지에 걸려 튿어졌다. 뺨에 붉은 실금이 생기고 비단신은 눈과 엉겨 질척해진 진흙에 절어 엉망이 됐다. 뜀박질을 멈출 수 없었다.
해가 지면서 점점 심해지던 눈발 탓에 전소된 터고 뭐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이 날씨가 지속된다면 올해의 첫 일출 구경은 고사하고 도성 내의 여러 사람이 꿉꿉한 먹구름 밑에서 비질이나 해야할 터였다. 달리 보자면… 열 살 난 애가 비단신 하나 신고 뛰어다니기에는 한 시진도 버티지 못할 날씨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진은 월련루 터에 당도하자마자 기어이 눈밭에 엎어졌다. 지나친 격정에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바닥에 주먹을 내리쳐도 소복히 쌓인 눈 탓에 파열음조차 나지 않았다. 괴괴한 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듯이 집어삼키는 천지가 무정하고 비정하여 백진은 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마치 죽기 직전의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눈물이 쉴 새없이 흘러 언 채로 떨어졌다. 사랑으로 빚었다는 누각도 없고, 아름다운 동녘 해오름도 없는 빈 터에 오로지 자신만이 설움을 터뜨리며 자리했다. 백진은 생각했다. 아무도 없다. 힘이 없다. 이제 겨우 살고자 할 이유를 찾게 되나 했더니 바로 이런 꼴이다. 겨우 하나 지켜야 할 이도 못 지켜서는 뭐가 태자인가. 뭐가 천자냐고! 아무런 유지도 이어받지 못하고 그저 덜렁 세상에 남겨졌으니 발 붙일 곳이 없다. 나를 두고… 나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을 하고서 시원스레 가버린 그 사람에게 무슨 마음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다. 하늘이 백진을 낳았다면 어찌 이리 생이 고통스럽단 말인가. 백진은 격통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가늠했다. 일보 전진하면 백보를 후퇴하게 하는 시련만이 앞으로 계속 된다면, 나는 이 땅에 쓸모없다. 천지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차가운 세계에서 당당히 살아갈 자신이 없다….
“태자마마!”
흐느끼던 백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갑작스런 호명이나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번뜩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니 허연 인영이 저만치에서 눈보라와 함께 흔들렸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를 뚫는 청명한 외침이 귓가까지 닿았다. 부얘진 시야에 맺힌 흰 그림자가 점점 커졌다. 인영은 급한 일은 없다는 듯 고고하고 우아하게 다가와서 백진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서릿발만큼이나 날카로운 그의 눈이 백진을 응시했다. 백진으로서는 스승의 깊은 눈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어떻게 찾아오신 걸까. 시대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라더니 과연 대단하시다. 혼을 내시겠지. 식솔들이 어떻게 되건 말건 뛰쳐나온 나의 어리석음을 다그치시겠지. 실망하셨겠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무서우리만치 고요한 눈이 이 눈밭보다 차갑지 않았다. 명서령은 엉망으로 불어터진 백진의 뺨을 느리게 매만졌다. 얼음장 같은 손이었다. 소매를 바깥으로 한 차례 펄럭이고, 백진을 자신의 품에 밀어넣었다. 백진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눈보라를 헤치고 온 스승의 몸도 무척이나 식어있었다. 얼기 직전의 두 육신이 맞붙어봤자 온기가 생길 일은 없다. 그런데도 명서령은 이제 제 품에 꽉 차기 시작한 소년의 몸을 무슨 대단히 귀한 패물이라도 되는 양 깊고 깊게 끌어안았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대던 게 누구였냐는 듯 백진은 순식간에 말을 잃었다.
“몸이 차가우십니다.”
명서령은 백진의 등을 쓸어내렸다.
“돌아가시지요.”
“저는…”
“돌아가자.”
“…….”
“돌아가자, 진아.”
백진의 서리 맺힌 속눈썹 새로 다시금 눈물이 새어나왔다. 백진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멈추고 싶어도 몸이 얼어버린 탓인지 무엇이든 제 뜻대로 되질 않았다. 자신을 품에 안아들고 일어서는 스승을 마주 안아주지도 못했다. 백진은 별안간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때, 직제학 영감과 스승님은 동녘의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일출은커녕 햇빛 한 조각도 보이지 않던 하늘이었다. 그런데 둘은 약조라도 한 듯이 어딘가를 바라봤다. 스승은 그때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나. 키가 한 자나 모자라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나. 고작 한 자인데. 백진은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스승님의 생신 때 드리고자 했던 선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존경을 곱씹었던 기억. 그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든 보은하고자 했던 마음을 감히 잊고 있었다. 이 몸뚱이의 편린을 베어내 절망으로 가득 채운다 하더라도 스승이 나를 ‘천자’라고 불러주었으니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었다고… 어린 치기에 짓눌려 잡아준 손을 놓치고 있던 건 나였다고. 백진은 스스로가 야속했다. 시퍼렇게 질려 굳어버린 손을 들어 명서령의 목을 끌어안았다. 비로소 어린 애같은 울음이 흘렀다. 명서령은 요동치는 광설의 굉음이 거슬리지 않았다. 지근거리의 아이 울음소리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내었던 발자국을 그대로 되밟으며 명서령은 환궁했다. 그날 태자의 실종으로 문책을 당하는 관료는 없었다. 태자가 심한 고뿔에 들어 몇날 며칠을 고생했다는 소식만이 간간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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