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Letter

마지막 전투 하루 전의 문장.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유서를 미리 써두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써보려고 해요. 이런 거 쓰는 게 처음이라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상관없겠죠. 형식보다 오래 산다는 그 미신이 더 중요해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발견했다면 부디 찢어 폐기해 주세요. 그게 아니라면 프로페타의 사람에게 전해주길 부탁할게요.


편지가 온전히 잘 전해졌다면 내 물건들도 있다는 말이겠죠. 녹색의 보석이 박힌 펜던트는 벨리우스 가의 가주에게, 목에 걸린 은 팬던트는 카이데론에게,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리스테어 가에 ‘에스타스 디아파나’ 가 보낸다고 남겨주세요. 그럼 찾으러 올 테니까. 반지는 그대로 남겨주세요. 나는 마지막까지 그의 슬리데린일 예정이라서요.

카이, 당신이 조금씩 안정되는걸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온전하게 안정을 찾고 행복해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게 되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요. 내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해줄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러기 위해 절대로 떠나지도, 변하지도 않을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모습이 다르더라도 당신을 계속해서 지켜볼게요. 걱정되어서 못 떠나겠거든요. 그러니 내가 계속 있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행을 떠나도 좋고, 그저 쉬어도 좋고요. 다만, 당신이 나를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내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오래 잠겨있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디 당신을, 카이의 행복을 위해 살아요. 내게 남은 모든 행운을 카이에게 선물할 테니.

엘리엇, 당신의 뱀 하나가 죽어서, 그리고 당신의 계획을 망치게 되어서 미안해요. 어떤 계획인지 궁금하고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깝네요. 아, 당신의 긴 머리 스타일도 다시 못 봐서 아쉽고요. 아닌 척하지만 정 많은 당신이 얼마나 슬퍼할지 감히 예상하지 못하지만…. 부디 너무 큰 충격이 아니길 바라요. 그래도 당신 앞에서 죽은 게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혹시라도 내가 당신 앞에서 죽었다면 그건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나, 살려고 최선을 다 하긴 했죠? 당신이 애원한 거 들어주고 싶었거든요. 부디 내가 없더라도 당신의 계획이 성공하기를 바랄게요. 모든 게 다 이뤄지고 나면 내 무덤 앞에 얼굴 한 번 비춰줘요. 궁금하단 말이야.

리어, 여기에서야 말하지만, 난 당신을 파트너라고 멋대로 생각했었답니다. 우리는 정말 닮았잖아요. 원하는 걸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득바득 올라가 빛내는 모습이. 나는 고상한 가면을 뒤집어썼고, 당신은 덜 썼다는 게 차이점이겠죠. 시작점이 같지 않은 건 밀어두고요. 당신에게 장담했던 대로 당신 뒤에 디아파나를 세워둘 수 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해준 게 있으니, 너무 섭섭해하진 말아줘요. 나름대로 나도 열심히 한 결과랍니다. 내 길은 여기서 끊겼지만, 당신의 길은 더 남아있을 테니 부디 가장 멀리 나아가 영광을 차지하길 바랄게요.

나디아, 나의 친구, 나의 소울메이트.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죠? 맞아도 괜찮아요, 그럼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슬퍼질 테니까. 당신은 기뻐하는 얼굴이 제일 잘 어울리거든요. 이제야 말하지만 당신이 발그레해져서 웃는 게 정말 좋아서, 어릴 때 당신 옆에 달라붙어서 있었답니다. 나디아, 당신에게 나를 맡길게요. 당신이기에 맡길 수 있어요. 대신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디아파나 가에 나의 옛 지팡이를 보관하고 있어요. 부디 함께 묻어주면 고맙겠어요. 내 오래된 파트너와 함께 잠들고 싶거든요. 고맙고 미안해요, 잘 부탁해요.

오레스테, 당신과 나는 친구가 맞나요? 모르겠고 확신이 들지 않지만… 그래도 내 멋대로 친구라고 적을래요. 싫거든 미리 말해줘요, 그래야 이 글도 수정하지. 불만 같은 건 안 받아요. 잠적 탄 그 일로 인해서 아직도 당신이 밉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해서 즐거웠던 시간도 있으니까요. 당신이 나를, 디아파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족해요. 부디 당신이 바라던 자유 찾았기를. 자유로운 삶을 살아요, 원하는 대로.

세리안, 당신이 보는 하늘은 어떤가요?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말해줬던 것처럼 말이죠. 부디 아무리 바쁜 날이더라도 하늘을 보고 숨을 내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하늘 위를 유영하며 다닐 테니 어쩌면 당신이 보는 하늘을 내가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르죠. 뱀 모두가 걱정되는 와중, 신기하게도 당신은 그리 걱정되지 않아요. 아무리 슬프더라도 딛고 일어나 나아갈 거라 믿거든요. 내게 쉼을 말해줘서 그런 걸까요? 뭐어… 아무튼. 가끔 심심하면 내 무덤에 와서 근황이나 들려줘요, 당신은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모두에게, 고마웠어요. 가식 없는 진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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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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