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 대충 1차 엔딩 라온파트 구상했던 거
인피니토/라온
그토록 강했던 너는 한 순간에 재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일주일 전 너에게 언성을 높인 일이 후회된다. 너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3년의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내 꿈이 짓밟힌 게 서러워서, 사랑에 고난이 찾아온 게 화나서, 그래서 너에게 투정을 부리고 말았다. 여전히 난 나약한 사람이다. 너가 죽음을 맞이하고, 나는 도망치려 한다. 더 이상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싶지 않다. 이 일에 온전히 손을 떼버리고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소시민이 되어버리려고 한다.
“정말 그만두실 겁니까?”
“응. 미안.”
난 작은 탁자를 손으로 쓱 쓸어보았다. 우리가 둘러앉아 신문을 뒤적거리거나 건배를 하곤 했던 그 탁자다. 카르네가 쿵쿵거리며 내게 바싹 다가왔다.
“그럼 수장님의 죽음을 이리 헛되게 만들겁니까?”
“의미있는 죽음이란 게 있어?”
카르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 샛노란 홍채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분은 대체 무얼 위해…!”
“죽으면 다 끝이야. 소용없어. 칼로가 죽은 거? 당연히 안타깝지. 하지만 결국… 그게 무언가 변화를 가져왔어? 아니지. 그냥, 재가 되어버렸을 뿐이야.”
나는 일부러 그에게 쌀쌀맞게 답을 하였다. 이것은 내 진심이 아니다.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 그런 거 개나 줘버리라지.”
“당신은 지금 카이얀을 옹호하려 하는 겁니까?”
“아니, 그 놈이 한 짓거리들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어. 다만….”
난 카르네를 뒤로 하고 행거에 걸쳐진 내 겉옷을 집어들었다. 오늘따라 색이 바래보인다.
“대체 무엇 때문에 대의를 위해 희생을 해야하지? 그런 의문이 들었을 뿐이야. 칼로를 보니까 아차, 싶더라고. 걔의 동생이라 했던가, 무너지려 그러더라고. 그래, 내가 죽어버리면 내 아내는 누가 챙겨? 내가 이뤄낸 민주주의에서 살아갈 소시민들이 그걸 대신해주나? 아니, 절대 아니지.”
문 손잡이가 어둠 속에서 번뜩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쇠로 된 손잡이가 차갑다.
“너도 그냥 손 떼. 넌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애잖아? 꼭 우리가 아니어도 힘 써주는 사람은 잔뜩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한테 맡기고 새로운 길을 찾아. 혁명에 목숨 바치지 말란 뜻이야. 그럴만한 가치가 없으니까.”
“유라온!”
카르네가 힘을 주어 내 이름을 불렀고, 난 그를 돌아보았다.
“다… 당신은 제가 왜 지금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존중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들에게 구원받은 그 날부터… 전 혁명을 위해 몸을 바치려고 각오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변해버리면, 전 대체 무엇이 되냔 말입니까? 제가 동경하던 어른의 모습은 어디갔냐는 말입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야, 카르네. 넌 지금 네 인생을 살고 있지 않잖아. 그리고 나는,”
문을 열어젖히자 세찬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안타깝게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주욱 어른이 아니야.”
어른이라. 그 이름에 걸맞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나 역시, 잃는 것이 두려워 대의를 등지고 도망치는 어린애다.
“유라온, 당신은 겁쟁이야.”
난 답을 하지 않고 그를 등졌다. 자, 카르네. 넌 실망을 했겠지. 허무하게 죽어버린 칼로에게.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선 내게. 그러니까, 너가 동경하던 것들이 전부 무너졌으니까. 너도 실망 때문이라도, 배신감 때문이라도 뭐가 되었던 이 일에 혐오감을 느끼고 이곳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아.
내가 틀렸다. 신문에 대문짝만한 게 실린 그 얼굴은, 있는대로 반항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앳된 청년은 내가 아는 이였다. 오히려 내 행동은 그에게 동기를 주고 말았다. 난 그대로 신문을 구겨버렸다. 손에 구겨진 신문을 꼭 쥔 채 입술을 앙 깨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그리 모질게 말해도 왜 알아듣지를 못 해. 왜.
“유라온, 나 출근한다?”
난 구겨버린 신문을 식탁에 던져버리고 현관에 서 신발끈을 묶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몸 조심하고, 요즘 세상이 좀 흉흉하니까… 아니, 데려다줄까?”
“됐네요, 내가 애냐? 바로 코 앞인데… 그리고 네 말대로 조금이라도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바로 도망가니까ㅡ”
난 그녀를 뒤에서 세게 끌어안았다. 네블리는 잠시 몸을 움찔하더니 내 팔에 머리를 들이밀고 속삭였다.
“요즘 좀 불안해보인다, 그치. 또 악몽을 꿔?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래. 뉴스를 보고 있자면 화나기도 하고.”
“…뭐, 그런 간단한 이유라면 됐고…. 집 보고 있어.”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텐데.”
“또 그 소리. 의사가 너 적어도 한 달은 몸 쓰지 말라 그랬잖아. 우리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집착해?”
“글쎄,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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