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조각글

[미완] 사귈까말까사귈까말까 쓰기 귀찮다, 던져!!

현대에유 카겔

삐리리리리리. 삐리리리리리.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진다. 칼로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제 휴대전화를 찾으려 손을 더듬거렸다. 그러다 찹, 하고 무언가 말랑하면서도 묵직하고 단단한 것이 손에 닿는 게 느껴졌다. 칼로는 우리 집에 이런 물건이 있었나 싶어 다른 한 손으로 눈을 비비고는 가자미마냥 게슴츠레 떴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어떠한 물건이 아닌, 아름답게 생긴 장발의 한 청년이 웃옷을 입지 않은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칼로의 손은, 정확히 그 청년의 가슴팍에 올려져 있었다.

“어?”

칼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뒤로 나자빠져 버렸다. 충격 탓에 잠에서 어느정도 깬 그의 머릿속에 어제의 일이 스쳐지나갔다. 무어라 찡얼거리는 자신, 다음 순간, 그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은 채 위로 엎어지는 자신.

“어????”

알람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형, 왜 벽에다 머리를 박고 있는 거에요.”

“게일, 난 정말 구제불능이야. 쓰레기라고.”

“아니아니,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날 감싸주려 하지 않아도 돼….”

칼로는 표정이 잔뜩 굳어진 채 반복하여 쾅, 쾅, 머리를 벽에다 박았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그는 이 게일이라는 청년하게 관심이 있었다. 아주 옛날부터 몰래 그를 좋아해왔다. 다만 그가 마음을 전해오면 게일이 어찌 반응할 지 두려웠기에 꽁꽁 숨겨버리고 친한 형동생 관계로 남았다. 게일을 상대로 음흉한 생각 한 번 안 해봤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술에 취하자마자 일을 저지르다니. 정말이지, 저질이었다. 게일이 여전히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칼로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진짜라니까요?”

“그럼 너는 왜 웃옷을 벗고 있었지? 난 왜 겨우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었던 거냐고.”

“저 원래 잘 때는 위에 안 입거든요….”

“난 뭔데.”

“어제 비에 폭삭 젖으셨었잖아요. 근데 죽어도 제 옷은 안 빌리겠다 하셔서 건조기로 마를 때까지 그 채로 이불을 두르고 계셨는데… 그러다가 잠에 들어버리셨고…. 아무리 불러도 안 일어나시길래요.”

“…정말?”

“네, 정말.”

“내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거지?”

“네. 정말 글자 그대로 잠만 잤어요. 애초에….”

게일이 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사내 둘이서 그런 짓을 할…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요? 대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시길래….”

칼로는 몸을 움찔하였다. 그래, 그럴 사이는 아니지.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단 말이지. 부쩍 가까워진 탓에 혼자 착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 그저 같은 학교를 졸업한 형동생 하는 사이일 뿐이다. 이 상황 자체를 예민하게 받아들인 자신이 잘못 된 것이다. 칼로는 조금 침울해졌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수련회에서 남자애들끼리 한 이불을 덮고 잔 일도 있었다. 와중에 덥다며 팬티 한 장만 덜렁 입고 잔 녀석도 있었고. 그래, 이 일이 그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단지 칼로 그가 지극히 예민했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네. …오해할까 봐 덧붙이는데, 딱, 딱히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고…. 으하핫… 너, 너가 예쁘장하게 생겨서 순간 착각했네! 하 참, 술이 덜 깼나….”

추하다. 이렇게까지 저급하고 추할 수는 없다. 칼로는 얼굴이 훅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차라리 할 수 있는 한 빨리 이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게일, 어젯밤에 신세진 거 미안하고, 그럼 난 가볼게.”

“앗 네. 안녕히 가세요.”

게일이 방긋 웃으며 칼로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칼로가 문을 닫고 나가자 게일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전혀.. 전혀 기억을 못하는 거야? 나는 아직도…”

게일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물론 앞서 칼로가 생각한,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다른 일이 있었을 뿐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전 날 밤, 무언가 울적한 일이라도 있는지 칼로가 게일에게 전화를 해 포차로 불러냈었다. 게일이 도착했을 때 이미 그는 만취 직전이었다.

“아, 게일 왔구나.”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게일은 어서 앉으라며 그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 게일이 저 앞에 앉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칼로는 몽롱한 채 계속하여 맥주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가 두 잔 째 들이켰을 때, 게일이 칼로의 손목을 붙잡으며 다시 한 번 물었다.

“형, 왜 그렇게 마셨어요.”

“슬퍼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아무 일도.”

칼로는 잔을 내려놓더니 턱을 괴고 게일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이죽, 웃는 것이었다.

“진짜 예쁘게 생겼네….”

“아, 형…!”

게일이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제가 그런 말 하지 말라 했죠. 다른 사람한테 그러면 그거 희롱이라고요. 저야 상관 없으니까 받아주는 건데….”

“너말고는 이런 얘기 안 하는데?”

게일의 표정이 풀어진다. 그는 칼로가 한 말을 곱씹으며 무슨 뜻인지 잠시 고민하였다. 그러나 이내, 이 형은 원래 나한테 이렇게 장난을 자주 치지, 하고 결론을 내렸다. 게일은 제 몫을 들어올려 한 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제 선배를 바라보았다.

“사람 앉혀놓고 아무 얘기도 안 할 거에요?”

“아, 내가 널 불러낸 건….”

칼로는 말을 하려다 입을 앙 다물었다. 그럴 듯하게 내세울 이유가 없었다. 그저, 너무 보고 싶었던 탓이었다. 칼로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한 번 잔을 기울였다. 게일이 오고 벌써 세 잔 째. 그러더니 이제야 말문이 트였는지 직장 상사 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고리타분하고 꽉 막혔는데 자신이 열린 줄 알아서 열받는다 어쩌구 저쩌구. 게일은 저가 할 수 있는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그의 말에 맞장구 쳐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1시 쯤 되었을까. 칼로의 상태가 영 심상치 않아 보였던 게일은 포차에서 그를 끌고 나왔다.

“집에 혼자 갈 수 있겠어요?”

“아니.”

칼로가 바보같이 실실 웃으며 답했다. 게일은 한숨을 쉬더니 그의 팔을 잡았다. 칼로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물론 게일은 그가 술에 취해 그런 것으로만 알았을 테다. 5분 쯤 걸었을까.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예고 없던 비 탓에, 둘은 잔뜩 젖고 말았다. 게일은 칼로의 팔목을 붙잡고 후다닥 뛰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는 칼로를 문 앞에 세워두고 편의점 문을 밀어 들어갔다. 게일은 숙취해소제 하나와 투명색 싸구려 우산 둘을 사들고 나와 칼로에게 내밀었다. 칼로는 멍한 표정으로 편의점 문 앞에 쭈그려 앉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형, 일단 이것 좀 마시고요…. …형. 이대로 대중교통 탈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힘들 거 같은데. 30분 거리를 걸어가야 하나.”

“비 맞으면서요? 아무리 우산이 있다고 해도 30분이면….”

“이미 다 젖었으니 딱히 상관은 없지.”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게일은 비에 잔뜩 젖은 칼로의 새하얀 셔츠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 집, 근처잖아요. 건조기도 있으니까… 옷 말리고 가실래요?”

“그럴까.”

칼로는 헤실, 웃으며 게일을 올려다보았다. 게일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칼로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둘은 게일의 집에서 자게 된 것이었다. 음? 아직 설명이 부족한 거 아니냐고? 조금만 참아봐라. 다시 현재로 돌아가야 하니까.

게일은 새빨개진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후다닥 들어갔다. 그러곤 물을 세게 틀어 정신없이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열정적인 세수가 끝나고 그가 고개를 들자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럼 어제 그 말은 없던 게 되는 건가….”

게일은 시무룩해져 방 안을 비척비척 걸어다니다가 외출을 위해 옷을 챙겨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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