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학이 돌봐주는 청명 어르신
*이전에 꿈으로 꾼 썰을 기반으로 하는 단편 글입니다.
*항주마화~천우맹 수련 사이의 시점을 기준으로 합니다. 111n화 전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작과 설정 및 흐름이 다른 부분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그냥 아이 돌보는 청명이 보고싶엇읍니다.
*글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어색함이 많습니다…. 오타, 맞춤법, 어색한 문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타는 매번 확인할 때마다 검수를 거치는 편입니다. (수정이 잦습니다.)
웬 산적같이 생김새의 우락부락한 이들이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럿이 모인 곳이라기엔 묘할 만큼 조용했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일 하나 없이 그저 자그마한 무언가를 소중하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 치곤 제법 성이 나 있었다.
“저리 비켜봐요…! 덩치도 큰 사람들이 애 앞에 있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하려고요…!”
당소소가 한껏 열이 오른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표정이 곧장 말해주고 있었다. 저 한심하고 철없는 사형들을 어찌 해야하나. 머쓱해하는 모습들을 보이며 한 무리가 서서히 흩어졌다. 그들이 모여있던 곳에는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작은 젖먹이 아이가 하나, 포근한 포대기 안에서 잠들어있었다.
참혹했던 항주에서의 일이 끝나고, 떠났던 이들이 살아남은 둘을 각각 등에 업거나 품에 안고서 화산으로 돌아왔다. 약간의 사건이 있었지만 그 점에 대해선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충분할 만큼 혼쭐이 났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이의 어미인 추영은 화산 장문인 현종과의 대화를 통해 화산에서 숙수로서 일하며, 정당하게 삯을 받아 다시금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문제는 있다더라. 그것은 바로 육아에 관한 일이었다.
한참 어미의 품이 필요할 시점일텐데, 아이를 업고 일하는 것에는 큰 부담이 간다. 특히나 추영이 일하는 곳은 불과 날붙이들이 존재하는 주방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작은 실수가 아이에게 큰 화가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아이는 무척이나 무르고 약했다. 아직은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으니까. 그 탓에 아직 젖먹이인 학이를 그나마 손이 비는 이들이 돌아가며 돌보아주기로 한 것이다. 갈 곳을 잃은 자신과 아이를 거두어주었을 뿐 아니라, 치료해주고, 삯을 받을 수 있는 일거리를 주었으며, 자신이 아이를 돌보지 못할 때 잠시라도 봐주겠다 배려해준 것까지 모든 일들이 너무나 분에 넘치도록 받기만 한 것 같아 참으로 면목이 없었지만.
그러나 추영은 금새 그러한 면목이 이어질 새도 없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장원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당가와 녹림, 남궁세가를 포함한 맹도들이 격렬한 수련으로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였으니까. 그 몰골들이 하나같이 목내이와 같기도하고, 여기저기 난리가 나면서 혼돈의 도가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자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받는 삯이 정당하다 여겨진 것이다. 아무튼,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숙수들은 물론이거니와 제자들은 제정신이 비어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추영 또한 이러한 천우맹의… 정확히는 화산…채와 같은 분위기에 적응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그들 중에서 제일 손이 비는 것은 화산의 장로와 문주들이었으나 그들의 손을 빌릴수는 없는 노릇. 남은 것은 화산의 운자배 제자들 뿐이었던지라 결국은 그들이 돌보기로 했다. 한동안은 원활하게 적응이 되어갈까 싶었으나, 아이가 낯을 심하게 가리는 탓에 운자배 제자들은 크게 애를 먹었다. 제자 한 명이 아이를 돌보는 족족 잠에서 깨어났다 싶으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추영이 일을 하다가도 곧장 돌아와 다시 진정시키고 돌아가야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일이 오히려 바쁜 일손이 늘어나게 된 셈이다.
이에 추영은 영 얌전히 손을 타주지 않는 아이 탓에 죄송한 마음으로 몸 둘 바를 몰랐고, 제자들도 추영이 마음편히 일할 수 있도록 아이를 잘 돌봐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했다. 그리고 남은 걱정은 또 있었다. 추영은 제 옆으로 잔뜩 모여든 화산의 제자들을 긴장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갓난아이 아닙니까, 갓난아이! 아이고, 귀여워라. 참 잘도 잡니다.”
“우리에게도 이만큼 작았던 시절이 있었겠지?”
“이만큼 작았던 때라면 너무 어려서 기억도 안 납니다.”
“쉿! 애가 깨면 어떻게 하려고요!”
“헉! 아니, 허업……. 소, 손가락을 잡았어…! 학이가 손가락을 잡았습니다, 사형…!”
“진정해라, 걸아. 그러다 깨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아잇,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젭니까?”
“지금도 충분히 잘 자고 있지 않습니까. 나름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사형.”
“…어휴. 제가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에도 이렇게 얌전하게 따라주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아이가 아직 많이 어리잖아요. 벌써부터 엄마 곁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좋지 않을 거예요. 어느쪽에게도요.”
“그러게요… 아직 그늘 밑에 있을 동안에는 제가 지켜줘야 하는데, 제가 똑부러지지 못해서.”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이미 충분히 잘 하고 계시잖습니까!”
“쉿! 이놈아, 쉿!”
“쉿!”
“저놈이 기어코…!”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기분이 고양됨에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만 조걸의 입을 막으려던 윤종은 멈칫하고 말았다. 윤종의 손바닥이 펼쳐져 조걸의 입에 붙기도 전에 아이가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추영은 급하게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이며 울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고, 동시에 조걸의 정수리 위로 혹이 두어 개는 자라났다.
오늘은 청자배 제자들 중 하나가 아이를 돌봐야만 하는 날이다. 이 사실만 놓고 보아도 충분히 걱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보더라도 갓난아이를 처음보는 것처럼 신기하다는 눈빛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자니 그러했다. 백자배도 그렇지만, 청자배 제자들은 화산이 도문일 뿐 아니라 나이도 나이인지라 혼인을 하거나 아이를 가진 제자들이 없어 아이를 돌보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나마 다방면으로 현명하고 유능한 당소소가 가장 적임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나 꼭 아이를 보고싶다는 간절함에 화산의 제자들이 지금은 비어있던 숙수들의 처소에 들어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면 처소 안에 있던 이들 모두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조걸 사형 이 인간은…….”
“걸아. 너는 먼저 나가라.”
“……알겠…습니다.”
척 보기에도 축 처진 어깨를 한 조걸이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조걸은 한 번 더 비명을 내지르다 제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큰 소리에 놀란 아이가 또 다시 울기 시작했고, 제 사형제들의 차게 식은 눈빛을 마주한 조걸은 억울하다는 듯 입구에 떡하니 서 있던 이를 향해 삐쭉 눈꼬리를 세우며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눈꼬리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왜냐하면, 그 입구에 서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청명이었으니까.
“소소는 그렇다치고, 이 인간들은 왜 안 오는 건가 싶어서 와 봤더니 아주…. 쉬는 시간 좀 주니까 아주 그냥 세월아 네월아 흘러서 백 년 채우고 우화등선해서 천 년 만 년 쉬지 그래? 수련이 장난이야? 아직 힘이 덜 빠졌지? 당장 안 나가?”
“그, 아니…! 나, 나가려고 했다! 나가려고!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십시오…!”
“추 부인, 오늘 점심 최고로 맛있었습니다…!!”
청명의 성정을 매우 잘 아는 제자들이 부랴부랴 추영에게 인사를 하고선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소리만 지르지 않았을 뿐이지, 낮은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말들은 지독하게도 살벌했으니까. 아이를 달래고 있던 추영마저 움찔거릴 정도로. 그러나 그 말에 살기는 없다. 살기가 없음에도 벌벌 떨고있던 제자들을 보고 있으니 추영은 어쩐지 이 상황이 정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도문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이 도사님은 화산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다 들었는데, 그의 말에 이리도 잽싸게 움직일 줄이야. 이런 추영의 생각을 알 턱이 없는 청명은 제자들이 나가고 텅 빈 자리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아직 비어있지 않은 자리에는 윤종과 당소소가 서 있었다. 입구 근처에는 조걸이 여전히 제 입을 덮고 있다. 눈가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있다.
“하여튼….”
그런 조걸을 일별한 청명은 훌쩍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추부인께 잠깐 얘기 전달하러 온 거야. 사형들이랑 소소는 연무장으로 가봐. 사숙한테 필요한 건 다 얘기해뒀어.”
“연무장으로? 청명이 너는 수련하지 않는 것이냐?”
“하루 정도는 빈 자리나 채울까 하고.”
“빈 자리요?”
당소소의 물음에 청명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더니 둥기둥기, 몸을 들썩이며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던 추영에게로 다가갔다.
“추 부인. 현영 장로님이 이것저것 나눠야하는 얘기가 있다 하셔서 그쪽으로 잠시 와 달라고 하셨어요.”
“아, 그런가요…? 그럼 곧 가겠습니다.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보다 학이는 어떻게….”
“저녁시간에 완전히 일이 끝나기까지 제가 보고 있을게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네?”
“뭐?”
“뭐라고?”
윤종과 당소소, 조걸이 동시에 표정을 굳히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도 그럴게, 그들이 알고있는 청명이란 자는 아이를 돌보기에는 좋지 못한. 절대로 좋지 못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평소 수련시간에 제자들을, 게다가 천우맹의 다른 문도들을 거침없이 굴려대고 험한 입을 놀려대는 것을 항상 보고 있다보면 자연스레 깨닫는 법이다. 이 자는 절대로 아이와 함께 두어선 안 된다고. 청명이 눈썹 한쪽을 찌뿌리며 뭐가 불만이냐는 듯 뚱한 표정을 짓고있자,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한 세 명은 굳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청명의 양 팔을 붙잡고 바깥으로 빼내기 위해 청명을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 부인이 자리를 비워야 한다니까?”
“아, 안 된다. 청명아. 아직 젖먹이잖느냐!”
“사형은 절대 아이 건들면 안돼요!”
“너만큼은 안 된다, 청명아! 애가 불쌍하다, 애가!!”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것보다 애 있는 곳에서 소리를 지르네 이 인간들이?”
같은 사형제가 기겁하며 그를 말리는 모습에 추영도 어떨결에 움찔 떨며 긴장했다. 그러다 문득 중요한 사실을 하나 떠올렸다. 특히나 소리에 예민하게 굴던 학이가 두려움에 절로 목소리가 커진 세 명의 목소리를 듣고도 다시 울지 않는다. 울다 지쳐 잠에 든 건가 싶어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니, 잠은 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구슬같은 눈을 말똥말똥 빛내며 청명이 서 있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추영은 그 찰나에 지난 일을 되새겼다. 자신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보았던 것이 바로 이 청년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이 바로 자신을 살린 은인인 것이다. 그의 안온하고, 청량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주듯 흘러들어왔던 순간을 추영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이 도사님이 없었다면 나도 학이도, 지금쯤 이곳에 없었을 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품에서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있는 아이를 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청명을 유독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어미와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알아보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이는 깜깜하고 어두운 어미의 뱃속에서 열두 달을 지내왔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추영은 제 아이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아이의 상체가 청명을 향해 움직였고, 고사리같은 통통한 손을 가진 팔이 쭈욱 뻗어지며 휘적거렸다.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린다. 이것은 타인에게 자신을 안겨달라는 명확한 의도이다. 이토록 예민한 학이가 타인을 믿고 자신을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다. 말은 하지 못해도 낯을 심하게 가리던 아이가 먼저 팔을 뻗게 되다니. 그러나 그 때에는 울다 지쳐 잠들었을진데, 이 사람이 은인임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 도사님은 다른 도사분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걸까? 그렇게 맑은 기운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추영은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나선 세 명에게 단단히 붙잡혀 그들에게 짜증을 부리던 청명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러더니 제 품에서 아이를 들고 청명에게 조심스레 내밀어주었다. 그런 추영을 보며 셋은 놀란 표정을 하면서도 절로 손을 풀었고, 잡혀있던 사지가 풀리자 청명이 아이를 팔로 감싸안았다.
“그럼, 도사님. 학이를 잠시만 부탁드립니다.”
“부…, 부인, 무, 무슨….”
“추, 추부인…! 이 사형은 아이와 같이 있기엔 위험해요!”
“그것만은 안됩니다! 다,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쇼! 아무리 그래도 이 놈에게 아이를 맡기는 건…!”
추영은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든 오롯이 청명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칠게 세 명을 떨어뜨리려 몸에 힘을 잔뜩 주던 이가 아이를 받아들면서 우악스럽던 느낌이 싹 사라졌다. 아이를 안는 손길이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집안의 큰 어르신이 작은 아이를 돌봐주는 것 같은 노련함이 이 청년에게서 느껴진다. 그 뿐이랴, 그 손길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柔). 지금까지 학이를 돌봐준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분명 아이가 낯선 이의 품에 안기자마자 곧장 발버둥을 치거나 울기에 바빴다고 했다. 그런 아이인데, 청명에게 안겼는데도 아이는 조용했다. 더 울지도 않았고, 아니. 울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얌전히 안긴 채 청명의 뺨에 손바닥을 찹찹, 작은 손을 쭉쭉 뻗으며 꾸물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안아준 채로 함께 놀거나 장난을 칠 때마다 보이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청명은 그런 아이의 장난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정도는 가렵지도 않은, 평소 같은 표정이다. 지금까지 아이의 우는 얼굴만 봐왔던 세 제자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아이의 옹알이만이 흘러 고요가 이어지던 와중에, 청명이 턱짓으로 문 바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뭐해? 사형들, 소소. 빨리 가. 계속 농땡이 부릴 생각 말고.”
“어? 어…, 알았다. 괘, 괜찮은 것…… 같구나. 그만 가자. 걸아, 소소.”
“그, 아이가 좋아하는 뭔가를 품에 숨겨둔 것 아니냐? 어떻게 이렇게 조용하지?”
“사형… 진짜 뭐 숨겨뒀어요?”
“그런 게 있을 것 같냐? 됐고, 빨리 가. 오늘 수련 제대로 안 하면 안한 만큼 내일은 제대로 굴려줄 거거든? 오늘 일을 핑계삼기만 해봐. 저승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뭔지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알게 해줄게.”
“아니, 알았다. 갈테니까 너도 아이는 조심히 다뤄라… 우리처럼 험하게 다루면 안 된다. 절! 대! 안 된다. 알겠지?”
“아아니, 내가 무슨 조걸 사형인 줄 알아? 얼른 가기나 해.”
“내가 뭘…….”
“애를 울렸지.”
“울렸죠. 두 번이나.”
“나 오기 전에 두 번이나 울렸다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여하튼 추 부인도요. 장로님께서 기다리실 거예요.”
“네, 도사님.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이가 잘만 노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는지 추영은 아이와 청명을 한번 마주보고선 나른히 미소를 그렸다. 그리곤 고개 숙여 인사를 마치곤 방 밖으로 향했다. 남은 세 명은 그 청명에게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터덜터덜 추영을 따라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지, 진짜 괜찮은 겁니까? 사형. 애가 애를 보는 꼴이 아닙니까? 특히나 저 청명이잖습니까!”
조걸의 그 말에 윤종은 잠시 입을 다문 채 생각을 거쳤다. 조걸에게는 그것이 조금 심각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다시 도로 뛰쳐나가 청명을 끌고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맥없는 상상까지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윤종은 조걸 외 다른 이들에게는 과격한 대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조걸은 간과하고 있었다.
“어쩐지 방에 들어온 이후로 말투가 평소보단 사근사근하지 않더냐?”
“음. 그러고보니 오전에 들었던 말들에 비하면 확연히 순한 말들이긴 했어요. 아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말을 하더라도 들어먹을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 않아?”
“아뇨, 아이는 섬세해요. 지금 당장은 말을 듣고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듣고 본 모든 것들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쳐요. 거기에는 지척에 있는 사람의 대화와 목소리, 그리고 닿는 모든 감각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거죠.”
“그렇다면 더더욱 청명이가 데리고 있으면 안 되는….”
“어딜 갔다 오길래 이리 늦은 것이냐!”
세 명이 갑작스레 끼어든 호통에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한참 수련을 하던 도중이었는지, 얼굴에 땀방울이 맺혀있는 백천이 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살벌했다. ‘다른 놈들은 전부 모여 구르고 있는데 너희는 어디에서 뭘 하고 온 것이냐,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 했다.
“사, 사숙….”
“추 부인과 함께 처소에 있다가, 방금 청명이에게 막 쫓겨나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사숙. 늦어 죄송합니다.”
“청명이가 자기가 가보겠다며 그쪽으로 향한 게 언제인줄로 아느냐. 다른 놈들은 진즉에 다 모여서 수련하고 있는데 너희가 늦장을 부린 것이 중한 일이 아니라면 이유를 붙인다 한들 그것이 정당하지는 않지. 너희는 각오해야할 것이다.”
“그, 그치만…! 청명이 그 놈이 학이를 돌보겠다 하지 않습니까! 말려야지요!”
“…청명이가? 어쩐지 오늘 맡기로 한 소소가 함께 왔다 했더니.”
“네. 그래서 저도 같이 온 거예요. 셋이서 청명 사형을 말리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고요.”
“맞습니다, 사숙!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은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놈이 어떤 놈인데 몇 시진동안 아이를 돌보게 둡니까?”
백천은 잠시 제 땀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아내며 무언가를 생각해보는건지 눈을 데굴 굴렸다.
“괜찮을 것 같구나. 그냥 두거라.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 천하의 망둥이 놈이라고 아이를 막 대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사, 사숙! 그치만 그 청명이잖습니까. 사숙은 걱정도 안 되십니까? 앞날이 창창한 아이가 뭘 보고 자랄지…….”
“괜찮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놈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늘 답지않게 친절했으니까.”
그러니 어서 와라. 남을 신경 쓸 때가 아니라 너희가 할 일을 할 때다. 백천은 그리 말하고선 영웅건의 꼬리를 흔들며 연무장 가운데로 걸어나갔다. 분명 그렇다곤 하지만…. 조걸의 불안함은 완전히 사라지진 못했다. 청명이를 아예 못 믿는 것은 아닌데, 참.
청년이 작은 아이를 안고선 방 안에 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이는 울지 않는다. 청명이 울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어디 아픈가 싶어 손으로 열을 재어보려다 멈칫하더니 제 이마를 살짝 올려 아이의 이마에 마주대어본다. 잔뜩 생겨난 흉터로 인해 거칠어진 제 손을 아이의 연한 살에 닿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체온은 성인보다 조금 따뜻할 정도이다. 열이 심한 편도 아니고, 딱히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왜 이상하리만치 조용할까. 그러다 문득 청명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이가 연신 팔을 뻗고 손가락을 죔죔 움직이더니 이젠 아예 포대기 안에서 발까지 차가며 꿈지럭거리고 있다. 보아하니 분명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인데 포대기가 제 몸을 감싸고 있으니 불편한 것이리라.
“…잠깐 봐주는 사람 하나 생겼다고 신이 난 건가?”
아이가 입을 벌려 웃으며 꺄르륵 웃는 소리를 내었다.
“……맞나보네. 뭘 그리 좋아하는게냐? 네 어미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나 몰라.”
청명은 혼잣말이라도 하듯 목소릴 내다 아이를 한손으로 안고선 답답해하는 포대기를 남은 손으로 벗겨내고 바닥에 깔았다. 그러더니 그 위로 아이를 눕힌다. 아이를 눕히고 나서도 아이의 시선은 영 청명에게서 떨어지질 못했다. 안아달라 조르는 것처럼 팔을 쭉쭉 뻗으며 울상을 지었다.
“나 참. 알았다, 알았어. 울지는 마라. 나는 누구 달래는 건 아주 쥐약이라고.”
청명이 제 체구보다 약간 큰 손을 펼쳐 아이의 겨드랑이를 잡고 아이를 들어올렸다. 혹시라도 목이 넘어가지 않게 손가락을 모아 아이의 뒤통수를 받쳤지만 아이의 움직임을 보아하니 목은 가눌 수 있는 모양이다. 이 정도면 몸은 뒤집을 수 있을텐데, 머지 않아 방 안을 기어다니겠구나, 싶었다. 청명과 학이 서로를 똘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멀뚱멀뚱.
깜빡.
잠시동안 서로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다가, 먼저 움직인 쪽은 아이였다. 히, 흘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통통한 팔을 뻗어 청명의 뺨을 찹찹, 건드렸다. 그러더니 팔다리고 머리고, 위태롭게 앞으로 숙여지는 것이 어서 안아달라 보채는 것처럼 보여 청명은 그제서야 아이를 제대로 품에 안아주었다. 아이는 만족한 듯 청명의 옷깃을 꼭 손에 쥐고선 완전히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 청명이 보기에도 제 어미 품에 안겼을 때와 다를 바 없는 편안한 모습이었던지라, 떼어내서 다시 눕혀놓기에도 미묘했다. 결국 청명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입꼬리를 올려 웃고선 아이를 살살 토닥여주는 수 밖엔 없었다.
“너는 화산에서 제일 큰 할아비가 누군지 알아보는 모양이구나. 할아비랑 같이 있는게 그리도 좋더냐?”
토닥토닥. 청명은 문득 자신이 어렸을 시절, 제 사형이 안아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지금은 세월도 세월인지라, 그 기억이 희미할 수 밖에 없었지만 청명은 그때 청문사형의 모습과 지금의 제 모습이 과연 조금이라도 닮아있을까하는 물음을 머릿속으로 써넣었다.
“…아가, 나는 말이다. 너보다 더 쬐끄마할 시절부터 화산에 있었다 이거야. 그야말로 화산에서 났고, 화산에서 자랐지. 화산이 나를 키웠다.”
토닥토닥.
“네가 언젠가 두 발로 뛰고 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화산에 계속 남아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을 동안은 화산에 핀 매화들이 너를 지킬 것이고, 화산에서부터 네가 뻗어나갈 길을 만들어 주마. 너는 그저 네가 원하는 길을 가면 된다. …다만.”
아이는 자장가와 같은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눈꺼풀을 감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후회는 남기지 마라.”
말을 마친 청명은 가만히 감아보였던 눈을 떠보였다. 품이 유독 따끈하게 열이 오른 탓이다. 아니나다를까 어느새부턴가 아이는 잠에 든 것처럼 보였다. 백년 전, 천하제일의 명문도가로서 이름을 알리던 과거의 화산에서도 청명은 간혹 손이 빌 때가 오면 이렇게 어린 아이를 돌봐주던 때가 있었다. 화산은 육식과 혼인을 막지 않는다. 때문에 제자끼리 눈이 맞아 혼인을 하고 아이를 가지거나, 화산에 어린 아이를 일찍이 입문시키기 위해 부모가 아이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으니, 당대 화산에서는 제자들의 연령차가 확실하고도 다양했다. 청명 본인이 예외적이었던 것 뿐이고, 그 외에는 여느 다른 문파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현종이 장문인을 맡고 있었던, 불과 몇년 전의 화산과는 상당히 풍경이 다름을 새삼 느꼈다.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면, 언제나 안고있던 자리가 서서히 열이 오른다. 아이의 체온은 성인보다 조금 높게 느껴지는 탓이다. 아이가 잠에 들면 거기서 체온이 조금 더 오르는 경우도 있다곤 하지만 거기까지는 청명이 알고있지 못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젖먹이에게는 너무 이른 이야기였나.”
숨을 죽이고, 공포에 떨면서도 죽음만이 자리한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 가느다란 생명이란 이름의 실을 붙잡고 있던 두 사람의 호흡을 마주한 그때. 청명은 그저 무너졌다. 저 너머가 보이지 않도록 단단히 쌓아두었던 돌무더기가 단 한 번의 나비 날갯짓으로 모든 것이 쓰러져버린 것처럼. 추영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고자했고, 화산이 베푸는 것을 받기만 할 뿐 아니라 돌려주고자 하는 의지로 지금 이곳까지 왔다.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 또한 강한 의지를 배워 육체뿐 아니라 심적으로도 강해지겠지. 청명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조심히 쓸어넘기자 언제 잠들었냐는 듯 아이는 다시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청명을 올려다보았다. 청명은 그 모습에 뚱한 표정을 지었다.
“……자는 줄 알았다, 이놈아. 어린 것이 어른을 속이네.”
청명의 말에 옹알이로 답하던 아이는 문득 제 앞으로 슬쩍 빠져나온 긴 머리칼의 일부를 꾹 쥐더니 잡아당겼다.
“앗, 아야, 아야야야! 머리칼을 잡느니 차라리 옷을 잡던가! 아니, 잠깐. 이게 아니라 입에 넣으면 안된다, 너? 큰일난다! 뭔 놈의 애가 이렇게 잠을 안 자? 낮잠을 너무 많이 잤나?”
꺄르르, 웃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고, 청명은 아이를 놀아주는 것에 조금 애를 먹었다.
수련이 끝난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장원에 어둠이 내려앉은 때였다. 저녁식사마저 끝내고 부랴부랴 달려와 처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조걸이었다. 뒤이어 나머지 오검이 함께 따라왔다.
“추, 추 부인…! 계십니까? 청명아, 아직 있는거냐?”
“…….”
방 안이 비어있나? 조걸이 의아한 시선을 윤종에게 보내어도 윤종은 알 길이 없었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도사님들? 무슨 일 있으세요? 저는 이제 막 일을 끝내고 돌아온 참인데….”
“아, 갑작스레 죄송합니다. 추 부인. 저희도 막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지라, 사질 녀석들이 하도 걱정이 된다하여 이리 찾아오게 됐습니다. 청명이 녀석은 아직 안에 있는 겁니까?”
“예, 아마 그럴텐데….”
방 안에서는 여전히 대답도 없고, 무언가 말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았다. 조걸이 백천을 돌아보자 백천이 문 앞으로 다가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나가거나 돌아다니는 것은 확실히 큰일이다. 우선은 확인하고 찾으러 가는 수 밖에…. 그러나 그 생각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촛불 하나 켜지지 않아 어둑한 방 안에는 침상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있는 인영이 보였다. 그것이 청명임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청명….”
백천이 그를 부르려던 순간, 유이설이 손바닥을 펴 백천의 입을 막았다. 사매? 황당한 듯 살짝 눈을 크게 뜬 백천은 소리없이 유이설을 쳐다보았고, 유이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고있어요. 아기도 같이.”
어두움에 익숙해진 눈이 그제서야 청명의 모습을 제대로 시야에 담아낸다.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듯 기대어있는 청명이 아이를 품에 안은채로 잠에 들어있었다. 높게 묶고있던 말총머리는 어째서인지 까치집마냥 엉망이 된 모양으로 살짝 처져있었고 질끈 묶여있던 녹색의 머리끈은 금방이라도 풀릴듯 한쪽으로 길게 내려와있었다. 아이를 감싸고 있던 두터운 포대기는 덮는 이불처럼 둘을 포근하게 덮어주고 있었다.
“애가 둘이네….”
“……그러게요.”
그 모습을 본 오검은 그 이상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둘의 잠든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운 광경이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이가 도사님을 많이 좋아하나봐요.”
“…정작 본인은 아이와 친하게 굴 것 같지 않은 인상인데 말입니다.”
“늘 이런 식으로 엉뚱한 데서 놀라게 한다니까요. 이 사형은.”
“…동감.”
“이건 뭐, 떼어놓기도 아쉬운 모양새 아닙니까. 사숙.”
스르륵. 미끄러져내려온 포대기에 모두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슬 미소를 지은 채 조심조심 움직였다. 추영이 청명의 품에서부터 조심히 아이를 데려왔고, 백천과 나머지 오검은 지쳐 잠든 청명이 깨지 않도록 안아들며 추영에게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서로가 서로의 품에 안기는 것에는 그저 자신의 무게를 더해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서로의 체온, 서로에 대한 신뢰, 서로를 향한 감정이 함께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것을 밀어붙이는 것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청명은 비몽사몽한 가운데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 '품앗이란,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주며 서로의 품을 지고 갚아주는 것이다.'
'푸마시?'
'하하, 그래. 그렇게 읽는게 맞다. 품앗이는 사람이 사람을 신뢰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한다더라. 사람이 사람을 신뢰하기 때문에 서로의 품을 지고 갚아주는 거라면, 사람과 자연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자연은 그저 베풀고, 사람은 그 안에서 자연에게 되돌려주며 살아가지. 그것이 당연하다 여기지만, 사실은 그것도 자연과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당연한 듯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또한 품앗이라고도 볼 수 있지.'
'……?'
'녀석, 아직 어려운 모양이구나. 결국엔 자연과의 품앗이 또한 도(道)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단다. 모두가 깨닫지 못할 뿐, 모두가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하지 않더냐.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 화산에서 사형제들과 함께하며 그 부족함을 채워나가고 싶구나.'
'저도요?'
'그래, 청명아. 너도 함께한다.'
부비적, 거친 손길이 작은 아이의 머리칼을 헤집어 아이는 성질을 부렸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았는지 또 해달라며 제 사형을 보챘고, 결국 양손으로 아이의 머리부터 얼굴까지 잔뜩 엉망이 되고나서야 쓰다듬받기를 그만두었다.
청명은 무심결에 기대어있던 온기가 따스해 기분좋은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지쳐버린 걸까싶어 별 말없이 청명을 안고 가던 백천을 포함해 오검이 청명의 짧은 어리광을 보고선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지 청명과 서로를 자꾸만 번갈아보았다. 백천은 청명의 방까지 향하는 길이 오늘따라 유독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후에 청명은 무의식에 했던 이 행동을 후회하게 된다. 이를 다음 날 애가 하나 늘었다며 죽도록 청명을 놀려댔던 조걸이 하루종일 천근추를 시전하는 애(청명)를 매달고 애정을 가득 담은 어리광과 같은 혹한의 수련을 행한 끝에 강시가 되어서 나타난 일이 있었던 건 덤이다.
후기 (를 가장한 꿨던 꿈에 대한 주저리)
단편이었던 품앗이를 펜슬에 업로드 했습니다! 품앗이는 맨 처음 참고사항에 있었던 것처럼 일전에 꾸었던 꿈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는데요. 아무래도 꿈이었던지라 지금 생각하면 엥? 싶은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청명이 태어난 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은 갓난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익숙해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유아학도였던 제 시점이 반영된 꿈이었던걸지도 모르지만요….)
꿨던 꿈의 얘기를 일부만 적어보겠습니다. (워낙 장면이 휙휙 바뀌어서 유독 기억에 남는 부분만.)
꿈 속에서는 이름모를 제자의 아내(양민)와 함께 그의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게 되었는데, 아이가 세 명이었습니다. 세 쌍둥이였죠! 함께 아이를 내려다보던 삼대 제자 하나가 아이를 안아들려고 하자 그걸 본 청명이 '어허! 머리 받쳐, 머리!' '조심해!', '이렇게 받쳐서 안아야지.'하고 시범을 보였는데, 그렇게 품에 한번 안은 아기가 청명과 자주 붙어있으려 했고 가장 잘 따랐습니다.(!!) 그리고 더 좋았던 점은 아이들을 돌봐주는 내내 청명이 본인을 '할애비(할아버지)'라 칭하고 내내 은퇴한 태상장로(매화검존)의 말투를 썼다는 점이었습니다.
"너는 이 할애비가 좋으냐?"
"아잇, 언 놈이 할아버지 머리 위를 오르려 하느냐." (그리고 백천이 이 말을 하는 청명이를 이상하게 쳐다봤음.)
"걱정마라, 아해들 밥은 저기 있는 동룡이가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 (이유식을 만들어준다는 건 아니고, 고장난 밥솥을 고쳐줄거라는 의미.)
(그리고 동시간대 진동룡, 사제들에게 화를 내며 '이새끼들아!'를 외쳤다가 아내에게 애들 앞에서 험한 말 쓰지 말라며 멱살을 잡혔음.)
아니정말저말을했다니까요????????꿈에서????????? 저는 꿈에서 깨자마자 비명을 질렀습니다이게말이되냐이게말이되냐고꿈에서이렇게유죄같은말을해도되는거임?이거나만들어도되는거임?저기요매화검존이거유죄예요무기징역이라고요양민하나죽었다고요지금어떡하실거예요나는도교에몸담은도인도아니라서이거선계로등선도못하는데책임져주실거예요ㅓ?????ㄴㅇㄻㄴㅇㄻㄹㄴㅇㄹㅇㄴㅇㅁㄴㄴㄻㄴㅇㄻㄹ크아아악
아무튼, 제가 캐해했던 것보다도 청명이는 아이들을 잘 놀아줬습니다. 바닥에 디비 누워서 팔을 뻗었다가 굽혔다가 하는 높이높이 비행기도 해주고(아이를 던지지 않은 것만해도 어디야 무인이) 어려서부터 유독 내성적이었던….의 중심잡기도 해보려다 아이들이 아직은 중심잡기를 하기에도 어린 탓에 실패한듯 했습니다. (저도 이걸로 수줍음을 길러왔습니다.) 꿈에서 깨기 직전에는 제자들이 모여서 무언가 프레젠테이션……같은 걸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청명이 연결선에 걸려 넘어질뻔한 탓에 연결선을 끊어먹고 "아! 고치면 되잖아, 고치면!" 이라며 화를 박박 내다가 이건 어떻게 고쳐야하지…하는 기계치의 모먼트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이 여러모로 팔방유죄할아버지야…….
대략적으로 꿈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어쩌다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는 잘 상상도 안 가는데… 좋았으니 됐죠. ^^)9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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