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차
회귀, 빙의, 환생!
현대 소설 시장에서 가장 단골로 사용되는 소재를 꼽으라 하면 회귀, 빙의, 환생으로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단골로 존재하던 소재이긴 하다. 그런데 왜 최근에 급부상을 하게 됐을까. 그것은 욕구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취향에 무조건적으로 욕망이 반영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다수가 그것을 원하는데는 공통적인 욕구가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회귀는 지난 시절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 즉 바꾸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뤄지는 이야기다. 빙의는 주로 빙의되는 세계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신이 읽은 소설 속으로 들어가 정해진 해피엔딩을 원한다. 마지막으로 환생은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가진 채 새로 태어나는 이야기가 주류다. 이 셋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최선의 엔딩을 찾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회귀와 빙의만 유행했다면 보장된 행복을 바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환생이 더해지면서 많은 정보를 안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을 원한다고 볼 수 있다.
어째서 이런 욕구를 가지게 된 것일까. 세상은 확실한 것이 거의 없다. 불확실한 것들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얻은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찾아오는 행복도 본인의 것이지만 찾아오는 고난도 본인의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고난을 피하고 행복을 바라는 것이 인간 아닌가. 편의를 추구하는 일은 당연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문명을 여기까지 이룩했으니까. 그러나 문명을 여기까지 이룩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는 일들이 적어졌다. 사람들의 사고는 확장 되었고, 그 사이에 얽힐 것이 많아졌다. 인간은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다른 형대의 위험부담을 안게 되었다.
역시 위험은 부담스럽지 않은가. 나라도 피하고 싶다. 주어진 고난을 벗어나 확실한 행복을 얻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행복이 무슨 의미일까. 기분이야 좋겠다. 스스로 쟁취하는 기쁨을 모르고 있다면 분명 좋을 거다. 모든 불확실성을 딛고 최선의 결말을 맞이하는 것, 난 그 희열을 느끼기 위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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