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앤드래곤

세루사이트 타로 백업

오늘 타로에서, 세루사이트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타인과 사제들에게 어떤 평가를 듣고 교류하는지, 또 어떻게 클레릭이 될 수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말해주셨지요.

가장 먼저 말씀드릴 부분은 이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일전 자신에게서 박탈되고 부재했던 것들을 시도해보고 겪어보고자 하는 백일몽 같은 끌림 위에 이루어졌다는 점이에요. 간단히 말하자면 이 사람은 타인의 평가나 의견에 신경을 쓰며 보다 남과 어우러지거나 그들을 돕거나 그들의 삶에 일부가 될 수 있는 '선한' 혹은 '일반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어 하는데, 이 부분에서 남들의 이해나 애정을 욕망했다기보단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적 없는 삶을 시도하고 체험하고자 하는 다소 종교적이고 회개적인 면모가 존재했다는 이야기지요. 이 사람은 자신이 아무 의식 없이 지내온 과거의 죄악들을 만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인간성을 지니고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명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채 삶을 대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부분 '이성적이기보단 몽상적인, 꿈꾸는' 경향성이 엿보이며 이런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비추어진 듯 해요.

모든 이들이 이 사람을 용서하고 포용하고 납득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그가 살인 기계나 죄인이기보다는 변화를 열망하는 한 명의 사람이며 그를 위해 끊임없이 행동 중이라는 그 열의를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그래서 긍정적인 의미로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 가깝죠.

다만 이 사람은 속으로 '자신이 가는 길이 옳은지' 내지, 이 선택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정말로 무지해 보여요. 확신과 신념을 갖고 이루어내는 행동들이 아니라 막연히 과거의 자신과 반대되는 행동, 사람을 살리거나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깊은 생각 없이도 '타의에 따라', 그들의 제안이나 선택을 쫒는 경향이 있죠. 다만 이런 방식의 삶이 장기간 지속되지는 않은 듯 해요 지금 이 친구가 사제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또 교류해왔을지 알고 싶다고 말해주셨는데, 그 교류가 여러 의미로 신실한, 이 방향 모르는 어린 양을 ' 이끄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듯 싶거든요.

사제들은 이 사람에게 그 자신이 바라는 것과 이뤄온 것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여러 지식을 알게 해준 듯 해요. 다정함이나 애정으로 돈독한 관계를 쌓은 게 아니라, 변하고자 하는 죄인을 이끄는 데에, 특히 그 삶의 의미와 욕망을 스스로 정하고 이끌 수 있게 여러 상황을 접하게 하고 또 신전의 일원으로서 봉사할 수 있게 한 듯 해요. 이 행위가 외부에서 보기엔 세루사이트의 그 성품과 행실을 변덕스럽거나 기괴한 것으로 폄하하는 대신, 적의 가식 어린 행동으로 곡해하는 대신 '건실하게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여지게 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고요. 사적으로 친분을 가지기엔 아직 이 사람 본인의 미성숙함이 커 보이지만 어느 정도 사회에 섞이고 예의범절과 관습을 익혀 (전쟁 병기로 개발되어 살아왔던 과거의 잔재로) 미숙하거나 유난하고 별난 모습을 보일 일 없이 '평범한', 삶을 영위한 듯 보인다는 이야기예요.

다만 이 모든 시간과 관계와 역할로부터 세루사이트는 생각보다 크게 '상처받았어요' 고아는 전쟁으로부터 온 것이고 전쟁은 세루사이트에게 친숙한 일이죠. 사람들은 세루사이트의 변모와 행동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바로 그런 미움 없는 태도 탓에 세루사이트는 자신의 위치와 과거를 돌이키며 이런 대우가 옳은 것인지 자신이 '이곳에 머물러도 좋은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품은 듯해요.

과거에는 이런 도덕적 가치판단이 불가능한, 정말이지 기본적인 규칙만을 습득한 기계에 가까웠으나, 이제 선택을 배우고 그 자유의지에 자아와 감정이 한 겹씩 켜켜이 쌓이면서 이 친구는 자기 자신의 도덕과 감정, 주변의 이들에게 '배척받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싹트게 된 거죠.

그리고 이 사람의 불완전한 자기반성과 회고는 이 무지한 사람을 흔들리게 만들었는데, 바로 그런 면에서 이 종교는 사람을 죽이게끔 설계된 기계인 세루사이트에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소명을 부여한 거지요. 신에 의해 직접 선택받았다면 이 친구가 선택받은 계기는 한 가지의 욕망에 있어요. '사랑받고 싶다'는, 자신이 저지른 죄만큼 타인을 구하고 싶다는 욕망이지요. 순전한 선의나 명예나 죄책감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이제 막 싹튼 동정심과 슬픔의 맥락에서 이 친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원했고, 그것이 신이 보기에 옳은 마음가짐이라 그 힘을 내려받았다는 이야기예요. 다만 그 힘을 얻게 된 일에 세루사이트가 크게 행복하거나 기뻐했던 것 같진 않아요. 그보다는 묘한 책임감, '이 힘이 내게 존재하는 한 걸어야 하는 길이 있다'는 사명과 목표를 부여한 엄숙한 느낌이 있네요.

이 사람의 현재의 삶, 클레릭으로서의 생활은 결국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걸어가는 길이에요. 용서를 구하거나 참회한다는 목적보다는 그 자신이 사제들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듯이 자신 또한 그에 보답하고 싶다는 충동에 가깝죠. 여전히도 그 마음은 어리고 솔직하며 규율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감정을 받고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 솔직하고, 이 일련의 성장을 통해 얻게 된 클레릭이라는 직위는 결국 사랑이 무엇인지 미처 알지 못한 채로도 소명 받은 대로 그것을 실천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좀 더 명확한 형태를 알아가고자 하는 순례길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어요.

기계 팔은 모종의 이유로 망가지거나 파손된 게 아니라 세루사이트 본인의 선택이자 변화의 표시, 맹세로서 '제거'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네요.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 동안 이 기계 팔은 세루사이트의 삶에 있어 지극히 당연한 일부였으나, 기계 병기가 아닌 사람으로 대우받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후 이 팔의 존재는 그에게 있어 남들과 다른 꼬리표와 같은 역할이었던 듯 해요. 자기 신체의 일부를 결함으로 느끼는 일이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으나, 대체로 이 사람을 대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얼굴과 목소리와 행동이 긍정적인 반향을 부른 데에 비해, 그 기계 팔은 거추장스럽거나 당혹스럽거나, '그와 유사한 기계장치들이 저질렀던 범죄와 그의 과거'를 가장 노골적으로 증명하는 매개체였던 거죠. 자아가 여물지 않던 처음에는 그에 대해 불만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어느 정도 사회와 삶에 익숙해진 이후 이 기계 팔의 존재는 세루사이트에게 있어 극복해야 할 과거와 비슷한 무게를 주고 있던 듯 해요.

다만 주변 이들이 그 팔에 압박을 주거나 제거하라는 식으로 운을 띄운 일은 없어요. 이건 오로지 세루사이트 본인의 걱정이자 고민이고 또 선택이라는 이야기죠.

가급적 세루사이트는 이 팔을 쓰고 싶지 않아 해요. 다만 그 팔이 자신의 전력 중 일부인만큼 완전히 도려내거나 부수는 대신 스스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 자체를 자기 자신에게 제약 삼으면서 지내고 있었다는 느낌이 크죠. 그러던 와중 신의 선택을 받아 클레릭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면서, 신성 마법이 그의 전투 능력을 대체하게된 이상 더 이상 이 기계 팔이라는 부분을 보존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 거예요. 세루사이트는 클레릭으로서 의무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기계 병기로서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서 기계팔을 절단하거나 더 이상 쓸 수 없게 망가뜨린 듯 하고, 그 이전에는 의식적으로(사람들이 그 형상에 공포를 느끼기도 하니까) 가능한 한 형태가 두드러지지 않게 감추고 또 사용하지 않던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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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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