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이우사나의 편지
자캐 스토리, 이우사나 하소사나
이네스, 내 사랑하는 여동생.
편지 잘 받았다. 그 정갈한 편지를 네가 직접 쓴거라고? 셀레나가 고쳐주지 않았다니 정말로 감동했단다.
이 곳은 춥고 광활하다. 하지만 그래, 날이 지날 수록 밀려오는 적들의 수도 줄어가고 정찰나오는 적군은 없다시피 하고 있으니 마냥 나쁜 곳만은 아니지.
너는 아직도 수면동굴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구나. 아직 햇병아리였던 모험가 시절, 철없는 내가 자랑하듯이 늘어놓았던 모험담말이야.
네겐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그 동굴은 그렇게까지 아름답지 않았단다. 네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야 되는 거였는데.
나는 그저 네가 나를 걱정하는게 너무나도 싫었을 뿐이야.
다시는 그런 부탁을 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해다오. 전에도 이야기했었는데 말이야. 지킬 수 없다면 내게 더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괜찮아. 내 말을 귀담아 들어 주었으면 한다.
집에 돌아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사랑하는 오빠로부터.
*
손에 피가 많이 묻었다. 들러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모험가의 일기는 거칠게 휘갈긴 필기체의 문장을 끝으로 더 이상 어떤 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
임무가 끝나고 적적히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의 소소한 잡담 속에서, 그는 불쑥 울다하의 하늘잔마루 모험가 거주 구역에 어린 여동생을 맡겨 놓고 왔다고 말했다. 오랜만의 휴식 시간이었다.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들이 일렁이는 불빛에 비쳐 땔감들과 함께 타오를 듯 했다.
과묵한 줄로만 알았으나 알코올에는 면역력이 없었는지 귓볼까지 새빨개져 바닥에 거의 고개를 꼴아박다시피한 남자가 실실 웃는 얼굴로 '있잖아.' 하고 말해왔을 때, '내게는 귀여운 여동생이 하나 있다네.' 하고 말문을 열었을 때 이목이 집중 되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내의 이름은 우우사나 하소사나. 제 이름보다는 영웅이란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리곤 하는 모험가였다.
임무에 투입된 사람들은 우우사나에 대해 그리 말했다. 등을 맡기엔 적격이었으나 어쩐지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남자. 친우의 부탁으로 이슈가르드 진척까지 진을 치고 몰려오는 용들을 토벌하는 일에 투입된 모험가는, 그 명성대로 토벌하는 실력에 군더더기가 없었으나 과하다 여겨질 정도로 입이 무거워 이제껏 모험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입에 올렸던 일이 없었다.
묘하게 열기 띤 시선이 오갔다. 취했을 때의 습관인지, 모험가는 내내 편한 어투로 말을 던졌다.
-내 여동생은, 이네스라는 아이인데... 나는 그 아이를 두고 여기까지 오는게 정말로 힘들었어. 정말로 작고 사랑스러워. 지금은 어깨까지 머리를 길렀을까.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아직 여덟살 밖에 안 되었는데...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흩어져 있던 대원 한 명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었군요.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아서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네요.
-이네스는 내 친동생이 아니니까. 응,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곳은. 마른뼈황야였어.
그 애는 사막의 들개무리에 치여 거의 파먹혀가고 있었지. 구해냈지만 죽지 않은게 지금도 믿기지 않아...
사경을 헤매다 눈을 뜬 이네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오빠라고 불렀지. 근방의 어떤 마을에서도 그 아이의 가족을 찾을 수가 없었어. 처음에는 한달만 돌보자, 두달, 세달하던게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지.
여동생. 여동생이라. 나는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더군.
말을 하다 말고 우우사나는 먼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동떨어진 표정이 된다.
-나는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
혀 꼬인 발음으로 남자, 우우사나가 말한다.
-애시당초 여기는 그런 곳이란 말입니다. 나 하나가 이만큼 사람을 구해도 어디선가는 이만큼 다시 죽어나가고,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서... 끝나질 않아. 끝나지 않았어. 다음 차례가 나나 내 동생이라도 이상하지 않아.
우우사나는 실실 웃었다. 웬만한 농담에도 웃지 않던 이가 오늘따라 자주 웃음짓는다.
-대의 앞에서 일개 사람의 목숨은 너무나도 가볍지 않은가.
작은 여자아이를 떠올리고 흐뭇하게 함께 미소짓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하나둘씩 미소가 지워졌다. 우우사나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았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묘연한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어떤 이는 드러내놓고 불편한 표정을 짓고만다. 승리 후의 뒷풀이 자리에서 이어진 그 묘연한 기류가 불편하여 뭐라 할 말을 찾지 못 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막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어 말했다.
-여동생이 오랜만에 편지를 썼어.
다른 주제에 안심한 눈초리로, 눈치 있는 병사 하나가 우우사나의 말을 받았다.
-기쁘시겠네요.
-이번에는 꽃잎을 같이 보냈더라고.
그는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병사의 이름을 모른다. 병사에게는 필롯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우우사나에게는 그 이름을 기억할만한 이유가 없었다. 거기 당신, 이거 읽어보겠어? 하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살갑게 건네며, 우우사나는 필롯에게 한두번 접혔다 펴진 편지 봉투하나를 건네어 주었다.
-제가 읽어도 괜찮다면 얼마든지요.
영웅이라 불리는 남자의 이면을 엿본다는 생각에 필롯의 목소리는 살짝 열기를 띤다. 옆면이 뜯겨진 편지 봉투를 털어내니 흰 바탕의 편지지 하나가 손 안에 떨어졌다.
오빠, 나 이네스예요.
오빠 보고싶어. 오빠랑 같이 놀고싶어.
언제 올 수 있어요?
여기에 리사 이모가 라벤더를 심었어. 너무 예뻐서 이모한테 얘기해서 같이 보내. 그럼 안녕, 이번 달에는 꼭 여기 들러서 이네스랑 놀아줘.
필롯은 짧지만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쓰여진 그 편지를 흐뭇한 미소로 읽어내렸다. 편지 안에서 펜을 쥔 작은 소녀의 분주한 손이 언뜻 보이는 듯도 했다.
어라.
순간 필롯의 손에서 편지지가 두 장으로 떨어져 나왔다. 편지의 뒷면에 색이 조금 다른 편지지 하나가 덧붙어져 있었다. 어른이 쓴 것처럼 유려한 필체, 길고 긴 장문의 편지였다.
이게 무언지 읽어내리기도 전에 우우사나의 억센 손이 필롯에게서 편지를 낚아채었다.
-그건 이네스의 편지가 아니야. 다른 사람의 편지지.
마치 들키기 싫은 것을 들킨 사람의 표정으로, 우우사나는 필롯에게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당신이 죄송할 일은 아니지. 내 실수인걸. 다른 편지를 더 읽어보겠어?
지워졌던 웃음기가 다시 차오른다. 굉장히 빠르면서도, 차갑게 끓어오르는 목소리.
임무 중의 우우사나는 과묵했지만 누구나 의지할 수 있을만한, 담대하고 인정깊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투 중에 한해서는 리더 역할을 맡는데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친해지긴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남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필롯은 끓어오르는 의문을 누르기가 쉽지 않다. 이 남자가, 이런 식으로, 이걸 무어라 설명해야하지. 고장나... 아니 그런 말은 과하다. 아니 과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어딘지 모르게 붕 떠있는 사람이었나?
필롯의 의문을 뒤로하고, 우우사나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흐려져갔다.
**
우우사나 씨. 리사예요. 오랜만에 편지를 쓰네요.
이네스는 어제 저녁부터 조금씩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기뻤는지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스스로 걸었던 이야기를 하는 데에 여념이 없어요. 이네스가 물을 주어 기르던 꽃도 예쁘게 피어서, 오늘은 그걸로 이네스의 머리를 장식해주었습니다. 당신이 이네스를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총총 땋은 은발머리에 보랏빛 라벤더 꽃이 정말로 예뻐서, 방문객들에게 그녀는 칭찬만 듣고 다녔답니다.
이네스가 저에게는 오빠에게도 꽃을 전해주고싶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아이가 보낸 편지에 그 꽃이 제대로 담아져 전해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네스는 당신이 걱정하시는만큼 잘 자라고 있어요. 당신이 그렇듯 저도 저희 어머니도 이네스를 가족처럼 사랑합니다.
우우사나 씨. 평소보다 편지가 길어졌네요. 이야기하지말까 싶었지만 실은 오늘 이런 이야기 말고도 당신에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말하는데 앞서 안 그래도 근심이 많을 우우사나 씨에게 달리 걱정할 일을 만들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이네스가 어제 혼자서 걸음을 떼었다고 했지요.
그렇게 기뻐하며 마당을 이 곳 저 곳 걷고 있던 아이가 문 앞에 서서는 한참을 가만히 울타리 너머만 바라보고 있더군요. 이네스가 건강 문제로 오랫동안 외출하지 못 했던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다 함께 도시 주변 상가까지 나가볼까 생각했었는데, 이네스는 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 하고 고개만 저었어요. 여기까지만 가도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야 한대. 그렇게 말하더군요. 문 앞에서 저와 몇 번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울음을 놓으며 바닥에 주저 앉아 떼를 쓰기에 그대로 안아들어 달래서 방에서 이른 낮잠을 재웠습니다.
우우사나 씨. 당신이 그동안 보내온 편지는 이네스의 개인적인 물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편지를 읽어본 것은 정말로 이번이 처음입니다. 멋대로 읽은 무례를 용서하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그 편지는요.
그 편지들은 하나같이.
우우사나 씨. 무엇 때문에 그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오셨던 건가요? 도대체 어째서? 나는 당신을 친애하지만 그 편지 속의 글들은 하나같이 기분 나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의와는 별개로, 은인인 당신에게 이런 말은 아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편지는 역겨웠습니다.
그런 편지를 이네스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심이 되나요? 제 말이 무례하다면 이것 역시도 양해해주시길 바라요. 저는 당신이 언제까지나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을 구해주셨을 때처럼, 이네스를 구해줬을 때 처럼요. 당신이 제가 모르는 곳에서 저같은 소시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갈 곳 없는 우리 가족에게 지낼 곳을 마련해준 당신의 호의에도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네스는 저희의 가족이기도 합니다.
우우사나 씨. 이네스는 집 밖으로 나서는 걸 병적으로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신이 이네스에게 보내온 편지들을 알고 있다면, 제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건지도 알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울다하에 들리실 일이 생기면 꼭 이 곳에 들러주셨으면 합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말들이 많아요. 또, 이네스가 보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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