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End Credit

Winter End Credit 1

271 by hampun

“…감사합니다.”

이세진은 스태프로부터 물을 건네받았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의 일대기.

그 꿈의 주인공은 이세진 본인이었다.

아이돌로 데뷔하고, 모종의 사건으로 성씨를 개명하고, 수많은 관객 앞에서 행복하게 춤과 노래를 내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꿈이었다.

아니, 꿈이 아니다.

꿈일 리가 없다.

천성이 예민한 배세진은 이내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니며, 비현실적인 사건에 휘말렸다는 판단을 내렸다.

Enjoy Your Reality! :)

배세진은 그로부터 얼마 뒤, 박문대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다.

이 세계는 가상의 공간이며-차유진은 이를 멀티버스로, 배세진은 타임 패러독스라 칭했다-, 우리에게 우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까지.

요컨대, 이곳에서 저지른 일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배세진은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배세진은 작년 12월에 개봉한 <해마>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콜이 쇄도했고, 적당한 작품을 골라 이를 준비하던 참이었다. 드림K는 그에게 또 사이코패스 역할을 쥐어주려 했다. 직업 의식이 상당한 배세진도 이정도로 배역을 우려 먹으니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럼 어떤가. 배세진은 어떤 배역이든 허투루 임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실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손에는 늘 대본이 쥐어져 있었고, 머릿속에는 수천 자의 텍스트가 떠돌았으며, 촬영 현장 시뮬레이션은 수백 번쯤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연기를 실컷 해보겠냐는 욕구가 반, 허구의 세계일지라도 맡은 일은 충실히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반이었다.

배세진은 오늘도 세트장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어차피 자신은 이 세계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이다. 이 상황을 타계할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뒤에서 스태프가 졸졸 따라오며 촬영 일정과 감독의 지시에 대해 간단히 말해주는 걸 경청하던 그 순간.

툭.

“…앗! 죄송합니다!”

다른 스태프가 뒷걸음질을 치다 자신과 부딪힌 것 같았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덩치에 맞지 않는 장비를 챙겨가느라 미처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지도 못한 건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 와중에도 그의 자세는 불안해보였다. 앞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도 있지만, 얼른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곤란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뇨, 괜찮습….”

배세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짧게 들이켰다.

그의 상체를 가리던 장비가 치워지고, 자신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던 스태프의 얼굴이 드러났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이 정신나간 세계는 어디까지 현실을 조작할 셈인 걸까.

방심하지 말라는 류건우의 조언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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