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Days

BETTER DAYS 13

료켄유사♀

쓈's Universe by 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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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요약 - 피해자들은 사건을 공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날조와캐붕특히주의

닷새

찬란한 빛 속에서 두 아이가 다정하게 손을 잡는다.

꼭 그런 꿈을 꾸던 유사쿠는 현실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한번 깜빡이자 현실의 모습이 보였고 다시 깜빡일때마다 현실의 윤곽은 또렷해져갔다. 그리 밝지 않은 아침의 빛 속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가만히 눈을 감고있는 료켄의 얼굴이었다. 정신이 돌아오며 료켄이 자고 있는 것을 인식하자 손에 다른 감촉이 느껴졌다. 료켄이 유사쿠의 손을 가볍게 잡은 채로 마주보며 자고 있었다. 료켄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니 신혼방 침대에서 같이 잔 듯 했다. 어제 분명히 작업실 소파에서 잠들었다는 걸 기억하는 유사쿠는 료켄이 먼저 잠든 자신을 침대로 옮겨주었다고 추측했다. 아무래도 소파보다는 침대가 편하게 자기 좋으니. 깜빡, 깜빡. 유사쿠가 두세번 눈을 깜빡였다. 생각없이 료켄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전에도 결혼하고 나서도 료켄이 잠든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료켄이 자고 있다. 료켄의 새로운 모습을 본 유사쿠의 가슴이 콩닥였다. 그의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속눈썹이 길고 섬세하다. 언제나 굳센 인상을 주었던 굵은 눈썹은 자연스럽게 풀어져 있고 무뚝뚝한 입꼬리도 함께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풀어진 모습의 그가 신선한 동시에 놀랍다. 사랑스럽다. 그리고 평소와는 매우 다른 모습인데도 아름답다는 것이 신기하다. 유사쿠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자신이 눈에 띄이는 것을 싫어해 인물의 외형이나 스타일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그런 유사쿠의 눈으로도 료켄은 미남이면서 미인이였다. 외모를 보고 그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런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여태껏 누군가를 사랑하며 연애를 한다던가 결혼을 하는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10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이 사람은 나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존재다. 유사쿠가 배싯 웃었다. 사랑하는 료켄과 이렇게 있는 것이 정말 행복해서……

한편 방이 더욱 밝아지며 료켄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불을 덮지 않고 자고 있는 데다 평소 보던 옷이 아니다. 잠옷도, 일상복도 아닌 편안한 옷. 유사쿠의 뇌가 다시 회전했다. 곧 나름의 답이 도출되었다. 아침운동을 할 때 입는 옷이겠지. 료켄은 아마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씻은 뒤, 아침을 차리는 루틴이 있을거야. 트레이닝 룸도 꾸준한 사용 흔적이 있었고 아침마다 바디워시의 향이 났으니까. 자기관리가 철저할 료켄이라면 그런 습관이 있을 법 하다. 그런데 운동복을 입고 자고 있다니. 매사에 진중한그답지 않은 모습이다.

'아이와의 작업이 새벽 늦게 끝나 많이 피곤한가.'

그렇다면 계속 자게 두어야겠지싶어 조심스럽게, 료켄이 깨지 않게 료켄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과연 그는 많이 피곤했었는지 유사쿠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정리하고 와도 그대로였다. 유사쿠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교복을 꺼냈다. 잠옷을 전부 벗고 셔츠를 집으려니 서랍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있는 료켄의 옷에 괜히 눈길이 갔다. 가장 위에 있던 상의를 들고 펼쳤다. 분홍색 브이넥 무지 티. 료켄이 주로 입는 스타일. 무슨 생각인지 스스로도 모르게 유사쿠가 그 분홍색 옷을 입었다. 료켄에게는 딱 맞는 사이즈가 당연히 유사쿠에겐 조금 컸다. 목둘레가 보아왔던 것 보다 더 넓게 살갗을 드러내었고 옷자락은 엉덩이를 완전히 덮었다. 소매 끝으로 손가락 두어마디만 나와 있다. 유사쿠가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충동적으로 료켄의 옷을 입은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면서도 느낌이 괜찮다. 료켄의 체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면서 그가 감싸안고 있는 듯 하다. 료켄의 옷에서 유사쿠의 가슴으로 물들어가는 행복함이 낯설지 않다. 두 번째 청혼을 하러 찾아온 날, 차가운 비가 내렸던 그 날 료켄의 옷을 입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일주일 정도 되었으려나. 료켄은 유사쿠를 반드시 밀어내야만 했을 입장에서도 비에 푹 젖은 유사쿠를 집으로 들여 씻게 하고 옷을 빌려주었다. 그 당시와 다르게 함께 링크된 사랑을 하고 있는 현재는 유사쿠가 편안하게 자기 좋게 침대로 옮겨주었다. 비록 고난이 있었어도 그때도 지금도 유사쿠를 진심으로 위한다. 사랑으로. 유사쿠는 료켄의 마음을 안다. 그리고 그만큼, 료켄의 마음만큼 유사쿠도 료켄을 사랑한다. 료켄을 바라보며 가볍게 내려온 속눈썹이 사랑에 전율한다.

'역시 너는 나에게 더없이 중요한 사람이야. 10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삐삐삐삐삐삐-

잊고있던 알람이 울렸다. 유사쿠가 바로 소리없이 달려가 알람을 껐지만 미안하게도 료켄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정신도 번쩍 든 것은 아닌지 눈꺼풀이 다시 살풋 감기며 '으음……'하고 거칠고 낮은 소리로 목이 울렸다. 더 자도 좋다는 뜻으로 아까처럼 옆에 누워 료켄의 손을 도닥였다. 일찍 일어났지만 료켄의 옷을 입는 것에 푹 빠져 알람을 잊고 있었다. 제 알람이 피곤한 료켄의 잠을 깨우게 되었으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띄엄띄엄 반쯤 눈을 뜨던 료켄의 표정이 바뀌었다. 슬픈 듯한 표정으로.

"무슨 일…… 있어…?"

료켄이 여전히 잠에 취한 목소리로 웅얼웅얼 말했다.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왜…… 그런… 슬픈 얼굴을 하고……"

도닥이던 유사쿠의 손을 꼭 잡았다. 부드럽게 감기는 힘과 온기가 무척이나 따뜻하면서도 슬픔이 전해졌다. 피곤한 그를 깨운 것이 너무 미안한 나머지 얼굴 뒤에 숨길 수 없었고 료켄이 잠결에도 그걸 읽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료켄이 다시 양손을 뻗어 유사쿠를 천천히 품에 안았다. 달래듯이, 꼬옥.

료켄이 걱정한다. 나의 슬픔을.

머리 위로 료켄의 숨소리가 들린다. 유사쿠는 자세를 편하게 바꾸며 료켄을 껴안았다. 네가 피곤한 것 같으니 더 자는 것이 좋겠다고, 깨워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후……"

웃는 듯한 숨결이 유사쿠의 머리를 스친다. 거듭 팔에 힘이 들어갔고 '괜찮아.'라는 발음이 겨우 들리는 대답이 왔다. 아마 '별 일 아니구나.'하는 안심이리라. 유사쿠도 작은 안심의 숨을 료켄의 가슴께에 뱉었다.

"잘 자, 료켄."

"너도."

료켄이 정수리에 입술을 가볍게 부볐다. 곧 잠에 빠진 숨소리가 들렸다. 어째서인지 잠에서 완전히 깼던 유사쿠의 눈도 자꾸 감기기 시작했다.

'학교……'

가야하는데.

'……됐어……'

어린 부부는 늦잠을 선택했다.

품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유사쿠다. 사랑스러운 유사쿠. 따스한 보드라움이 기분 좋다. 료켄은 무의식이 방울방울 떠오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 앞이 선명해지자 품의 아내에게서 아주 조금 떨어지며 고개를 내렸다. 품 안의 유사쿠도 료켄의 움직임에 맞추어 고개를 올렸다. 눈이 마주치자 유사쿠가 먼저 미소지었다.

"잘 잤어, 료켄?"

"그래. 너도?"

"응. 오랫만에 늦잠을 잤어."

"늦잠……"

지금 몇 시지? 정신이 팟, 하고 강하게 들며 머릿속이 급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료켄이 벌떡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보았다. 곧 정오다. 오전의 기억을 더듬자 유사쿠를 침대로 옮긴 뒤 홀로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새벽 운동을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은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유사쿠의 곁에 누워 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잠들어 버렸다. 필름이 끊기듯 잠드는 부분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속절없이 잠에 빠져들었나 보다. 기억의 마지막인 유사쿠가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생각나 료켄은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사랑스럽다는 생각만 자꾸자꾸 드는 스스로가 한심한 탓에…… 침대가 살포시 흔들리며 유사쿠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유사쿠도 몸을 가볍게 일으켜 료켄과 자세를 맞추었다. 무언가 썩 좋지 않은 모습에 왜 그러냐며 물었다. '너의 자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거든. 그것만 자꾸 떠올라.'라고 말할 수 없으니 다른 대답을 하려다가…… 조금 당황한 탓인지 나쁜 말이 료켄의 입밖으로 툭 나왔다.

"왜 깨우지 않았어?"

남 탓. 옳지 않은 말이 나왔으니 바로 사과를 하려 손을 내려 유사쿠를 보았다. 유사쿠는 그저 고개를 갸웃하고 기울였다.

"네가 잘 자고 있어서 깨우면 안될 것 같았어. 그리고 내 알람에 네가 깼었는데,"

"……? 내가 한 번 깼었다고?"

스트레이트로 푹 자버린 료켄의 기억과 달리 유사쿠는 끄덕, 긍정했다.

"더 자고 싶어 하길래. 깨우지 않았어."

"하…… 그래, 그랬군…… 미안해, 탓하려는게 아니었다. 자버린 건 내 탓이니까. 어쨌든 넌 나를 배려해준 거니 고마워. 덕분에 잘 잤어, 유사쿠."

"……그래."

료켄이 미소로 답례를 하자 유사쿠가 눈부신 듯이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피했다. 료켄은 유사쿠의 볼이 아주 살짝 발갛게 물든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유사쿠가 지금 입고 있는 잠옷이 아닌 옷이 익숙하디 익숙해서 뭐지, 싶었기 때문이었다. 몸을 앞으로 조금 기울여 유사쿠의 모습을 보았다. 이불 위로 나온 유사쿠의 몸은 옷태가 전혀 다르지만 분명 자신이 자주 입는 옷이었다. 어깨까지 드러나고 여유있게 떨어지는 넉넉한 라인과 소매. 평소 자신이 입은 태와 너무 달라 바로 알아채지 못 했다. 이 옷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종류의 옷이었나? 유사쿠가 입어서 그렇다. 유사쿠가 나의 옷을…… 이전, 유사쿠가 료켄의 옷을 입었던 그때의 내색 못했던 사랑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지금의 모습이 뇌리에 들어왔다. 그대로 시선이 유사쿠에게 고정되었다.

커다란 초록 눈동자, 분홍빛 입술, 부드러운 턱선, 가늘고 긴 목, 둥근 어깨, 하이얀 가슴께. 그리고 유사쿠에게는 큰 나의 옷.

암전 속 유사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이 된 것 처럼 유사쿠만 보이는 동시에 이성이 어렴풋해져 간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감정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저항없이 유사에 빠지듯 유사쿠에게 스르륵……

"료켄."

흐려졌던 눈동자에 빛이 퍼뜩 들어왔다. 료켄의 변화를 느낀 유사쿠가 료켄을 부르자 정신이 돌아온 료켄은 허리를 곧추 세웠다. 유사쿠 쪽의 팔이 어느새 허리를 감싸려 했다는 걸 알게 되어 급히 회수해 허벅지 위에 놓고 주먹을 세게 쥐었다. 나는 대체…… 이성이 흐려지는 답지않은 스스로가 낯설고 당혹스럽다. 다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인가. 료켄은 당혹감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어둠 저편에서 어제의 일이 상영되었다. 셔츠 단추를 반쯤 끄른 유사쿠의 몸, 속옷 채로 안기는 유사쿠의 몸…… 몸 안의 피가 뜨겁게 순환한다. 그만, 그만! 바보같이 그걸 떠올리면 어떡하냐고 본인을 책망했지만 그렇다 한들 이미 뭉게뭉게 떠오른 생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이라 해야할지 적란운 같았던 유사쿠에 관한 생각은 곧 유사쿠가 날려버렸다.

"내가 네 옷을 입은게 싫었어?"

핫, 료켄이 유사쿠의 괜한 오해에 정신을 차렸다. 물론 누군가 료켄의 옷을 입는 걸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성격인데다 상상도 못 하고 하기도 싫지만 유사쿠는 단연 예외다. 대답이 생각과 말을 정리하기도 전에 나왔다.

"아니, 너라면 내 옷을 입어도 좋다. 그저 너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정신을 잃은 것 뿐이다."

"'정신을 잃었다'니?"

료켄은 스스로 솔직의 덫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도 돌려 말해서.

"……잠시 이성이 멈추었다는 뜻이다."

"잘 모르겠어. 네가 내 옷을 입는다면 나도 그럴까?"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

"아."

유사쿠의 눈이 한층 커졌다 돌아왔다. 곧 초점이 멀어지고 바로 료켄에게 맞춰졌다. 유사쿠가 작게 웃었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네가 내 옷을 입은 걸 상상해봤어."

"작은 옷을 억지로 입은 나…는 꽤 끔찍하겠는걸."

"귀여웠어. 작아서 불편해 하는게."

"………………"

"그래도 이성이 멈추지는 않았어. 역시 모르겠다."

제대로 설명해야 하는 건가, 생각했지만 료켄은 자세히 말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선택에는 찰나의 시간이 걸렸을 뿐 깊은 생각은 없었다.

료켄이 자세를 바꾸더니 유사쿠의 허리를 안고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곧 료켄의 뜨거운 숨이 닿고 평소보다 조금 뜨거운 입술이 느껴졌다. 료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사쿠는 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낯선 키스 부위에 손을 얹은 유사쿠가 자세를 바로잡은 료켄을 보았다. 료켄의 얼굴이 붉고 입술은 앙 다물었다. 아직 허리에 얹혀진 손에 힘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구나.'

본능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유사쿠도 자세를 바꾸어 료켄의 허리를 두 팔로 감쌌다. 쪽, 소리와 함께 유사쿠가 료켄의 목덜미에 긍정의 의미를 전달하였다. 입술을 떼고 반쯤 선 엉거주춤한 자세로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랑하는 그의 아주아주 깜짝 놀란 얼굴을 보았다. 이불에서 나온 맨 허벅지에 방 공기의 다른 온도가 스쳐간다. 네가 나에게서 성적매력을 느꼈을 줄이야. 그렇게 말하기 전에 다시 입술을 앙 다문 료켄에 의해 침대에 눕혀졌다. 빠른 속도에 유사쿠의 눈이 꾹 감겼다. 풀린 유사쿠의 양 손에 손깍지가 껴지고 몸이 밀착하는가 싶더니 더욱 뜨거워진 입술이 닿았다. 몸과 입술이 바르작바르작 밀착해 움직였다. 뜨겁다. 네가 뜨거운지, 내가 뜨거운지, 둘 다인지 두 사람은 모른다. 숨이 막힐 즈음 료켄이 입술을 떼고 유사쿠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이성이 돌아왔다. 눈동자가 하늘의 뜨거운 태양처럼 보여지기도 하였다. 성적으로 고양된 서로를 보며 참았던 숨을 거칠게 쉬었다. 키스가 이리도 달았던가. 언제나 달았지만 이번엔 특별한 달콤함이다. 뜨겁고, 달아. 유사쿠가 맛이 남은 침을 삼켰다. 료켄도 그리하였다. 숨을 머금은 낮은 목소리가 말했다.

"네쪽에서도 오는 건 예상 못했다…… 너는 항상…… 대담함으로 나를 곤란하게 해…… 오늘은 더욱 더……"

"너도야. 내가 모른다고 행동으로 나섰으니까. 역시……"

료켄이 몸을 숙여 미소와 함께 얼굴을 가까이 하였다.

"네가 허락했으니 다른 것도 해 볼까."

"어떤거? 너의 성적 흥분을 어떻게 표현할 지 궁금해."

"콕 집어 '성적 흥분'이라니 너 답군."

"섹스야?"

"아니. 이런 거다."

다시 입술이 뜨겁게 맞닿았다. 료켄의 손을 풀고 유사쿠의 아래로 손을 넣어 몸을 밀착했다. 유사쿠도 료켄의 목에 팔을 둘렀다. 하아, 들숨과 함께 움직이던 입술 너머로 료켄의 혀가 유사쿠의 이를 톡 두드렸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열어달라는 뜻을 감지한 유사쿠가 이를 살짝 벌렸다. 바로 료켄의 혀가 들어오고…… 처음으로 한 깊은 키스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중간중간 료켄이 입술을 떼고 코로 호흡해, 라고 말을 하지 않았으면 숨막히다고 료켄의 가슴팍을 밀었을지도 몰랐다. 한참 뜨거운 육체와 입술을 느끼던 키스가 끝나고 반짝 빛나는 실이 둘의 입술에 걸쳐 늘어졌다. 료켄이 티슈로 유사쿠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 진한 붉은 색의 볼과 입술 위로 짧게 입을 맞추었다. 몽롱한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유사쿠가 눈을 깜빡였다. 료켄도 마찬가지였다. 한쪽 손은 어느새 유사쿠의 맨 허벅지에 놓여져있었다. 둘은 동시에 침을 삼켰다.

지잉-

유사쿠의 핸드폰으로 아이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뭐해? 자?]

유사쿠와 료켄은 메시지와 함께 일상의 정신이 돌아왔다. 시간은 정오를 훨씬 넘겼고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 중요한 만남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늦은 것은 아니지만 둘 만의 세상에 빠져 잊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늦잠 잤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료켄은 어느새 방을 나섰다.

'우리는 섹스 안 해?'

뒤늦은 의문이 떠올랐다.

"에~ 우리가 제일 일찍 왔나?"

카페나기 트럭은 장사를 하지 않고 덴시티 외각도로에 주차되어 있었다. 덴시티를 내려다보기 좋은 전망대와도 같은 그 위치는 유사쿠가 처음으로 리볼버를 본 그곳이었다. 오후의 해가 따뜻하게 유사쿠와 카페나기를 비춘다. 코가미 저택을 나서자마자 듀얼디스크로 들어온 아이는 유사쿠의 손목에서 먼저 온 사람이 있나 둘러보았다. 약속시간 전이라 유사쿠만 도착했다. 가볍게 자리를 펴고 진한 캔커피를 마시던 쿠사나기가 유사쿠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여어~ 쿠사나기! 안녕!"

"안녕, 쿠사나기씨."

"일찍 왔네? 어서와, 점심은 먹었어?"

유사쿠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런치로 오믈렛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짧게 설명하였다. 그 노란 오믈렛이 얼마나 매끈하고 부드러웠는지, 그 안의 채소가 얼마나 감칠맛이 좋았는지, 료켄의 정성이 느껴지는 멋진 브런치였다는 말은 당연히 생략하였다. 그래도 쿠사나기는 유사쿠의 조금 살이 오른 볼을 보며 료켄이 잘 챙겨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미소로 화답하였다. 유사쿠가 의자를 끌어와 쿠사나기 옆에 앉았다.

"어, 학교 안 갔어? 사복이잖아."

"응."

"그게, 놀랍게도 리볼버 선생이랑 늦잠을 잤대."

"그 녀석도 늦잠을 자는구만. 그래. 늦잠. 좋지."

쿠사나기가 '늦잠'을 한 번 더 강조하며 고개를 주억댔다. 그가 말하는 '늦잠'에 작은 함의가 있음을 유사쿠와 아이는 알지 못했다. 쿠사나기는 학교를 빠진 것에 별 말 없이 유사쿠에게 아오이가 주었던 레몬차를 내주었다. 따뜻하고 새콤달콤한 김이 올라온다. 연한 꿀색의 레몬차. 더욱 추워지는 날씨에 맞추어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맛이다. 목과 손끝에서부터 우정의 온기가 퍼져간다.

'따뜻하게 입고 나가.'

먼저 집을 나오기 직전, 료켄이 한 말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더 따뜻한 옷은 가져오지 않아 그대로 입고 나왔지만 료켄은 유사쿠가 보기에도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젊어서, 어려서 괜찮지만 옷감을 넘어 피부로 찬 기온이 느껴지기는 하였다. 료켄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지만 유사쿠는 계절에 맞추어 세세하게 골라 입을 수 있을 만큼 옷이 많지 않았다. 료켄도 그걸 아는지 별 말 하지 않고 '이따가 보자.'며 가볍게 키스를 하였다. 옷, 사야하나. 자금 사정도 넉넉치 않고 추위는 익숙하다. 유사쿠는 고민이 되었다. 그나마 있는 옷들도 대부분 낡은데다 가장 좋은 옷은 쿠사나기가 새해 선물로 주었던 학생이 입기 좋은 코트였다. 아껴입느라 정말 추울 때 말고는 입지 않았는데 그것이라도 꺼내입어야 하나.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자동차가 점점 가까워지다 카페나기에서 떨어진 자리에 멈추어 서는 소리가 들렸다. 쿠사나기도, 유사쿠도, 아이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덕 아래에 멈추었는지 차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인기척이 여럿 다가온다. 곧 모습을 보인 사람들은 약속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자이젠 아키라, 타케루, 아오이, 스기사키 미유였다. 먼저 쿠사나기가 자이젠 아키라에게 악수를 청했다. 둘은 어른스러운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어제 이그니스를 보고싶어했던 미유는 유사쿠의 듀얼 디스크의 아이를 바라보고 손을 뻗었다.

"뭐라고 인사를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네가 아이구나? 반가워."

"아쿠아의 오리진인 스기사키 미유지? 직접 보는 건 나도 처음이네. 반갑다, 아쿠아와 분위기가 비슷한데?"

"그래? 그럼 아쿠아도 기뻐하려나?"

"응, 분명 그럴거야."

"이그니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신기해……"

스기사키 미유는 아이와 작은 악수를 나누면서 생각에 빠진 얼굴이었다. 아오이에게서 아쿠아에 대해 들었어도 직접 이그니스를 대면하는 것은 느낌이 다를테니 모두들 말 없이 둘의 만남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그녀에게 아쿠아가 얼마나 좋은 녀석이었는지 웃으며 설명하였다. 스기사키 미유는 아이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쁘게 들었다. 아오이가 미유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소를 지었다. 함께 아쿠아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미소일터.

"다행이다. 아쿠아에 대해 들어서."

"정말 다정하고 사려깊은 파트너였어. 나는 아쿠아의 파트너여서 영광스러웠어."

"고마워, 아오이."

"아쿠아도 너희의 말에 기뻐할거야. 분명히."

유사쿠는 아오이가 스기사키 미유에게 하듯, 자신의 듀얼디스크를 바라보는 타케루의 팔에 손을 얹었다. 타케루의 슬픈 눈에 위로가 스며들어 밝은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유사쿠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커피가 나왔다. 무척 중요한 오늘의 목적에 관한 토론을 시작해야한다. 모두에게 긴장감이 감돌고 자이젠 아키라가 운을 뗐다.

"약 2시간 후면 하노이의 기사들이 이쪽으로 올 것이야. 자, 그럼 우리의 요구를 정리하자."

이미 결심의 베이스와 결론은 정해져있지만 말하면서도 마음이 그지 편하지 않았다. 로스트 사건, 하노이 프로젝트에 관한 진실은 우리끼리 묻어두기로 한다. 세상에 알리고 정의로운 결과가 나오길 모두가 바라지만 이 사회에서 과연 그것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이루어져도 아직은 어린 피해자들이 입을 상처와 그를 온전히 짊어져야하는 아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그니스에 관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정부와 솔 테크놀로지가 세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지고의 인공지능을 방치할 수 없으니까. 아이는 공식적으로 죽은, 아니, 파괴된 것으로 정해졌다. 행여 사건과 이그니스에 관해 알려지게 되어도 '고성능 AI 개발 중 있었던 솔 테크놀로지와 코가미 박사의 알력싸움'으로 변형, 축소될 것이다.

피해자들은 결심했다. 이제 그들은 선택을 했다. 이견은 없다.

"이야기가 끝났나."

"……리볼버!"

"료켄."

정확한 시간, 피해자들이 결론을 내린 순간 료켄은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유사쿠는 한 번 더 료켄의 이름을 불렀고, 타케루는 표정을 잔뜩 찡그렸다. 리볼버의 현실 모습을 처음 보는 세 사람은 '이 자가 바로 그……' 그의 위협적인 존재감에 긴장하였다. 그들에게 다가온 리볼버, 료켄은 유사쿠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팔에는 처음 보는 옷이 들려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리볼버 선생. 혼자 왔어? 부하들은?"

"처음부터 그들을 너희 앞에 세우면 너희들이 무척 거북할 테니 우선 나부터 나섰다.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나는 실험을 주도한 코가미 키요시 박사의 아들, 코가미 료켄이다."

"……………"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주동자인 아버지를 이곳에 세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매우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모두 말이 없다. 조용히 가해자의 아들의 말을 듣는다. 그들의 귀에는 자연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료켄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 고개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실험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의 아들에게서라도 처음으로 사과를 들었다. 진심어린 사과를.

모두 말이 없다. 료켄은 긴 침묵만큼 줄곧 고개를 숙였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피해자들의 가슴에 사죄의 울림이 잦아질 즈음 유사쿠가 료켄을 일으켰다.

"너의 의지는 전해졌어."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는 말과 함께.

리볼버의 신호에 따라 하노이의 삼기사도 그 자리에 와 진심으로 사죄하였다.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닌 사죄를 하였다. 료켄처럼 고개를 숙이고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한 발 늦었지만 이제야 당사자들에게 사과를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피해자들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죄를 저지른 자들을 용서할 수는 없다. 도저히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피해가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비록 용서를 하는 아주 커다란 용기를 발휘한 것은 아니지만 사과를 받는 괴로운 용기를 보였다. 곧 사후 속죄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기사와 코가미 박사의 대리인 료켄은 피해자들의 보호자를 찾아가 사건과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사죄하기로 결정되었다. 아이들도 함께 그 자리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드디어 끝났다.

마무리되는거야.

그런 생각이 피해자들의 가슴에 사무쳤다. 10년 전, 그 사건부터 오늘 사죄를 듣는 지금 이 순간까지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괴로움, 고통, 슬픔. 지난 10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늘부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새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조금 더 시원한 마음으로. 그렇게 결심을 하자 모두의 마음에 오랫동안 드리워졌던 검은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햇빛이 따스하다.

삼기사는 빠르게 물러났다. 피해자들이 그들의 얼굴을 오래 보고싶지 않아 했기 때문에 그들은 내일부터의 일정을 잡고 그들이 할 일로 돌아갔다. 료켄은 유사쿠와 잠시 함께하기 위해 남았다. 료켄은 유사쿠의 남편으로서 스스로를 다시 소개했다. 유사쿠가 료켄의 손을 잡았다. 료켄도 유사쿠의 손을 꼭 잡았다. 서로의 손에서 반지가 반짝인다. 다른 이들 앞에서의 애정표현은 처음이라 어린 부부는 조금 부끄러워했지만, 풋풋하고 귀여운 느낌이었다.

먼저 회사로 돌아가기 직전에 자이젠 아키라가 말을 꺼냈다.

"결혼하고 보는 것은 처음인가, 후지키군? 잘 지내는 것 같구나."

"만족스러워."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나는 먼저 간다. 다음에 또 보자."

미유에게는 오늘 아오이와 자고 가도 좋다는 말을 하고 그는 먼저 떠났다. 대기업의 No.2인 그가 이만큼 시간을 낸 것도 대단히 힘들었을 터. 아오이는 잠시 떠나는 차의 뒷 모습을 보다 유사쿠에게 오늘 학교에 오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늦잠이래, 아이가 '잠이 많은 어린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먼저 대답했다. 타케루는 태블릿을 꺼내 수업의 진도와 숙제를 알려주었다. 아오이가 미유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대화를 이끌었다. 평범한 학생들의 모습. 료켄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주의 깊게 보는 시선을 느낀 유사쿠가 힐끗 료켄을 보았다. 당장 그의 속은 모르지만 그저 보는 것은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왜?"

유사쿠가 료켄에게 짧게 물었다. 료켄은 유사쿠를 바라보다가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하였다.

"덴고 교복에는 카디건이나 베스트가 포함되어 있나?"

"맞아. 나는 잘 안 입지만."

"입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앞으로 날이 계속 추워질 테니까. 그리고 네 후드 집업도 더 따뜻한 걸로 바꾸고. 이걸 가져왔어."

료켄이 줄곧 팔에 들고 있던 옷을 내밀었다. 옷을 받아 펼쳐보니 장식이 없는 단색의 검은 자켓이었다. 단추의 위치로 보아 남성용 자켓이다. 이것을 왜? 유사쿠가 표정으로 물었다. 료켄은 유사쿠가 옷을 확인하자 다시 그걸 받아 유사쿠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어깨선이 유사쿠의 어깨 밑으로 내려왔다.

"행여 네가 추울까봐. 이거라도 입으라고 가져 온 거다. 내가 예전에 입은 거라 조금 낡았지만, 사이즈가 작은 건 이게 유일하다."

"난 괜찮아. 춥지 않아."

"저녁은 추울텐데."

"……알았어."

유사쿠가 소매에 팔을 넣는 동안 료켄이 후드를 옷 속에서 빼 주었다. 옷 자체는 사이즈가 약간 크지만 라인이 타이트한 스타일이었는지 불필요하게 헐렁헐렁한 느낌은 아니었다.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료켄의 손길이 진지하다.

"느낌 좋네."

"응, 잘 어울려."

여자들이 바로 반응해주었다. 아이가 듀얼디스크를 덮지 못 해 구겨진 소매를 톡톡 두드렸다. 료켄은 소매도 정리해 주었다. 따뜻하다. 춥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 겹 더 입으니, 그것도 료켄이 직접 골라 온 료켄의 옷을 입으니 아주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슴 안쪽 부터 따뜻하게 퍼져나가는 온기.

"너의 옷은 따뜻해."

"그래?"

"너의 온기가 더해지니까. 분명 그럴거야."

"와, 그 유사쿠가 이런 소리도 하네. 신기해라~"

아이가 참지 못하고 깐족거렸다. 유사쿠는 늘 하던 '입 다물어.'가 아닌 '그러게.'라고 대꾸했다. 예상 외의 대답에 깜짝 놀란 아이를 바라보며 살풋 웃었다.

"나도 내가 신기해. 변해가는 거겠지."

"변하면 싫지 않아?"

"이런 변화는 좋은 거야."

잠깐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쿠사나기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도 성장이지. 성장은 변하는 거냐고 아이가 다시 물었다. 다음은 료켄이 대답하였다.

"인간은 인간관계에서 타인과 연결되며 조금씩 변하고 물드는 거다. 그런 것을 겪는 것도 성장에 포함돼. 아이, 너도 유사쿠와 만나고 변했을 터."

"나도 성장한 거야?"

"맞아."

"오오~. 유사쿠, 나 왠지 감동이야~ 네가 그렇게 말해주다니!"

"나의 파트너를 인정했을 뿐이야."

몸을 쭉 늘린 아이가 유사쿠의 볼에 찰싹 붙어 엉엉 울었다. 괜히 눈물이 나는 아이를 유사쿠가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변해간다. 너도. 나도. 그래도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성장을 해도 내가 여전히 '나'고, 너는 '너'인 것이다. 유사쿠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쿠사나기 씨와 만나고, 아이와 만나고, 료켄과 만나고, 친구가 생겼다. 지금은 사랑하는 그 아이와 결혼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과연 나도 변했구나,싶은 미소가 은은하다. 10년 동안의 아무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혼자만의 시간이 다시 떠올랐다. 오늘, 다시 변화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용기를 낸 모두와 함께.

료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만 돌아가지. 유사쿠, 너는 여기 더 있을 건가?"

"응. 오늘을 느끼고 싶어."

"춥지 않게 그거 계속 입고 있어. 집에서 보자."

유사쿠의 반지에 가볍게 입을 맞춘 료켄은 그럼, 하고 돌아갔다.

"둘이 분위기가 참 좋다. 정말 사이 좋은 부부구나."

스기사키 미유가 웃으며 말했다. 모든 일의 원흉의 아들, 흉악한 하노이의 기사의 수장과 사랑을 하여 결혼한 것에 대해 거북할텐데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밝게 웃으며 순수하게 둘의 사랑을 축복했다. 

"고마워."

유사쿠가 기분좋은 부끄러움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보글보글. 식탁 위에서 온두부가 뜨겁게 끓고 있다. 료켄이 유사쿠의 그릇에 국물과 두부를 담아 주었다. 잘먹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시작한 식사. 식탁 옆에는 막 쇼핑을 끝난 쇼핑백을이 옷을 품고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 추운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고 돌아오자 마자 먹는 온두부는 무척 뜨거웠다. 호호 불어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양념간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다시마의 감칠맛이 밴 국물을 품은 두부의 고소한 담백함이 간장의 짠맛으로 간이 맞아 맛있게 느껴졌다. 뜨거운 밥과 두부 덕분에 속이 뜨끈뜨끈하게 덥혀져간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나베요리. 료켄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화려한 재료의 나베를 만들 수 있었고 그걸 해주지 못해 미안해 했지만 유사쿠는 이런 소박한 식사도 료켄이 정성을 다해 해주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솔직히 이건 저녁을 먹고 돌아올 줄 알고 늦는다고 연락했다가 저녁시간 전에 돌아온 탓이기도 하였다.

"옷은 어떤 걸 샀나?"

"바지, 니트같은 겨울옷 몇 벌, 따뜻한 스타킹 정도?"

"겉옷도 사지."

"샀어."

유사쿠에게 옷이 거의 없다는 걸 안 아오이가 돈 걱정 말고 옷을 사러 가자고 권유했었다. 이미 결혼식 때 입은 원피스를 그녀에게 받은 유사쿠로서는 미안함에 거절했지만 상황을 료켄에게 말하자 료켄이 바로 유사쿠의 덴시티 계좌에 돈을 보낸 것이다. 결혼했으니 내 돈이 네 돈이다, 라면서. 돈까지 받았으니 유사쿠는 처음으로 여자친구들끼리 오랜 쇼핑에 나섰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옷을 끊임없이 고르며 갈아입기까지 했으니 꽤 지친데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나에겐 맞지 않다.'였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첫 경험은 언제나 낯서니까.

첫 경험.

결혼한지 닷새가 되었지만 아직 료켄과 섹스를 하지 않았다. 낮의 좋았던 분위기가 생각났다. '우리는 섹스 안 해?' 유사쿠는 료켄에게 지금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막상 말을 하려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료켄은 하기 싫은가?'

'내가 섹스에 대해 물으면 날 음란하게 느끼려나?'

'오늘 아침 이상의 성적 흥분을 느끼지 않나?'

물론 료켄은 그런 면에서 담백한 편이겠지. 오죽하면 사실 료켄이 성적 흥분을 느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였다. 료켄이 그렇다면 굳이 섹스를 하자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유사쿠는 그저 료켄과 연인이, 부부가 하는 연애행각을 하고 싶었다. 마치 침대에서 몸장난을 치거나, 옷을 사러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그런 정도의 행위를 하는 것 처럼. 유사쿠는 생각하다 료켄에게 묻지 않기로 결정했다. 료켄의 성적인 면은 그의 프라이버시인 만큼 그를 존중하기로 하였다.

'하고싶은데.'

가장 놀라운 것은 자신이 명백하게 료켄과 육체관계를 맺을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성적 즐거움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구나 싶었는데. 이것도 료켄을 사랑하며 생긴 변화겠지. 료켄은 먹는 입도 정갈하게 예쁘다. 그저 그런 생각만 하기로 하였다.

씻고 나온 료켄이 본 것은 사온 옷을 정리하는 유사쿠였다. 옷을 다시 살펴보고 상품 텍을 하나하나 떼고 있다. 료켄이 가까이에서 보자 옷은 전부 검은색 등 어두운 색 뿐이었다. 기왕 옷을 사는 거, 다양한 디자인, 다양한 색으로 사보지.

"전부 어두운 색이군."

"난 이게 어울려.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뭐, 전부 어둡게 코디네이트하면 색 배치에 신경이 덜 쓰일테니까."

"그래도 하나는 어두운 색이 아니야."

유사쿠가 어느 쇼핑백에서 꺼낸 것은 분홍색 티셔츠였다. 브이넥의 무늬가 없는 약간 어두운 분홍색. 료켄이 늘 입는, 오늘 입었던 그것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골라온 듯 하였다. 료켄은 하, 웃어버렸다.

"네 생각이 나서 사왔어."

옷을 몸에 대보는 유사쿠도 조용히 웃는다. 료켄은 유사쿠의 곁에 앉아 유사쿠를 품에 안고 볼에 뽀뽀를 연신 하였다.

"맞다, 네 옷은 사지 않았어. 사고 싶었는데 사이즈를 모르겠더라고."

"난 됐어. 마음으로 충분해. 그것보단 네가 네가 내 사이즈를 알아내겠다고 다른 남자를 안지 않은게 다행인걸."

"내가 왜?"

"이해 못 했군."

료켄이 유사쿠의 귀에 속삭였다. 나를 껴안을 때와 남을 껴안을 때를 비교하는 거지. 유사쿠는 깜짝 놀라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말했다.

"농담이었어."

농담은 설명을 요하는 순간 실패한거라고 덧붙였다. 유사쿠는 그제야 웃었다. 정말 그렇게 할 정도로 대담하진 않다고 덧붙이면서. 그렇게 둘이 후후, 즐겁게 웃으며 택을 떼다보니 잘 시간이 되었다. 옷들은 전부 빨래바구니에 넣었다. 내일 유사쿠와 료켄이 나간 사이 스펙터가 집을 관리하며 세탁할 터.

어린 부부가 침대에 앉아 키스를 하자 방의 불이 꺼졌다. 유사쿠는 언제나처럼 료켄의 팔을 베고 누웠다. 가슴에 기대고 숨소리와 심장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천천히 빠져들었다. 유사쿠가 잠든 뒤, 유사쿠의 호흡에 맞춰 숨을 쉬던 료켄도 점점 잠이 쏟아졌다. 내일부터는 사죄를 하러 다녀야한다. 죄의 무게가 드디어 오늘을 기점으로 반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유사쿠 덕분이다. 자수와 사죄를 결심한 것도, 유사쿠와 현실에서 만난 것을 시작으로 스스로가 변했기 때문일테지.

사랑스러운 너, 유사쿠.

"너에게 고맙다고 억만년동안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군."

료켄도 유사쿠를 따라 잠에 빠져들었다. 행복한 어린 부부는 미소를 지은 채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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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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