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고장났던 생수 플랜트가 기적적으로 회생하면서 마을은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몇 주만에 되살아난 플랜트는 깨끗한 물을 쏟아냈고, 제네오라 록의 사람들은 더는 탁하게 오염된 물로 연명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천천히 말라죽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탈수에 시달리다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만 있지 않아도 되었다. 대부분의 플랜트 기사가 요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사례비를 마련할 수 없었던 마을로서는 말 그대로 기적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창고마다 쌓여 있던 술통을 땄다. 간신히 되찾은 물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 한바탕 술판이라도 벌이려는 심산이었다. 마을에 머물던 외부인들, 노인들, 어린아이들 할 것 없이 마을의 술집에 모여 음료수며 술을 나누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얼마 전 사막을 헤메다 이 마을 사람에게 구조된 울프우드도, 이틀 전에 이 마을에 당도해 플랜트를 무료로 수리해준 문제의 플랜트 기사도 있었다.
이상한 점은 바로 거기서 시작한다. 울프우드가 손가락을 나무 탁자를 두드렸다. 톡, 톡, 톡. 규칙적이면서도 미묘하게 빠른 박자다. 정신없이 소란스러운 실내, 구석에 처박힌 시커먼 외부인에게 신경 쓸 겨를조차 없는 축제의 한복판. 그 사이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잔을 들어올리는 금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래, 자신을 밧슈라고 소개한 남자가.
그는 육백 만 더블 달러가 달린 수배지 속에서조차 뺀질거리며 웃는 얼굴이었다. 붉은 코트, 주황색 선글라스, 왼팔의 의수와 빗자루처럼 북슬거리는 금색 머리카락, 선명한 파란색 눈동자. 처음에는 단순히 그 녀석을 사칭하는 별 볼일 없는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천문학적인 현상금은, 때론 액수 자체로 악명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그런 놈들과 저 남자는 경우가 다르다는 걸 울프우드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의 예리한 직감은 저 남자를 ‘낯선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명확히 밧슈 더 스탬피드라고 인지했다. 덜 낡은데다 조금 더 외투의 형태에 가까운 붉은 코트도, 알이 큼지막한 선글라스도, 인간의 골격을 닮은 의수와 총기보다 둔기에 가까운 총도. 남자를 이루는 세세한 것들 하나하나가 울프우드에겐 낯설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으나… 그럼에도 울프우드는 탁자 몇 개 너머에서 마을 사람들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저 남자가 정말 밧슈 더 스탬피드라고 확신했다.
그 때에 비로소 울프우드는 깨달았다. 자신이 어디에서 눈을 뜬 것인지.
낯선 사막, 낯선 제네오라 록, 낯선 사람들, 신문의 1면을 장식하던 낯선 줄라이의 소식, 구멍 뚫리지 않은 낯선 달. 그리고… 낯선 인간 태풍. 울프우드가 허탈하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기껏해야 지옥에라도 떨어진 줄로만 알았더니만, 이래서야… 정말이지 질이 나쁜 꿈이다. 아니면 신의 농간이던가. 착잡한 마음으로 눈앞에 놓인 잔을 들어 단번에 들이켰다. 이 꼴이 되어서도 쉽게 취하지 못하는 몸이다. 괜히 속이 타는 기분에 한 잔을 완전히 비웠더니, 울프우드의 주위에 앉아 좋을 대로 떠들어대던 마을 남자 몇이 킬킬거리면서 박수를 쳤다. 소란이 일자 한 차례 시선이 우르르 몰렸다. 이 쪽을 바라보는 인파 사이로 언뜻 파란 눈동자를 본 것도 같았다.
축제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이 자식들 물은 핑계고 단순히 진탕 취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일의 일이 걱정되는 사람들은 진작 자리를 떴고, 실내에 남은 건 내일이 없을 정도로 부어라 마셔라 정신이 없던 주정뱅이들, 그리고 자리를 떠날 타이밍을 놓친 외부인 한두 명 뿐이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거의 다 술에 취해 나자빠진 덕분에,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울프우드 한 명 뿐이었다.
“아까 열심히 마시던 것 같은데 취한 기색도 없네. 맛은 몰라도 독한 걸로는 자신있었는데 말이지.”
가게 주인이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었다. 이른 저녁까지는 어린아이를 곁에 데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늦은 까닭인지 아이는 보이지 않고 혼자였다. 중간에 이 층으로 잠시 올라가던 걸 봤으니, 그 때 재워 두고 오기라도 한 거겠지. 그 나잇대 애들은 다 그랬다. 울프우드는 잔에 약간 남은 술을 흘긋 내려다보고 대꾸했다.
“잘 안 취하는 체질이라서 말이야. 어쩔 수야 없지.”
“저런, 취하고 싶을 때는 좀 곤란하겠는걸.”
“그것도 그래.”
순순히 시인하자 가게 주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곤란하다고 말한 것치곤 시원스러운 소리다. 울프우드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움직임에 탁자가 가볍게 흔들리자 그 위로 엎어져 있던 이들이 으음, 하며 뒤척거렸다. 도무지 깰 것 같은 기색이 없었다. 몇 분 전까지 이번에는 이길 거라면서, 포기를 모르고 팔씨름을 걸어오던 게 무색해지는 모습이었다. 울프우드는 괜히 그 마을 청년들을 건드리지 않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게 주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참, 당신. 에이든네 여관에서 머물던가? 그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울프우드가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그렇다고 그를 위한 자리까지 마련해 불러들였던 가게 주인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답 없이 멋쩍게 서 있었더니, 주인장은 그걸 승낙으로 받아들였는지 환하게 웃었다. 서글서글 웃는 얼굴이 어쩐지 불안하기만 하다. 여전히 사람 좋게 웃는 얼굴로 가게 주인이 말을 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니까 상관없는데, 밧슈까지 여기서 재우긴 좀 미안해서 말이야. 그래도 이 마을의 은인인데.”
거절할걸.
밧슈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울프우드가 생각했다.
살다 보면 매몰차게 거절의 말을 뱉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라는 것을 간과한 대가였다. 울프우드가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헤 웃는 얼굴로 비틀거리는 밧슈 더 스탬피드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인가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다가, 단념하고 걸음을 옮겼다. 인마, 똑바로 걸어. 헤헤, 담배 냄새 난다…. 이 자식 완전히 맛이 갔구만….
여관으로 돌아갔더니 주인 아저씨가 반색하며 그를 반겼다. 오, 로사가 보냈나? 그래, 은인을 찬바람에 재울 수야 없지. 3층 두 번째 방일세. 붉은 얼굴의 중년인은 울프우드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방 열쇠를 떠넘겼다. 울프우드는 떫은 얼굴로 제 손에 들린 자그마한 열쇠를 내려다보다가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은인이라면서 너무 대충 다루는 거 아니냐?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자식을 처리해 버리기라도 하면 어쩔 셈인지. 무려 육백 만 달러 짜리 거물인데 말이다. 투덜거리는 건 덤이었다. 그러다 밧슈의 몸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사람의 무릎과 계단이 부딫히는 것치곤 불길한 쿵 소리가 났다. 밧슈가 술에 취한 채로도 윽, 비명을 질렀다. 울프우드는 못 들은 척 했다.
어쨌든 울프우드는 밧슈를 이끌고 삼 층까지 올라와야 했다. 이래저래 불평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낯선 일은 아니었다. 빗자루 자식, 그러니까… 그가 ‘아는’ 밧슈 더 스탬피드도 종종 이런 일이 있었던 탓이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하는 건 물론이고, 잠도 자지 않고 버티다가 기절하듯 잠드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빗자루를 들쳐메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울프우드의 몫이었다. 설마 다른 빗자루를 만나서도 이 꼴일 줄은 몰랐지만. 밧슈를 침대 위로 내려놓으면서 울프우드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환한 달빛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울프우드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달의 표면 위로 시커먼 구멍 같은 것이 겹치는 듯 하다가, 곧 다시 사라졌다. 울프우드가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떴다.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울프우드가 품을 뒤져 담배 한 개비를 찾아냈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붙는 시선을 느끼면서 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밧슈가 중얼거렸다.
“여기 내 방인데.”
좋아, 모르는 목소리군. 울프우드가 여전히 창문 바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답했다.
“그 방 주인을 삼 층까지 들고 올라온 건 나니까 좀 참아라.”
“너, 아까 로사네 술집에 있었지? 몇 번인가 눈이 마주쳤던 것 같은데.”
“그래.”
“날 알아?”
울프우드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가… 대답했다.
“…너는 날 모르겠지만 나는 널 알지. 유명인이잖아. 밧슈 더 스탬피드, 육백… 육백만 더블 달러던가? 재주도 좋아, 사람 좋은 얼굴로 그런 거물이라니.”
울프우드가 더듬거렸다. 술집 벽에 붙어 있던 수배지를 보긴 했지만, 울프우드만큼은 액수보다도 밧슈 더 스탬피드의 얼굴에 주목하고야 말았으므로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빗자루의 현상금보다 터무니없이 작다는 것만 기억할 수 있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육백만 더블 달러는 거액이지만… 그가 알던 숫자에 비하자면 상대적으로. 울프우드가 시선을 내렸다. 밧슈는 울프우드의 말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멋쩍게 웃는 얼굴이었다. 울프우드는 그 얼굴에서 익숙한 기색을 읽는다. 환한 달빛 아래서나 간신히 드러나는 감정이었다. 나이브스에게로 그를 안내하면서도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표정이기도 했다.
울프우드가 화제를 돌렸다.
“너, 아까 여관에 들어오자마자 깼지? 정신이 들었으면 제 발로 좀 걸을 것이지, 성격하고는.”
“아, 그건… 몸에 힘이 안 들어가더라. 알고 있었어? 미안.”
밧슈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뭔갈 깨달았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급한 움직임에 낡은 이불이 마구잡이로 구겨졌다. 울프우드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능청스레 담배 연기를 뱉는다.
“설마 그래서 일부러 계단에 갖다 박은 거야?!”
“제 발로 걷지도 않은 자식이 생사람 잡네. 실수였는데.”
“거짓말이지? 그거 엄청 아팠는데!”
“시끄러워, 옆방 사람 깨겠다.”
밧슈가 즉시 입을 다물었다. 대신 울프우드를 원망스레 노려보면서 끙, 앓는 소리를 냈다. 투덜거리긴 했어도 할 말이 없다는 건 아는 모양이었다. 울프우드가 콧웃음쳤다. 웃는 숨에 흰 연기가 섞여 흘러나왔다. 밧슈가 그 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시선을 내려 바라봤더니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다.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 누구 하나 먼저 피하지 않는 정적이 흘렀다. 그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밧슈는 울프우드가 아는 빗자루가 아니고, 울프우드조차도 눈앞의 밧슈가 낯선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이상한 일이다. 한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얼굴은 이제 훤히 아는 얼굴이 됐다. 죽음을 지나서, 세계를 넘어서조차도. 심지어 그 밧슈 더 스탬피드가 울프우드를 알지 못하더라도…….
먼저 시선을 피한 건 결국 울프우드 쪽이다. 그는 오래 전 지나가듯 보았던 줄라이의 폐허에 대해 떠올렸다. 달에서 구멍을 뚫던 그 미지의 힘과, 용진성에서 목도했던 그 힘의 정체에 대한 것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어제자 석간 신문의 1면에 실렸던 거대한 줄라이 시티의 풍경도.
그는 이 세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시간을 되돌아오고도 아는 것이 없었다. 한 이야기가 끝나고 다른 이야기가 시작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언뜻 논리적으로 들리나 진실은 모를 일이었다. 그 자신이 어째서 이 곳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부터 그가 아는, 그러나 알지 못하는 노맨즈랜드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이 곳의 나이브스가 어떻게 자신의 형제를 불러들이고 이 곳의 퍼니셔가 과연 살아남았을지까지.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줄라이 시티가 어떻게 붕괴하지 않고 유지되었으며, 그것이 이 별 위에서 단순히 일어나지 않을 일인지,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불과한지. 눈앞의 밧슈 더 스탬피드가 그가 아는 빗자루와 같은 길을 걷게 될지, 과연 또 다른 울프우드와 만나게 될지, 그리하여 그 끝에 무슨 표정을 짓게 될지.
그리고 그 때에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너 엄청 이상한 표정이다.”
“그러냐.”
하지만, 그래. 자식이 결국 웃길 바란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알아차리지 못하기엔 자연스럽게 그를 향해 흐르는 신경이 거슬렸다. 익숙함에 취해 외면하던 마음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밧슈 더 스탬피드의 삶이 지나치게 고되지 않기를 바랐다. 좋은 일만 기억하려 하는 저 바보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함께 싸워 주기 위해 찾아왔던 그 남자가… 어느 먼 곳에서만큼은 보다 편안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눈앞에 존재하는 밧슈 더 스탬피드는 울프우드의 빗자루가 아니고, 이 밧슈 더 스탬피드가 또 다른 울프우드를 만날지라도. 그가 밧슈인 이상은. 붉은 코트를 입고 웃기지도 않은 휴머니즘 타령이나 하는 자식인 이상은.
밧슈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가 도로 뜨였다. 침실에 뻔뻔스럽게 서있는 누구 때문에 쉽사리 잠에 들지는 못하지만, 슬슬 잠이 오는 표정이었다. 울프우드가 창틀에 담배를 비벼 껐다. 희끗한 연기가 마지막으로 한 차례 피어오르다가 곧 사라졌다. 울프우드는 완전히 불이 꺼진 담배꽁초를 대강 휴지통에 던져 넣고, 밧슈를 햔해 손을 휘저었다.
“얼른 자라, 늦었다. 아니면, 뭐. 기도라도 해줘?”
“…보통은 거기서 자장가라도 불러 준다 하지 않나? 웬 기도?”
“목사거든.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방랑하고 있지.”
밧슈가 입을 다물었다.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지만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는 게 빤히 보여서, 울프우드는 괜히 검지손가락으로 밧슈의 이마 한 가운데를 쿡 찔렀다. 밧슈가 과장스레 이마를 감싸 쥐고 뒤로 드러누웠다. 울프우드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까딱였다.
“창문은?”
“괜찮아, 그냥 열어 둬. 고마워.”
“덕분에 술을 궤짝째로 얻어 먹었으니 이 정도는 해야지. 술집 주인한테 부탁받은 것도 있고.”
밧슈가 낮게 웃었다. 그리고는 곧 눈을 빛낸다. 그래서, 정말 기도해달라고 하면 해줄 거야? 의외의 대답에 울프우드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뭐야, 그 표정.”
“아니, 진짜 해 달라는 놈은 처음 봐서.”
“자기가 먼저 말 꺼냈으면서!”
밧슈가 투덜거렸다. 울프우드가 알았어, 알았어. 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손을 모아 쥐었다.
깊은 밤, 열린 창문 너머로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불 위로 드러난 파란 눈동자와 색 밝은 머리카락을 하얗게 물들이면서. 울프우드가 느릿느릿 눈을 내리감았다.
그래,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밧슈 더 스탬피드'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가 어떤 미래를 맞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기껏 죽음까지 넘어서 찾아온 게 무색하게도 이 곳은 그가 아는 곳과는 너무나 다른 곳이고, 울프우드가 아는 것이라곤 빗자루는 이 쪽이나 저 쪽이나 똑같이 바보같이 미련한 놈들이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알량한 동정심 같은 감정이라도 좋다. 아무것도 모르는 성직자의 자비라면 더 좋다. 그것이야말로 목사가 해야 할 일이니까. 죽은 자의 기도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울프우드가 얼마나 밧슈를 지켜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바라는 것마저 죄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나직이 외는 구절에 진심을 담는다. 그의 빗자루에게는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이다. 끝에 다다라서야 깨달은 마음이면서 비겁하게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밧슈 더 스탬피드의 앞까지 끌려오고서야 간신히 입에 담는 언어. 그러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부디 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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