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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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쁜 날의 일화

이런 상황을 보고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하는걸까요?

지동여명 by 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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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땅, 다른 이름으론 풍랑의 땅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였다.
서쪽은 그런 땅이였다. 그리고 그런 서쪽의 가장 깊은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기린?"

"네, 랑우님"

서쪽의 지도자. ‘백랑우’가 자신의 대리인을 불렀다. 얼굴과 말투는 평온해 보여도 꼬리는 탁, 탁, 내려찍는게 필시 심기가 불편한 상태일 터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를 인지한 대리인 ‘기린’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백랑우 옆에 나란히 섰다.

‘이번엔 또 무엇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지셨을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제 아무리 사령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랑우는 긴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짚더니 기린에게 말을 전했다.

"남쪽에 서신 하나만 전해줘, 주염하 그 새자식 얼굴 까먹기 전에 그 뻔뻔한 낯짝 좀 볼려하니까.
양심있으면 뛰어나오라고."

아. 저것 때문에 그리 화났던 거구나.
지도자의 위치와 맞지않는 꽤나 상스러운 말이였으나 그런걸 지적하기는 이미 포기했다.
반쯤 해탈한 기린은 익숙한듯 서신을 적어내려갔고 그저 남쪽과의 사이가 더 틀어지지 않기만을 마음 깊이 바랄 뿐이였다.


[남쪽의 고귀한 지도자께
먼저 갑작스럽게 서신을 보낸 점 사과드립니다.
다름이 아닌 서쪽 지도자 '백랑우'님께서 오랜 친우인 '주염하' 지도자님을 뵙고자원하시니
이리 연락을 드리옵니다. 긍정적인 답변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서쪽 대리인인 저 ‘기린’이 대신 전달해드립니다.]


“으음… 이걸 보세요. 황.”

“저도 보입니다. 봉.”

정말 간단하게 적혀있는 서신의 내용. 원하는 것은 그저 ‘만나는 것’ 그뿐이다.
그런데도 남쪽의 대리인인 ‘봉’과 ‘황’은 어째서인지 골머리를 앓고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번째로 ‘목적’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그저 친우를 만날려는 평범한 서신이나….
오래동안 ‘백랑우와 주염하’를 봐온 봉과 황은 안다.

‘이것들 만나면 무조건적으로 싸운다!’

그 백랑우가 주염하를 그저 보고싶단 이유로 부를리가 없다. 명백하다.
게다가 주절주절 미사여구를 붙히며 돌려말하지도 않았으니 급하게 적은것이겠지.

“생각해 보세요. 봉. 지금이 무슨시기입니까? 일명시장의 ‘대축제’가 코앞인 것은 물론이거와!”

“…. 시조 가문의 ‘익하천축제‘도 곧 이죠. 그쵸, 황? 이런 시기에 만나자고 하니 어이가 없는 것이고요.”

봉은 흥분한 황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여주었다.
일정히 제 어깨를 두드려주는 봉의 손길에 황은 이내 한숨을 길게 내쉬곤 서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쪽도 남쪽의 상황을 모르지 않을텐데…. 왜 이러는 것일까요. 봉.
온갖 축제에 지도자인 염하님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랴 정신 없고! 저희도 지금 일이 산더미잖아요!”

“하아…. 이런 상황을 보고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하는걸까요?”

그말은 둘의 집무실에 가득 쌓인 서류더미가 증명해주었다.

“황. 그러니 우리는 빨리 결정해야합니다. 이 서신을 무시할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염하님께 전달할것인지….”

당연하지만 어느 한 땅의 지도자의 서신을 무시한다는건 명백한 무례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전달하면 주염하님이야 신나서 뛰쳐나가겠지만. 남은 일처리는 고스란히 봉과 황의 몫이 된다.
이런걸 양자택일이라 하던가….

“하아…. 이를 어째요.”

“하아…. 이를 어쩌죠.”

봉과 황이 탄식했다.

“하아…. 이를 어쩔까?”

그리고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하나 더 겹쳐지고 봉과 황은 급하게 서신을 숨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끝없이 불타는 듯한 붉은 빛 머리, 커다한 화마를 담은 듯한 선명한 두 눈,
남쪽의 지도자 ‘주염하’가 그들 뒤에 서있었다.

“으...아? ...남쪽의 고귀한 지도자를 뵙습니다!"

봉이 놀라 인사했고.

"...! 남쪽의 고귀한 지도자를 뵙습니다."

황이 이여 침착하게 인사하였다.

그런 광경을 빤히 바라보던 염하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학! 아... 진짜 셋만 있을땐 편하게 대하라고 했잖아~! 우리가 1,2년본 사이야? 그리고 둘다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이후 주염하가 추억회상을 하며 옛날일부터 하나하나 주절거렸지만 지금 둘의 신경은 고작 추억팔이에 쓸 수 있는게 아니였다.
서신을 주염하가 봤는지, 안봤는지. 봤다면 어떻게 해야하고, 안봤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둘의 머리속에 오만가지 계획이 스쳐갔다. 눈빛으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함께 입을 열려는 순간.

“그래서~! 그 서신은 나한테 왜 숨기는거야?”

둘은 생각했다. ‘이거 뭣됐다.’고.

“자, 잠깐만요. 염하님! 제, 아니 저희 말 좀 들어보세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희가 숨길려던게 아니고! 그러니까-”

“응. 둘다 조용~!!”

그 한마디에 집무실의 안 공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괜찮아! 백랑우 그자식이 내 인생에 도움된적은 없었잖아? 그치?”

주염하가 정말 해사하게 웃었다.
정말 불길한 관경이였다. 그 말의 뜻을 알기에 더 섬짓해질 수 밖에 없는것이였다.

“원래라면 거절했겠지만~ 내 친.우.이자 타지의 지.도.자의 부름이니 가는 수 밖에~ 나 다녀올동안 일하고 있어? 축제 전까지 올게.”

서신이 들킨 이상 이미 선택지가 없었다.
봉과 황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 안 그래도 일이 넘쳐나는 판국에 이젠 각 행사 현장의 관리 감독이라는 극한의 일까지 맡겨졌다.
이를 어찌하리. 쓰디쓴 절망감만 꾹꾹 누른채 고개를 끄덕이고 둘은 앞으로 펼쳐질 근무의 바다를 해쳐나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창 밖으로 바람이 붉은 깃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하늘 위에서 본 남쪽 땅의 모습은 그야말로 축제의 땅이라는 이명과 어울렸다.
곳곳의 상가와 떠들썩하게 물건을 사고 파는 행인들, 그 위 하늘에서 하나 하나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있던 자는
이내 눈길을 돌리고 자신이 가야할 서쪽 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밑의 유료분량은 간단한 낙서 1장과 짧은 후일담이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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