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족입니다.
가지 않은 길 (뱅상
집에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안녕? 네가 상호니?”
반쪽을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신은 까만 구두에 발이 까졌다.
슬픔은 전염된다. 그래서 떠나보내기 전까지 주변 누구에게도 그녀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 흘리지 않았었다. 혹시나 입 밖에 낸 슬픔이 타고 흘러서 결국 그녀에게 돌아올까봐. 그게 어떤 슬픈 결말을 가져올까봐 그랬다.
“안녕…하세요…”
사랑을 주는 게 좋았다. 사랑을 받는 건 더 좋았다. 애정결핍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했으면 했다.
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마음을 쏟아부을 대상이 필요했다.
-제발, 그냥 가. 이젠 내가 부담스러워. 결국 내가 오빠 인생 망치는 거잖아. 싫어.
이왕이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너무 절실해서, 내가 얼마나 퍼부어도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나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서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들어줬으면 했다.
그래서 이 아이를 찾아갔다. 많이 아프고, 무연고에, 돈도 없다.
한 병원에서 아내와 똑같은 병을 가졌다고 어렴풋이 소문만 들었던 아이.
한 아주머니 무리가 6인실 한 구석에서 참외를 깎으며 혀를 쯧쯧 차는 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성인 입양은 어렵지 않았다. 단, 상호 동의가 필수
“상호야, 상호 동의만 있으면 된대-”
어색한 분위기에 되도 않는 농담을 던지자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어색해하던 애가 픽 웃었다.
병실에서는 비실비실한게 안색도 안 좋아 키만 큰 멀대갔더니, 웃으니까 꼭 똥강아지 같았다.
짐은 조촐했다. 새 가족을 들인다니, 가라앉아 있던 마음도 조금씩 들떠서 간만에 집을 치웠더랬다.
집을 치우다보니 결국 온 사방에 남은 물건과 기억이 보였다.
온 사방이 기억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막막하고 아득해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목놓아 울었던 것 같다.
쓰러져 잠들어 다음날 아침에 깨자마자 한 일은 새집을 찾는 것이었다.
급하게 부동산에서 집계약서에 싸인을 마치고 난 때서야 내가 정말 많이 외로워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에서는 분명 함께 한 추억이 있었던 집을 떠난다는 죄책감만이 가득해야 할 텐데, 그와 동시에 작은 해방감, 안도감이 있었다.
‘이제 그 집에 나 혼자 있지 않아도 돼.’
말이 입양이지 나이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다.
아파서 그런지 나보다 훨씬 어려보였는데, 겨우 5살 차이였다.
각자의 짐은 아주 조촐했다.
이전 집에 웬만한 기억이 담긴 물건들은 전부 놓고 왔기에 아주 간단한 옷가지와 노트북 정도 였다.
생필품이나 다른 물건들은 다 새로 구입할 생각이었다.
상호의 생필품도 아주 간단했다. 오랜 병원 생활에 병원에 있는 개인 용품과 옷가지 몇개. 그게 다였다.
여기가 이제 우리집이라며, 살갑게 말을 건네며 현관에 들어섰다.
“아 맞다. 상호야, 폰번호 좀 알려줄래?”
“…폰이 있긴한데요.”
상호는 멋쩍게 뒷통수를 긁적였다.
“원랜 있었는데, 통신비를 낼 방법이 없어가꼬. 와이파이만 돼요.”
액정이 여기저기 깨진 핸드폰을 손에 굴리는 와중 귀끝이 빨개진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랑 내일 같이 핸드폰 대리점 가자. 마침 새폰 나왔다던데 우리 같이 바꾸면 딱 좋겠다.”
“…네.”
폰을 사준다는 건 부담스러웠던걸까. 상호는 한참 눈을 도륵도륵 굴리더니 작게 대답했다.
“이쪽은 화장실, 저기가 상호 네 방이고 여기 방이 내 방이야. 일단 침대가 기본적인 가구는 미리 다 들여놨는데, 혹시 더 필요한거나 불편한 것 있으면 편하게 말해.”
“네, 감사합니다.”
상호는 쭈뼛거리며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짐을 들고 자기 방으로 향했다. 나도 가방을 방에 들여다놓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이 짧은 기간동안 내가 벌인 일이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 실감도 안 났다.
가족을 잃고, 다시 내 손으로 가족을 들였다.
일탈 없이, 늘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던 박병찬.
아무에게도 이런 저의 결정을 알리지 않았다.
개인적인 우여곡절을 이겨내고자 했던 일들을 빼고나면,
이런 평범과 거리가 먼 일을 하는 건 박병찬 자신으로서 처음인 일이었다.
괜찮을까? 그래도 그 전보단 훨씬 괜찮아지지 않을까?
크게 한숨을 내쉬고 방 밖으로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상호야, 우리 오늘부터 가족이야. 잘 부탁해.”
대답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들었나보다. 하긴 상호는 퇴원해서 온 건데. 피곤할만 하지.
수마가 몰려오는지 내 눈커풀도 무거워졌다.
침대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선 다시 한번 조용히 되내여봤다.
내 새로운 가족 잘 부탁해.
가지 않은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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