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산

루루리 by rururarar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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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 않은 길에는 항상 꽃이 펴 있었다.

 

 

산을 오를 때면

항상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누구는 산 아래 계곡,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절벽 아래에서 시작하고,

누군가는 오르기 좋은 산의 입구에서

또 누군가는 이미 산 중턱 꽃밭에서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산 정상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곁에서 함께 절벽을 오르던 몇 사람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소리 없이 사라졌지만, 떨어지는 모습은 봤다.

 

딱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도 매달려 있는 게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절벽을 올라 산의 입구에 도착했더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애들이 말했다.

같이 갔던 애들은 어디 갔어?

떨어졌어.

 

경악에 찬 표정으로 그 애들이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별로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먼저 산으로 향했다.

 

산길은 절벽보단 훨씬 나았다.

자갈과 바위, 경사가 심하긴 했지만,

매달려 있는 게 고작이던 절벽보단 나았다.

 

저들끼리 수군거리며 뒤따라 산을 오르던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함께 오르던 이들을 찾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좀 웃겼다.

그거 하나 못 오른다고 나가떨어진 건가?

누구는 절벽을 올라왔는데?

 

별로 오래 봐서 좋은 것 없는 아이들이라 신경 끄고 산을 올랐다.

 

산 중턱에 오르자, 커다란 바위 봉우리가 두 개 나왔다.

정상은 이어져 있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길이 달라졌다.

자리에 앉아 고민하고 있으려니, 곁에 다른 사람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

 

힐끔 보니 산을 오르기 좋은 복장은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서성이던 사람은 큰 고민도 하지 않고 오른쪽 봉우리를 골랐다.

나는 그래서 왼쪽 봉우리를 골라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올랐던 절벽에 버금가는 바위산이었다.

여기가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가끔 마주치는 사람이 응원을 건네고

들이치는 햇빛이 많아 주변이 밝다는 것 정도.

 

그 외엔 전부 쓸모없었다.

햇볕이 쓸데없이 뜨겁게 느껴졌다.

 

줄로 몸을 고정하고 발을 디디기 좋은 장소에 서서 잠깐 숨을 골랐다.

그러다 보니 건너편 봉우리에 눈길이 갔다.

 

건너편 봉우리에는 등산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람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 두어 걸음 오르다 앉아서 쉬고, 건물로 치면 한 층 정도 될만한 걸 오르더니 꽃밭에 앉아 쉬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줄에 외롭게 매달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맥이 풀렸다.

산을 오르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냥 다시 내려가서 저기까지 올라가 봤다는 걸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갈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그래 이만큼 올랐으니, 정상은 보고 가야지.

 

오를수록 사람은 더욱 없어졌다.

간간이 이어지던 응원도 전부 사라졌다.

나중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였다.

 

기어코 바위산에 가려져 있던 푸른 하늘이 보였다.

깨진 손톱 너덜너덜해진 등산화 땀에 절다 못해 소금기가 어린 옷까지.

 

정상에 널브러져 숨을 몰아쉬었다.

산 정상에는 다녀간 사람의 흔적이 많고 많았다.

 

재밌었다. 즐거웠다.

산이 너무 낮아 덜 재밌었다.

 

미친놈들.

 

산에서 내려오는 건 쉬웠다.

쉽고 빨랐다.

 

산 입구까지 내려와 다시 산을 올려다봤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거기는 얼마나 평탄한 길일까?

 

그쪽으로 오르면 나가떨어진 이들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바위산 봉우리에서도 계단을 오르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꽃밭에서 쉬던 그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지 않았을까?

 

그쪽으로 걸으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싶은 생각에 짐을 챙겨 산을 떠났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이해하면 물론 좋을 것이다.

견문이 넓어진다고 할 수 있겠지.

사람에 대한 이해도 넓어질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 써먹나?

그치들은 나와 같은 이들을 있는 것조차 모를 텐데.

그치들보다 모자란 내가 왜 먼저 그들을 이해하려 해야 하는가.

 

 

돌아가는 길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 들렀다.

컵라면을 하나 먹으며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 이러니 삭막해지는 게 당연한 건가.

웃고 있으려니 편의점 직원이 미친놈 보듯 날 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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