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 왕국의 공주는 아버지를 선

일처다부제 왕국의 공주-10

범인은 현장에 돌아온다

웹소설 by 도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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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무거운 공기속에 끝났다.

분명 어딘가 톱니바퀴가 어긋난 부분이 있음을 확신했다. 진짜 범인을 알 수 있는 부분이. 그러나 식사를 끝날 때까지 위화감의 정체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광대왕의 지독한 향수 냄새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뜨거운 쥐가 난 듯한 기분이 머리통을 감쌌다.

천둥왕이 나서서 어색하게 화제를 돌려보려고 애썼지만 별 말솜씨 없는 그에게 상황을 해결할 재주는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방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번 한 번의 사건으로 큰 일이 생기지는 않을테지만, 분명 좋은 출발점은 아니었다. 나는 베개에 얼굴부터 몸을 던진 후 깊게 한숨을 쉬었다.

"으아아아아-"

베개에 묻혀 뭉게진 내 한숨 소리 사이로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례해도 될까?"

본래 조금 낮은 음성을 일부러 두 음 정도 높여서 말하는 듯한, 상점 점원이 일하는 중에 쓸 것 같은 목소리. 광대왕의 목소리였다.

"들어와요."

예상대로, 문 밖에는 별자리 무늬 가운을 걸친 광대가 서있었다.

"잘 준비 하고 있었어?"

"아뇨, 그냥 누워 있었어요."

"그...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어. 따지고 보자면 딱히 내 잘못은 아니지만..."

사과하면서 그걸 본인 입으로 말하는구나. 뭐, 광대왕의 잘못이 아닌 건 맞지만. 그보다 사과하러 오면서 또 옷을 갈아입고 온 걸까.

"아니야, 광대 아저씨도 고생 많았어요."

"쪽지를 그대로 믿을 게 아니라 너한테 한 번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괜찮다니까요."

광대왕은 수줍게 웃었다.

"아무튼 큰왕은 조심해. 그 녀석은 자기 뜻이랑 어긋나면 무서운 짓을 하거든. 혹시라도 걔가 따로 부르거나 하면 꼭 나한테 먼저 말해줘야 해, 알겠지?"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약속이야, 응? 걱정돼서 그래."

나는 주저하며 광대왕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그의 숫자는 분명 호감도 21에 신뢰도 10이었지. 그러나 지금 그 숫자는 24와 8로 변해있었다.

'오늘 반나절은 쭉 같이 있었으니까 호감도가 늘어난 건 이해 되지만...'

나는 줄어든 신뢰도 숫자를 살펴보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내가 뭔가 못미더운 모습이라도 보였었나?'

가장 친한 아버지 후보와의 신뢰도가 한 자리 수라니, 상당히 불안한 숫자였다. 큰왕보다 낮다는 것도 조금 충격이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눈치챈 광대왕이 빙그레 웃으며 눈을 마주쳐왔다.

"왜 그래? 토끼눈을 하고. 귀엽게."

광대는 내 볼을 주물주물 만지며 말했다.

"있잖아요,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잠시 단어를 골랐다. 내 수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눈 앞에 보이는 이상한 숫자들에 대해서 광대왕에게 물어봐도 괜찮을까?

"말해주기 전에 비밀 약속 해줄 수 있어요?"

"비밀? 그래, 물론이지."

"사실은..."

"비밀 얘기를 할 거라면 문은 닫고 하는 게 어떤가."

익숙한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광대왕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것은 활짝 열린 방 문, 그리고 그 너머에 서있는 천둥왕이었다.

"원래 여기 왕들은 다른 사람 방에 만날 갑자기 찾아오나요?"

"그러니까 문 단속을 잘 해야지."

"넌 또 무슨 일로 왔어?"

퉁명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는 광대왕의 쏘아붙임에, 남자는 시덥잖게 털어내듯이 답했다.

"나 또한 오늘 있었던 일로 얘기하고 싶어서 왔다."

"괜찮아요. 너무 걱정해 주시지 않아도..."

"아니, 그것이 아니라..."

천둥왕은 시선을 조금 피하며 말했다.

"왜... 나만 빼고 놀러 갔지."

여기 왕들 정신연령 괜찮을까. 이 사람들이 정치를 해도 되는 걸까.

"나는 비 안 오는 날에는 안 바쁘다고 말 했었는데..."

"아, 저도 워낙 갑자기 있던 일이라..."

"산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데... 나도 선물 정도는 언제든지 줄 수 있다."

"너는 이 상황에서 그러고싶냐, 진짜."

"으윽..."

천둥왕은 조금 쭈뼛거리다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네 말이 맞아. 미안하다, 안 그래도 힘들텐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았다. 오늘 일은 조금 어렵게 됐지만 선물에 죄는 없지. 나는 두 손을 공손히, 그러나 공격적으로 내밀었다.

"응?"

"저도 언제든지 받을 준비 되어 있어요."

"아, 지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광대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천둥왕은 다소 당황하여 잠시 주머니를 더듬거리다가, 이윽고 뭔가가 생각난 것인지 허리춤을 뒤적거렸다.

"음, 그렇군...자!"

그가 내민 것은 장검이라기에는 조금 짧고 단검이라기에는 조금 긴 검이었다. 분명 이런 무기에 대한 정확한 명칭이 있을텐데, 나는 아직 배운 적이 없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푹푹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열 살한테 선물로 칼은 좀 그렇지 않냐."

"칼이 아니라 푹푹이야. 인형이잖아."

"어딜 봐서?"

"봐봐, 귀엽지?"

천둥왕은 친구의 코 앞에 칼날을 들어 보였다. 검이 살벌하게 번뜩이며 스르릉, 하는 소리를 냈다.

자세히 보니 '푹푹이'의 검신에는 유성 잉크로 동그라미 두 개와 곡선이 그려져 있었다. 얼굴이라고 그린 걸까.

"그거 받지 마, 아이. 위험해. 큰왕한테 혼난다."

"이건 인형이야. 봐봐, 여기가 손이고, 여기가 꼬리..."

"그게 되겠냐."

"귀여운 인형인데요."

"그치, 인형이지?"

나는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광대왕 혼자만이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나'라는 표정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손잡이의 십자 모양 바로 위에 얼굴이 그려져 있으니 나름 인형 모습 비슷하기는 했다.

"이건 무슨 마법이 있어요?"

"마법?"

"큰왕 님이 준 선물에는 마법이 있다고 했었는데."

솔직히 썩 마음에 드는 선물은 아니었기에 조금 장난스러운 지적을 뱉었다. 천둥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했다가 곧 말을 이었다.

"그래, 내 것도... 내 선물도 대단하다. 이건 궁극의 '생명 마법'이 깃든 검이야."

광대왕이 옆에서 우우우우- 하는 효과음을 냈다.

"그게 어떤 마법인가요?"

"이걸 살에 꽂아서 목과 몸통을 분리 시키면 대부분 죽는다."

"대부분이 아니라 다 죽지 않을까요."

"대단하지?"

"대단하네요."

나는 검을 받아 들며 말했다. 다행히 그리 무거운 물건은 아니었다.

"근데 이 인형...을 살에 꽂아서 목과 몸통을 분리하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생명 마법은 굉장한 고위 마법이니까. 아무래도 캐스팅 난이도가 있는 편이지."

"네..."

이 남자가 하는 말은 농담인지 아닌지 알기가 어려웠다.

조금 이상한 선물이긴 하지만, 누군가 내 감정을 신경 써 준다는 것은 퍽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머리를 가득 채웠던 '누가 끈을 옮겼겼는지, 왜 쪽지를 남겼는지'에 대한 고민은 어느 새 물에 녹은 솜사탕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누굴까, 가방끈을 훔쳐간 건."

눈치 없는 천둥왕이 다시 주제를 끌고 오기 전까지는.

"훔쳐간 게 맞는지는 모르지. 그냥 땅에 떨어진 걸 누군가 뒤늦게 주운 게 아닐까."

"그건 그렇군. 하지만 그 쪽지는 분명히 이상하다. 대체 왜 아이의 글씨체까지 흉내 내면서 그런 말을 쓴 걸까."

사실 글씨체를 흉내 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나는 상당히 어른스러운 사람이지만 아직 연필 쥐는 법 만큼은 서툴러서, 누구든 왼손으로 필기구를 잡고 글자를 써내려가면 내가 쓴 글씨처럼 보일 테니까.

그러나 대체 누가 그런 글을 썼는지 궁금한 것은 확실했다.

"뜰을 청소하는 시종 중 누군가가 시계끈을 주워서 장난질을 친 거겠지. 알잖아, 여기 나 싫어하는 사람 많은 거."

"글쎄..."

"사실 그 얘기도 하고 싶어서 왔어. 있지, 아이야, 너무 추궁하지 말고 넘어가자. 큰왕이 조금 화가 많아서 지금만 잠깐 감정적으로 구는 거야. 진정되면 네가 잘못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을 거고, 더 있으면 완전히 잊어버릴걸. 괜히 벌집을 쑤셔서 일을 크게 만들면 싫잖아."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큰왕을 조심히 다루어야 하기는 하겠지만, 내 결백을 증명할 수도 없는 상황에 굳이 따지고 들기는 싫었다.

"그럴게요. 사실 나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아까는 글쎄... 혼자 계속 걱정하다 보니까 챠챠까지 의심해 버렸어요."

"챠가타이?" 옆에서 듣고 있던 천둥왕이 물었다.

"예, 아까 산책 중에 잠깐 마주쳤거든요. 가방끈을 잃어버리기 직전에."

그는 으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광대왕이 '그럼 이만 들어갈까, 잘 자,'라고 말하려고 숨을 들이키기 직전, 천둥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광대에게 물었다.

"그런데, 앙크바야르."

"응?"

그는 오랫동안 품고있던 의문을 마침내 캐묻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쪽지에도 그런 말이 써있었지. 뭔가 어색하던 게 그거였나..."

"뭔데 그래."

"너는..."

천둥은 내 허리춤에 감긴 가죽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너는 왜 아까부터 저걸 '시계끈'이라고 부르지?"

"...응?"

아.

순간, 머리 속에서 퍼즐 조각이 달칵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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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잠자는 페럿

    왐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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