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

그러니 전위

W by 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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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살기를 바란 적 없었어요….

클로데리크는 자신의 아래에서, 목이 죄인 채 희미하게 웃는 남자를 바라본다. 손가락 아래 느껴지는 맥박이야 거세게 뛰고 있었으나 그 말을 하는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탓에, 클로데리크는 기이함까지 느껴버리고 마는, 것, 이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선 생존이 포함된다고 하던데, 넌 아닌가 보구나.

짐승 새끼라 그러니? 빈정거림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꺼끌거리는 혀를 타고 올라왔다. 말을 게워내는 건 쉬운 일이었고, 다만 그 흔적은 낭자하다. 클로타르는—이 시점에서 클로데리크는 헛웃음마저 났다. 이제 그를 로티가 아닌 클로타르로 칭하는 것이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그 말을 듣고서도 기이한 낯을 유지할 뿐이었다.

우리는 생존을 원하는 게 아녜요... 삶을 원하는 거지.

클로타르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용 아래에서 짓눌려 사는 이 생은 이미 삶이 아니다. 그러니 죽음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발치에서 출렁거리는 것이었고, 자신은... 그래,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도망도 결국은 용기였고 하나의 선택이었으므로, 선택을 포기한 삶에서 다른 길은 없었다. 그러니 짐승 새끼보다도 못한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짐승은 결국 생존의 삶을 택했으나 살아갈 의지가 있었고 본인에게는 없는 것이라.

클로타르는 목이 죄여가는 그 새로 신음과도 같은 한숨을 내쉰다. 조금 더 힘을 실으면, 어쩌면 당신께서는 쉬이 모가지를 부러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는 다정의 무게를, 하나 둘 재어내보기나 하는 클로타르의 태도는 자신에게 닥친 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리된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으니까. 시계 초침이, 흐르고... 가까이 느껴지는 숨소리에서 맥박을 읽어낸다. 공백이 길다...

뭐해요... 죽이지 않고.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목, 그러나 말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입술에서 말을 빼앗는대도 의미마저 빼앗을 수는 없었으니까. 남자의 침울한 눈이 자신의 혈육을 올려다 본다. 근원적 죄악을 바라본다. 시선이 첨예하게 맞닿는다. 음습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동공, 수정체, 홍채 따위를 샅샅히 뜯어보게 되는 순간 떠올리게 되는 오래된 구절, 심연을 바라보는 자는 심연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망각치 말라는 말. 아... 심연은 여기였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그러니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삶을 빌고 구걸하고 간구하고 갈망하게 될 때야, 그때가 되어야 그 얄량한 생을 부러뜨리게 될 것이었다. 죽음을 원하는 지금, 죽일 수는 없었다.

클로데리크는 목을 쥔 손을 놓았다. 우습게도 기침이 터져나오는 클로타르를 내려다보았다. 막힌 기도에 숨이 들어온 탓이었다. 혈관에 다시 피가 제대로 흐르는 탓이었다. 클로타르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지금 자신을 죽이는 것이 클로데리크의 앞날에는 더 좋을텐데도, 왜? 몽롱한 머릿속, 모가지가 아파오는 와중에도 의문은 선명하다. 나를 죽이면 최소한 이 안에서는 건들 사람이 없을걸요… 아, 지독한 강자존. 어쩔 수 없잖아요, 당신에게는 명분이 있어요. 명분도 있고 세력도 있고, 힘도 있는데 대체 왜? 벌겋게 남은 손자국만이 선명하게 남은 목은 그런 의문을 점액질처럼 진득하게 흘린다.

이유가 뭐예요…. 내가 지금, 널… 죽이면 어쩌려고.

방어흔 하나 제대로 없는 액사가 되었을 테였다. 삶을 위해 몸을 날뛰는 것은 거의 본능이었을 테지만, 힘의 차이는 이미 명백했고 근육 하나 제대로 없는 몸뚱이이니 손톱 자국 따위나 겨우 났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목소리 하나 높이면 다른 사람들이 와 당신을 잡아갈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러니 이 일에는 단점밖에 없다고. 그러니… 클로타르는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끝없이 생각했다. 클로데리크는 그 꼴을, 바라본다.

이러니까.

이러니 지금 때가 아닌 겁니다, 클로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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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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