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don?

W by 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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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누구십니까, 알렌 경 아니신지······.

셀윈의 희미한 목소리가 빈정대듯 튀어나온다. 그 가벼운 인삿말 하나에 쏠리는 이목, 그 따위야 알 바 아니라는 듯 걸음을 옮기는 클로타르 셀윈은 기어이 그와 시선이 맞닿아선 비스듬하게, 바라본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만남이다. 호그와트 졸업 이후로는 소식 하나 들리지 않던, 그 순혈 셀윈 가의 자식이 알렌에게 말을 건다니!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말이야, 어제 또 클로데리크가 예언자 일보 1면에 실렸던데? 따위의 말들이 배경음처럼 깔렸다. 백색 소음 한 번 제대로네. 케리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클로타르를 올려다 본다. 스치는 시선이 낯설다. 연극의 시작이다.

셰익스피어의 심장을 박제해 살아가는 나라, 발자국 하나하나에 시편이 있었고 숨소리마다 극본이 있는 나라. 클로타르와 케리스, 둘은 자신들의 성이 그럴싸한 등장인물과도 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우리를 죽일 생각으로 이 연극을 올리는 거예요, 기억나지 않더래도 존재했으니까. 응, 그런 거지. 어떻게 불려도 결국 이건 도움이 될 거니까. 그러니, 둘은 연극을 시작한다. 둘이서만 합을 맞출 연극을.

미스터 셀윈이시군요. 어지간히 소식이 안 들려서 걱정했습니다! 하하, 다행히 건강하신 듯 해서 안심이네요.

어지간히 소식이 안 들려 뒈진 줄 알았었는데 살아있긴 했구나, 정도의 번역이 될 것이다. 케리스는 그런 말을 해내면서 구역감이 쫓아오는 것을 참아내려야 했다. 억지로 접어 올린 눈꼬리하며 몇 번이고 연습해 유들하게 새나오는 말소리. 언뜻 비굴해도 보이는 음성. 튀어나오는 모가지를 잡아 꺾어버리고 싶다는 욕망. 이건 자살이야? 케리스 알렌은 확신하지 못한다. 클로타르는 케리스가 은으로 된 장신구를 손으로 쓸어내리는 것을 본다. 손목에 알맞게 잠긴 와이셔츠의 소매를 한참이고 바라다 본다. 적당히 비싸지만 다들 알고 있을 브랜드의 잘 알려진 셔츠. 그러니까 말하자면 남에게 부를 알리기 위한, 아. 하나 어울리지 않는다.

요새 원체, 거리가 더러웠으니 말입니다….

미간을 얄팍하게 찌푸리며 입꼬리를 끌어당기는 클로타르는 역겹다는 듯 손수건으로 스스로의 코와 입을 잠깐 막았다. 잡종 덕에 더럽다는 의미의 함축. 근래에는 안 보이니 좋다는 뜻도 더해진 것이다. 어쩐지 웃음이 새나올 것만 같았다. 케리스의 입에도 옮아버린 클로타르의 발언은 상스런 욕설이었는데 어째 지금의 것은 훨 이질감이 들었다. 곧게 편 허리께하며 내려다보는 시선 따위도 연습 때와는 다르다. 그린 듯한 순혈, 그럴 듯한 발언…. 어울리지 않아. 하지만 클로타르가 셀윈으로 있기 위해선 해야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가 셀윈, 이려면…. 순혈? 그게 뭔데, 결국 잘 브리딩 되었단 뜻 아닌가

영 환경에 예민하신가 봅니다. 하기야 저희 집에 있는 꽃도 잘 다루지 않으면 바로 시들—

짝.

셀윈의 손이 알렌의 뺨을 내려쳤다. 무방비 상태의 고개는 꺾여내 뒤틀렸고 시선은 땅이 떨어진다. 각본에는 없던 사태였다. 얼얼한 뺨에 케리스의 정신이 확 차려진다. 헛나왔어. 브리딩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말을 쏘아버린 이유일 것이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 시드는 건 죽는 거니까, 보관이 아니고 우수한, 무슨 말로, 빌어야, 알렌의 머릿속에서 수십개의 생각들이 차오른다. 위액마냥 게워지는 생각들 하나하나가 전부 기사화되고 있었다. 타이포그래피마냥, 신문 스크랩마냥. 다행인 점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클로타르 뿐이고, 숙여진 고개는 표정을 가리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수를, 했습니다. 혀를 잘못 놀렸군요. 이런 무례를 범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그래도 출신이 출신인지라 그런 것 같습니다.

제프리의 손은 느리게 케이의 빰을 두드려댄다. 정신 차려요, 라는 말의 대신. 하나, 둘… 천천히 투욱, 툭. 내려까는 손길은 확연한 무시며 경멸, 멸시. 제프리는 당황한 낯짝을 좁혀 역겹다는 표정을 내지었다. 케리스 알렌이 한 말에는 클로타르 셀윈이 받아쳐야 한다. 케이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확실히, 출신이 출신이라 그런지 입으로 내뱉는다고 다 말리 되는 건 아니군요….

클로타르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흡사 미소와도 같은 표정. 케리스 알렌은 그 낯짝에서 기이함을 마주한다. 자신을 한참이고 응망하는 눈동자, 목이 죄이는 것만 같은… 이거, 괜찮은건가? 아니. 이걸로 더, 나쁜 척 해도 되긴 하겠다. 이런 걸로 기분 나쁘면 안 되지, 우리가 시작한 연극이잖아. 아직 끝나지 않은 랑데부. 얽히고 섥인 것들이 척추께를 타고 올라와 모가지를 죄여도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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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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