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덷무대해

자각

2019.12.12 / 앙상블 스타즈 - 사쿠마 레이 드림

최근의 메이는 이상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저번 그 일이 있었던 이후부터 '사쿠마 레이'를 보는 일이, 아니 생각하는 일이 버거웠다.

괜히 침대 위에서 버둥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꺄 하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실제로 비명에 놀라 방으로 들어온 친오빠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며 나가라고 등 떠민 지 며칠째, 아무래도 이건 확실히 이상했다.

"안 가냐?"

"으, 응. 가야지."

코가의 물음에 메이는 가방을 챙겨 들었다. 언데드의 유닛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그전까지는 연습이 없어서 딱히 만날 일이 없었다지만 오늘은 꼭 얼굴을 봐야 하는 날이었다. 

손이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숨은 어떻게 쉬는 거였더라. 성큼성큼 나아가는 코가를 덥석 잡은 메이가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천천히 가자."

"너무 빨랐냐?"

"응."

다른 때였으면 벌써 신이 나서 달려가고도 남았는데 천천히 가자는 말에 코가는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경음부실과 연습실로 가는 갈라진 길목에서 메이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안 데리러 가도 되지 않을까?"

"퍽이나 그렇겠다."

코가 안의 레이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인 걸까. 단호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매이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그 뒤를 따랐다.

레이를 만나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평소에는 뭐라고 말을 했더라. 머릿속에서 몇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어떻게 대해야 평범하게 인사를 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어색한 걸까. 메이는 천천히 레이에 대해 떠올렸다.

그 얼굴과 손에 남았던 촉감. 그리고,

"꺄!"

"왜, 뭐!"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

낮고 달콤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뺨에 메이는 양손으로 뺨을 감싸 쥐었다.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 코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진 메이는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좋아하나 봐."

"뭘? 말 좀 알아듣게 해."

내가 사쿠마 선배를 좋아하나 봐, 입안에 삼킨 말은 그대로 가슴에 박혀 들었다.

코가는 메이의 상태가 이상한 것 같다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연습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언데드의 프로듀서가 아프다는 데 야박하게 굴 정도로 무뢰한은 아니었다.

"나 어떡해."

"많이 아프냐?"

이마를 짚어오는 손에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레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서로 치열한 다툼을 오가고 있었다. 이제 심각해 보이기까지 해 코가는 일단 메이를 양호실에 데려다주는 게 좋겠다며 팔을 잡아끌었다.

"양호실부터 가자."

"응…."

메이는 경음부실이 보이는 복도를 등지고 앞서 나아가는 코가의 뒤를 따랐다. 양호실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으라는 말을 듣고 나니 더욱더 생각이 많아졌다. 

Q. 사쿠마 레이를 좋아하나요?

A. 네...

Q. 좋아하는 건 무대에서도 좋아하지 않았나요?

A. 무대 밖에서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Q. 그럼, 사귀고 싶나요?

자신의 질문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킨 메이는 다시금 침대 위로 쓰러졌다.

자각한 그 날 부터 메이는 눈에 띄게 레이를 피해 다녔다. 아니, 피하려고 했다. 

복도 저편에서 오는 레이를 보면 반가움이 얼굴에 물들었다가 냉큼 벽 뒤로 숨는 것이었다. 절대 상대방이 모를 수 없게 온몸으로 놀라 파드득거리며 숨는 탓에 메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메이가 레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뭐하냐."

"선배 갔어?"

"어."

이 진척 없는 사태에 대해서 코가는 하얀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코너를 돌자마자 서 있는 레이에 메이가 화들짝 놀라 하며 코가의 뒤로 몸을 숨겼다. 레이는 메이에게 변화가 일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각한 메이가 파드득 도망갈 것을 이미 예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이 반가웠다.

기다림 끝에 맺힐 과실이 극상의 달콤함을 머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기다림은 당연한 것이었다.

"잠시 이야기 할 수 있누?"

"그, 어…, 아…."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코가의 팔을 움켜잡고 있는 메이에게 레이는 다그치지 않고 잠자코 답변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참지 못한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어야 했던 코가였다. 예로부터 커플 사이에 일에는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고 했었던 터라, 코가는 냉큼 둘이서 해결하라며 메이를 레이 쪽으로 밀었다.

"둘이서! 제대로! 해결하라고!"

그동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터라 코가는 냉큼 자리를 떠났다. 

레이가 기다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긴 했으나, 안달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코가에게 돌아갔고, 교실에선 메이에게 부실에선 레이에게 양쪽으로 치인 코가야 말로 이 상황에 최대의 피해자였다. 

"그럼, 경음부실로 가세."

메이는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역시 고백하는 편이 나을까. 어디서부터 고백을 해야 할까. 열심히 봤던 순정만화를 생각하면 보통 처음 본 순간부터 네가 좋았어, 이런 식의 고백이었는데,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니까 이건 아니지 않을까. 

꼬리의 꼬리를 물고 길어지는 생각에 부실에 도착한 지도 몰랐던 메이가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고 나서야 도착한 것을 알아차렸다.

"좀 진정은 되었고?"

"아, 아뇨. 하나도 안 됐어요."

레이는 메이의 머릿속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표정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땐 효과적인 방법이 있지."

"뭔데요?"

"좋아하네."

메이는 심장이 크게 번지점프를 하는 감각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심장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심장 박동에 심장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 가버린 것만 같았다. 역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얼굴에서 읽히는 생각에 레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좋아한다고 했네. 전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좋아할 예정이지."

"꿈인가."

살짝 뺨을 꼬집어본 메이가 그다지 아프지 않아서 반대쪽 뺨도 꼬집는 것에 레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양손으로 양 뺨을 꼬집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귀여웠던 탓이었다.

"그렇게 확인하지 않아도, 꿈이 아닐세."

"…깨어나서 복권 사러 가야 하는 그런 거 아니죠?"

"당첨되면 좋겠지만, 아닐세. 이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어, 저…, 선배, 좋아해요."

간신히 내뱉은 말은 그동안 내뱉지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게 했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할수록, 감정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가슴을 가득 메우고도 넘쳐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이 이렇게나 뜨거울 수도 있다는 것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 걸음 다가가온 레이가 메이의 손을 잡았다.

"그럼, 이제 이렇게 손을 잡을 수 있겠구먼."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히며 강하게 맞물렸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상황이 마무리되고, 당연히 주변인들에게 알리지 않아도 누구나 두 사람이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는 했다. 그렇게 티가 나게 굴었는데 모르는 것이 이상했다. 오히려 아직도 안 사귀었냐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사귀게 되었습니다!"

"뭐가 그런 이유냐! 제대로 설명을 해라!"

"어…, 어쩌다 보니 사귀게 되었습니다!"

"아까보다 더 아무 말이잖아!"

코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피해 다니는 것보다는 낫긴 한데 이 꼴을 계속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도 쓰린 것 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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