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주영] 푸르던
첫업로드: 2023.02.19. 포스타입
푸하—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꿀꺽꿀꺽 들이켠 대만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같아. 옆에 앉아있던 주영이 놀렸으나 대만은 별말 없이 키득거렸다. 슬슬 뜨거워지는 햇빛이 코트 바닥을 데우고 있었지만, 늦봄의 우거진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이쪽 그늘은 제법 시원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땀에 젖은 두 사람의 머리칼을 느릿느릿 쓸어주었다. 열을 식히려는 듯 찬 음료수병과 맞닿은 주영의 분홍빛 뺨을 가만히 바라보던 대만이 문득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까 이거 다 너 좋은 일인데. 왜 내가 음료수를 샀지?"
"한 골만 넣으면 사준다며.“
"그러니까! 왜 그랬지."
별로 지치진 않았지만 익숙하게 주영의 무릎에 머리를 뉘었다.
나뭇잎 새로 금모래처럼 흩어지는 햇살. 너무 넓어서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청명한 하늘. 그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는 흰 구름. 고개를 돌리면 까만 머리를 올려묶은 주영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좋은 날이네.
"바보라서 그래."
혈색 좋은 붉은 입술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담았다. 그러고 보니 곧 앵두 철이던가? 하주영이 앵두 좋아하는데.
"남편 될 사람한테 바보가 뭐냐?"
"누가 남편이야?!"
"'될 사람'이라고 했는데 바보야?“
곧 생일이니까 앵두를 구해달라고 해야지. 아주 많이. 원성 어린 주영의 대꾸를 듣는 둥 마는 둥 몸을 일으키던 대만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공을 집어 들었다. 통, 통, 통. 바닥을 치고 손 위로 올라온 공을 옆구리에 끼웠다. 맛있겠네. 여전히 투덜거리는 주영에게 대만은 빈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기분 좋게 씩 웃으며 제안했다.
"스무 번 던져서 한 골 들어가면 시집오란 얘기 그만할게."
"그러다간 정작 시험 보는 날 팔도 안 올라갈걸?"
"그럼 열 번. 그중에 한 골. 괜찮지?"
뾰로통했던 얼굴에 열의가 차올랐다. 한 골 정도… 넣을 수 있으려나? 어느 틈에 빼앗아 간 공을 어색하게 튕기는 첫 제자를 보며 그는 난감한 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시 자세부터 잡아볼까? 두 병의 음료수를 그늘 안에 나란히 세워놓고 이내 대만은 주영을 향해 햇살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한 골도 들어가지 않았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