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커미션][짓큐사니<노리] 마주하기

[오마카세 타입] 김제스님이 신청하신 글커미션

written by. @saniwa_jeyeon CM

 

 

1.

 

 

 

 

 

카호에게서 때아닌 가을의 향기가 났다.

 

"짓큐씨, 왜 그래요?“

 

“카호씨한테서 꽃향기가 나서. 기억에 있는 향인데 무슨 꽃인지 모르겠네...”

 

“아마 국화일 거예요. 부장님이랑 대국할 때 국화차를 마셨거든요. 아마도, 그 향이 배어서.”

 

“응. 그렇구나. 국화인가.”

 

짓큐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온화한 향기를 맡으면서도, 카호에게는 조금 다른 향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카호에게 더 어울리는 것은 아마도, 살랑거리던 기분 좋은 바람. 아침마다 조금씩 따뜻해지던 공기. 익숙해진 섬유유연제의 향. 감자보다 당근을 더 많이 넣은 카레 냄새. 그런 것들이라고.

 

그것은 짓큐가 카호와 함께 있을 때 맡고 느끼는 것들이라는 것을 짓큐 미츠타다는 문득 깨닫는다.

 

짓큐만이 아는, 짓큐만의 카호다.

 

 

 

 

 

 

 

 

 

 

 

 

 

 

 

 

 

 

 

2.

 

 

 

 

 

 

꿈을 꾸었다, 고 생각한다. 그 꿈속에는 카호씨가 나왔다. 카호씨는 내가 모르는 남자와 함께 걷고 있었는데, 평소의 담담한 표정과는 다르게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투명한 무언가가 두 사람과 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카호씨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눈이 마주쳐서, 나도 모르게 카호씨, 하고 불렀는데. 카호씨는 그대로 다시 곁에 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그 사람과 함께 걸어 가버렸다. 그 순간의 나는 카호씨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 그것이 서운했다. 섭섭했다. 외롭고 쓸쓸했다. 그렇게 망연히 서있다가, 꿈에서 깨어났던 것 같다. 눈을 뜨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그를 이상하게 여긴 카호씨가 어딘가 좋지않느냐고 물었을 때, 카호씨의 얼굴을 보고, 평소의 카호씨구나 싶어서 안심했다.

"꿈자리가 사나워서."

 

"무슨 꿈을 꿨길래 그래요?"

 

"음. 뭐였을까. 잊어버렸어."

 

누군가 카호씨를 좋아하면, 카호씨도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몰라.

그럼 우리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처럼 함께 있을 수는 없는 거겠지.

어쩐지, 조금 싫은 걸.

 

그렇게 처음으로, 카호씨에게 거짓말을 했다.

 

 

 

 

 

 

 

 

 

 

 

 

 

 

3.

 

 

 

 

 

카호와 짓큐가 함께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기척도 없이 그들의 상사가 나타났다. 그런 그의 행태가 이미 익숙해진 두 사람은 놀라지 않았다. 짓큐로 말하자면, 이미 기척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나타나는 것을 기다린 것에 가까웠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부하들을 보면, 노리무네는 귀여웠던 부하들이 다 변해버렸다며 한탄했다.

 

"어디 가나?"

 

"아, 지난번에 정화했던 남사들 만나러 잠깐 센터예요. 어떻게 아셨어요?"

 

"웬일로 색이 든 옷을 입었길래. 자네 늘 검은색 아니면 흰색 옷만 입잖나."

"정장이 다 거기서 거기죠......"

 

"우리 부서는 복장 자유지만?"

 

"기본적인 게 있잖아요."

 

"그래도 자네는 거기 갈 때는 늘 차려입고 가더군."

 

"파견나갈 때 보통 정장을 입고 있었으니까요. 정화 과정이 늘 평화롭게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험악하게 굴러갈 때도 많은데, 피차 그때가 떠오르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으니까."

 

"자네는 그런 점이 참 기특하지."

 

카호의 대답을 들은 노리무네가 껄껄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호는 기껏 정돈한 머리가 헝클어졌다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나서, 그가 던진 아주 사소한 한마디.

 

짓큐는 스스로가 감정에 있어서 상당히 느리고 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 느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도 평소에도 가끔 입게. 잘 어울리는 구먼. 고와."

노리무네의 그런, 아주 사소한 한마디는, 짓큐에게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 미소가 스며든 목소리. 노리무네는 카호씨의 앞에서 그렇게 변했다.

 

아마도 가랑비에 옷 젖듯. 카호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변해버린 것이리라. 짓큐는 어쩐지 알 수 있었다.

 

"그런가요."

 

카호는 여느 때처럼 담담하게 대답하며, 이 사람이 또 나를 놀리는 거로구나, 하는 눈빛을 했지만.

 

짓큐는 그만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리고 말았다.

 

 

 

 

 

 

 

 

 

 

 

4.

 

 

 

 

 

 

언젠가 카호씨와 함께 봤던 영화에서 본 사랑은, 굉장히 강렬한 감정이었다. 기뻐서 웃게되고, 슬퍼서 울게 되고, 스스로를 다 내던져도 좋다고 느끼며, 스스럼 없이 상대를 끌어안는 그런 커다란 감정.

 

그런 거창한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다.

 

다만 함께 하는 일상이 당연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그렇게 깨닫는다.

 

그렇구나, 그런 식으로 내게는 카호씨가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구나.

 

그러면, 카호씨는 어떨까.

 

카호씨의 안에도 내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서 함께 있게 된 건, 분명 수많은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래도 카호씨는 나랑 함께 있는 걸 선택하고, 나도 카호씨와 함께 있기를 선택했다고 믿고 싶으니까.

 

나는 기억이 없기에, 뿌리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그래서 카호씨를 붙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느끼는 이 마음은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뭔가를 말하면, 카호씨가 날 마주하기 어려워할텐데.

 

괜히 욕심 부려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그래, 그래야하는데…

 

 

 

전하지 못하고 치워둔 마음은, 햇볕 아래에 놓인 눈사람처럼 천천히, 흐물흐물 녹아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건 싫다고 생각했다.

 

 

 

 

 

 

 

 

 

 

 

 

 

 

 

 

5.

 

 

 

 

 

노리무네는 좋은 상사다. 그는 부하에게 대국이나 향도를 청하며 어려움은 없는지 살뜰히 살피곤 했는데, 짓큐도 정화부 소속이자 현현된 지 오래되지 않은 남사다보니 그 대상이 되곤 했다. 짓큐에게도 그에게 초대받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분명히 그랬을 터인데, 향로에 피워진 침향 연기 사이로, 짓큐의 마음은 다른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노리무네씨가, 카호씨를 좋아하는구나.

언제부터 그랬을까. 왜 좋아하게 된 걸까.

노리무네씨한테도 보였나? 노리무네씨도 봐버렸나?

강하고 의연하여 반짝이는 나만이 아는 카호씨를.

 

그래서, 실례라고 생각하면서도 노리무네에게 불현듯 묻고 말았다.

 

“노리무네씨는, 카호씨를 좋아해?”

 

“그럼, 좋아하지.”

 

노력하는 부하를 어찌 좋아하지 않겠냐며 노리무네는 허허 웃었다. 짓큐가 바라는 답이 아니었다. 짓큐는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으면서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카호씨를, 정말 좋아해?”

 

“자네는 참, 이상한 부분에서 거리감이 없구먼……”

 

노리무네가 부채를 입으로 가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감정에도 둔한 이 부하 녀석이 눈치채고 속으로 혀를 찼다. 맨날 스스로를 늙은이라고 칭하고 다녔더니, 정말로 나이가 들어서 빈틈이 많아졌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고 반성하지는 않았다.

 

“왜인지, 물어봐도 될까.”

 

“왜라는 게 있나. 그냥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 좋구나 싶은 거지.”

 

그래도 짓큐도 나름대로 귀여운 부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다, 처음으로 제 마음을 눈치챈 이라서, 노리무네는 어느 정도는 말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자네가 원하는 건 그런 말이 아닐테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래. 머리 위에서 꽃잎이 휘날리는 게 보였네.”

 

“노리무네씨는 카호씨에게 고백같은 건, 하지 않아?"

 

“그냥 혼자 좋아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있는 그대로의 카호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즐겁고.”

 

고백하면 당장에 사직서를 내고 감찰부로 달려갈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지, 라고 말하며 노리무네가 우하하 웃었다. 그리고는 뚝, 웃음을 멈추더니 다소 진중한 표정을 했다.

 

“……그래도, 언젠간 그이가 내게 호의를 가지게 될 수도 있지 않나, 싶지.”

 

물론 아주 잠깐 동안만.

 

“뭐, 상대가 그 카호라서야 쉽지는 않겠지만!”

 

본인은 의식하고 하는 게 아니겠지만 요리조리 쏙쏙 빠져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라며 노리무네가 웃었다.

"노리무네씨는, 특정한 뭔가에 애착을 가지지 않을 거 라고 생각했어."

 

“그러게 말이야. 인간이 죽는 것도, 물건이 부서지는 것도 참으로 오래도록 보아왔는데. 여전히 사람을 사랑스럽게 여기게 되는 것을 보면, 물건도 팔자가 있으려니, 하게 된다네.”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물건의 일도 마찬가지인 법이다.

 

"그렇구나, 노리무네씨는 그런 식으로 카호씨를 사랑스럽게 여기는구나."

 

“자네도 알아는 두는 게 좋아. 우리는 변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늘 변하는 법이네.”

 

사소하게 질투하며, 견제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는 이끌어주며 등을 밀어주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하며, 노리무네는 짓큐에게 꽃을 한 송이 던졌다.

 

"짓큐 미츠타다. 자네는 어떤가?"

 

 

 

 

 

 

6.

 

 

 

 

 

있지, 카호씨.

 

카호씨는, 어디로 가고 있어?

 

나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걸까.

 

내가 카호씨 손을 붙들고 같이 걸어가 달라고 하면 그래 줄래?

 

이것은 없었던 편이 나았을 마음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생겨버린 것이, 쉽게 없어지진 않겠지.

 

그리고 나는, 부정하고 싶지도, 숨기고 싶지도 않아.

 

있잖아, 카호씨. 나는 그냥 카호씨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좋아. 카호씨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좋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순간에 흐르는 고요함도 좋아해. 그럴 때면, 내가 느끼는 감정이 한없이 선명해지고 동시에,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니게 돼. 당연하다는 듯이 카호씨의 것이 되어서, 그 곁에 슬쩍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어. 두근거림이나, 설렘. 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딱히 나만의 카호씨가 아니어도 괜찮아.

 

그래도, 나만의 카호씨면 좋겠다...

 

 

 

 

 

 

 

 

 

 

 

 

 

7.

 

 

 

 

 

열대야가 찾아오는 밤이면, 에어컨을 틀어두었음에도 카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카호가 잠들지 못하는데 짓큐가 잘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그럴 때면 이불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누운 두 사람은 잠이 올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날 있었던 이야기, 좋았던 일, 사소한 일, 속상했던 일......그러다 보면 가끔은 카호의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다.

 

“좀 더 즐겁게 살 수는 없을까…가끔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일이 많고 고되지만, 감찰부 시절에는 일이 많은 데다 서툴기까지 해서 굉장히 힘들고 지치는 나날이 이어졌다고 카호가 말했다. 하필 전 상사가 그 근거 있는 오만함을 가진 야만바기리 쵸우기라서야, 울면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고. 카호씨도 이런 말을 하는구나, 하고 짓큐는 조금 즐거워졌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알겠어요. 산다는 게 좋은 날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거고..그래도요, 짓큐씨. 지금의 저는 짓큐씨 덕에 좋은 날이 더 많아요. 고마워요. 갑자기 뜬금없죠?"

 

그래도 한 번쯤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흐려졌다. 짓큐는 괜히 카호씨, 자? 라고 묻지 않았다. 그저 카호가 한 말을 소리 없이 입으로 따라 하면서, 나는 카호씨를 만나고 좋은 날밖에 없었어, 하고 덧붙였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나는, 카호씨가.

 

 

 

 

 

 

 

 

 

 

 

8.

 

 

 

 

 

노리무네와 함께 있는 카호씨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노리무네씨가 사소하게 카호씨의 이름을 부르고, 머리를 쓰다듬고, 카호씨도 귀찮아하면서도 거기에 익숙하게 반응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런 걸 하고 싶나? 나는, 저런 걸 원하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다른 이의 사랑은 그 사람의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번쩍이고 가치가 있어 보여도 나의 사랑은 아니다.

 

내 마음은, 내가 찾아서 키워가야 하는 것.

 

소중히 꽃을 가꾸듯이, 작물을 키우듯이, 볕을 쐬게 하고, 물을 주고, 바람을 맞게 하면서. 그렇게, 나름의 방식대로.

 

나의 마음은 다른 이와 상관없는 것이니 나의 사랑은, 나의 속도대로 찾아가면 될 일이다.

 

기뻐하면서 웃게 되거나 슬퍼하면서 울게 되거나, 그런 강렬한 감정만이 사랑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음도 사랑이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있잖아, 카호씨.”

 

나는, 결국에는 말하고 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음을 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데, 물상신과 사람 사이는 더욱 그렇겠지. 그래도 전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흐려져서 사라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카호씨가 될 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잘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망설이면서도.

 

“사랑을 하는 방법을, 함께 알아가지 않을래?”

불길이 모든 것을 태워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내 안에는 불씨가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제가 없어도, 기억이 없어도.

 

지금이 있고, 내일이 있으며, 카호씨가 있다.

 

나만이 아는, 나의 카호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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