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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코류송하] 나의 개 같은 Apricot Boy

[오마카세 타입] 만송님이 신청하신 글커미션

written by. @saniwa_jeyeon CM

 

 

 

 

 

 

 

 

 

나의 개 같은 Apricot Boy

 

 

 

 

 

 

 

 

 

 

 

 

0.

 

 

 

 

 

열리지 않길 바라던 상자가 열려, 마음을 자각한 것이 송하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왜 알아 버린거지.

 

거짓말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애랑 있으면 즐거웠는데, 내가 다 망쳤어.

 

내가 괜한 마음을 가져서, 다 망쳐버렸어.

 

송하는 저 자신이 정말 싫었다.

 

 

 

 

 

 

 

 

1.

 

 

 

 

 

송하는 코류 카게미츠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린다.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같았다. 솔직히 말을 섞을 일도 없을 줄 알았다.

 

1교시 수업, 졸음에 찌든 학우들 사이에서 그 애는 유독 빛나고 있었다. 그래, 잘생겼다는 뜻이다. 선명한 이목구비에 단단한 턱과 샤프한 얼굴선은 송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인의 조건에 부합했다. 잘 나간다고 하는 아이돌들 사이에서도 잘생긴 남자 찾기가 힘든 이 시대에, 코류는 누구나가 한 번쯤은 넋을 잃고 홀린 듯이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눈 심심할 때 관상용으로 삼기 딱 좋네.

 

그게 송하가 코류에게 가진 첫인상이었다.

 

 

뭐, 친해진 것도 우연이었다. 어쩌다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고, 필기구를 빌리거나 빌려주었다. 서로 이름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 수업은 교수님이 학생들의 출석을 꼬박꼬박 부르는 수업이었으니까. 그렇게 연락처도 교환하게 되었다. 코류는 생긴 것처럼 매사를 자유롭게, 마음 가는 것처럼 사는 애였는데, 그런 만큼 자체휴강도 자주 했다. 얼떨결에 친해지긴 했어도 아는 사람이라고, 송하는 코류가 눈에 밟혀서 조금씩 챙겨주기 시작했다. 학사경고를 받을까 봐 수업에는 나오라고 카톡을 하고-그때는 코류가 송하 저보다 성적이 한참 높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과제나 진도를 알려주곤 했다.

 

그런 송하의 친절에 코류가 고맙다고 보답한 것이, 술을 사면서 그 자리에서 골든벨을 울린 거였다. 보기보다 시원시원하고 괜찮은 애라며 송하는 마음을 확 열었다. 공짜 술이 입에 달았다. 함께 어울려 노는 게 즐거웠다.

 

과제 하느라 밤을 새고 기어오듯 1교시 수업에 온 송하에게 장난스럽게 팬더가 누님, 하겠다며 커피를 내미는 친절함이 있었다. 술을 마시면 꼭 해장은 초코우유로 해야 한다며 더 마시자는 저를 끌고 편의점에 가서 손에 초코우유를 쥐어 주는 엉뚱함이 있었다. 집안 식구들이 자기한테 늘 잔소리를 많이 한다며 투덜거리는 것이 귀여웠다. 마음먹으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주제에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신중하다' 고 말할 때는 괜히 등짝을 때리기도 했다.

 

 

좋은 남사친을 사귀었다고, 이게 대학 다니는 재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송하가 코류를 좋아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2.

 

 

 

 

 

코류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송하가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그야, 그 애가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물론 그 말도 안 되는 착각은 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코류가 좋아하는 사람?없는데?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으로 종결되었다. 문 밖에서 그 말을 들은 송하는 괜히 수치스러워져서 초코우유 두 개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뒷걸음질을 쳤다.

 

송하는 딱히 금사빠가 아니었으니-적어도 송하 자신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사람을 오해하게끔 만든 코류의 과실이 100퍼센트이리라. 공대 운동장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초코우유 두 개를 모두 제 입에 털어넣으며 송하는 속으로 열불을 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랬는데? 왜 항상 송하야, 하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렀는데? 히젠이나 만바처럼 야!라고 부르거나 성을 붙여부르지. 왜 1교시 수업이 있을 때면 항상 커피 사서 손에 쥐어줬는데? 그것도 자판기 커피도 아니고 굳이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 해놓은 걸. 왜 같이 술 먹으면 꼭 같이 나가서 초코우유 사줬어? 우연도 아니고 술 마시다보면 배시시 웃으면서 우리 초코우유 마시러 가자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내가 착각을 안 해? 착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물론 대놓고 수작을 부리거나, 꼬시는 듯한 말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잖아.

 

그냥 친구 사이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느 정도는 호감이 있을지도, 네가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우유팩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며 송하는 한숨을 쉬었다. 알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 열을 내고 있는 것은, 송하 나름대로 그 착각을 즐겼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군가가 좋아할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송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잘생기고, 돈도 많고, 성격까지 좋은, 소설이나 책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남자가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설레고 기뻐져서, 잠깐 되지도 않는 꿈을 꾼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송하가 코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코류의 말에 충격같은 건 티끌만큼도 받지 않고 그 사이로 터벅터벅 걸어가 늘 자기가 얻어먹었으니 오늘은 내가 쏜다며 그 손에 초코우유-물론, 코류를 위해서 샀다기보단 원 플러스 원하는 걸 보니 코류 생각이 난 거였다- 쥐어주며 자신만만하게 웃었을 것이다. 같이 술을 마시다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나 네가 나 좋아하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며 그 말을 술안주 삼아 또 즐겁게 술을 들이부었을 것이다.

 

괜히 좋아해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서, 친하게 잘 어울려 지내던 친구 하나 잃게 되었다는 생각에 입맛이 썼다.

 

그래도 와중에 미리 코류의 의중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코류도 송하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고백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나를? 왜?

-너도 나 좋아하잖아...?

-내가?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맞닥뜨렸다면 송하는 당장에 휴학이나 자퇴를 고민했을 것이다. 아니, 고민하기보다는 실행에 옮겼겠지. 그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히젠이나 만바는 나랑 밥이나 같이 먹어주지 술은 안 먹어주는데, 난 이제 누구랑 술을 마시나.

 

스스로의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고 비참했다.

 

 

 

 

3.

 

 

 

 

 

그 이후로 송하는 코류를 피해다녔다. 수업시간이면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고, 혹시라도 말을 걸어올까봐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교실을 나섰다. 학과 휴게실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코류로부터는 계속 카톡이 왔지만 열어보지도 않고 씹었다. 확인하지 않은 알림 배지만 잔뜩 쌓여갔다. 그래도 알림 설정에서 지우기 버튼을 누르면 당장에는 보이지 않았으니 괜찮았다.

 

코류 입장에선 어이가 없고 황당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 같이 술 마시고 잘 놀던 애가 갑자기 자기를 무시하고 연락도 씹으니까. 하지만 송하는 코류를 마주하기 싫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접지 못했으니까. 코류의 얼굴을 보게 되면 견물생심이라고,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또 비참해지겠지. 송하는 그게 싫었다.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 눈이 문제야. 송하는 생각했다. 코류를 떠올릴 때면, 그 보랏빛 눈동자와, 붉은 눈가가 생각났다. 그 자수정같이 은은하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다정하게 웃으며 송하를 바라볼 때면, 송하는 괜히 마음이 떨리곤 했다. 가끔 정리하는 것을 잊어버린 금색 머리카락이 그 눈을 가리고 있을 때면, 제 손으로 그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곤 했다. 그 눈동자를 마주하면, 또 착각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반달 모양으로 눈을 예쁘게 휘며 송하야, 하고 부르면, 또 속을 지도 모른다. 그 앞에서 정신을 차릴 자신은 없으니,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기를 쓰고 피하면서도 코류 생각을 하는 송하 자신이 어이없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과제며 시험공부에 시달리느라 코류 생각할 틈이 없었다.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급하게 달달 외운 내용이 머릿속에서 달아날까 무서워하기나 했다.

 

그래도 밤을 새워 과제를 할 때에는 이따금 코류 생각이 났다. 정확히는 졸음을 쫓아내려고 커피를 들이붓고 있을 때면 그랬다. 카페인이 많이 든 것으로 유명한 파란색 캔커피는 인공적인 단맛이나 났지 맛이 없었다. 코류가 늘 사서 내밀던 커피는 참 맛이 있었는데. 커피나 차에 조예가 없는 송하의 혀에도 그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캔커피도 맛있다고 잘 마셨는데, 코류 카게미츠가 내 입맛 다 버려놨지. 진짜.

 

한동안은 늘 그랬듯이 커피 두 개씩 사오는 거 같은데, 어떻게 했을까? 둘 다 자기가 마셨을까? 다른 애 줬을까? 아니면 버렸을까.

 

무거운 머리를 못 이기고 송하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여전히 좋아하냐고 한다면, 여전히 좋아한다. 빨리 접어야하는데, 마음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나같은 사람이 좋아하는 건 코류 인생에 하나도 득 될 게 없는 일인데, 민폐나 될텐데. 코류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송하는 그것이 미안했다. 미안하게 느끼는 스스로가 가엾고, 슬펐다가, 참 주제도 모르게 굴다 꼴 좋게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코류가 미웠다.

 

물론 그보다도, 송하 저 자신이 제일 싫었다.

 

 

 

 

 

 

 

 

 

 

 

 

 

 

 

 

4.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반쯤 찍었지만, 그래도 시험이 끝난 건 끝난 거라서 송하는 긴장을 풀고 해방감을 느꼈다. 집에 가서 못잔 잠을 퍼질러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건물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수업에는 그렇게 빠졌으면서 그래도 시험기간이라고 밤을 새면서 공부한거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퀭한 눈동자의 코류가 송하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와서 팔을 잡았다. 반쯤 졸린 머리로 송하는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다크서클에 눈도 충혈됐는데 쟤는 이와중에도 참 잘생겼다고. 내 얼굴을 아마 난리가 났을 텐데.

 

"왜, 연락 안 받아? 왜 피해?"

 

 

 

다짜고짜 코류가 물은 것은 그 말이었다. 송하는 이해했다. 하긴, 너도 나같은 여사친 어디서 구하겠냐. 같이 즐겁게 놀고 술도 마시고, 수업 빠지면 챙겨주고.

 

"바빠서..."

 

내가 너 좋아해서, 너는 날 좋아하지 않는 걸 아니까. 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낼 용기도 생각도 없었다. 바빠서, 송하가 내뱉은 변명을 따라 말한 코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표정을 굳혔다. 이 애가 왜 이러는지, 송하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하지마."

 

이 인성 좋고 잘생긴 애가 어디 다른 사람한테 손절이나 당해봤겠어? 싸운 것도 아닌데 무시당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거지. 송하는 그렇게 코류에게 처음이고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지만은 않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진 코류의 말은 송하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직 확신하지 못하지만, 나는 널 좋아하게 될거란 생각이 든단 말이야."

 

 

제 팔을 잡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코류를 보며, 송하는 생각했다.

 

이 새끼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네 입으로 좋아하는 사람 없다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건 또 뭐야?

방향성을 확실히 해야할거 아니야?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잘생긴 얼굴이 아주 꼴값이었다. 그리고 더 짜증이 나는 건, 그 말에 조금 기뻐진 자신이었다.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아직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걸 아는데.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거 아닌가? 나름대로 고백 아니야?

 

"왜 확신을 못하는데...?"

 

그렇게 송하가 물어보자, 코류가 한 대답이 아주 가관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거 보다 신중한 사람이라니까......"

 

좋아하는 놈이고 뭐고 일단 한 대 때리고 싶다고, 송하는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신중이란 단어는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라고.

 

사흘은 잠을 못 잔 것처럼 보이는 푸석한 얼굴은 여전히 잘생겼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는 예뻤다. 어이가 없어도, 황당함을 느껴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흔들리는 갈대마냥 이도저도 아니게 흔들리며 신중해서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애한테 얼른 한쪽으로 마음을 정하라고 추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송하는 또다시 회피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시험 막 끝났으니까, 서로 충분히 자고 다시 이야기하자."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게 될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이라는 슈뢰딩거의 상태로 놔두는 것이 송하에겐 희망적이기 때문이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코류가 넋을 놓은 듯 송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하면 무시하지 말고 받아."

 

물론 송하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코류의 연락을 씹을 생각만만이었다.

 

 

 

 

 

 

 

 

5.

 

 

 

 

 

시험도 쳤겠다, 과제도 다 제출했겠다. 나가도 그만 안 나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송하가 자체휴강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대로 성적이의 신청 같은 일만 안 생기면 다음 학기까지 학교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지. 그렇게 마음 먹으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어차피 휴학이나 자퇴를 하지 않는 한 다음 학기에도 얼굴은 보게 될 터라, 송하는 코류를 차단하지 않았다. 그저 연락이 오면 침대 한 구석에 휴대폰을 던져두고 벨소리가 끊길 때까지 방치하고, 카톡 알람음은 아예 꺼놨다.

 

코류와 송하는 여전히 아무 관계가 아니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송하를 친구로 둔 죄로 코류에게 시달리다 못한 히젠과 만바가 술을 사겠다며 송하를 불러낼 미래가 곧 다가올 것이었지만.

 

코류와 송하는 여전히 아무 관계가 아니다.

 

아마도,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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