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리딩

[가유] 타로 리딩

로제딕2 실버 사용

엔듀 드림 by 엔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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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의 전반적인 인생

본래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을 볼 때에도 그 사람의 단편을 보는 것에 불과하고, 스스로마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결론 내리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가유의 속을 살짝 들춰본다면, 꿈에도 생각 못 한 것이 보입니다. 이걸 뭐라고 표현 해야할까요. 가유라는 그릇 안에 한 가지로 콕 집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들끓고 있습니다. 가유를…아니, ‘이것’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인간, 영물, 혼혈로 정의 할 수 없는 그것은 속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꽉 차 있고, 거죽 밑에는 피가 아닌 은하수 같은 것이 흐릅니다. 인간이 가진 100만개가 넘는 단어로도 이것을 정의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운명의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나타났다’라고는 표현 할 방법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기억일지, 스스로가 만든 기억일지 모를 것을 자신의 기억 삼아 나타난 그 존재는 스스로에게 ‘가유’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평범하지 않은 세상 속에 섞여들어갑니다.


가유가 불로장생인 이유

가유가 불로장생인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고, 그 불가능한 설명으로 가유가 불로장생인 이유를 설명 가능했으니까요.

구태여 길게 이유를 붙인다면, 가유의 속에는 수 많은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가유의 망가진 세포를 단숨에 재생시키고,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끊어진 숨을 다시 잇게 할 정도의 생명. 이렇게만 보면 불로불사가 아니느냐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이 재생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상상도 못 할 정도의 회복속도를 가진 것 뿐이지, 재생이 뒤쳐질 정도로 신체가 훼손 된다면 가유의 숨 역시 끊어지게 됩니다.


유다, 다나, 듄(이하 동창즈)과 만나게 된 계기

가유가 세상을 떠돌던 도중 발길이 멈춘 곳은 동창즈가 다니는 고등학교였습니다. 정확히는 다니게 될 학교였죠. 아무리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간다고 해도 정착할 곳이 없다는 것은 힘에 부칩니다. 누구라도 고정적인 인간관계를 원하고, 거기에서 제대로 된 안정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행복할테죠. 가유는 그런 인간관계와 안정을 이 학교에서 얻고자 했습니다.

입학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영물과 혼혈이라는 이색적인 존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도 이 학교는 그런 존재들에게 친화적인 곳이었으니 말이죠.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 단체의 수장이 친화적이라면 전체의 분위기도 대부분 친화적이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유라도 쉽게 받아준 것일테죠.

가유가 학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유 본인도 알지 못 하는 가유만의 특성 때문도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가유라는 그릇은 지구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그 지구는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지구가 아니라 멀리,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별입니다. 별이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겠네요. 가유가 품고 있는 것은 우리가 태양계라고 불리는 수준의 단위니까 말이죠. 그러니까 가유는 이 행성, 저 행성 할 것 없이 아주아주 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무엇하러 이런 이야기를 길게 했느냐면, 어떠한 생명이든 자신과 똑같은 생명에게는 경계를 풀고 느슨해지기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가유가 품고 있는 생명, 그 생명들이 뿜어내는 아우라, 혹은 기백이라 하는 것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경계를 풀게 만든다는 뜻이죠. 그래서 고등학교에도 쉽게 입학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동창즈와 만나며 친해지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스푼에 입사한 계기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생명은 생명에게 이끌린다고 말했던 것이 다른 존재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가유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했으니까요. 가유는 생명을 소중히 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한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했습니다. 운명의 물줄기에 몸을 맡기기만 하던 가유가 그 물줄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목을 이끈 것에 다가가기로 한 것입니다.

가유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언제 시작한지도 모를 삶을 살아왔습니다. 여태까지 한 행적들은 모두 본능에서 나오는 ‘이래야 한다’에 가까웠다면, 스푼에 입사한 것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움직여서 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두근거릴까요. 이 앞에 고난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는 가유를 멈출 수 없습니다. 가유는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을 하는 것에 기쁨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장기간 휴직한 이유

가유는 흔히 말하는 머리가 꽃밭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특기로는 불가능한 것이 없었고, 가유가 하는 일들은 언제나 하는 것처럼,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행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가유라도 타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선택 또한 가유가 스스로 좌지우지 할 수는 없었죠. 그 선택으로 가유는 절망했고, 무너져내렸습니다. 이 절망을 이겨낼 방법도 가유는 알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가유의 본능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늘 명쾌하게 방향을 지시하던 가유의 본능은 침묵했습니다.

가유의 이런 절망을 그냥 보고만 있지 못 한 다나는 억지로라도 가유가 휴식 시간을 갖게 합니다. 평범한 성인인 둘은 친구사이였지만, 스푼에 소속한 다나와 가유는 상하관계에 있었으니 말이죠. 게다가 그 무렵의 가유는 일에 집중하지 못 하고 사고를 치는 일도 늘어서 징계를 명목으로 쉬게 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가유는 잠시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복직 후의 가유

복직 후의 가유는 제법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휴직 전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온데다가 고등학생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죠. 고등학생 때는 은은한 애늙은이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면, 지금은 어린아이와 맞먹을 듯한 분위기를 가졌습니다. 특유의 내성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은 여전했지만, 귀능과 혜나와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면 할 말은 다 한 것 같습니다.

친구들의 괜찮냐는 물음에 가유는 확답을 내놓지 못 합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때의 감정이 느껴진다면서요. 그럼에도 가유는 웃음을 잃지 않기로 했습니다. 휴식을 가지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지 알았고, 자신이 품은 것들을 위해서 너무 오래 절망하면 안 된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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