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터수] Boleo

키워드: 장미/탱고

이지 by 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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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아까부터 장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엔카베데 본부 지하실 한가운데에 장미라니, 누구의 미적 감각일까. 머릿속으로 후보들을 떠올리다가 -사실상 이런 짓을 할 작자는 하나밖에 없으므로 그 생각은 금방 사그라들었다.-피와 비명, 그리고 악취로 흥건한 방 속에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는 꽃이 이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어울리는 것인지 따위를 고민했다. 종래에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 라는 가벼운 결론을 내린 수는 가만히 있다 문득 중얼거렸다.

"나랑 춤 출래요?"

서류에 고정되어 있던 비지터의 시선이 잠시 허공으로, 곧이어 수에게로 향했다.

"그걸 나한테 먼저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이네."
"잡아갈 때 안 춰줘서 서운했거든요."
"아, 내가 그 땐 좀 급해서."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에 비지터는 눈썹을 까딱였다가,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쥐고 있던 서류를 잠시 옆으로 치우는 사이 가볍게 수에게 말을 건넸다.

"뭐, 춤춰본 적 있어요?"
"나요? 많았죠."
"인기가 많았나봐. 사람들이 와서 춤 추자고 물어보고, 막 그랬어요?"

으응, 수가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내가 물어봤지."
"아하."
"당신도 이제 그 중 하나니까 질투하지 말아요."
"그 중 하나라서 질투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당신이 나한테 질투를 해요? 기분 좋네."
"그럼요, 시기도 죄악 중 하나인데."
"그럼, 추는 거죠?"
"못 출 거 없죠.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어느새 자신 앞에 다가온 비지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수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음악 있어요?"
"글쎄요, 비명은 가득한데."
"그럼 됐네."

한 손으로 대충 테이블을 턱턱 짚어대다가 화병에서 검붉은 장미를 꺼내 문 수가 나른하게 웃어 보였다.

"어때요?"
"예쁘네."

가시에 찔려 찢어진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본 비지터가 입매에 호선을 그렸다.

"내 취향을 알아."

Abrazo, Adelante, Atras. Izquierda, Camanita, Giro.
안아서, 앞으로, 뒤로. 왼쪽으로 돌고, 걷다가, 다시 회전.

Atras, Atras, Abrazo, Barrida.
뒤로, 뒤로, 안고, 발 끌기.

Uno, dos, tres.
1, 2, 3.

Caminada, Cortado, 
걷고, 끊고,

Traspie, Boleo, Ending.
트리플 스텝, 볼레오, 엔딩.

탱고를 끝마치자, 거칠어진 숨소리 사이로 새로이 누군가의 애원 소리와 비명이 들어찼다. 내리깐 시선에는 꽃잎들이 수와 비지터 사이로 흩어져 있었다. 그 모습에 나직이 탄식한 비지터는 마치 명화나 조각상, 순수하고 완벽한 영혼, 혹은 조물주의 생명을 온전히 불어넣은 무언가를 본 것마냥 굴었다. 이내 잡고 있던 손을 끈적히 쓸어내려 수의 팔목을 그러쥐고는,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시선을 숨긴 채 소중히 입을 맞췄다.

피와 비명, 그리고 악취로 흥건한 방 속에 홀로 고고하게 있는 존재.

붉은 나의 욕망.

"나갈까?"
"좋아요."

급해진 몸짓 사이로 수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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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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